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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매님에게는 마왕의 소질이 있다-12화 (12/109)

〈 12화 〉 광란의 밤(4)

* * *

감실 근처의 작은 방. 성기사들이 모여 농담을 주고받고 있다.

"그래서 말이야, 그때 내가 이 검으로 확!"

"꽃집 아가씨 알지? 이번에 만나기로 했거든."

시시한 이야기가 오고 가던 그때, 한 명의 성기사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

"뭐야, 막내 아냐? 너 근무 안 서고 뭐 하냐?"

"......"

"이게 선임이 말하면 대답을 해야지."

나름 고참으로 보이는 성기사 한 명이 말단에게 다가갔다. 마침 때가 되었겠다, 쓴 맛을 보여주기 위해 멱살을 쥐었는데.

"뭐, 뭐야!?"

"......"

새빨갛게 충혈된 눈. 풀려버린 동공. 입가에는 침을 질질 흘리고, 송곳니를 사납게 드러내면서 그르렁거린다.

"참나, 얘가 미쳤나."

성기사는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 주먹이 말단의 얼굴에 향하기 직전.

푸욱.

"쿠훽!?"

자신의 몸에 검이 박혀있었다.

"너...이...미친 새..."

말을 다 끝맺지 못하고 성기사는 쓰러졌다. 비명 소리와 함께 성기사들이 뒤로 물러났다. 누군가는 검을 들고, 누군가는 황급히 무장부터 고쳤다.

하지만 말단 성기사의 뒤에 나타난 존재를 보고, 그들은 모두 전의를 상실했다.

"광기를..."

달을 머금은 기사, 크루거. 성국의 자랑. 그리고 마왕 후보자. 본래라면 감실에 있어야 할 그가 어째서 여기에 서 있는가. 다른 성기사들은 모두 깨달았다. 앞으로 자신들에게 닥칠 운명은 두 가지뿐이란 걸. 바닥에 고꾸라진 저 놈처럼 되거나.

"받아들여라..."

저들과 같은 모습이 되거나.

* * *

"하하하! 이것 참 걸작이네요. 설마 이 정도로 재미있는 광경을 보여줄 줄이야. 다시 봤네요, 기사님!"

"......"

"그토록 존경하는 크루거 님에게도 도움이 됐을 거예요. 이게 말단의 저력인가? 정말 감동했어요!"

"......"

"사실 일부러 허술하게 인원을 짜 맞췄거든요. 그래도 수고한 보람이 있네요! 이렇게 시나리오대로 착착 굴러갈 줄은 몰랐어요.

"......"

"이봐요~? 대답 좀 해볼래요?"

말단 성기사였던 무언가에게 사제가 말을 걸었다.

"그만..."

"무슨 일이죠?"

"이미... 목숨을 다했다..."

"아, 그러게요. 망가졌네요. 재미없어라. 뭐, 그래도 괜찮아요."

한스의 후배, 아니 후배였던 누군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광기에 먹힌 수 명의 성기사. 그들이 새로운 먹잇감을 찾을 준비를 마쳤다.

"재미있는 장난감이 더 많이 생겼으니까."

* * *

봉인실에 오고 나서부터, 시간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느리게 흐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빨리 떠나고 싶다던 추기경은 정작 봉인실에 오자 성법을 짜 맞추느라 정신이 없다.

"전형적인 귀찮은 유형이네요."

"그러게. 차라리 뭐라도 시키면 좋을 텐데."

"알잖아요. 우린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거."

"우리 같은 이단심문관은 파괴나 처형에만 도가 텄지, 봉인 같은 고차원 성법에는 까막눈이니까."

"그럼 우린 뭘 하면 되죠?"

"가서 과자나 가져와, 로렌스."

건성으로 대답하고 몰래 방을 빠져나왔다. 여러 겹으로 이루어진 봉인 술식을 보자니 눈이 피곤했는데 마침 잘 됐다. 과자, 과자라... 성기사들에게 빌려오면 되나?

"......"

"오, 마침 오시네."

타이밍이 좋았던 걸까, 한 명의 성기사가 터벅터벅 이 쪽을 향해 걸어왔다. 일단은 먼저 양해를 구해 볼까. 음, 그런데 어째설까.

