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 족쇄
* * *
평정심. 평정심을. 혼란은 믿음의 가장 큰 적이다.
하지만 이건 놀랄 수밖에 없지 않은가. 분명 성국의 '마왕 후보자'들은 신시아 하나였을 텐데. 그렇지 않다면 내가 '그곳'에서 신시아를 데려올 수도 없었을 것이다.
"선생님! 대체 이건...!"
"진정하거라, 한스. 걱정할 건 아무것도 없다."
추기경 님이 고개를 돌려 내 쪽을 보았다.
"이보게, 로렌스. 지금부터 묻는 말에 대답해보겠나?"
"알겠습니다."
"'마왕 후보자'는 마왕의 씨앗이자 초석이다. 상황만 갖춰진다면, 언제든 마왕으로 각성할 수 있지. 그런데 어째서 교황께선 저 소녀를 살려두라 명하셨지?"
"그건, 신시아가 아직 위험 요소로 확정되어 있지 않..."
"틀렸어."
아득. 볼 안 쪽에서 피 맛이 난다. 표정이 드러나지 않게, 어금니를 꽉 깨문다.
"저 소녀는 명백한 위험요소야. 부정할 수도 없지. 그럼 왜 저 아이를 죽이지 않는가?"
'죽인다'라는 말에 멋대로 몸이 반응한다. 에델이 뒤에서 내 손을 붙잡지 않았다면, 아마 분을 삭이지 못했을 것이다.
"죽이지 않는 게 아니야. 죽일 수 '없는' 거지. 마왕의 각성 조건은 아직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아. 그런데 만약 각성의 조건이 '죽음'이라면? 어쩌면 마왕은 저 소녀가 아니라 그 껍데기를 뒤집어쓴 마귀일 수도 있지."
"이 세상에 악귀는 없습니다."
"그렇지, 없고말고. 하지만 그와 비슷한 존재가 태어나지 말라는 보장은 또 없지 않은가?"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로렌스, 네가 감정을 찾았다는 건 아주 좋은 일이야. 하지만 애써 찾은 감정에 휘둘리지 말게. 방법은 언제나 있어. 저 소녀도 어쩌면 마왕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도 있겠지."
신시아는 마왕 같은 것이 아니다. 신시아는, 그저 남들보다 조금 특이하고, 감정을 주체하기 힘든 아이일 뿐이다.
...그 빌어먹을 마왕의 힘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신시아를 당분간 성도에 둘 예정이다."
"그게 무슨...!"
"로렌스, 진정하십시오."
크리스와 한스가 내 팔을 잡는다. 에델은, 이미 내 머리에 총구를 겨누었다.
"...이게 무슨 짓이죠, 에델?"
"너야말로 추기경 님 앞에서 이게 무슨 행태지?"
"둘 다 그만하거라. 로렌스, 진정하고 내 말을 듣거라."
진정? 이 상황에서 진정을 하란 말인가? 신시아를 성도에 두겠다는 말은 너무나도 뻔하다. 신시아를 결계에 가두고, 사제들을 불러 모아 여러 실험을 진행하겠다는 말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영구적이진 않을 거야. 사태가 진정되고 나면 다시 돌려보낼 생각이다."
"신시아를 성도에 가두겠다면, 저도 남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말할 줄이야. 로렌스, 너도 변하는구나."
두 사람의 팔을 떨쳐내고, 신시아가 있는 곳으로 달려간다. 혹시라도 이런 말을 신시아가 들었다간,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녀를 가두려는 게 아니야. 가둬진 사람은 따로 있지."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세요!"
"달의 기사, 크루거의 이야기를 알고 있나?"
추기경의 저 화법에는 넌더리가 난다. 언제나 중요한 이야기는 가장 마지막에, 앞서 말한 모든 내용을 짜 맞춰야만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지금 내가 알아야 할 건 그딴 것들이 아닌데.
"2년 전, 북왕국의 마수 토벌에서 실종된 성기사의 이야기죠."
추기경의 질문에 한스가 대신 대답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크리스가 입을 뗐다.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저희 성기사에게, 그분의 영웅담과 투지는 하나의 동화가 되었을 정도니까요. 달과 공명하는 특수한 성법을 사용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기에 붙여진 별칭이 달을 머금은 기사. 내 기억에도, 손에 꼽히는 강함을 지닌 성기사였지."
