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자매님에게는 마왕의 소질이 있다-23화 (23/109)

〈 23화 〉 로렌스 프랑

* * *

"알베르... '프랑'?"

신시아가 나와 알베르를 번갈아가면서 쳐다본다. 나의 성, 로렌스 '프랑'. 그리고 알베르 '프랑'. 같은 성을 쓰는 신부들.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오랜만이구나, 로렌스."

계단을 내려오며 알베르가 말했다. 그래, 저 눈빛. 이쪽을 깔보는 역겨운 눈빛.

"성당에서 온다는 신부님이 너일 줄은. 세상 참 좁군."

"제가 할 말입니다, 알베르. 어디로 갔나 했더니 설마 이곳에 있었던 겁니까?"

"존댓말? 왜 그래, 로렌스. 이단심문관의 자리를 내려놓더니 드디어 맛이 갔나?"

그 말을 들은 신시아가 내 앞으로 나섰다. 손톱을 꺼내고 송곳니를 들이밀며 위협한다.

"신부님을 모욕하지 마...!"

"그래, 이 자매님이 그 대단하신 마왕님... 확실히 범상치 않아. 어딘가 망가져 있군."

이건 내가 못 참겠는데.

"그 빌어먹을 성격은 여전하구나, 알베르. 그래, 네가 원하는 대로 '그 시절'의 추억 좀 떠올려 볼까?"

"이제야 좀 너답군. 오를란도 추기경이 만든 살인 기계. 그게 네 모습이잖아?"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 댄다. 일단 두 발 정도 머리 옆을 쏘면 충분하겠지.

그러나 신시아의 외침에 내 손은 갈피를 잃었다.

"아니야!" "신시아?"

"신부님은, 신부님은 기계 같은 게 아니야! 신부님은 나를 구해주고, 나를 사랑해주고, 나를 보살펴주고, 그리고 또, 또..."

신시아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흐른다. 신시아가 울분을 토하기 전에, 그녀를 뒤에서 껴안았다.

"괜찮아요, 신시아. 저런 말은 조금도 귀담아듣지 않습니다."

"보모 행세라도 하는 건가?"

"그쯤 하지 그래."

그때, 뒤에서 계속 듣고 있던 에델이 알베르의 말을 끊었다.

"알베르, 사적인 감정은 넣어 둬. 우리가 온 건 어디까지나 추기경 님의 명령 때문이니까. 로렌스, 너도 마찬가지야."

"에델바이스? 설마 너야? 하지만 그 차림은 수녀복..."

"네가 그렇게 혐오하는 보모 역할, 나도 하게 됐거든."

알베르의 태도가 명확히 달라졌다. 예전부터 이 놈은 이랬다. 에델의 앞에서는 성격이 부드럽게 변한다.

"흐흠, 방금 말은 내가 지나쳤군. '마왕 후보자'를 감시하는 일을 너무 우습게 봤어."

에델을 데려오기 천만다행이다. 아니었다면 저 녀석과 나, 둘 중 하나는 이미 죽었을 거다.

아니, 내가 무조건 이길 테니 알베르가 죽었겠네.

"신부님, 훌쩍, 이 사람, 대체 뭐야?"

어느 정도 울음을 그친 신시아가 내 얼굴을 보며 묻는다.

"저 재수 없는 신부놈 말이죠?"

"로렌스, 지금 말 다했...!"

"제 의형제입니다."

의형제. 프랑의 성씨. 그 말을 듣자 신시아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진짜 형제는 아닙니다. 그냥 성이 같을 뿐이죠."

놀란 건 신시아만이 아니었다. 알베르, 그가 실소하며 말했다.

"의형제라니, 설마 네 입에서 그 말이 나올 줄이야."

그의 말은 무시하고 이야기를 계속한다.

"신시아, 제게는 부모님이 없다는 사실, 알고 있죠?"

"응. 성국의 고아원에서 바로 성직자가 되었다고..."

"하지만 저도, 그리고 에델도 성이 있죠."

로렌스 '프랑'. 에델바이스 '발랑틴'. 로제리오 '알렉산드르'. 그 외에 한스나 크리스도 그들의 성이 있다. 우리 모두 고아 출신인데도 말이다.