"...뭔가 이상하군요."

조금의 신성력도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 어지러울 정도로 부정적인 느낌은...

"...그르르."

"크루거?"

"그라라라라라아­!"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다. 검이 날아온다. 다행히 눈에 보일 정도로 느린 속도의 궤적이다.

"에델! 한스! 크리스!"

동료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전투 태세에 돌입한다.

왼손에는 총을. 오른손에는 말뚝을. 입으로는 간이 성법을 외운다.

"나 고하노니..."

"그르르르르...."

"죄 많은 자들을 하늘로 돌려보낼 빛을 내리소서."

총에 빛으로 된 탄환이 장전된다. 말뚝에는 밝은 빛이 깃든다. 일보(一?). 목표와의 거리와 한 발자국을 유지한다. 이보. 몸을 낮춰 자세를 취한다. 삼보, 말뚝으로 복부를 찌르고, 호를 그려 심장, 목덜미, 인중, 이마에 탄환을 박아 넣는다.

투두두둥!

촤악. 얼굴에 피가 튀긴다. 역겨울 정도로 검게 물든 피. '마왕'의 흔적이다.

"무슨 일이야, 로렌스!?"

"괜찮으십니까!"

에델과 크리스가 황급히 문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한스가 뒤를 이어 추기경 님을 모시고 나왔다.

"추기경 님, 위급 상황입니다. 지원을 요청하십시오!"

"갑자기 무슨 말이야, 로렌스?"

바닥에 쓰러진 성기사의 시체를 가리킨다. 에델과 크리스의 눈동자가 커진다. 한스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사태 파악은 아직입니다. 하지만 원인은 알 것 같군요."

"그래, 이 흔적, 크루거와 같은 마력이야."

* * *

달린다. 하염없이 달린다. 맨발이지만 아프지는 않다.

신시아가 하늘을 올려보았다. 만월. 마력이 가장 차오르는 때. 시계탑이 9시를 가리키고 있다.

'느껴져. 내 안의 마력이 '공명'하고 있어.'

로렌스와 에델의 대화를 엿들었기에 알 수 있었다. 자신 말고도 더 있는 '마왕 후보자'. 달의 기사라 불리는 마왕 후보자가 성국 지하 어딘가에 있다는 걸. 그리고 로렌스도 그 자리에 함께 있다는 것도.

'하지만 대체 어디에?'

거칠어지는 숨소리와 함께 신시아가 멈춰 섰다. 어디지? 어디로 가야 신부님을 찾을 수 있을까. 눈을 감는다. 호흡을 가다듬는다. 괜찮다. 신부님이 말했으니까.

'신시아, 명심하세요. 만약 길을 못 찾을 것 같을 땐, 이 제비꽃 머리핀에 정신을 집중하세요.'

'무슨 마술이라도 부린 거야?'

'비슷하죠. 제 마력을 강하게 담아놓았어요. 머리핀의 마력과 비슷한 마력을 찾아가세요. 그곳에 제가 있을 테니까.'

신시아는 머리핀을 만지작거렸다. 익숙하면서도 그리운 느낌이 든다. 신부님의 마력이 느껴진다.

하지만 로렌스가 있는 곳은 지하다. 외부와 단절되어 있는 공간. 일반인은, 아니 마법에 능통한 공화국의 마법사들도 알아차리기 불가능하다.

그럴 텐데.

'신부님이 느껴져.'

신시아가 고개를 돌려 한 방향을 주시한다. 애초부터 신부님 외에는 아무것도 느끼지 않았던 소녀였기에,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저쪽이야.'

* * *

"지원을 부를 수 없다고요? 대체 어째섭니까?"

한스가 추기경에게 항의했다.

"알지 않느냐. 이곳은 단절된 공간이다. 결계를 담당하는 스크롤이 없으면 마음대로 출입할 수도 없지. 물론 교황청으로 가는 포탈을 열 수는 있다만."

추기경이 눈을 감았다.

"시간이 걸려. 무엇보다 통제 불가능한 위협을 교황청에 들일 수 없네."

"젠장!"

