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 최초의 기억(2)
* * *
"슬퍼 보이는 얼굴, 하고 있어."
하얀 천을 걸친 소녀가 말했다. 내가 슬퍼 보인다고?
"니까짓 게."
"......"
"니까짓 게 뭘 안다고!"
총을 주워 총구를 소녀의 이마에 바짝 갖다댄다.
부정해야만 했다. 나는 이단심문관. 그 누구보다도 감정을 절제해야 하며, 다른 자에게 자신의 감정을 들켜선 안 된다.
그래, 저건 도발이다. 같잖은 말로 살 궁리를 하는 것이다. 참으로 영악한 실험체다. 하마터면 속을 뻔했군.
"금방 편하게 해주지."
"......"
소녀의 눈빛은 여전히 어둡다. 흐리멍텅한 시선으로 총을 올려다본다.
자, 울어라. 살고 싶다고 빌어.
그 이단자들처럼 내게 목숨을 구걸하란 말이다.
"편하게... 해 줘?"
"그래, 금방."
"정말로?"
소녀의 눈빛에 생기가 돌아온다. 아니, 한계에서 짜낸 거짓된 표정이다.
"다행이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부탁이야, 오빠."
소녀가 총구를 붙잡았다. 것 보라지, 역시 저항을...
...음?
"죽여줘."
소녀가 총구를 내려 목에 가져다 대었다. 본능적으로, 어디를 쏘아야만 확실하게 절명할 수 있는지 아는 눈치였다.
"너, 너 지금 뭐 하는 거지?"
"뭘 하다니?"
담담한 말투로 소녀가 얘기한다.
"오빠, 말했어. 나, 편하게 해준다고."
"죽인다는 말이다."
"알고 있어. 나, 바보 아닌 걸."
소녀가 내 눈을 응시한다. 그녀의 죽어버린 눈에 내 모습이 흐릿하게 비친다.
"그런데 왜 가만히 있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여태까지 모두 그래 왔다. 어떤 죄를 지어도 마지막 순간이 되면, 목숨을 빌거나 신께 기도를 올린다. 사람의 심리란 그런 것이다. 곧 자신에게 닥칠 심판 앞에서는 모두가 무력하게 변한다.
"그야, 당연하잖아?"
"무슨 말을..."
"나, 처음 기억, 캄캄한 철창 안이었어."
"......"
"매일, 매일, 아픈 짓을 당하고, 몸을 열고."
소녀의 몸을 본다. 희미한 흉터 자국이 이곳저곳에 널려 있다. 수술의 흔적. 몇 번이고 몸에 난도질을 당했을 것이다.
"아파서, 너무 아파서, 소리를 질렀어."
의식하지 않는다.
"그랬더니, 찌릿하고, 더 아파오기 시작했어."
주위를 살펴본다. 철창의 구조. 마법진의 형태. 전기 충격에 가까운 고문을 줄 수 있는 장치다. 아마도 소녀가 저항할 때면 놈들은...
"너무 아파서, 죽으려고 했어."
"더는 못 들어주겠군."
"그런데도, 악마들은 날 살려냈어."
소녀가 천장을 본다. 살 이유가 아무것도 없는 사람의 표정. 너무나도 익숙한 표정이다.
"하지만 이젠 괜찮아."
"뭐가 말이냐."
"오빠가, 날 편하게 해 줄 테니까."
소녀의 초점이 나에게 맞춰진다.
마음이, 흔들린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된다. 고통뿐인 삶이라면 한시라도 빨리 이 아이를...
"고마워, 오빠."
"......"
"오빠는, 천사님인 거지...?"
"천사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하고 있을 뿐이지."
"헤헤헤."
소녀가 미소 지었다. 밑바닥에 있는 감정을 전부 끌어모아서. 그러고는, 다시 눈을 감는다.
"이제 그만 끝내 줘."
이 소녀의 삶은 곧 끝난다. 아마도 이 소녀가 '실험체'가 되기 전에는 가족이 있고, 그녀만의 행복이 있었을 것이다.
"부탁이야, 오빠."
하지만, 이 소녀의 기억은 이 철창에서부터 시작된다. 결국 그녀에게 삶은 고통의 연속일 뿐이다. 어떠한 행복도 느끼지 못하고. 어떠한 희망도 갖지 못하고.
"날."
과연 이런 걸 구원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어떤 행복도 모르는 그녀가, 과연 천국에 간다고 해도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죽여줘."
"아니."
아니다. 이런 건 안식이 아니다. 이런 방식으로는 신의 뜻을 실천할 수 없다 이런 걸로는.
"그렇게는 안 될 것 같군."
"애...?"
총을 내려놓았다. 소녀가 눈을 뜬다. 바싹 말라있던 두 눈가에,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어째서..."
"이대로 죽어도 너는 편해질 수 없어."