"성국에는 재미있는 법이 있어요. 저희같은 고아 출신이 성직자가 될 때, 세례를 내려주는 사제의 성을 따 자신의 성으로 삼죠."

"그 말은 저 알베르란 사람도?"

"맞아요. 우리 동기들과 같은 고아 출신. 세례를 내려 준 분도 같아요."

"하지만 그러면 왜 '의형제'라고 하는 거야?"

잠자코 듣고 있던 로렌스의 얼굴이 역변했다.

"'세례를 내려 준 분'? 그래, 로렌스. 역시 넌 변하지 않았구나!"

"알베르, 당신이야말로 과거에 갇혀 있는 겁니다."

"둘 다 그만!"

에델이 소리쳤다. 우리 둘의 사정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 그렇기에 그녀는 이 싸움을 중재할 자격이 있었다.

"알베르, 미안한데 우린 좀 지쳤거든. 먼저 짐부터 풀어도 될까?"

"... 네 얼굴을 봐서야, 에델바이스."

* * *

알베르가 안내해 준 방은 생각보다 넓었다. 접객용으로 보이는 큰 방이 하나, 개인실로 보이는 작은 방이 하나.

"제가 작은 방을 쓸 테니, 신시아와 에델이 큰 방을..."

"싫어!"

신시아가 팔에 꼭 매달려 왔다. 그걸 본 에델이 이마에 손을 짚더니, 후우, 하는 한숨 소리와 함께 말했다.

"난 혼자가 편하니까 너희 둘이 써." "하지만 에델, 다 큰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한 방을..."

"너넨 밤마다 매일 같이 자잖아! 이제 와서 숨길 필요 없어."

그건 신시아가 옆에 있어달라고 졸라대서, 라는 말이 끝나기 전에 에델이 방에 들어가 쾅! 하고 문을 닫았다.

"배려심 넘치는 친구를 둬서 좋군요."

"저기저기, 신부님. 그 알베르라는 사람, 그 사람이랑 정확히 무슨 사이야?"

"말했잖아요. 같은 사제에게 세례를 받은 사이..."

"신부님. 이제 신시아도 다 컸어."

신시아가 내 얼굴을 노려봤다. 아네모네와 똑 닮은 말을 하면서.

"겨우 그런 걸로 '의형제'라고 부르지는 않아. 그리고 둘, 처음부터 나빴던 사이는 아닌 것 같았어. 정말 그랬다면 말도 섞지 않았을 거야."

"하, 하하하."

그렇지, 신시아는 아직 성장하는 나이다. 신시아를 계속 어린아이 취급해왔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역시 신시아는 못 속이겠네요. 하지만 제 입으로 말하기엔..."

그때, 끼이익거리는 소리와 함께 에델의 방문이 열렸다.

"신시아, 잠깐 이리로."

"응? 하지만 신부님이랑 할 얘기가..."

"그러지 말고, 어서!"

신시아가 에델에게 끌려간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감사합니다, 에델.'

* * *

조용한 방 안, 에델이 신시아를 침대에 앉혔다. 그리고 그 옆에 앉아 한숨을 쉬었다.

"신시아, 정말 저 둘 얘기를 듣고 싶어?"

"응."

"로렌스가 그 일을 숨기고 싶어 해도?"

"나는."

신시아가 가슴에 손을 올렸다. 눈을 감고, 결의가 담긴 모습을 취했다.

"신부님의 모든 면을 사랑해. 그러니까 신부님의 과거도 사랑해야 해. 신부님은 내 과거를 알고도 좋아해 줬어. 겁내지 않았어. 그러니까 나도 그럴 수 있어."

"흐흠, 가끔 보면 너, 로렌스보다도 어른스러울 때가 있어."

"정말? 신부님보다?"

흠, 흠. 에델이 몇 번 헛기침을 한 후,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로렌스랑 알베르는 '프랑'으로 성이 같아. 물론 세례를 내린 사제의 성을 쓰는 거지만, 그 둘한테는 더 깊은 인연이 있었지."

"인연?"

"로렌스와 알베르를 처음 성직자로 추천한 사람. 그 둘을 거둔 아버지와 같은 존재. 대사제 '프랑'. 둘의 유일한 연결고리야."