한스가 벽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최악의 상황. 절대로 일어나지 말아야 할 상황이 기정사실화 되었다.

"하지만 어째서 갑자기..."

"고민할 틈은 없어 보입니다, 크리스. 준비하세요."

눈이 붉게 물든 성기사 무리가 이쪽을 향해 다가온다. 그리고 저 뒤, 한스의 후배로 보이는 사제도 함께 있다.

"이단심문관의 감으로써 말할까요? 당신의 후배, 이 일의 배후에는 저 자가 관련되어 있어 보이는군요."

"그래, 나도 눈치 깠어."

"의외네요. 좀 더 울거나 가슴 아픈 변호라도 할 줄 알았는데."

"그 정도로 부드러운 사람은 아닌 거 알잖아."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는다. 전열에서는 크리스가 방패를 높이 든다. 중열은 나와 에델이 맡는다. 에델의 쌍권총이 빛을 발한다. 나 역시 준비는 되었다. 한스는 후열에서 양손으로 성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러고 있으니 옛날 생각나는데?"

"로제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흥, 우리면 충분해. 알잖아?"

크리스의 말대로다. 우리에게 있어 '전성기'라고 불릴 만한 유일한 시절. 로렌스, 한스, 에델바이스, 크리스티나, 로제리오. 오를란도의 다섯 제자들이 함께하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다들."

그때와 마찬가지다. 신호는 언제나 내 몫이다.

"시작합시다."

* * *

"하, 하하하하."

추기경 레오르. 그의 입에서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자신은 오를란도에 비해 모든 면에서 뛰어나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단 하나, 사람복을 빼면 말이다.

언제나 그의 주위에는 사람이 많았다. 추기경이 되기 전 시절, 그가 고아들을 제자로 들인다 했을 때는 내심 비웃었다. 혈통도 뭣도 없는 고아들이다.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이제 너만 남았네."

"후배...는 아니군."

"진짜 사제님은 어디로 간 거죠?"

그런데 이들은... 규격 외다. 단 네 명이서, 마왕의 힘을 받은 일종의 '권속'을 전부 쓰러뜨렸다고?

"그래요, 뭐 이렇게 될 줄 알았죠."

"사제의 행방을 말하세요."

"그 어벙한 사람이요?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의문의 남자가 얼굴을 쥐어뜯는다. 찌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얼굴 가죽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런 사람은 처음부터 '없었어요'."

"그게 지금, 무슨...!"

"먹었거든요. 존재를 말이죠. 성국은 허술해서 다행이라니까요? 공화국처럼 영혼 단위로 사람을 조사하지도 않고."

"이 자식이!"

"진정하세요, 한스. 당신, 대체 목적이 뭡니까?"

본모습을 드러낸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마치 해골처럼 창백한 얼굴. 한스의 후배를 뒤집어썼을 때의 안경을 주워 눈에 얹었다. 저 쪽이 '진짜 모습'인가.

"목적, 목적이라... 그런 건 없어요. 저도 시켜서 하는 일이거든요."

"당신을 사살하겠습니다."

"아쉽지만 그럴 순 없을 거예요."

그때였다. 쿠구구구, 거리는 소리와 함께 지하감옥 전체가 울리기 시작했다.

"꺄앗!"

"이 느낌은 설마..."

혼란의 한가운데, 의문의 남자가 큰소리로 웃어댔다. 진작 깨달았어야 했는데. '크루거'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이 소리의 정체는.

"하하하하하하하! 어때요? 어떤가요!? 오늘로써 성도는 산산히 무너질 겁니다!"

탕­. 에델의 권총이 불을 뿜었다. 빛의 탄환이 남자의 머리를 꿰뚫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광란'의 밤을, 견뎌보시죠."

광소와 함께 의문의 남자는 잔영이 되어 모습을 감췄다.

* * *

"하아, 하아."

달리고 달린 끝에 신시아는 어느 장소에 도착했다. 광장. 에델과 함께 분수를 구경했던 바로 그곳. 하지만 이미 광장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사방으로 쓰러진 나무들과 잔해.

"달이여, 나의 달이여..."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남자만이 우두커니 있을 뿐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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