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 광란의 밤(3)
* * *
"오늘만 무사히 버티면 되겠군."
"방심하면 안 됩니다, 한스. 크루거 님의 마지막 그 순간까지, 우리는 우리의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한스의 옆에, 갈색 머리를 비비 꼬며 긴장을 풀고 있는 크리스가 앉아 있다.
"그건 그렇고 로렌스, 정말 괜찮겠어?"
"물론입니다. 근처 대성당에서 자매님들 몇 분이 왔습니다. 오늘 내내 신시아를 보살펴주기로 했으니 괜찮겠죠."
신시아는 어젯밤 이후로 깰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편히 자고 있을 뿐이라, 따로 사제나 의사를 부르지는 않았다.
"새로운 로자리오가 만들어질 때까진 하루 정도 걸릴 거야."
벽에 기대서 쉬고 있던 에델이 말했다. 다행히 추기경 님께선 즉시 로자리오의 제작을 시작하셨다. 다만 평범한 마물도 아니고, '마왕 후보자'의 힘을 억누르는 구속구라 제작에는 어느 정도 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추기경 님께는 죄송하게 되었군요."
"그럴 것 까지야. 어차피 오늘 만날 추기경 님은 다른 추기경이니까. 큰 부담은 없으실 거야. 추기경 님의 성격도 그렇고."
그렇다. 오늘 크루거의 봉인을 검사하러 올 추기경은 우리의 은사님이 아니다. 추기경 '레오르'. 추기경 중에서도 가장 정도가 심한 급진파로, 마찬가지로 개혁을 사랑하는 현 교황님의 오른팔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사람, 권력욕이 많은 거랑 깐깐하기론 도가 튼 사람이라는 건데..."
"하아, 맥 빠지는 소리 하지 마십쇼, 한스."
그렇게 말하는 크리스도 어깨가 축 처져 있다. 임무 특성 상 성도에 머물 일이 드문 나나 에델과는 다르게, 추기경들과 가까이서 지내는 둘은 그의 악명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언제 쯤 온다냐?"
"지하 감옥으로 가는 건 오후 6시, 그리고 추기경 님이 오는 건 오후 8시쯤일 겁니다."
"마음 같아선 도망이라도 치고 싶어."
"실망입니다, 한스. 갑자기 무서워진 겁니까?"
"난 마왕보다 깐깐한 상관이 더 무서운 사람이야."
풋. 저 둘은 의외로 재미있는 조합이라 이따금씩 웃음이 나오곤 한다.
시계는 어느덧 6시 15분 전을 가리키고 있다.
"왔군."
나와 동기들이 기다리고 있던 대기실에, 젊은 사제 한 명이 문서를 잔뜩 쥐고 들어왔다.
"오늘 결계 관리 담당은 넌가 봐? 선배들도 귀찮은 일을 떠넘겼군."
"그렇습니다, 한스 선배님!"
그렇군. 한스의 후배인가. 아직 어린 티를 벗지 못해 믿음은 안 가지만, 그래도 교황청 소속의 사제이니 실력은 확실할 것이다.
"그럼 지하 감옥으로 이동하겠습니다. 대상은 한스 선배님과 동기 세 분, 맞죠?"
"너를 빼먹으면 어떡하냐."
"아, 맞다. 크흠, 그럼 기동 하겠습니다!"
한스의 후배가 문서 더미 사이에서 낡은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양피지로 되어 있는 종이인데, 거기에는 룬 언어로 보이는 문자가 새겨져 있다.
"마법 스크롤?"
"가동합니다!"
스크롤을 찢자, 새하얀 빛이 우리를 감쌌다.
* * *
슈우우우, 하는 소리와 함께 마력이 흩어진다. 눈을 뜬 곳은 전혀 다른 장소다. 돌벽으로 둘러 쌓인 비밀 공간. 여기가 성국의 '지하 감옥'.
