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 정화의 날(2)
* * *
이단심문관.
성국의 그림자에서, 온갖 종류의 더러운 일을 처리하는 스페셜리스트.
검은 제복을 입고, 신의 뜻에 따라 이단과 죄인을 처형하는 것이 그들의 유일한 신앙이다.
그들을 관리하는 기관의 이름은 '이단심문회'.
교황청으로부터 독립되어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움직이는 거대 기관.
'하물며 '대정화'라고?'
나 역시 그곳에 몸을 담을 적이 있다.
그렇기에 잘 알고 있다. 이단심문관이 얼마나 앞뒤가 없는 자들인지.
대정화.
신의 이름 아래 한 지역에 있는 모든 이단자와 죄인을 색출, 사살하는 특수 명령.
그 명령을 내리는 것은 신도, 교황도 아닌 '국장'이다.
이단심문회의 우두머리, 성국에서 가장 광신도에 가까운 자.
"알베르, 그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
"그렇게 당황한 모습은 오랜만이군. 옛날이 생각 나."
'대정화' 명령이 떨어진 도시의 결말은 하나뿐이다.
조금이라도 의심을 산 모두가 죽고, 도시는 흔적도 없이 불타 사라진다.
"에델은, 에델은 알고 있습니까?"
"아니. 하지만 곧 알게 되겠지. 걱정하지 않아도 돼, 로렌스. 그녀의 손에 피가 묻게 될 일은 없을 거니까."
알베르의 말이 맞다. 에델이 '대정화'에 참여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녀의 손을 빌리지 않아도, 이미 충분한 수의 이단심문관이 동원되었을 테니.
"슬슬 움직이자고. 확실히 알고 싶은 거잖아? 이 도시에 다시 퍼진 역병의 정체, 사라진 성자..."
옷을 탁탁 털고는, 알베르가 몸을 돌렸다.
"성자 레고르, 그의 비밀을 드러내 보자고."
* * *
버려진 도시, 레고르로 향하는 산길.
들짐승조차 숨을 죽인 한밤중. 저 멀리서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신성력이 담긴 횃불을 들고, 수십 명의 사람이 줄을 지어 걸어온다.
그들의 옷은 모두 칠흑보다도 검다. 왼쪽 가슴에는 십자 문양이 달려있다.
총과 검을 들고, 위압감을 풍기는 제복을 갖춰 입은 자들.
이단심문관.
그들의 선두, 큰 키와 훤칠한 용모를 지닌 남성이 후드를 벗었다.
"저기로군."
가로등 하나 없이 깜깜한 도시지만, 은은한 달빛에 그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때 성국의 요새로 이름 높았던 산 중턱의 도시, 레고르.
그러나 지금은 갈 곳 없는 부랑자와 죄인들만이 있을 뿐이다.
"명령의 내용은 틀림없겠지."
선두의 남자가 뒤따라오던 이단심문관에게 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드레이크 부국장님."
이단심문회를 이끄는 우두머리인 국장. 그녀와 가장 가까이 있는 조직의 이인자. 부국장 드레이크.
그가 직접 휘하 인력을 이끌고 온 것만 해도, 사항의 중대함은 명백했다.
"보고자는 알베르 프랑, 배교자의 양아들이었군."
"2년 전부터 비밀리에 레고르로 배속되어, 이곳에서 발생하는 특수한 사안을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보고 내용은... 수백 년 전 사라진 역병의 부활. 하."
부국장 드레이크가 허탈한 웃음을 뱉었다.
차라리 농담이라면 웃어 넘길 수 있을 법한 사태.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성국은 혼란에 빠질 것이 분명했다.
"이것 또한 신의 뜻이군."
죄인의 도시에 퍼진 역병. 이것은 신의 단죄임이 분명하리라.
그렇게 생각한 드레이크는 성수를 적셔 만든 담배를 입에 물었다.
"뭐, 일이 어찌되었든 간에."
담배 연기가 뭉근하게 피어 오른다.
그 짙은 연기가 도시의 모습을 가린다. 마치 연기로 도시를 휘감는 것처럼.
"우린 국장님의 판단을 따를 뿐이다."
발로 담배를 비벼끈다. 그들의 목적은 단 하나, 성국 내의 더러운 잡초를 모두 뿌리 뽑는 것.
부국장 드레이크가 손을 들었다. 모든 수하들이 볼 수 있도록.
그리고 입을 연다.
"가자고. 신의 뜻에 영광 있으라."
"""신의 뜻에 영광 있으라!"""
인간 세상에 내려올 수 없는 신을 대신해, 검은 제복의 신도들이 칼을 뽑아 들었다.
* * *
성자 레고르의 유해가 보관되어 있는 안치실.
넓은 석실의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관이 놓여 있었다.
'내 생각이 맞다면, 저 안에는...'
일지의 마지막. 성자 레고르는 모습을 감췄다. 그렇다면 이 공간은 대체 무엇인가. 모든 것이 의문이다.