"그런데 왜 갑자기 이 이야기를, 아, 설마...?"
머릿속에서 최악의 가능성을 떠올린 크리스의 표정이 굳어져 갔다.
새로운 마왕 후보자. 신시아의 구금. 이미 가둬진 사람. 달의 기사 크루거... 내 머릿속에도 하나의 추측이 떠올랐다.
"달의 기사 크루거가 얼마 전, 북왕국 최북단에서 발견되었네."
"안 돼, 안 돼...!"
크리스의 눈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추기경은 담담히 할 말을 이었다.
"새로운 마왕 후보자로, 지정되면서 말이지."
* * *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지하 감옥. 비밀로 감춰진 성도 지하의 수많은 장소 중 한 곳임은 분명하다. 들리는 거라곤 마법 횃불이 타들어가는 소리, 그리고 무엇인지 모를 액체가 방울져 떨어지는 소리뿐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깊은 안 쪽, 사람인지 짐승인지 모를 한 형체가 있다.
"그르르르르, 그르르르르르르르..."
침인지 피인지 모를 액체를 입가에 흘리며, 그 형태는 애처롭게 먹잇감을 원했다.
쩔그럭. 사슬 소리가 서로 부딪힌다. 흉터 투성이의 몸. 그리고 그 몸을 옥죄는 거대한 수갑. 짐승은 여전히 달빛을 갈망한다.
* * *
"으, 으응."
"아, 깼나요, 신시아?"
신시아가 일어날 때까지 읽던 책을 덮고, 그녀의 상태를 보러 다가간다.
"아, 아으, 신부님..."
여전히 얼굴이 빨간 걸 제외하면, 상태는 멀쩡해진 것 같다. 오늘 있었던 일은 내가 보아온 것 중 두 번째로 심했던 증상이었다. 양쪽 눈까지 붉게 변했을 정도이니.
"신시아, 뭔가 할 말은 있지 않나요?"
"걱, 걱정시켜서 죄송해요..."
"후, 알면 됐습니다."
신시아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신시아의 표정이 다시 '헤헤'거리는 웃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래, 이 아이에게 잘못은 없다.
눈을 감는다. 몇 시간 전에 들은, 추기경의 말을 다시금 떠올린다.
'크루거는 이미 지하 감실에 있다. 신시아와는 다른 경우야. 이미 우리가 발견했을 때는, 수십의 희생자가 생기고 난 뒤였다.'
'방법은, 방법은 없는 건가요?'
'크리스, 안타깝지만 무리다. 이미 그 자는 달의 광기에 사로잡혔어. 교황은 그를 마왕의 후보로 판단했다. 옳은 판단이지. 과거의 마왕들과 너무나도 닮아 있어.'
'그럼, 저희들이 해야 할 일이란 건.'
'3일 뒤, 크루거의 비밀 사형이 집행된다.'
'마왕 후보자는 못 죽이는 것 아니었나요?'
'크루거의 마왕 각성 조건은 이미 확인했다. '달빛'이야. 강한 달빛을 받을수록 마왕의 힘이 커진다더군.'
'어째서 이런 비극이...!'
'2일 뒤는 만월이다. 그것도 1년 중에서 가장 큰 달이 될 거야. 마음만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처형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아직 봉인이 미약해.'
...해서, 2일 뒤 있을 만월의 날, 크루거를 감시하는 것이 우리들의 임무가 되었다. 그리고 추가로, 크루거의 죽음이 신시아에게 영향이 갈 경우 이를 보고할 것. 그리고 일이 생길 시, 시...시발.
"왜 그래, 신부님? 어디 아파?"
"음. 아니에요, 신시아. 저야말로 염려를 끼쳤군요."
"신부님이 아프면 나도 걱정돼. 아프지 마."
"그렇죠. 맞는 말이네요."
나는 크루거의 죽음을 볼 수 있을까. 추기경은 크루거의 집행에 우리들도 참석하라고 말했다. 크루거의 처형 방식은 단두대형이 될 것이다.
"신부님. 괜찮을 거야."
'신부님, 나, 죽기 싫어...!'
...읏. 처형 장면과 신시아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나는, 나는 절대 아 아이가 죽게 둘 수 없다. 신시아는 누구보다도 행복해져야 한다. 너무나 많은 슬픔을 품은 아이이기에, 이제는 행복만이 있어야 한다.