고개를 떨군 소녀가 몸을 떤다. 메마른 감정 사이로 분노와 슬픔을 분출해낸다.
"어째서 편하게 두지 않는 거야...? 그 사람들도! 오빠도! 신도!"
"그만 두라고 했다."
"이제는 싫어...! 제발, 전부 끝내 줘...!
......
'부탁이야, 나에겐 딸아이가!'
'사제 오빠, 나, 살고 싶어...'
그토록 내일을 바란 사람들이 있다. 죄뿐인 삶인데도, 좀 더 미래를 보고 싶어 했던 사람들이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람은, '내일'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아닐까.
나는 어떻게 해야하지? 이대로 이 소녀를 죽이면 편해질 수 있을까?
...대답은 정해져 있다.
"따라 와라."
"응?"
"넌 아직 행복을 찾지 못했어. 그렇게 죽는다면, 영혼만 남아서도 어둠을 떠돌 뿐이야."
"무슨, 말을."
"내 손을 잡아라. 조금이라도 네가 웃고 나서. 그다음에도 죽고 싶다고 말하면, 그땐 소원대로 해주지."
"...훌쩍."
"음?"
"우아아아아아앙!"
소녀의 눈물이 폭포처럼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서, 소녀는 내게 손을 뻗었다.
* * *
"여기군."
소녀를 한 팔에 안고, 나는 건물 설계도면에 그려진 비밀통로로 들어갔다.
고대 문자로 도배된 거대한 철문. 그 문을 박차고 열었다.
"하하, 드디어 오셨군."
"넌 뭐지?"
안쪽의 풍경은... 처참했다. 거대한 규모의 방. 무언가에게 뜯어 먹힌 듯한 시체들. 그 한가운데에는, 도마뱀의 모습을 한 괴물과 한 명의 남성이 있었다.
"네가 우두머린가?"
"하하, 그래. 이곳의 연구소장이었지. 불과 몇 시간 전까지는."
"다른 놈들은... 네가 죽였군."
피로 얼룩진 백의. 남자는 여유롭게 안경을 닦으며 대답했다.
"맞아. 실험의 완성을 위해, 모두 이 녀석의 먹이로 줬거든."
남자가 도마뱀을 가리켰다. 거대한 입. 비늘로 덮인 피부. 등에 달린 추잡한 날개. 거기에 저 뿔. 기록에 나온 '용'이라는 생물과 너무나도 흡사하다.
"대체 이곳에서 무슨 짓을 벌였지?"
"대답해줄까? 그래, 너도 곧 죽을 테니 알려주지."
남자는 종이 뭉치를 바닥에 흩뿌렸다.
"이미 알고 있겠지? 여긴 '마왕'을 연구하던 시설이었어."
"봤다. 결과물은 끔찍하더군."
"끔찍하다니. 그건 모두 이 결과를 위한 발판이었어!"
거대한 괴물이 역겨운 소리를 내며 연기를 뿜는다.
"'묵시룡'이라고 들어봤나?"
"묵시룡?"
"몇 년 전 우리는 중요한 뭔가를 발견했지. 고대에 소실된 경전이었어. 그 문서를 해독한 결과, 마왕과 연관된 재미있는 사실을 알아냈지."
"헛된 고생을 했군."
"짐승을 탄 여인과 왕관을 쓴 짐승. 우리의 목표는 그 둘이었어."
실험체들의 기이한 모습은 그거였나. 다시금 구역질이 치민다.
"아쉽게도 원본과는 다르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마왕'이라고 부를 만하지 않아?"
헛소리. '마왕'이란 자연재해다. 저런 도마뱀을 보고 마왕이라 하다니, 비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하지만 지것이 풀려난다면... 적어도 마을 하나는 괴멸되리라.
"그럼 이 소녀는 뭐지?"
나는 안고 있던 소녀를 보며 말했다.
"아아, 실험 번호 15번?"
남자는 사악하게 웃었다.
"그것도 '실패작'이야. 얼마나 되는 자본을 투자했는데, 결국 아무런 반응도 나타나지 않았지."
소녀의 표정이 굳는다. 어쩌면 그녀에게 있어 삶의 유일한 이유였을 가정이 산산이 부서진다.
아니, 오히려 잘 됐어. 이걸로 그녀는 백지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더는 들을 필요 없겠군."
소녀를 조심히 내려놓는다. 등에서 '세바스'를 꺼내 들었다.
"너는 이곳에서 죽는다."
"네 말이 맞아."
위이이이잉. 이상한 소음과 함께, 주위에 온갖 고대 문자가 떠올랐다 사그라들었다
"너도 함께 말이지!"
"크와아아아아아아!"
괴물이 달려든다. 쉽지는 않아 보인다.
"꼬맹이, 내 말 잘 들어."
"음?"
"눈이랑 귀, 꽉 막고 있어라."
"...응."
스릉. 세바스가 녹색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