"뭐 해? 열지 않고."
"알베르, 미리 묻겠습니다. 저 관 안에는."
"네 생각이 맞아."
끼이이이이.
무거운 관 뚜껑을 조심스레 연다. 차라리 이 안에 있는 것이 말라 비틀어진 미라였다면 좋았겠지만.
"후우, 역시."
"비어있군."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관.
관 속에 쌓인 먼지만이 빈자리를 지키고 있다.
"대충 예상이 가지 않아?"
"성인은 긴 시간을 살아간다, 그 말을 하고 싶은 거죠?"
성인뿐만이 아니다. 마도 공화국의 현자나 제국의 기사단장. 인간의 경지를 아득히 초월한 자들은 긴 세월을 살아갈 수 있다.
지금의 대륙에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은, 그들 스스로의 의지로 속세와 연을 끊었기 때문이다.
"성자 레고르가 돌아왔다. 그렇게 밖에 해석할 수 없지."
"하지만 뭔가 이상합니다."
역병의 원인이 성자 레고르라고 치자.
그렇다면 이 방의 존재는 뭐지? 단순한 눈속임에 이렇게나 힘을 쏟는다는 말인가?
시기도 이상하다. 성자 레고르가 자유로운 몸이었다면, 지난 수백 년 동안 이런 사태는 몇 번이고 일어났을 것이다.
"알베르, 당신이 처음 이곳에 부임했을 때도 이 관은 비어 있었습니까?"
"맞아. 처음에는 다른 의미가 있는 장소인 줄 알았지만... 안타깝게도 내 판단이 글렀지."
관의 바닥에 손가락을 긋는다.
낮게 가라앉은 신성력의 흔적. 아직 잔류해 있는 성법 술식.
이 관은 단순한 눈속임이 아닐지도 모른다.
"알베르, 도와주십시오. 이 관에 성법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뭘 하려는 거지?"
"성법을 재현할 겁니다."
부족한 부분은 적당히 메꾸고, 비어 있는 성법진에 신성력을 쏟아 붓는다.
그렇게 몇십 분이 지나자, 성법의 정체가 드러났다.
"이건 뜻 밖인데."
"그러게나 말이다."
난 이걸 본 적이 있다.
비록 이단심문관은 봉인 쪽으로는 문외한이지만, 이 모양은 분명 기억이 난다.
'달의 기사, 크루거.'
한때 마왕 후보자였던 괴물. 그를 봉인하는 데 사용했던 성법진.
적어도 추기경 정도의 수준은 되어야 제작 가능한 봉인이었다.
"이게 왜 여기 있는 거지? 레고르는 도망쳤잖아."
"어쩌면 그게 아닐 수도 있어요."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해야 한다.
분명 성자 레고르는 도망쳤다. 그의 연구가 역병의 원인인 것은 확인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봉인 술식이 다른 결말을 내놓는다.
레고르는 누군가에게 제압되었다. 가령 성녀라던가, 교황 같은.
"그리고 이곳에 봉인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앞뒤가 맞습니다."
"여기 있던 게 레고르라는 확신은?"
"없습니다. 하지만..."
'성자'가 아닌 다른 자를 봉인하는데, 이런 거대한 술식이 필요할까.
"제 이단심문관으로서의 감이, 맞다고 말하고 있군요."
가정을 정리하자.
성자의 유해, 어쩌면 성자 레고르 본인은 이곳에 있었다.
그러나 최근 시일, 적어도 알베르가 부임하기 전에 관의 내용물이 사라졌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역병. 도시의 혼란. 세 번째 성녀.
알베르가 부임한 건 '2년'.
'빌어먹을.'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스쳐 지나간다.
2년. 어둠 속에서 그들이 모습을 드러낸 시기 또한 2년이었다.
마왕 추종자.
"알베르, 단순한 추측일지도 모릅니다."
"뭔가 알아챈 거라도 있나?"
"이 일에는 배후가 있습니다. 아주 거대한 규모의. 가령, 성인의 유해로 장난질을 칠만한 담력이 있는 자들. 마왕 추종자. 그들의 짓일 확률이 커요."
나는 이미 그들을 만난 적이 있다.
마왕 후보자 크루거를 폭주시켜 성도에 테러를 가한 남자.
마왕 추종자는 이미 성도 곳곳에 숨어들었다. 이 버려진 도시, 레고르에도 한둘쯤 있다 한들 이상하지는 않다.
"... 그렇게 생각해?"
"가장 그럴 듯한 추측일 뿐입니다."
"뭐,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네 추측은 어지간하면 맞았으니까."
알베르가 눈을 감는다.
그 순간, 대강당으로 향하는 계단에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느긋하게 얘기를 나눌 시간은 없어 보이는군."
멀리서 보이는 검은 제복의 여인.
에델이 다급한 표정으로 달려온다.
"시간 초과야, 로렌스."
알베르의 조용한 한 마디. 그 잔향은 에델의 호통 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로렌스, 알베르!"
