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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매님에게는 마왕의 소질이 있다-9화 (9/109)

〈 9화 〉 광란의 밤(1)

* * *

"한스! 그쪽 상황은 어때?"

"마력 농도가 점점 떨어져 가고 있습니다. 마석을 교체해야 할 것 같아요."

성국 지하의 어딘가. 성법으로 만든 불빛 아래 수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그중에는 한스의 모습도 있다.

"한스, 이쪽에도 성수가 필요해!"

"한스, 어디로 간 거야? 곧 봉인 술식을 재점검할 시간인데."

"이보게나, 한스. 아무리 자네가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대도, 노력 없이는 길바닥의 쓰레기보다 못한 법이네."

"한스 선배님! 제작 중이던 성법진에 문제가 생겼는데 어떡하죠?"

한스, 한스, 그놈의 한스. 무슨 일이 생기기만 하면 다들 한스부터 찾아대니 미칠 노릇이다. 어쩌면 자신이 직업을 잘못 고른 건 아닐까 하고, 한스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지금 쯤이면 로렌스랑 에델은 신나게 놀고 있겠지.'

그런데 지금 나는 이게 뭔 꼴이람. 그래, 상부에 추가 수당을 요청해야겠다. 휴일수당에 잔업수당, 특별 업무수당에...

"크르르르르..."

위험수당까지.

한스는 철창 너머를 바라보았다. 이중, 삼중으로 겹쳐 있는 족쇄. 사슬의 한 줄 한 줄에는 기도문이 쓰여 있다. 마침 자신의 옆으로 숨을 돌리러 온 선배가 다가왔다.

"저 자가 달의 기사, 크루거입니까."

"그래. 한스 넌 처음 보는 건가?"

"그랬죠. 굳이 이 일에 지원할 생각은 없었거든요. 인력 부족인가 뭔 가만 아니었으면 말이죠."

한스의 선배는 품에서 갈색 잎에 돌돌 말린 무언가를 꺼냈다.

"그거 담배입니까?"

"담배라니, 그런 건 서연방국 용병들이나 피는 거고. 허브를 성수에 절여 만든 궐련이야."

"결국 담배잖습니까."

"너도 한 대 할래?"

"됐습니다. 여자들이 싫어하거든요."

대답과 함께 한스가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약한 마력을 담자, 손가락 끝에 자그마한 불길이 일어났다.

"눈치 빠르긴."

"성스러운 불꽃입죠."

궐련에서 뿌연 연기가 피어오른다. 숨을 한 번 깊게 내뱉고는, 한스의 선배가 말을 잇는다.

"저분도 이 궐련을 좋아하셨지."

"아는 사이였습니까?"

"북왕국 원정에는 나도 있었어. 딱 네 나이였지."

옛날이야기를 시작하는 선배의 눈동자에는 우수가 차 있었다.

"원정은 순조로웠어. 최근 들어 마수들이 날뛰는 빈도가 높아지긴 했지만, 우리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갔기에 별 문제는 없었지. 나참,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마왕의 전조였던 거야."

"의외네요. 선배님이 그런 일에 지원할 성격이라곤 생각 안 했는데요."

"크루거 씨는 원정에서 낙오된 게 아니었어. 북왕국의 마수 토벌은 순조롭게 성공했지. 누구보다 앞에 서서 수많은 적을 물리치고, 모두가 잠든 밤에도 깨어나 지키고..."

치지직. 궐련을 비벼 끄는 소리였다.

"너는 크루거 씨가 얼마나 멋진 사람이었는지 모를 거야. 달빛을 머금은 검과 갑옷, 그 웅장한 자태. 달의 여신 '난나'의 축복을 한 데 받은 몸이었지."

선배의 두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손톱이 살을 뚫고 피가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날, 돌아오기로 결정한 그날에...!"

"진정하세요, 선배."

"그게 나타났어. 왕랑(王?) 라이카. 북왕국의 자연재해. 어둠을 틈 타 한 명 씩 사라지고, 찢기고..."

왕랑 라이카는 한스도 들어본 적이 있다. 지금은 누군가에게 토벌되었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보름달이 뜨는 날 나타나 재앙을 초래했다고 한다.

