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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매님에게는 마왕의 소질이 있다-14화 (14/109)

〈 14화 〉 동이 틀 때까지(2)

* * *

"신시아."

그녀의 얼굴을 바라본다. 달빛을 받아 새하얀 피부가 도드라진다. 하얀 원피스 차림이 그녀와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 아래를 보니 맨발이다. 춥지는 않을까. 아프지는 않을까.

"마왕...!"

뒤를 돌아본다. 추기경이 놀라 주저 앉았다.

글쎄, 마왕이라. 잠시 생각했다. '마왕'이란 공포의 상징이다. 보는 이들로 하여금 죽음이라는 원초적 공포를 심어야만 그 이름을 쓸 수 있다.

하지만 눈 앞에 있는 이 소녀는...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 어째서일까. 내가 신시아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한쪽에는 검은 날개가 달려있다. 왼쪽 눈은 여전히 붉다. 머리를 보니 뿔도 하나 자라려 한다. 그럼에도 나를 걱정해주는 그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다 마침내 단어 하나가 떠오른다.

"천사, 같군요."

그 말을 들은 신시아가 싱긋 웃는다. 그리고 말한다.

"고마워, 신부님."

신시아가 고개를 돌린다. 목표는 마왕 후보자. '광란의 크루거'.

신시아의 표정이 결연해진다. 주먹을 쥐고, 입술을 깨문다. 마력이 요동친다.

파앙­. 신시아가 달려 나갔다. 아니, '날았다'라는 표현이 어울릴 것이다. 검은 깃털이 흩날린다.

"당신이구나?"

콰앙! 보랏빛의 마력을 한 데 모은 신시아의 주먹이 크루거의 복부를 강타했다.

"그르르르르르...."

"신부님을 다치게 한 게!"

신시아의 주먹이, 발이, 날개가 움직일 때마다 크루거 주변의 대지가 움푹 파인다.

"이 냄새... 너도, 본질을 드러낸 자구나..."

인간보다 늑대에 더 가까워진 크루거가 주먹을 막으며 말했다.

"그 더러운 입 닫아."

휘이익. 신시아가 날개를 크게 퍼덕여 검은 깃털을 사방으로 흩날렸다. 신시아의 붉은 눈이 빛을 발한다. 그러자 공중에 떠 있던 깃털이 공명하여, 상당한 위력의 폭발을 일으켰다.

"크으으으으...."

크루거의 몸이 찢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달빛을 머금은 유체는 그 어떤 상처도 빠르게 치유해 낸다. 덜렁거리는 팔이 붙고, 흘러나온 내장이 재생되고, 부서진 다리뼈가 고쳐진다.

"무리야, 보름달이 떠 있는 한..."

"크루거 님은, 죽음에서도 돌아올 겁니다."

조금씩 정신을 차린 에델과 크리스가 말했다. 그 말대로다. 하늘 위에 달이 떠있는 한 우리에게 승산은 없다.

"이게...!"

하지만 신시아라면? 근거 없는 희망이 나를 가득 채운다.

"달의 여신이여, 광기를, 더 큰 광기를....!"

크루거의 몸집이 더욱 커진다. 앞으로 조금 뒤면 자정이다. 저 괴물이 무슨 짓을 일으킨다면,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으리라.

"qkfrhkd사드마ekfqlc!"

"꺄아앗!"

크루거의 몸에서 거대한 충격파가 일었다. 그 반동으로 신시아가 뒤로 크게 날아갔다.

"신시아!"

"괜찮아, 신부님. 전혀 가렵지도 않아!"

하지만 그 말을 하는 신시아의 몸은 상처 투성이다. 이쪽도 자연적으로 회복되지만, 크루거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는 속도다. 완전히 각성하지 않은 영향. 그렇게 밖에 볼 수 없다.

그런데 방금 크루거가 사용한 기술은 뭐지? 마법이라기엔 영창이 없고, 성법이라기엔 성스러운 흔적조차 없다. 끈적할 정도로 짙은 마력. 처음 보는 종류의 영창이다.

"진언(?)이다."

"네?"

"마법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언어일세.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존재들이 사용하는 언어. 신들이나 용, 마왕들이 사용하는 세상을 규정하는 언어."

추기경의 발언은 놀라웠다. 신들의 언어라고? 알아듣지 못할 저 소리가?

"그런 걸 성기사가 어떻게 사용하는 겁니까?"

"익힌 게 아니야. 이미 알고 있는 거지. 마왕을 인간의 잣대로 평가하지 말게나. 아무리 언어에 능통한 자라도 진언을 해석할 수는 없어. 하지만 존재가 달라진다면? 마치 숨 쉬는 것과 같아지지."

마왕이 되지 못한 후보라도 환경만 갖춰지면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인가. 그렇다면 진정한 마왕을 상대해야 하는 '용사'는 대체 어떤 존재인가.

