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자매님에게는 마왕의 소질이 있다-7화 (7/109)

〈 7화 〉 평안한 한 때(1)

* * *

"에델? 그러니까, 이건 말이죠."

"너, 너, 너, 너, 너희, 신성한 성도에서, 무슨."

"진부한 대사인 건 아는데요. 일단은 말할게요."

숨을 고르고, 에델의 시선을 당당히 마주 본 채 말했다.

"오해입니다."

"오해는 무슨!"

에델의 저 반응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살펴보자. 나와 신시아는 방 안에 단 둘이서만 있었다. 우리는 침대 위에 나란히 앉아있고, 신시아는 속옷만 입은 채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다. 그런 내 품 안에 신시아가 파고든 모양이었고, 나는 '행복하게 해 주겠다'라는 둥의 말을 하고 있었다.

음......

"어쩌면 오해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역시!"

"뭐가 역시입니까."

"처음부터 뭔가 이상하다 싶었어! 만난 지 1년밖에 안된 저 아이를 감싸고돌지 않나, 쟤를 보는 눈빛부터가 짐승의 그거였어. 먹잇감을 노리는 눈빛이었다고!"

"에델, 저 역시 성직자입니다. 그런 망언은 차마 들어줄 수가 없군요."

"그럼 지금 당장 한스를 불러와도 괜찮다는 소리지?"

"역시 그건 참아주십시오."

어떡한다. 중요한 임무를 앞에 두고, 함께할 동료와 사이가 틀어지는 것은 결코 좋지 못하다.

여태 읽었던 판결문을 생각해보자. 가해자(추정)와 피해자(추정)의 말이 일치할 경우, 그 진술은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았다. 역시 이럴 때는 당사자가 직접 오해를 푸는 것이 현명하다.

"신시아, 저기 불신한 이단심문관에게 진실을 말해주세요."

"응, 신부님."

신시아는 떨어진 블라우스를 어깨에 조심스레 걸치고는 에델의 앞에 마주 섰다.

"에델 언니."

"뭐, 뭐야."

"보시다시피야. 나랑 신부님은, 신들이 보는 앞에 맺어졌어."

망했군.

"신부님의 손길은 너무 부드러워서, 그 향에 취해버려서, 도저히 품에서 벗어나지 못했어."

"로렌스?"

"신부님이 있지, 신시아를 평생 책임져 주겠다고 말했어. 남자는 조금도 모를 것 같은 언니라도, 이게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지?"

"로. 렌. 스?"

"언니가 낄 자리는 없어져 버렸네?"

"로렌스! 당장 밖으로 나와!"

에델이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신시아가 에델의 뒤로 '메롱'하는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돌려 나에게 사악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마치 생선을 훔쳐내는 데 성공한 도둑고양이 같은 표정을.

"...신시아.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기다리고 있을게!"

그 말을 들었는지, 문 밖에 있던 에델의 근처에서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좋은 점을 하나 배웠다. 신시아는 의외로 영악한 구석이 있다.

* * *

"에델, 모든 상황이 오해라는 점을 당신이 가장 잘 파악했으리라 믿습니다."

"하아, 대충 눈치챘어."

오. 의외로 일이 쉽게 풀릴 것 같다.

"믿고 있었습니다, 에델. 역시 당신만큼은 냉철함을 잃지 않..."

"연인인 거지? 너랑, 저 아가씨랑."

"...에델?"

"알고 있어! 혼전순결 같은 건 동화책 속에나 나오는 이야기라는 걸. 하지만 우린 신의 뜻을 받든 성직자잖아! 최소한 지키는 척은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에델, 잠시나마 당신을 믿은 제 실수군요."

"그런 짓은, 그런 짓은 신이 보지 않는 곳에서 하라고. 신상(??)은 돌려놓고! 성경은 덮어놓고! 불이라도 끈 상태에서!"

"제 말은 안 들립니까?"

"솔직하게 말해주면, 우으, 나도, 훌쩍, 축하해 줄 테니까..."

"에델."

에델의 양 어깨를 강하게 붙잡는다. 신시아 때와 비슷하게 효과가 있다. 에델이 말을 멈추고 내 얼굴을 쳐다본다.

"내 말 잘 들어. 저 아이랑 난 그런 관계가 아니야. 아직은"

"아직은?"

"신시아는 아직 정신이 미성숙해. 동경이라는 감정과 사랑이라는 감정을 구별하지 못하고 있어. 그러니까 나도 함부로 신시아에게 손을 댈 수 없는 거야. 잘 알겠지?"

