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자매님에게는 마왕의 소질이 있다-20화 (20/109)

〈 20화 〉 에델바이스의 일기

* * *

내 이름은 에델바이스 발랑틴. 성국의 자랑스러운 이단심문관이자.

"에델 자매님! 그 치즈는 덜 숙성된 거라 가져오시면 안 돼요!"

"네, 넷!"

생크 수도원의 수녀이다.

"반죽은 좀 더 힘을 줘서 주물러야 해요. 자, 봐요. 이렇게, 이렇게."

"설탕을 너무 넣으셨어요, 자매님. 그래선 맛이 제대로 나지 않을 거예요."

"네에..."

근데 나, 왜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거지?

* * *

"신부님께 드릴 과자를 만들자고?"

"응!"

한적한 오후, 신시아가 갑자기 나를 찾아왔다. 어쩐 일이람.

"신부님한테 깜짝 선물을 해 줄 거야!"

"그런데 나는 왜..."

"신부님이 얘기했거든! 에델 언니랑 사이좋게 지내 달라고!"

아, 그렇겠지. 그렇지 않으면 갑자기 이런 부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 더 할 일도 딱히 없고, 으음."

좋든 싫든 앞으로 계속 보게 될 사이고, 일단은 장단에 어울려 줄까.

"그래, 좋아."

"정말? 헤헤, 그럼 이따 주방에서 봐!"

신시아가 눈을 반짝이며 방으로 올라갔다. 정말이지, 이렇게만 보면 그냥 평범한 소녀인데.

아이보리색 머리의 소녀, 신시아. 일단은 이 수도원의 수녀이긴 한데, 진짜 정체는 따로 있다.

'마왕 후보자'. 대륙의 멸망을 가져올지도 모르는 자연재해, 마왕. 신시아는 그 마왕이 될 가능성을 가진 소녀다.

"그건 그렇고."

신시아가 나간 방문 뒤로 빼꼼히 보이는 회색 머리카락. 그 녀석이다.

"언제까지 숨어 있을 생각이야, 로렌스?"

"역시 보였나요?"

회색 머리의 신부.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 이 남자의 이름은 로렌스 프랑이다. 원래는 나처럼 이단심문관이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었지만, 1년 전, 갑자기 모든 걸 버리고 신부로 전향했다.

"왜 숨어있던 거야? '신시아, 정말로 기특하군요.'같은 오글거리는 말은 안 하는 거야?"

"평소라면 그랬겠지만, 저를 위한 깜짝 선물이잖습니까. 당연히 숨어야죠."

옛날에는 기계라도 된 마냥 차가운 표정을 짓던 남잔데, 지금은 영 딴 사람이 되었다. 특히 신시아에 대한 얘기만 나오면, 아주 입이 귀에 걸린다.

"하지만 쿠키, 쿠키라..."

"왜? 쿠키는 못 먹는 거야?"

"아뇨, 그런 뜻이 아닙니다. 단지 그, 신시아의 수제 요리에는 안 좋은 추억이 있어서요."

"에델, 긴히 부탁할 게 있습니다."

"또 뭔데 그래?"

"부디 신시아가 덜 익은 쿠키나, 비린 맛이 나는 쿠키를 만들도록 두지는 말아주세요."

이건 또 뭔 소리래. 비린 맛? 쿠키에서? 가끔 생각하면, 로렌스도 황당한 소리를 많이 하는 것 같다.

"그래, 알겠어. 하여튼 입만 열면 신시아, 신시아야."

"후우, 에델. 벌써 우리의 임무를 잊은 겁니까? 마왕 후보자인 신시아를 보듬어주는 것.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잖습니까."

"감시하는 거겠지. 정말, 1년 전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로렌스는 간단히 말해서, 중증 '신시아 증후군'이다.

말로는 '신시아는 아직 정신이 어리다', '신시아의 선택을 존중한다'라고 하지만, 신시아가 마음먹고 유혹하면 죄를 저질러 버릴 것이다.

...그건 조금 분하다.

"그럼 믿고 있겠습니다, 에델."

"네, 네. 그만 가서 일이나 보시죠, 신부님."

과자 만들기라... 해본 적은 없지만, 못할 게 뭐 있나. 나는 천재니까!