"상당히 놀랐습니다. 설마 사제가 마법 스크롤을 사용하는 장면을 볼 줄이야."
"이것도 다 위대하신 교황님의 은혜지."
한스가 어깨를 으쓱거린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성국도 꽤나 변한 모양이다.
"사전에 말씀드린 대로, 새벽녘까지 한스 선배님 외 세 분은 이곳에서 나가실 수 없습니다. 임무 내용은 '마왕 후보자' 크루거의 감시 및 제압이며, 이때 발생하는 모든 사항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또 뭐더라?"
"자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추기경 님이 올 때 빼고. 그렇지?"
"아, 맞습니다! 추기경 님이 오시고 1시간 동안은 크루거의 감실이 아닌, 봉인이 만들어지는 공실(??)로 가실 겁니다. 그동안은 대체 인력이 있을 예정이고요."
"추기경 님의 경호가 최우선이니까. 근데 대체 인력은 누구지?"
"저와 성기사 분들입니다!"
"하아, 선배란 놈들이 진짜...!"
한스는 그의 후배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 수가 많고 같은 곳에서 근무하기에, '사제'라는 집단 내에서는 저런 식의 일처리가 비일비재하다고 들었다.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그의 후배가 다시 한번 마법 스크롤을 찢었다.
"고생이 많은 녀석이야."
"한스, 당신은 저런 적이 없었습니까?"
"나? 난 일은 잘 하지만 빠져나가는 것도 잘했거든."
"그럴 줄 알았습니다."
만담을 즐기는 한스와 크리스를 뒤로 하고, 나는 철창으로 다가갔다.
"저 자가 달의 기사, 크루거..."
"생각보다 평범한 인상이네."
에델의 말도 일리가 있다. 조금 덩치가 크고 흉터가 많을 뿐인 죄인.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놓인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건 너네 이단심문관 밖에 없을 거다."
"저분이 크루거 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크리스가 손을 모아 격식을 갖췄다. 성기사로서의 연식이 짧은 그녀도 그를 존경해 도서관에서 기록을 찾아 볼만큼, 성기사로서의 그의 명성은 높았을 테다.
"조용하네. 좀 더 날뛸 줄 알았는데."
"그래도 어제는 위험한 상황이 많았어. 계속 '그르르'거리는 소리도 내고. 확실히 오늘은 조용하네."
"마지막에야 신께 자신의 운명을 맡기려는 것이겠지요. 부디 그의 영혼이 올바른 곳으로 가길 바랄 뿐입니다."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내일 정오까지가 마지막이다. 그를 보는 크리스의 뒷모습이 서글프다.
"자, 자. 감상은 그 쯤 하자. 일해야지, 일. 2교대 씩 번갈아가면서 쉬도록 하자. 한스랑 로렌스, 그리고 나랑 크리스로."
* * *
신시아의 방, 두 명의 수녀가 그녀의 곁을 지키고 있다.
"이 아이가 로렌스 신부님이 말씀하신 아이죠?"
"마왕 후보자... 전혀 그렇게는 안 보이네요."
신시아는 여전히 눈을 뜨지 않는다. 어떤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지금으로서는 알 방도가 없다.
그리고, 저 멀리 건물 사이로 보름달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 * *
"지금 몇 시야?"
"8시입니다."
"시간이 됐군."
오후 8시 정각. 조금의 오차도 없이, 저 멀리 마법 스크롤의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도 대량으로.
"추기경 님께서 오셨습니다!"
한스의 후배가 달려온다. 뒤에는 성기사들이 줄을 이뤄 다가온다.
"수고해라."
"조심히 가십시오, 선배님!"
끼이익. 사전에 정해 둔 방의 문을 연다. 사자 무늬의 깃발이 우리를 반긴다. 그래, 안쪽에 앉아있는 사람이 바로.
""추기경 레오르 님을 뵙습니다.""