"응... 알았어."

그 뒤로 한참을, 신시아에게 여태까지 있었던 일을 에델에게 설명했다.

"음, 대충 알았어. 저 아이는 '감정'에 따라서 힘이 커지거나 작아지거나 한다는 거지?"

"드디어 이해하셨군요. 정말 먼 길이었습니다."

이것이 제자를 가르치는 스승의 심정인가. 추기경 님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이 끓어오른다.

에델은 잠시 동안 자리에 가만히 앉아 턱을 괴었다. 한참을 그렇게 고민하더니, 반짝이는 눈빛과 함께 나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였다.

"그럼, 저 아이가 행복한 기분을 느끼면 마왕으로 각성할 확률이 줄어드는 거겠네?"

"그렇게 되겠죠. 일단은요."

"좋아, 결정했어. 로렌스, 내일 시간 비지?"

"만월은 2일 뒤고 처형식은 3일 뒤니까, 아무래도 그렇겠네요."

"관광하자! 저 아이를 데리고 말이야."

관광? 전혀 에델답지 않은 제안이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혹시 에델도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진지하게 고심해 보았다.

아.

"에델, 혹시나 해서 묻는 말 입니다만."

"뭔데? 대답이나 해."

"신시아에게 총을 겨눈 것, 그게 미안해서 그러는 건 아니죠?"

아, 빨개졌다. 아무래도 정곡을 찌른 모양이다.

"무, 무, 무슨 소리야? 내가 그런 걸 신경 쓰는 사람처럼 보여?"

"에델은 옛날부터 공과 사는 확실히 구별했으니까요. 물론 임무 중일 때만 말이죠."

"너 지금 무슨 소릴!"

"같이 갔던 임무 중에, 가족을 살리기 위해 금기를 어긴 사제의 일 기억하죠?"

"기억 안 나는데?"

"그 사제 머리에 바람구멍을 내놓은 그날 밤, 몰래 화장실에 가서 서럽게 울어댔잖아요."

"끼아아아악!"

갑자기 괴성을 질러댄다. 본인은 모르겠지만, 에델은 거짓말을 할 때 티가 매우 많이 나는 편이다. 아니, 대놓고 드러낸다.

"잊어! 잊어버려!"

내 머리에 총구를 바짝 갖다 대고는 이런 말을 해댄다. 여기서는 목숨을 걸고 도발을 할 타이밍이다.

"아아, 저는 조금 감동했습니다, 에델. 설마 당신이 저의 자매님에게 그 정도로 신경을 쓸 줄이야. 역시 친구는 두고두고 좋다,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네요."

"아, 시끄러워, 정말! 그래서 갈 거야? 말 거야?"

에델의 제안은 대환영이다. 신시아에게 꼭 이곳을 구경 시켜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시기가 시기인 만큼,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불가능한 요소가 많다. 가령.

"신시아는 어엿한 '마왕 후보자'입니다. 추기경님이 그런 걸 허락해주시겠습니까?"

* * *

"잘 다녀오게나."

"추기경 님?"

생각보다 너무 쉽게 허가를 내주신다. 정말 이래도 되나?

"하지만 신시아는 마왕 후보자입니다. 제가 이런 말 드리기 뭐 하지만, 만약 도심에서 폭주라도 하면...!"

"역대 기록에서도 손꼽히는 실력자 이단심문관이 둘이나 붙어 있는데, 걱정될 것이 뭐가 있겠나?"

"그건, 그렇긴, 하지만요."

'어때? 점점 내 말대로 되고 있지?'

이단심문관 시절, 둘이서 자주 써먹었던 텔레파시 성법이다. 내 쪽에서도 답장을 보낸다.

'아직입니다. 신시아의 의견도 물어봐야죠. 아직 마음이 편치 않을 겁니다.'

* * *

"관광? 완전 좋아!"

그래, 그럴 줄 알았다.

"하아, 이왕 이렇게 된 거, 한스나 크리스티나도 함께 부르죠. 그 둘도 손이 빌 겁니다."

* * *

"그런데 왜 당신밖에 없는 겁니까?"

"한스는 봉인식 강화에 참석하느라 불참, 크리스티나는 달의 기사 크루거에 대해 조사할 게 있다고 근처에 있는 도서관으로 갔어."

"결국 당신뿐인 겁니까."

"뭐가 그렇게 불만인데?"