* * *

"에델 자매님! 좀 더 정성을 다해 저으셔야 반죽이 눌어붙지 않습니다!"

"네엣!"

이 베티 수녀님이라는 분, 쾌활하기만 한 사람이 아니었다. 일에 관해서라면 조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이 빡빡함. 이 느낌은 분명 어디선가 느껴본 적이 있다.

"베티 언니! 이거 봐, 잘 만들었지?"

"네! 신시아는 대단하네요~."

나한테는 이런 중노동을 시키고, 신시아한테는 온갖 칭찬을 다 해준다. 저 애는 겨우 모형틀로 반죽을 찍어댔을 뿐인데.

뭐지, 이 차별은? 텃세인가? 내가 신입이라고 무시하는 건가? 아니면 외모 때문인가. 그래, 나 같이 점점 생기를 잃어가는 20대 후반보다는, 탱글탱글한 신시아의 아기 피부가 더...

"집중해주세요, 에델 자매님!"

"아, 죄송합니다."

* * *

한바탕 대소동이 끝났다. 맛있게 구워진 쿠키에 만족하며, 베티 교관과 이사도라 수녀는 각자의 장소로 돌아갔다.

"삭신이야..."

"헤헤, 고마워, 에델 언니!"

신시아의 저 밝은 표정을 보면, 로렌스가 왜 그렇게 신시아를 좋아하는지 얼핏 이해가 된다.

"잇차."

음? 이제야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신시아가 주방 서랍에서 새로운 재료를 가져온다.

"뭘 꺼내는 거야? 또 만들게?"

"응! 이번엔 내가 혼자서 만들어보려고!"

흥. 흐흥. 생각보다 꽤 기특하네. 신부님한테 주는 선물이니까, 자기 손으로 직접 만들고 싶어 하는 거구나.

"이 언니가 뭐 도와줄 거 없니?"

"괜찮아, 언니! 팔 아프잖아, 들어가서 쉬고 있어!"

"후훗, 그럼 잠시 나갔다 올 테니까, 끝나고 정리할 때 불러?"

"응!"

손을 흔드는 신시아를 보며 문 밖으로 나왔다.

끼이익. 문을 다 닫는 척하며 살짝 열어뒀다. 그리고.

"그림자여."

성법을 발동해 모습을 숨겼다. '성화의 그림자'. 주위의 인식을 저하시켜 내 존재를 숨기는 고등급 성법이다. 원래는 적진에 몰래 침투할 때나 사용하는 것이지만, 지금 쓸 가치는 충분하다.

'신시아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래, 절대로 신시아의 귀여운 모습을 몰래 보는 것이 아니다. 혹시나 실수라도 해서 엉엉 울면 달래줘야 되고, 그리고 로렌스도 부탁했으니까!

'어디어디.'

빼꼼. 고개를 꺼내 주방을 들여다본다. 신시아의 모습은...

'뭐야, 저게.'

완벽한 양 조절. 완벽한 손놀림. 베티 수녀 수준의 반죽 젓기 실력을 보여준다. 반죽 돌리기는 나도 힘들었는데...!

'날 속인 거야?'

아니, 아닐 거야. 아까도 신시아가 말하지 않았나. 에델 언니, 오늘도 고생 많았다고! 기억을 떠올려 보자. 내가 열심히 반죽을 젓고 있을 때 신시아의 표정은.

'히­죽.'

분명히 히죽거렸다. 그것도 엄청 사악하게.

"휴우, 반죽은 이걸로 됐고..."

신시아의 혼잣말이 들린다. 다시 고개를 빼들어 신시아의 모습을 살펴본다.

"신부님을 위한~ 특별 재료~!"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신시아가, 배낭에서 수상한 재료들을 잔뜩 꺼내 든다.

"아카시아 꽃잎이랑~ 꿀벌의 날개~!"

'대체 뭘 넣는 거야!'

"몸에 좋은 아몬드랑 아스파라거스, 거기에 아보카도!"

온갖 재료를 갈아 반죽에 섞는다. 게다가 그것만으로도 만족하지 못해서.

"마지막으로, 신시아만의 특별 재료!"

손가락에서 마력으로 이뤄진 칼날을 만들더니, 반대쪽 손가락을 과감히 그어버린다.

'어, 어, 어어어어.'

