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 최초의 기억(3)
* * *
"하아, 하아, 하아."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피 때문에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다. 우두머리였던 남자는 난전 중에 괴물의 발에 짓밟혀 즉사했다. 괴물은... 몸통이 반으로 쪼개졌다.
"후우, 후우."
숨을 가다듬는다. 이걸로 결판은 났다.
"오빠, 괜찮아...?"
죽은 눈을 한 소녀가 내게 상태를 물었다. 그녀가 무사한 건 기적이었다.
"그래, 조금만 쉬면 움직일 수 있을 거다."
우선은 지혈을 하고, 부러진 팔부터 고정해야겠군. 병실은 에델바이스의 옆자리만 아니면 좋겠네.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그르르르르."
... 하하. 그 남자, 저걸 두고 '마왕'이라고 말한 이유가 있었군.
반으로 쪼개진 몸통 하나하나에서 새로운 괴물이 태어났다. 끝없는 자가분열, 상처의 재생. 그래, 적어도 '짐승'이라고는 불릴 만하다.
"미안하다."
"오빠?"
"약속은 못 지킬 것 같아."
"괜찮아."
"적어도, 네 영혼이 헤매지 않도록, 같이..."
말이 더 나오지 않는다. 나는 여기서 죽는다. 다들 괜찮으려나.
선생님은 슬퍼하시겠지. 한스는 눈물을 흘릴 거고. 크리스티나는 기도를 올릴 거야. 에델바이스는... 화내겠지. 로제리오는 잘 모르겠군.
하지만 이 소녀는... 그녀의 죽음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사실이 너무 슬퍼서, 목이 매여 의미 없는 소리만 흘러나온다.
"오빠."
"크아아아아!"
"괜찮아."
두 마리의 짐승이 전부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괜찮을 거야."
공기를 찢는 굉음이 내 정신을 앗아갔다.
......
다시 눈을 떴을 때 눈 앞에 보인 건.
흔적도 없이 재가 되어 흩어져 가는 짐승의 시체와.
"일어났어, 오빠?"
나를 무릎에 눕힌 채 얼굴을 쓰다듬고 있는 소녀의 모습이었다.
두 쌍의 검은 날개. 머리에 솟은 붉은 뿔. 홍옥보다도 붉은 두 눈동자.
그녀는 실패작이 아니었다. 어쩌면 '아니게 된' 걸지도 모르겠다.
"너는..."
눈을 깜빡인다. 그러자 마치 신기루라도 보듯, 그녀의 모습은 다시 평범한 소녀로 돌아와 있었다.
"아니, 아니야."
몸을 살핀다. 모든 상처가 말끔히 나아 있다. 몇 주 간은 의무실 신세를 지었어야 할 상처였는데.
* * *
저 멀리, 한 때 연구소였던 건물이 붕괴되는 것이 보인다. 이걸로 임무는 일단락되었다.
"......"
내 손을 잡고 있는 이 소녀만 빼면 말이다.
"이봐."
"응?"
"이제부터 선택할 시간이야."
나는 손가락으로 성도를 가리켰다.
"첫째, 성도로 가, 너를 교황님께 보고드릴 거야. 물론 거짓으로. 적당한 성당에 들어가서, 수녀로 사는 거다."
이번에는 손을 움직여 민가를 가리킨다.
"둘째, 저 마을로 가. 그리고 길 한복판에서 울어라. 그러면 너는 어느 정도 평범한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그 힘'을 쓰지 않는다면."
소녀는 양쪽을 살펴봤다. 고개를 돌려가며, 자신의 미래를 결정한다.
"하지만, 하지만. 오빠, 약속은?"
"어른을 너무 믿지 마. 이제 네 삶은 네 거야."
그래, 우리의 연은 여기서 끝이다. 죽었어야 할 이단심문관과, 죽었어야 할 이단의 실험체. 찰나의 인연은 꿈으로 변해 잊혀 갈 것이다.
나는 조심스레 그녀의 손을 놓았다. 이걸로 이제...
"싫어."
소녀가 내 옷깃을 붙잡았다. 빗물 투성이 손인데도, 미끄러지지 않도록 내 손을 꽉 붙잡는다.
"가지 마."
제발, 부탁이야. 더 이상은 나를 흔들리게 하지 마.
"손을 놓지 말아 줘...!"
......
눈을 감는다. 에델바이스가 한 말이 떠오른다.
나는 사람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선생님이 말했다.
분별없는 믿음은 자신이 길을 잃은 사실도 모르게 한다고.
