〈 5화 〉 추기경에게는 다섯 명의 제자가 있다
* * *
"로렌스, 다시 만날 수 있어서 기쁩니다!"
"저도요, 크리스. 거진 1년 만인가요?"
"지금까지 어디서 뭘 하고 있던 거야!"
"진정하세요, 에델. 저도 놀고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오랜만에 동기들의 얼굴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다들 그다지 달라지지는 않은 듯하다. 한스는 여전히 여자를 밝히고, 에델은 여전히 퉁명스러우며, 크리스는 여전히 친절하다.
지금까지 너무 많은 것이 달라졌는데... 변하지 않는 것도 있는 모양이다.
"신시아, 소개할게요. 같은 스승의 밑에서 자란, 제 소중한 동기들입니다. 신시아...?"
"......"
낯선 사람을 갑자기 너무 많이 만날 걸까. 굳어있는 모습의 신시아는 처음 본다.
"신시아, 너무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돼요.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들 신시아를 이해해 주는 사, 람들..., 신시아?"
자세히 보니, 뭔가를 계속 중얼거리고 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죽인, 암컷 고양이, 빈 집, 동거? 소꿉친구, 어린 시절, 신부님? 부순, 계속, 함께, 오래, 사랑, 친구, 도둑, 오빠...?"
"신시아? 정신 좀 차려 보세요!"
"아, 아아아아아...!"
쩌저적. 어디선가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린다. 신시아에게서 나는 소리다. 황급히 그녀의 목덜미를 들춰본다. 예상대로, 로자리오에 금이 가 부서지기 직전이었다. 불길하면서도 강대한 마력. '마왕'의 전조가 방 안을 휘감는다.
"뭐, 뭐야? 변하는 거야? 마왕으로?"
"안 변하니까 방어 술식이나 짜고 있어요!"
나의 말을 들은 한스가 품에서 성수를 꺼내 바닥에 붓고는, 주문을 외워 신시아의 주위에 벽을 만든다. 크리스는 당황한 채로 방패를 들었고, 에델은.
"에델, 그 총 집어넣어!"
"이렇게 불안정한 상태일 거라곤 아무도 말 안 해줬잖아!"
"흔히 있는 일이야. 내 말대로 해!"
혀를 쯧, 차며 에델이 총을 집어넣었다. 저 피도 눈물도 없는 성격은 여전하구나. 신시아는... 이렇게 감정이 불안해지면 가끔 폭주할 때가 있다. 보통은 잊고 싶은 과거의 기억이 원인인데, 그 외의 경우라면.
"로, 로렌스! 제 뒤로 물러나십시오!"
"물러서, 로렌스!"
대게는 '나'에 관한 것이 원인이다. 보자, 이럴 때는 역시 '그 자세'를 취하는 것이 제일이다.
"신시아."
"신부님, 더럽혀졌어, 저, 도둑고양이들한테."
여전히 패닉에 빠져있는 상태이다. 두 손으로 신시아의 어깨를 강하게 잡는다. 흘러내린 수녀복 때문에 맨살이 손에 잡힌다. 이 정도 자극이면 충분할 텐데.
"신시아, 진정하세요. 저 둘은 단순한 친구입니다. 신시아가 걱정하는 특별한 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어요. 저도 저 둘을 그런 시선으로 보고 싶지 않고요."
"부수지, 않으면. 추악한, 배를, 갈라서."
자극이 모자란 건가. 아직도 자기만의 시선에 갇혀 있다. 이러고 싶지는 않은데.
"아으, 아아아아아."
"신시아, 미안합니다."
츗.
......
"츗?"
잠시간의 정적을 깬 건, 에델의 경악이었다.
"로, 로렌스? 너, 너 지금 무슨 짓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못할 짓을 한 것도 아니고. 아니, 못할 짓은 맞나. 제대로 된 사고도 할 수 없는 소녀의 이마에 입을 맞춰버렸으니.
눈을 가늘게 떠 상황을 본다. 에델은 손가락으로 이쪽을 가리키며 덜덜 떨고 있다. 크리스는 두 손으로 눈을 가리며 얼굴을 붉히고 있다. 그리고 한스는... 뭐야, 저 능글맞은 표정은.
"하, 하흐."