뚝, 뚝. 손가락에 고인 피가 반죽에 섞여 들어간다. 로렌스가 말한 비린 맛의 정체가 설마... 어떡하지? 막아야 하나?

"음, 뭔가 부족해."

신시아가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대며 고민한다. 이단심문관이 내가 판단하기에, 저 반죽은 이미 '이단' 판정도 가능할 정도다.

"오늘은... 비밀 재료를 더 넣어볼까."

얼굴을 붉힌 신시아가 뺨을 잡고 고개를 흔든다. 사랑에 빠진 소녀의 모습이다. 저 반죽만 없었다면 말이다.

신시아는 입을 오물거렸다. 혀를 볼 양쪽으로 굴리고는, 손으로 머리카락을 젖힌 채 반죽에 대고.

"베­에."

"지금 뭐 하는 거야!"

아, 신이시여. 저는 충분히 참았습니다.

"에델 언니?"

"방금 넣은 그거, 치, 치, 치..."

"전부 본 거야?"

하, 하하. 그래, 저 표정. 성도에서 신시아를 처음 본 그날도 저 표정이었다. 낯빛을 죽이고, 입꼬리를 내리면서, 생기 하나 없는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너, 로렌스한테 대체 뭘 먹이려고?"

"보면 알잖아?"

신시아가 자신감 있게 반죽을 내밀어 보였다.

"신부님에 대한 신시아의 '사랑'이야."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다. 이 아이는 어딘가 이상하다. 아니, 이상한 정도가 아니다. 조금씩 망가져 있다.

* * *

"신시아, 이건 뭡니까?"

"헤헤, 놀랐지? 신부님을 위해 쿠키를 구워봤어!"

"정말요? 하핫, 잘 먹을게요. 고마워요, 신시아."

"신부님, 지금 먹어 줘!"

"그럴까요? 어디 한 번..."

아그작. 쿠키를 한 입 삼킨 로렌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리고는 곁눈질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은밀하게 보내는 눈빛에는, 아마 이런 뜻이 담겨있을 것이다.

'에델,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미안, 로렌스. 결국 나는 실패했어.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고, 새어 나오는 눈물을 닦았다.

"어때? 잘 만들었지!?"

"그, 그러네요. 이번엔 간도 잘 맞습니다."

그래, 로렌스. 네가 행복하다면 그걸로 된 거겠지. 두 사람만 있을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었다.

쿵. 문을 닫으려는 그때,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델 언니!"

"응? 왜 또."

"그, 아까는 죄송해요."

신시아가 쭈뼛거리며 내게 사과를 건넸다.

"나, 신부님이랑 관련된 일이기만 하면 머리가 하얘져서... 정말 미안해, 에델 언니."

미소가 지어진다. 그래, 로렌스의 말 마따나 신시아는 아직 어린 편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감정이 통제되지 않는 거겠지. 나랑 로렌스가 곁을 지키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

"괜찮아. 하지만 요리는 맛이 생명이니까, 다음부턴 이상한 건 넣으면 안 돼?"

"응!"

* * *

그렇게 오늘 하루도 끝이 났다. 수녀 생활은...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다. 오히려 이단심문관 일보다 생각할 게 더 많아진 것 같기도 하다.

"흐흥."

주머니에 넣어둔 쿠키를 바라본다. 쿠키, 쿠키라. 나랑은 연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래, 화해의 의미로 신시아에게 선물이나 할까?'

* * *

"신시아, 안에 있니?"

신시아의 방문. 몇 번을 노크해도 대답이 들리지 않는다.

'몰래 놓고만 올까.'

다행히 문은 열려 있었다.

신시아의 방은 평범하다. 커다란 곰 인형이라던가, 꽃을 장식한 화분이라던가. 침대가 없다는 점 빼면, 어디에나 있을 법한 소녀의 방이다. 그러고 보니 잠은 항상 로렌스랑 같이 잔다고 했나.

"응?"

쿠키를 놓고 가려는 찰나, 책상 밑에서 툭, 하고 책이 한 권 떨어졌다.

"이건 뭐지?"

어디 조금만...

'신부님은 쓰러져 있는 나에게 다가와, 그 커다란 육...'

"에델 언니?"

쿠르릉. 창문 밖으로 천둥이 치기 시작했다.

"그거, 본 거야?"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