사슬을 바닥에 질질 끌며, 크루거가 신시아에게 다가갔다.

"신시아, 도망치세요! 당신으로는 무립니다!"

"아니야, 신부님. 난 할 수 있어."

신시아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이젠 솔직해지기로 했어. 항상 신부님이 날 지켜줬잖아. 나도 신부님을 지키고 싶어."

그 말과 함께 신시아의 뿔이 점점 크게 자라기 시작했다. 그녀의 좌반신은 이미 명백한 마왕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ekfqlc사드마rhkdrl"

다시 한번 진언이 드러났다. 크루거의 몸 한가운데에 마력이 응집한다.

"넌 그만 사라져."

"신시아!"

콰앙! 신시아를 향해 다시금 마력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하지만 그녀는 꿋꿋이 서 있었다. 날개를 방패 삼아 몸을 감쌌다. 마력의 폭풍이 지나간 틈, 크루거가 움직이지 못하는 최적의 순간.

신시아가 입을 열었다.

"rhehr카다쉬rndnjs"

머리가 울린다. 신시아의 '진언'. 세상이 순응한다. 밤하늘을 비추는 달빛조차 힘으로 바뀌어 신시아의 왼손에 모인다. 신시아가 손가락을 구부린다. 무언가를 할퀴려는 모양새로, 거대한 마력의 칼날이 달린 손이 움직인다.

"사라져!"

신시아의 팔이 커다란 궤적을 이룬다. 나는 저걸 본 적 있다. 암살자를 갈기갈기 찢어놓은 마력의 손톱. 하지만 저건 다르다. 좀 더 정순하고 선명하다.

"너는...!"

크루거가 신시아의 얼굴을 보았다. 신시아의 눈빛은 오직 한 곳을 향하고 있다. 신시아의 마음은 오직 한 곳을 향하고 있다. 그렇기에 크루거는 깨달았다. 이번 공격은 막을 수 없다고.

"대단한 광기를, 지니고 있구나."

우우웅. 칼날이 지나간 자리를 그대로 뜯어내는 일격.

언젠가 들은 적이 있다.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마력의 한계는, 그자의 마음의 한계를 나타낸다고. 지금 이 힘은 신시아의 결의였다.

* * *

잔잔한 바람이 흙먼지를 거두어간다.

달을 등지고 신시아가 떠 있다. 저 시선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거구나. 눈빛으로 내 생각을 전했다.

'잘했어요, 신시아.'

신시아가 미소를 짓는다. 검은 날개가 완전히 흩어져버렸다. 뿔은 사라지고, 거대한 마력도 종적을 감췄다. 그대로 떨어지는 신시아를 받으러 달렸다.

툭. 나의 자매님, 신시아가 내 품에 들어왔다. 하얀 원피스 차림의 평범한 소녀. 마왕이라던가, 공포라는 단어와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다.

"푹 쉬어요, 신시아."

동료들이 하나 둘 일어났다. 일어날 수 없는 기적에 다들 놀라는 눈치다.

"끝난 건가."

"한스, 그렇게 말하면 불안하잖아."

"크루거 님, 그분의 영혼에 인도가 있기를."

몸을 정리하는 동료들을 뒤로하고, 나는 마왕이 될 뻔했던 자의 시체를 확인하러 갔다. 흙먼지가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차마 볼 수 없을 정도로 뜯어진 상반신. 드디어.

...어?

"나는. 죽을 수 없다."

"하, 하하하하."

"달이 나를 보고 있는 한, 나는."

이미 늑대의 모습은 없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달의 기사로서의 크루거는 서 있을 힘이 남았다.

모두 절망한 표정이다. 나조차도. 정녕 방법은 없는 건가? '용사'가 아닌 우리는 마왕을 쓰러뜨릴 자격이 없는 건가?

"모두 진정해라."

그때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혼란은 믿음의 가장 큰 적이니."

이 목소리는.

"선생님?"

"늦어서 미안하구나. 곧 지원이 도착할 게다. 교황님과 신도 모두 안전한 곳으로 대피했다."

"너무 늦었습니다. 달이 떠 있는 한 마왕은 불사예요."

하늘의 음성에 대답한다. 이미 손 쓸 방도는 없다.

"로렌스, 실망이군. 나는 너를 믿음 없게 키우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농담이 나옵...!"

"성유물의 가동 허가가 떨어졌다. 교황님의 직속 명령이야."

성유물. 신이나 용사가 세상에 남기고 간 물건. 이 세상에서 '보물'이라고 부를 수 있는 몇 되지 않는 기적.

"성유물이요?"

"지금부터 그곳의 시간을 추방할 거다. 시간은... 그래, 새벽이 좋겠군."

"지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시간을 관장하는 신, '엔키'의 성유물을 발동할 것이다. 오늘은 성국의 아침이 일찍 다가오겠군."

그러고 보니 들은 적이 있다. 성유물 중에는 시간의 힘을 제한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 것이 있다고. 그 성유물을 성국에서 보관하고 있었나.