에델이 하루 종일 틱틱거릴 걸 생각하면 벌써 두통이 일 것 같다. 거기에 오늘은 신시아까지 있으니, 에델 때문에 자칫 폭주라도 하지 않을까 신경도 써야 한다. 좌불안석. 지금의 내가 좋은 예시일 것이다.

"에델 언니, 오늘 잘 부탁해!"

"언니, 언니라... 흠흠, 신시아? 오늘 성도를 둘러보게 해주는 건 추기경 님 직속의 명령이야. 나는 별로 그럴 마음이 없지만, 네가 요주의 인물인 이상 철통으로 감시할 거니까 그렇게 알아 둬!"

물론 그냥 해맑게 노는 신시아의 모습을 뚫어지게 보고 싶을 뿐이다. 에델은 옛날부터 은근히 소녀스러운 감성이 있었으니까.

"응! 잘 부탁해!"

보라. 저 '헤에'하고 녹은 에델의 표정을. 지금 표정을 한스가 봤다면, 두고두고 놀림거리로 써먹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디부터 갈 생각이죠?"

"걱정 붙들어 매. 다 생각해 둔 곳이 있거든."

* * *

"여기는..."

"성국 내에서 가장 질 좋은 커피를 파는 곳. 카페 '카나리아'야!"

오, 이런. 미리 행선지를 물어보지 않은 내 실책이다.

"이미 와 본 곳이야..."

"뭐라고?"

"안타깝습니다, 에델. 이곳은 이미 한스가 선점한 장소거든요."

"쇼트 케이크가 맛있었어."

"것보다, 왜 처음부터 카페로 온 겁니까? 이런 데는 원래 중간에 오는 법이잖아요."

"그게, 여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라..."

"오늘의 주인공은 신시아입니다, 에델. 본인이 가고 싶은 장소를 가는 게 아니고요."

몇 마디 쥐어박자, 에델의 어깨가 부쩍 내려갔다. 언젠가 한스가 말했다. '동기들 중 가장 놀리는 맛이 있는 건 에델'이라고. 지금은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음은, 다음은 분명 맘에 들 거야...!"

* * *

"미술관이라, 왜 여길 골랐죠?"

"자고로 명화란 마음을 울리는 '감동'이 있는 법이야. 신시아에게 감명 깊은 교양을 주는 것만큼 좋은 게 또 어디 있겠어?"

"퍽이나. 잘 알았습니다. 에델의 수준."

"신부님, 나, 너무 졸려..."

에델에게 혹여나 하는 기대를 품은 내 실수다. 이젠 내가 나설 차례인가.

"가시죠. 좋은 곳을 알고 있습니다.

* * *

아기 천사의 놀이터.

신시아의 한 줄 평 ­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빛나는 천칭의 음악회.

신시아의 한 줄 평 ­ 눈을 감으면 울려 퍼지는 화음.

1급 레스토랑, 햇빛 비추는 언덕.

신시아의 한 줄 평 ­ 천국이 있다면 바로 이 곳.

1시간 단기 비행선 체험.

에델의 한 줄 평 ­ 하늘을 나는 건 의외로 기분 좋구나.

* * *

오후 3시 반. 광장 근처에 있는 공원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중이다.

"하아, 지쳤다."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의 아이들은 무한한 체력이니 말이에요."

"역시 애 돌보는 건 힘드네."

"저는 이걸 매일 하고 있답니다."

"인정할게. 어쩌면 나보다 네 임무가 더 힘들지 모르겠어."

이제야 좀 쉬려는 찰나, 멀리서 신시아가 우리를 불렀다.

"신부님! 언니! 곧 분수 공연이 시작된대!"

"로렌스, 넌 좀 쉬어. 이번엔 내가 갈게."

"고맙습니다, 에델."

저 멀리로 에델과 신시아가 사라진다. 드디어, 오늘 처음으로 누려보는 평안함. 가만히 앉아 휴대용 서적을 읽는 이때야말로, 나에게 있어 천국의 시간인 셈이다.

그러고 나서 얼마쯤 지났을까.

"잠시 옆자리에 앉아도 될까요?"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물론이죠. 편히 앉으세요."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형식적인 인사와 함께 자리를 가리켰다.

"정말 평안한 한 때네요."

옆에 앉은 건 아무래도 에델 또래의 숙녀인 듯하다. 처음 보는 타인에게도 말을 걸 정도로 포근한 성격을 지닌.

"같이 다니는 신시아라는 아이, 그 아이도 성도를 즐겼으면 하는데."

탁. 책을 덮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여자를 바라본다. 티끌 하나 없는 순백의 머리색. 나는 입을 열었다.

"당신은 또 누구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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