그리고 신시아는, 드디어 내 말을 들어주는 것 같다. 조심스레 입술을 이마에서 떼어낸다. 다행히 불길하게 일던 마력의 흐름이 잦아들었다.
"신, 신부님? 갑자기, 이게 무슨...! 이런 건 좀 더 분위기 있는 곳에서...!"
"신시아, 고백할 게 있어요."
"고, 고, 고백...?"
신시아의 얼굴이 붉어진다. 그녀의 얼굴을 보고, 끓어오르는 죄책감이 내 심장을 아프게 한다.
"저는 순결한 몸입니다."
"...응?"
"속세의 단어로 말하면, 동정이죠. 그것도 완벽한 동정입니다. 업무 상 여자 손이야 많이 잡아봤지만, 경험은 커녕 입을 맞춰본 적도 없어요."
"가, 가, 갑자기 그런 걸."
"그러니 불안해하지 않으셔도 돼요. 전 신부입니다. 신시아가 걱정하는 일은 결코, 절대로 일으키지 않을 테니."
"왜 말하는 건데!"
"불안해했잖아요? 저도 누군가의 이마에 입을 맞춰본 건 처음이라 부끄럽거든요. 그런데도 신시아에게 처음으로 한 거니까, 이쯤에서 멈춰줬으면 해요."
"처음?"
'처음'이란 단어를 듣자, 신시아의 머리에서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표정. 사람의 표정이란 게, 저렇게까지 녹을 수 있구나.
"헤헤, 처음. 내가, 신부님의 처음..."
양 손으로 뺨을 감싼 채 중얼거리기를 반복하더니, 과부하를 일으키며 그대로 쓰러졌다. 손바닥을 펼쳐 주위의 마력을 느껴본다. 음, 다행히 별다른 사항은 보이지 않는다.
"이걸로 일단락됐군요."
"되긴 뭐가 됐다는 거야!"
에델이 이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크리스는 연신 헛기침을 하고 있고, 한스는 아주 발랑 누워서 웃어대고 있다.
"너, 저렇게 위험한 걸 맡고 있었던 거야?"
"위험한 거, 라뇨. 신시아에게 그런 말을."
"위험한 거 맞지! '마왕 후보자'라는 게 전부 저런 거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다는 아닐 겁니다. 다만 우리 자매님이 조금 특이하셔서..."
"조금이 아니잖아!"
따박따박 들어오는 에델의 반박에 진땀이 흐를 무렵.
"거기까지."
문 쪽에서 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혼란은 믿음의 가장 큰 적이다. 모두 자중하거라."
"선생님!"
"선생님, 이게 얼마 만입니까!"
추기경 오를란도. 성국에 단 세 명뿐인 추기경 중 한 명이자, 우리 동기들의 스승이다.
"크리스, 한스. 이제 선생님이라는 말은 쓸 순 없어. 추기경 님이라고 존칭 하도록 해."
"이런 데서 만큼은 의견이 맞는군요, 에델."
"흐흠, 나는 어느 쪽이든 좋단다. 그 또한 너희들의 세상의 시선이니."
또각, 또각. 나무 지팡이를 바닥에 부딪히며, 추기경 님은 자리에 앉으셨다.
"다 모인 것 같군."
"아직 로제리오가 오지 않았습니다."
"로제리오는 오지 않을 게다."
내심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조금 씁쓸하다.
"본인 대신 답변 서신이 왔다. 지금 자신이 조사하고 있는 사항의 중대성 때문에, 긴급 소집에 참여할 수 없게 된 점에 사죄드린다더군."
"로제 다운 선택이네요."
한스가 웃어넘겼다. 아마 다른 모두 이해할 것이다. 로제는 수도사다. 그렇기에 그는 우리와 많이 접촉해서는 안된다.
성국의 성직자는 다섯 역할로 나뉜다. 사제, 신부, 성기사, 이단심문관, 그리고 수도사.
"로제 녀석, 간단한 편지라도 한 통 줄 것이지."
사제는 교황청에 직접적으로 소속되어 성사 준비와 성법의 수련, 연구를 맡는다. 마도 공화국의 마법사들과 비슷한 역할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다섯은 모두 사제의 소양이 있지만, 전문적으로 사제의 길에 들어선 '한스'가 역시 가장 뛰어나겠지.
"다들 예상하고 있었잖습니까. 그만큼 자유로운 영혼은 또 없죠."