"신시아."
그럴 수 있을까? 신시아가 품고 있는 마왕은, 언젠가 껍질을 깨고 나와 혼란을 부를 것이다. '이단심문관'으로서의 직감이 강하게 말하고 있다. 성국에 있는 한, 신시아는 자유로울 수 없다.
"힘이 폭주할 때는, 힘들거나 하지 않나요."
"...응."
신시아의 눈빛이 깊어진다. 어두워진다. 처음 만난 그날처럼.
"신시아, 성당 일은 괜찮았나요?"
"아직 다 적응한 건 아니지만, 나쁘지 않았어."
"신시아, 다른 사람들이 무섭지는 않나요."
"괜찮아! 다 내가 잘못해서 그런 걸."
"신시아."
이럴 바에는.
"차라리, 같이 도망이라도 칠까요?"
신시아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신을 저버리는 것뿐이다.
"아무도 우릴 모르는 곳으로 가서, 밭이라도 가꾸며 살까요?"
마왕의 편을 들어주는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간섭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거예요."
그렇다면, 차라리 마음 내키는 대로 사는 것은 어떨까.
"복잡한 의식도, 세례도 필요 없이. 평화롭게."
나라면 신시아의 마지막 순간, 적어도 죄는 짓지 않도록 해줄 수 있으리라.
"그러다 어느 날 신시아가 맘에 드는 남자가 생기면, 집에 초대..."
"좋아."
"신시아?"
신시아와 눈이 마주쳤다. 눈은 여전히 깊고 어둡고, 그리고 '붉다'.
"아무도 모르는 외진 곳으로 가, 그리고 신부님이랑 나는 결혼식을 올리는 거야."
툭, 툭. 신시아가 상의의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내 머리색이랑 같은 상아색의 집! 주방이랑 욕실은 넓었으면 좋겠어! 요리를 잔뜩 배워서, 신부님한테 잔뜩 먹여주고 싶거든!"
스르륵. 신시아의 블라우스가 바닥에 떨어진다. 그녀의 새하얀 몸과 속옷만이 내 시야를 가득 메우고 있다.
"신시아, 갑자기 무슨?"
"그리고 아름다운 달이 뜨는 날 밤, 처음으로 몸을 섞는 거야. 신부님은 다정하니까 분명 부드럽게 해 주겠지. 나는 신부님의 품에 안겨 아양을 떨 거야. 교성을 지르고, 신부님을 흥분시킬 거야."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신시아가 치마까지 벗고난 후였다. 신시아가 허벅지를 내 다리에 걸치고, 농염한 움직임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는 분명 우리를 닮았겠지! 우리들의 이름을 따자. 남자아이면 로신, 여자아이라면 로시아로. 후후, 듬뿍 사랑해 줄 거야. 우리들의 사랑의 증표니까."
"신시아, 진정, 하세요."
"헤에, 신부님의 정신은 굳건하지만, 몸은 그렇지 않은가 봐?"
아니, 이건 죄다. 나의 그릇된 판단으로 신시아를 죄에 빠지게 둘 수는...!
"하지만..."
신시아의 눈이, 점차 붉은빛을 잃어 간다.
"역시 그만둘래."
"신시아?"
"신부님은 훌륭한 사람이니까, 나 때문에 죄를 지어선 안 되니까."
다시 신시아의 눈을 보았다. 평상시의 그녀대로, 노을빛이 감도는 눈이다.
"그러니까, 잠시만 참을래. 대신 약속해 줘. 꼭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거라고 말이야."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있다. 그럼에도 그녀 다운,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으며 신시아가 새끼손가락을 건넸다.
"...신시아."
어쩌면, 아직 어리숙한 쪽은 나였을 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머리를 꼭 껴안았다.
"자, 잠깐! 신부님, 숨 막혀!"
"약속할게요, 신시아. 당신에게 꼭 행복을 가져다줄 테니까."
"헤, 헤헤헤."
이제야 정신이 든다. 분위기에 휩쓸려, 제법 부끄러운 짓을 하고 말았다.
지금 다행인 것은, 아무도 지금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설사 누군가가 이 광경을 보는 날엔 영락없이.
떨그럭.
'떨그럭?'
앞을 바라본다. 다과 세트를 바닥에 떨군 채 이쪽을 응시하는 누군가의 모습이 있었다.
"...에델?"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