"숲의 다리를 건널 때, 크루거 씨는 맨 뒤에 남아 시간을 끌었지. 그러던 중에 크루거 씨는 봐버리고 만 거야. 우리들이 지치고 떠는 모습을. 그리고 생각했지. 이 다리를 가만히 놔두면 결국 더 큰 피해가 생길 거라고."

"크루거 씨는... 설마..."

"그게 마지막 모습이었어. 2년 동안 돌아오지 않자 다들 죽은 줄로만 생각했는데."

목에서 끓음이 찬 소리와 함께 한스의 선배는 고개를 떨궜다.

"어째서...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신 겁니까...! 크루거 씨...!"

* * *

"오늘은 엄청 즐거웠어!"

"다행입니다, 신시아. 저도 재미있었어요."

"......."

"음? 무슨 일입니까, 에델? 그렇게 빤히 보고."

에델은 대답 대신 손으로 따라오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왜 그럽니까?"

"로렌스, 잠깐 따라와 봐."

"후우, 알겠습니다. 자, 신시아? 흙먼지로 더러워졌을 테니 가서 목욕이라도 할까요?"

"알겠어, 신부님."

해맑은 표정으로 신시아가 방에 들어갔다. 뭐가 그리 불만스러운지, 에델이 뾰루퉁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뭡니까, 에델?"

"로렌스, 우리 둘만 있으니까 이제 그만 솔직해져."

"또 이상한 꼬투리 잡기입니까?"

"로렌스."

에델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팔짱을 끼고, 장난기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마치 '이단심문관'으로서의 에델처럼.

"우리가 함께 일한 게 몇 년 정도지?"

"견습 시절부터 합을 맞췄으니, 3년 즈음되겠군요."

"우리가 알고 지낸 건?"

"12살부터 동기였잖습니까. 당신뿐만 아니라 한스랑 크리스, 로제리오도 같이 말입니다."

"그런데도 숨길 생각이야?"

"대체 말하고 싶은 게 뭡니까?"

에델이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네 얼굴 좀 봐봐. 그게 어딜 봐서 평범한 모습이라는 건데?"

거울을 본다. 음, 그렇게 모난 구석은 보이지 않는데.

"아까 공원에서부터 계속 그랬어. 무슨 걱정거리 있는 거지? 나 참. 고민이랑은 거리가 멀던 네가 이런 표정까지 짓고."

"...에델이 신경 쓸 내용은 없습니다."

"또 그 말투! 그거 알아? 뭔가를 숨기고 있을 때면 항상 하는 말.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라고 말할 때면 항상 그랬어."

이래서 오늘의 적보다 어제의 친구를 더 조심하라더니. 표정 관리에는 나름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에델에게는 여지없이 들켜버렸다.

"후우, 맞습니다, 에델. 저는 지금 뭔가를 숨기고 있습니다."

"속으로 끙끙 앓지만 말고 얘기해."

"말할 수 없습니다."

"너 정말!"

에델에게는 미안하지만 이성적으로 따졌을 때도 말할 수 없다. '마왕'의 진실. 새롭게 태어날 마왕의 존재. 누군가에게 함부로 말하기엔 너무나도 위험 요소가 많다.

사실 여부는... 따질 필요가 없다. 내게 이 말을 한 페르세포네란 여자는 틀림없이 '성녀'다. 이단심문관으로서의 직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래, 됐어. 걱정한 내가 바보지. 오늘은 이만 들어가서 쉬자. 내일은 저녁부터 감시를..."

쿠당탕탕!

갑자기 욕실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욕실에는 신시아가 있을 텐데... 신시아?

"신시아!"

"로렌스, 같이 가!"

신시아, 신시아를 누군가 습격한 건가? 불안감에 머리가 혼란스러워진다. 욕실까지 앞으로 세 걸음, 두 걸음, 한 걸음...!

"신시아!"

문을 박차고 열었을 때, 욕실의 바닥에는 신시아가 쓰러져 있었다. 벽에 등을 기대고 가쁜 숨을 내쉬며. 비록 수건 한 장 없는 나체였지만 그런 걸 신경 쓰고 있을 시간은 없다.

"신시아? 이게 어떻게 된 일..."

"에델, 성법의 준비를 해주세요!"

신시아의 몸을 구석구석 살펴본다. 다행히 몸에 상처는 없다. 팔에는 약간 긁힌 자국이 있지만, 아마 넘어졌을 때의 상처일 것이다. 그리고 머리는... 이마가 너무나도 뜨겁다.