신부는 가장 수가 많다. 각 지역의 성당에 파견되어 신도들을 이끌고, 민중에게 전도하는 것이 이들의 주요 역할이다. 지금의 내가 바로 이 '신부'이다.
"저는 여러분을 만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쁩니다."
성기사는 성국 제일의 전투 조직이다. 성법의 가호 아래, 검과 철퇴를 휘두르며 악을 무찌른다. 크리스티나는 이 성기사의 부대 중 하나를 맡고 있다.
"흥, 얼마나 대단하신 일이길래 추기경의 명령도 듣지 않는 건지."
이단심문관은 변절한 신도, 혹은 신의 뜻에 위험이 될 사항을 제거하는 데 초점을 둔다. 그렇기에 냉철하고 판단력이 뛰어난 자만이 이단심문관이 될 수 있다. 에델바이스라면, 그래, 넌 정말 딱이다.
"그렇지 않아도 너희들에게도 할 말을 동봉해 놨더구나."
마지막으로 수도사. 이들의 역할은 아이러니하게도, 신의 뜻을 의심하는 것이다. 신이 내린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지식을 쌓고, 고행을 하며, 비밀을 담당하는 것이 그들의 일이다. 자연스럽게 다른 성직자 세력을 견제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 되었다. 로제리오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어째서 그런 길을 택한 것인지.
"흠흠, 어디 보자."
추기경께서 소매에서 편지를 꺼내 펼쳤다. 저게 로제리오가 쓴 편지, 라.
'우리 다섯 명이 모일 수 있는, 어쩌면 마지막 기회에 가지 못하게 되어서 유감이야. 이것만큼은 알아줘. 나는 '수도사'라는 신분 때문에 너희들을 만나지 않는 게 아니라는 것을. 최근 '마왕'이 부활할 조짐이 보이고 있는 건 다들 알고 있을 거야.'
"여전히 말이 많군."
"한스! 조용히 하십시오!"
'최근 용사와 함께 '성녀'가 여행을 떠난 건 알고 있지?'
분명 기억이 있다. 온몸에 붕대가 감긴 하얀 머리의 여성. 어째서 '빛의 성녀'가 아닌, 처음 보는 성녀가 여행을 떠났는지는 의문이다.
'빛의 성녀, 용사와 함께 한 새로운 성녀. 그 둘 외에도 다른 '성녀'의 존재의 실마리가 잡혔어. 나는 '성녀'에 대해 알아보려 해. 어쩌면 위험할 수도 있어. 너희를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알고 싶어. 이 성국이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로제리오답군요. 정말이지."
"이 바보가...!"
"로제리오의 편지는 여기까지다."
로제리오는 우리만큼이나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는 듯하다. 그렇기에 어쩔 도리가 없음을, 추기경께서 가장 잘 알고 계시겠지.
"추기경 님. 그 편지는 제가 보관해도 괜찮겠습니까?"
"그래, 로제리오와 가장 편지를 자주 주고받던 건 로렌스, 너지?"
로제리오의 편지... 보관해 둘 가치는 충분하다.
"그렇게 된 고로, 이제 사람이 전부 모였으니 본론으로 들어가자꾸나."
* * *
"너희를 부른 이유, 대충은 알고 있겠지?"
"신시아, 때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내 옆에 기대서 잠을 자고 있는 신시아를 바라본다. 자신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는 채로, 곤히 눈을 감고 있다.
"그래, 그렇지. 반은 말이다."
"반은? 이유가 또 있다는 뜻입니까?"
"우선 '마왕 후보자'의 안건부터 얘기해보도록 하자꾸나. 그래, 이 아이가 신시아... 글로만 볼 때는 몰랐는데, 설마 이런 아이일 줄이야."
"위험한 소녀는 아닙니다. 제가 보증하죠."
"너, 아까 그 꼴을 보이고도...!"
추기경 님이 손을 들어 에델을 제지했다.
"걱정하지 말거라, 로렌스. 귀여운 아이라는 뜻이었다. 네가 생각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게야."
"감사합니다, 추기경 님."
"크흠, 흠, 너희를 부른 이유는 이것이다."
추기경께서 탁상에 문서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그곳에 적혀있는 글씨는, 여러 의미로 우리를 놀라게 했다.
'새로운 마왕 후보자에 대한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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