자신이 알지 못했던 로렌스의 과거. 신시아는 귀를 쫑긋 든 채 계속해서 물었다.

"그럼 그 사람은 지금 어디 있어?"

"더는 없어. 죽었거든." "죽...었...?"

에델이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본다. 로렌스, 알베르와 처음 만났던 그 시절. 아무것도 모르던 그 시절을 회상한다.

"처음에는 로렌스도 비교적 평범한 남자아이였지. 조금 과묵하지만, 마음이 차갑거나 하지는 않은 그런 평범한. 알베르는... 쾌활했지. 한스보다도 더 수다쟁이였을 걸?"

"그 재수 없는 신부님이!?"

"성직자 학교는 기숙제라 둘이 계속 붙어있지는 않았지만... 프랑 사제님이 올 때면 항상 함께 달려갔지."

에델이 배낭에 넣어둔 성수를 들이켜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날, 사건이 터졌어. 어떤 이유에선지 로렌스와 알베르가 대판싸운 거야. 다른 아이들은 조용한 로렌스보단 사교적인 알베르의 편을 들기 시작했고, 로렌스는 반쯤 따돌림을 당하기 시작했어."

"말도 안 돼! 신부님은 엄­청 멋진 사람인데!"

"몇 달 후, 로렌스는 결국 학교를 떠났고... 그와 다시 만난 건 1년 후였지."

"오를란도 추기경 님 말이지?"

"맞아. 그분의 다섯 제자. 로렌스는 두 번째였어. 나는 네 번째였고. 로렌스는 변해 있었어. 오를란도 추기경 님의 밑에서 냉혹한 마음을 배웠지."

오를란도 추기경. 그는 분명 그녀의 은사였다. 그에게 제자의 재능을 '개화'하는 재능이 뛰어남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이 들어오기 전애는? 크리스티나, 로렌스, 로제리오를 거뒀을 시절, 에델은 그 시절을 알지 못한다.

"그때 이후로 로렌스와 알베르는 둘이서만 마주친 적이 없어. 로렌스는 추기경, 아니, 그때는 선생님이었겠네. 그분의 밑에서 이단심문관이 되고, 알베르는 성직자 학교에서 신부의 길을 밟았지."

"하지만, 프랑 사제님이 왔을 때는 함께였을 거 아니야?"

"프랑 사제... 맞아. 거기서부터 모든 게 시작됐지."

* * *

깜깜한 대성당. 짙은 어둠이 성당의 고요함을 심화시킨다.

수녀도, 신자도 없는 대강당. 경전을 읽는 목소리도, 찬송가의 선율도 들리지 않는 정적의 장소.

그곳에는 신부가 한 명 있었다. 등불에 의지한 채 성서를 읽고 있는 신부. 알베르, 한 때 의형제였던 자.

"알베르."

나의 존재를 눈치챈 알베르가 황급히 책을 덮었다. 혹시 에델인가 하다가, 나라는 걸 알고는 표정을 구긴다.

"하, 무슨 일이지? 또 싸움이라도 해보자고?"

"아니요. 임무에 관한 것입니다."

"임무, 임무, 그놈의 임무. 넌 항상 그랬어. 사람의 사정보다는 양피지에 적힌 임무 내용이 먼저였지."

* * *

"어느 날이었어. 이제 막 이단심문관이 된 나랑 로렌스는 긴급 임무를 받았지."

"무슨 내용이었는데?"

"'배교자, 대사제 '프랑'을 처단하라'. 그렇게 적혀 있었어."

"배교자? 배신자라고?"

"마(?)를 믿고 따르는 세력. 지금은 '마왕 추종자'라 불리는 자들. 그들과 접촉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거야."

* * *

"프랑 사제는 우리의 아버지였잖아...!"

"아니, 그는 죄인입니다."

"너 자꾸...!"

알베르가 나의 멱살을 잡았다.

그날, 나와 알베르가 완전히 갈라진 바로 그날. 알베르는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버지한테는 사정이 있었을 거야."

"어떤 사정이라 한들 배교는 용납되지 않습니다."

"나도 알고 있어!"