"신시아! 제 말 들리세요? 신시아!"

"하아, 하아, 신부, 님?"

신시아가 눈을 가늘게 뜨고 이쪽을 본다. 다행히 의식은 있는 것 같다. 이 증상은, 마력의 폭주 현상과 비슷한데.

"신시아, 혹시 로자리오를 벗었습니까?"

"하으으으. 흐아."

지금의 신시아에게 대답을 듣는 것은 무리다. 신시아의 목덜미를 본다. 다행히 로자리오는 그대로 있었다.

이 로자리오는 추기경 님이 제작한 특수제다. 마왕의 힘을 억제하기 위한 구속구. 이걸 받았을 때 들은 경고는 단 하나다. '어떠한 경우에서도 신시아와 로자리오를 떨어뜨리지 말 것.' 신시아를 곁에 둘 수 있던 조건이기도 했다.

"로렌스, 주위에 치유의 성법진을 발동했어."

"감사합니다, 에델. 신시아의 상태를 봐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럴 때 한스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에델이 엄지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신시아의 상태를 면밀히 보던 그때, 에델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뜨였다.

"로렌스, 이 로자리오, 일종의 구속구인 건 알고 있지?"

"무슨 문제가 있나요?"

"로자리오에 상처가 있어. 아마 마력을 끊는 무언가에 긁힌 것 같은데..."

머릿속으로 한 가지 가능성이 스쳤다. 얼마 전 신시아를 습격했던 암살자들. 남왕국의 그들 집단이라면 항상 가지고 있을 무기이다.

"로자리오에서 마력이 계속 빠져나가서 지금은 거의 비었어. 너무 작은 양인 데다, 마력 덩어리인 신시아 몸에 있었으니 모르는 게 당연하지."

"방법을, 선생님, 추기경 님께 부탁을..."

"로렌스!"

에델의 호통 소리에, 다시 정신이 또렷해진다.

"침착해. 로자리오가 없어져도 바로 폭주하거나 하진 않아. 그저... 로자리오가 있던 상태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육체가 부하를 견디지 못한 건 뿐이야."

"...감사합니다, 에델."

"일단은 신시아를 쉬게 해. 추기경 님껜 내가 갈게."

에델은 급하게 자리를 떠났다. 정말이지 고마운 친구다.

신시아의 몸이 너무 뜨겁다. 자칫하면 데일 것만 같다.

신시아, 만약 네가 죽어버린다면.

나는.

* * *

"봉인의 준비는 얼추 끝났군."

"좋아, 다들 철수하자고! 내일 이 시간까지 이곳을 완전히 봉쇄할 거야."

모두가 떠나고, 지하 감옥에는 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들리는 소리는 여전히 탁하고, 시야는 어두워진 지 오래다.

달빛, 달빛은 어디 있지? 나를 기다리는 푸른 달빛. 아, 달의 여신 난나시여. 이 몸을 거둬가 주소서.

미쳐버릴 것만 같다. 어쩌면 이미 미쳐버린 걸지도 모른다. 달이 보이지 않는다. 내 몸이 기억하고 있다. 내일, 가장 크고 밝은 달이 떠오를 것이다.

온몸을 조이는 사슬이 거슬린다. 텅텅 비어 먹이를 갈망하는 창자가 거슬린다. 그 속에 빛을 머금은 봉인이 거슬린다. 거슬린다. 모든 것이 거슬린다.

"여기 있었군요."

저 목소리가, 거슬린다. 누구지? 어떻게 나의 처형장에 들어온 거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릅니다. 성국의 보안을 뚫고, 경비를 속이고, 사람을 매수하고."

이성을 잃은 두 눈동자에 인영(人?)이 비친다. 검은 가면으로 눈을 가리고 있는 남성. 어째서일까, 익숙한 냄새가 난다. 그래, 달이 뜨던 그날 밤, 죽어가는 나에게 다가온 그 남자와.

"누... 그르륵... 가..."

"오, 아직 이성이 남아있는 겁니까?"

"누, 가, 너를, 보냈. 지?"

"하, 하하하하! 그게 궁금하신 겁니까? 그렇죠, 이렇게 추레한 몰골이 된 당신을 찾을 사람은 아무도 없죠."

가면의 남성이 철창에 대고 속삭였다.

"운명이, 저를 당신에게 보내셨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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