눈을 뜬다. 내 앞에는 눈물을 글썽이는 소녀가 있다.
그녀의 등 뒤로 환상이 보인다. 시체들. 내가 흘린 피의 증거.
그 모든 것이 비에 씻겨 사라져 간다.
지금 내가 가야 할 길은.
* * *
"이봐, 그렇게 빨리 걸으면 넘어질 거야."
"내 이름, '이봐'가 아니야."
"그럼 무슨 이름인데."
"이름, 없어."
비가 그치고 무지개가 하늘에 떠 있다. 길 가의 꽃에서 물방울이 떨어진다.
"...히아신스."
"음?"
"이름이 없으면, 내가 지어줄까?"
"정말?"
소녀의 눈에 생기가 돌아온다. 그녀에게 잘 어울릴 만한 이름. 이름.
음... 히아신스, 히아신스, 신스... 신시아.
"신시아. 어때?"
"신시아?"
소녀가 즐거운 뜀박질을 시작했다.
"응! 좋아! 신시아는 이제부터 신시아야!"
* * *
"...해서, 그녀는 당분간 변방의 수도원에서 보호하기로 했다. 다만 그 위험성을 볼 때, 아무래도 교황청의 감시는 피할 수 없을 거야."
선생님은 서류를 정리하며 결과를 알려주었다.
"그 감시란 거, 신부만 되는 겁니까?"
"아무래도 그렇겠지. 가장 의심을 덜 살 테니."
어쩌면 나도, 내 미래를 정할 때가 된 것 같다.
* * *
"이단심문관을 그만둔다고?"
"에델바이스, 그렇게 소란 피우지 마."
침대에 누워있던 에델바이스가 벌떡 일어났다.
"뭣 때문에?"
"너도 말했잖아. 쉴 때가 됐다고."
"아니, 그, 그렇긴 한데..."
"당분간은 변방에 가 있을 예정이야."
후우, 하고 한숨을 쉰 그녀는 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좋아 보이네."
"응?"
"지금 네 표정. 이제야 좀 사람다워."
* * *
"어딜 갔나 했더니 여기 있었군."
"아, 선생님."
성도의 광장이 보이는 언덕. 그곳에 있는 커다란 나무. 선생님이 나를 찾아왔다.
"신부복, 썩 잘 어울리는구나."
"아직은 좀 어색합니다."
"그 검은..."
나무 밑에 꽂혀있는 검. '세바스'. 선생님이 그것을 가리켰다.
"정말로 마음을 다잡았군."
"저 검을 다시 잡는 날이 없었으면 합니다."
"글쎄, 그건 모르는 일이야. 그건 그렇고, 왜 여기 있는 거냐?"
"누굴 만나기로 했거든요."
그때, 누군가가 언덕 아래에서 조심스레 걸어온다. 성국 관계자의 배웅을 받은 그녀는 쭈뼛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왔군요, 신시아."
"...응, 오빠. 아니, 신부님."
"어떻게 불러도 상관없어요."
신시아. 그녀가 내 손을 붙잡는다.
"로렌스, 잘 해낼 수 있겠지?"
"글쎄요, 그건 모르죠. 하지만."
신시아를 바라본다. 여전히 그녀는 어둡다.
하지만 아침이 오지 않는 밤은 없다. 그녀가 조금이라도 밝아질 수 있다면, 내 남은 생을 바쳐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괜찮을 겁니다."
* * *
어느덧 해가 저물어 간다. 에델은 서류를 마무리하고 기지개를 쭉 켰다.
"으아! 드디어 끝났네."
"수고했어요, 에델."
"역시 내 예상은 정확하네."
"뭐가 말이죠?"
에델이 대답했다.
"로렌스, 넌 이단심문관보다 신부님이 잘 어울려."
"하하."
그때, 초인종이 울리며 누군가가 달려왔다.
"신부님!"
신시아, 나의 자매님.
"이거 봐! 꽃을 잔뜩 사 왔어!"
"어디 볼까요?"
신시아가 사 온 건 붉은색 수국, 튤립, 그리고.
"히아신스네요?"
"응! 예쁘지?"
"후훗."
"왜 웃는 거야!"
"아뇨, 아니에요. 그냥..."
밖을 바라본다. 비는 어느새 그쳐 있었다.
"옛날 생각이 나서요."
신시아가 꽃병에 꽃을 장식 하기 시작했다. 아침 햇살보다 따사로운 얼굴로.
"저기요, 신시아.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뭔데?"
"지금, 행복한가요?"
낯간지러운 질문. 신시아는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응! 정말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