"앞으로 1분. 조금만 버텨라, 로렌스."

"버티라니, 여기서 더 어떤 수로...!"

"여기, 스승의 작은 선물이다."

그 말과 함께 하늘에서 무언가가 떨어졌다.

넓적한 몸통. 예리한 검날. 얼기설기로 감긴 붕대. 이건.

"참수도?"

"너의 애용품 아니냐. 네가 버린 걸 보관하고 있었지."

참수도. 다른 말로는 엑시큐서너 소드. 이단심문관 시절 사용했던 '성유물'.

마음을 다잡는다. 이단심문관이었던 시절은 과거의 저편으로 묻었다. 하지만 힘은. 신시아를 지킬 힘은? 필요하다. 고민할 가치가 없다.

"나를...막지 마라...!"

크루거가 달려든다. '광란의 크루거' 때보다는 약하지만, 그래도 위협적이다.

검에 감긴 붕대를 푼다. 녹색의 검날이 드러난다. 검 손잡이를 잡은 순간, 몸에 배어 든 경험이 떠오른다.

"이 검의 이름은 없었어."

크루거가 나를 향해 손을 뻗는다.

"이 검을 처음 받았을 때, 스승님이 이름을 지어주라고 하시더군."

검을 어깨에 걸쳐 맨다.

"그런 쪽은 소질이 없었지. 그런데 어느 날 불현듯 떠올랐어."

팔에 힘을 주고.

"내가 이 검을 쓰는 목적은 무얼까."

발로 땅을 박차고.

"안식. 죄인에게 필요한 마지막 자비."

그대로 궤적을 따라 긋는다.

"이 검의 이름은 '세바스(안식일)'야."

거대한 검날과 함께, 크루거의 몸이 바닥에 내리 꽂혔다.

"작동한다!"

한스의 외침에 하늘을 올려다본다. 청록색의 빛이 구의 형태로 우리들을 감쌌다. 밤하늘의 별들이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거대하고 아름다운 고리가 밤하늘을 장식한다.

그리고 달은 지평선의 너머로 모습을 감췄다.

* * *

"하, 하하하."

"실패로 끝났군. 기분이 어떻지, 레서?"

레서와 의문의 그림자가 광장을 바라본다. 거대한 돔. 그 안의 시간은 멈춰있다. 달이 지면 크루거는 불사의 힘을 잃을 것이다.

"됐습니다. 어차피 돼도 그만, 안 돼도 그만인 계획이었어요. 운명께서 지시한 일은 크루거의 해방까지 였으니까요."

"그런 것치곤 분해 보이는 군."

"그야 그렇죠. 제 예상에 빗나가는 행동을 하는 자는 모두 적이니까요."

"이만 철수한다. 더 있다간 꼬리를 밟힐 거야."

"알겠습니다."

레서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생각했다.

'로렌스 프랑. 기억해두겠습니다.'

* * *

동쪽을 바라본다. 산등성이 너머로 태양이 뜨고 있다.

검날이 목에 박힌 크루거는 더 이상 상처를 회복하지 못했다.

"달은... 나의... 달은."

"달은 이미 저물었습니다."

"여신이여, 나를... 버리나이까..."

크루거의 몸집이 초췌할 만큼 줄어들었다. 그를 '광란'으로 만든 건 일평생 지켜왔던 그의 신앙심이다. 그의 눈빛에 절망이 깃든다.

"나는... 이루지 못한 것인가..."

"아뇨, 아닙니다."

안식. 죄인에게의 마지막 자비.

"당신은 모두를 구하진 못했지만, 적어도 당신이 지키려 했던 사람은 구했습니다."

그의 희생으로 목숨을 구원받은 사람이 있다.

"당신은 더 이상 광기에 빠지지 않아도 돼."

그리고 그로 인해 목숨을 잃은 사람이 있다.

크루거의 눈빛에 어둠이 깃든다. 끝이 다가오고 있다. 그의 몸에서 '세바스'를 꺼내 높이 쳐들었다.

"달이여, 나의 달빛이여."

"달의 여신이 네 영혼을 가져가기를 바라마."

촤악. 피가 내 몸을 적신다. '광란'의 밤은 끝났다.

동료들이 내게 달려온다. 에델, 한스, 크리스. 내 소중한 동기들.

"로렌스, 괜찮습니까?"

"우리 산 거지? 산 거 맞지? 여자랑 키스도 못해보고 죽나 했네."

"한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바보, 바보 자식, 걱정했잖아..."

동료들의 부축을 받으며 신시아에게 다가간다. 평온한 얼굴로 자고 있다. 내가 온 걸 눈치챈 걸까. 잠꼬대를 중얼거린다.

"신부님... 좋아..."

그녀의 볼을 꾹 누르며 대답한다.

"저도요, 신시아."

새로운 날이 밝아온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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