추기경을 뜻하는 붉은 사제복. 그의 가문을 나타내는 황금 사자의 인장. 저 험악한 표정. 성국의 기둥 중 하나인 추기경 레오르가 모습을 드러냈다.
"자네들이 오를란도의 제자들인가?"
이쪽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날카로운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본다.
"그렇습니다."
"뭐, 좋아. 오를란도의 제자면 쓸만하겠지. 빠르게 일부터 끝내세나. 난 이곳에 오래 머물고 싶지 않아."
"봉인실로 안내하겠습니다."
* * *
크루거의 감실 앞. 모두가 자리를 비운 공간을 한스의 후배와 성기사가 채우고 있다. 성기사 중 말단으로 보이는 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무장을 편히 하고 바닥에 앉았다.
"휴우, 휴일에 쉬지도 못하고 이게 뭐하는 짓이야."
"너무 그러지 마. 여기 가만히 있으면 위험수당이 굴러 들어오잖아?"
"그건 그렇지. 돈이 들어오면 또 여자나 만나러 갈까?"
"그러니까 돈을 못 모으는 거 아니냐. 야, 막내야!"
말단으로 보이는 성기사가 몸을 움츠렸다.
"무, 무슨 일이십니까!"
"우리 잠시 쉬고 있을 테니까, 그 괴물이 뭐하는지 똑바로 잘 봐 둬라, 알겠지?"
"저 덜떨어진 사제님하고 같이 말이야!"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다른 성기사들이 자리에 누웠다. 말단 성기사는 표정을 찡그린 채 자세를 고쳐 잡았다.
"괜찮으세요?"
그의 옆으로 사제가 다가온다. 한스의 후배였다. 아마 그도 자신과 같은 처지겠지. 그렇게 생각한 말단 성기사는 애써 웃어 보였다.
"하하, 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신이 어째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가. 말단인 그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리고 그의 마음을 한스의 후배가 파고들었다.
"정말 못된 선임들이네요."
"아닙니다."
"저희 둘만 있으니까 솔직히 말해요. 저 사람들이 밉죠?"
"아닙, 니다."
"숨길 필요 없어요. 지금 이 대화를 듣고 있는 건 저랑, 하늘 위의 신들 뿐이니까요"
"크루거 님도 계시잖습니까."
"크루거요? 하하, 하하하하하하!"
사제는 웃었다. 아니, 실소하는 건가? 마치 광인처럼 웃어대는 그가 조금 무섭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봐요, 크루거. 여기 먼 후배님이 당신 눈치를 보는데요?"
분명 감실 구석에 있었을 크루거가, 어느새 철창 바로 앞까지 와 있었다.
"으, 으아아아악!"
"비명을 질러도 소용없어요~. 저들한테는 들리지 않을 테니까요."
일이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크루거, 여기 길을 잃은 어린양에게 한 말씀 해주시죠."
원래 저 사제가 저런 이미지였나? 머리가 복잡하다. 크루거 씨가, 저 괴물이 나에게 다가온다. 그리고는 말한다.
"이성은 본심을 숨긴다..."
"으아, 으아아아아아..."
"어째서 너 자신을 숨기는가...? 드러내라. 너의 본질을 드러내라."
"살려... 주세요...!"
"살가죽 아래 덮인 감정을 끌어내고... 증오를 마음껏 표출해라..."
"나는, 나느으으으으은!"
"달빛 아래, 인간의 진짜 모습을 보여라."
* * *
번뜩. 신시아의 눈꺼풀이 올라갔다. 창 밖을 본다. 너무나도 밝은 만월이다.
"신부님."
가슴을 부여잡는다. 너무나도 불길한 느낌. 신시아는 자리를 박찼다.
"신시아 양? 이게 무슨 소리... 신시아 양?"
두 수녀가 방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소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펄럭이는 커튼과 활짝 열린 창문, 그리고 그 안으로 비치는 달빛뿐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