멱살을 잡은 알베르의 손을 뿌리친다. 그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이 외에 다른 길은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 * *

"로렌스는 결정했어. 그의 손으로 의부를 단죄하기로."

"하지만, 하지만 아버지 같은 분이었다며!" "이유는 충분했어."

로렌스가 감정이 없었기 때문에? 아니다. 오히려 마음이 죽어버린 건 그 일이 있은 다음부터다.

신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 아니, 그것도 아니다. 단지 그 이유라면 본인의 손으로 끝내야 할 필요는 없을 터였다.

"대체 왜..."

"프랑을."

로렌스 프랑. 알베르 프랑. 그리고 대사제에게 세례 받은 모든 '프랑'의 아이들.

"프랑의 성을 가진 모든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야. 그중에는 알베르도 포함되어 있었지. '프랑'이 지은 죄를 그의 후계가 죽인다. 완벽한 그림이잖아?"

"신부님은 옛날부터 계속..."

꼴깍. 성수 한 병이 전부 비워졌다. 그래도 마음은 진정되지 않는다.

과거의 기억. 이단심문관으로서의 첫 번째 일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저택에서 울린 한 발의 총성. 그 소리에 알베르는 다급히 의부를 찾아갔지만..."

"이미 죽은 거야?"

"차라리 그랬으면 좋았을까. 알베르가 본 건, '이름 없는 검'을 높이 쳐든 로렌스가..."

"그만!"

"목숨이 붙어 있는 사제의 목을, 끊어내는 장면이었어."

그리고 로렌스는 나지막이 말했다.

'에델바이스, 떠올랐어. 이 검의 이름.'

피로 흠뻑 젖은 검을 높이 들며.

'세바스(안식일). 이제부터 그렇게 부르겠어.'

* * *

"나는 너를 용서할 수 없어...!"

"용서를 구할 만한 짓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그게 로렌스 프랑이니까."

알베르가 책을 챙겨 들고 자리를 떠났다.

문을 닫기 전, 그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로렌스, 뭐 하나만 물어보자."

"뭐든."

"너는 왜... 아직도 로렌스 '프랑'이라는 이름을 쓰는 거지?"

"......"

침묵. 나의 대답을 받아들인 알베르는 조용히 문을 닫았다.

고요한 정적이 성당을 채운다.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야 당연하죠."

한때 빛이었던 그자를 위해.

"아버지였던 자에게... 부탁 받았으니까요."

* * *

"언니!" "잘 있었어, 리사? 소피아?"

"응! 울지 않고 잘 지냈어!"

"그래, 잘했어. 빵을 좀 가져왔는데 먹을래?"

"빵이다!"

아이들이 아네모네의 곁으로 모여든다. 빵 한 조각에 행복해하는 모습. 마치 아기새를 보는 것 같아, 아네모네는 미소를 지었다.

"언니도 먹어 봐!"

"아냐, 언니는 배불러."

"그러지 말고! 어? 언니, 그 손목..."

소피아가 아네모네의 손목을 가리킨다. 붕대 위로 번지는 핏자국. 그녀가 황급히 손목을 가린다.

"응, 무슨 말이야?"

"어? 아냐. 아무것도."

아네모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이건 '죄'의 흔적이다. 신이 내린 몸으로 죄를 범한 '낙인'. 이것만큼은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 없다.

'너희들만 있으면, 나는­.'

손목에 묻은 피를 닦아낸다. 신께 용서를 빌며.

오늘도 그렇게 하루가 지나간다.

* * *

"이건 정말 끔찍하군."

"누가 이런 짓을..."

상층부의 한 가택. 서로를 믿지 않는 사람들조차, 그곳에 모여 비참한 감상을 나눈다.

"신부님."

"네, 신시아."

"저 흔적, 어떻게 생각해?"

그리고 그곳엔 우리도 있었다.

마룻바닥은 모두 피로 물들어 있다. 마치 화폭에 그림을 그리듯 혈흔이 빈 공간을 메운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안에서부터 폭발하여 처참한 몰골로 망가진 남자의 시체가 있었다.

"마력은 아니군요."

핏자국을 따라 짙게 남아있는 힘의 흔적. 마법사들의 마력과는 구별되는, 성직자들의 성법의 원천.

"신성력입니다. 그것도 아주 거대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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