"에델. 그 표정은..."
"부국장이 왔어...!"
* * *
"꺄아아아아악!"
"제발 살려 줘! 나에겐 아이가..."
"도망쳐! 도시 밖으로 나가야 해!"
치솟는 불길. 자비 없이 불타오르는 거리의 풍경.
한밤중임에도, 주위는 대낮같이 환하다.
그리고 그 한복판에는, 가만히 앉아 모든 것을 관망하는 남자가 있었다.
"나으리, 나으리!"
지저분한 차림의 빈민이 남자에게 기어온다.
"저는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저 역병이란 것도 모릅니다!"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 망가진 한쪽 다리를 질질 끌며,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자세를 취한다.
"그러니 제발... 살려주십시오. 버리지 말아 주세요..."
그 모습이 너무나 안타깝고 애절하여...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걱정하지 마라. 의심하지 마라. 신은 너희를 두고 가지 않는다."
휙. 땅에 떨이진 담배를 발로 밟는다.
빈민의 표정이 희망과 안도감으로 물들어 가는 그때.
탕.
한 발의 총성이 울린다. 과녁은 빈민의 이마 한가운데.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남자는 담담히 할 말을 잇는다.
"모든 죄는 죽음으로서 궁극적인 용서를 받으리라."
부국장 드레이크.
그가 주위를 둘러본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풍경이다.
"살려...!"
"꺄아아악! 아빠!!"
아름다운 연주를 하듯 울려 퍼지는 총소리.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정화의 불길.
"이단자들을 모두 처단하라."
"한 놈도 살려두지 마!"
메케한 연기 탓에 시야가 흐르지만, 드레이크는 느낄 수 있었다.
그를 따르고, 국장님을 따르고, 신의 뜻을 따르는 신실한 사도.
그들이 얼마나 넘치는 신앙심을 과시하는지.
"하하, 하하하하하하!"
아, 분명 신들도 기뻐할 것이다.
죄의 향기만이 그윽한 이 썩을 도시. 이곳을 정화할 수 있는 것은 우리뿐이다.
그 흥분, 그 고양감이 드레이크의 몸을 휘감았다.
앞으로 세 시간도 되지 않아 레고르는 다시금 역사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런데.
"왜 네가 여기 있지?"
"후우, 후우. 너무 늦지는 않은 모양이군요."
숨을 헐떡이며 달려온 신부복의 남자.
잿빛과도 같은 회색의 머리, 꺼림칙한 호박색 눈동자.
드레이크 자신은 그 남자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낙오자, 로렌스 프랑."
한때 상당한 기대를 품었던 존재.
누구보다도 신의 뜻을 실천하는데 여념이 없던 자.
어쩌면, 자신의 뒤를 이어 이단심문회의 부국장이 되었을 남자.
"낙오자라니, 누가 들으면 웃겠군요."
"어디 촌구석에나 틀어 박혀있을 줄 알았는데."
허나 지금의 그는, 신의 뜻을 저버린 배신자일 뿐이다.
지금의 저 모습도... 자신들을 도와주러 온 것으론 보이지 않는다.
"그래, 보모 노릇은 잘하고 있나? 그 마왕의 씨앗은 어디 있지? 에델은?"
"같이 오지는 않았습니다. 굳이 당신 같은 사람이랑 만나게 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꽤나 변했군. 별 반응이 없어."
"반면 부국장님은 꽤나 경박해지셨군요."
철컥.
드레이크가 총을 겨눴다. 홍구가 로렌스의 이마를 향한다.
"이곳은 무슨 일이지? 설마 지금이라도 다시 복귀하려는 건가?"
"좆같은 농담은 집어치우십시오."
로렌스의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
진지한 목소리로 그가 묻는다.
"'성녀'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알다마다. 이놈들을 처리하고 나면 그 괴물이다."
"괴물?"
괴물. 그 말에, 로렌스의 손등에 있는 힘줄이 꿈틀거렸다.
"이미 몇이나 되는 인간을 처참하게 죽인 위험인물이다. 추기경의 생각은 어떤지 알 바 아니다. 중요한 건, '국장님'께서 그녀를 이단으로 지정했다는 사실뿐."
"그래서, 그녀를 죽이시겠다?"
"비켜라, 로렌스."
후우. 한숨을 쉰 로렌스가 몸을 풀었다. 그리고는 등 뒤에 손을 가져다 댄다.
스르릉.
녹색의 검날이 로렌스의 등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성직자가 된 지 얼마 안 된 초짜 주제에, '재능'이라는 신의 은총을 받아 저 검을 쥐었다.
검의 형태를 한 성유물. 아마도 로렌스가 이름 붙이기로는.
"세바스(안식일)로군."
"뭘 할진 대충 눈치챘잖습니까?"
"이건 이단 행위다, 로렌스."
"또 거짓말. 제 뒤에는 추기경님이 계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
로렌스의 검에 강대한 신성력이 깃든다.
이미 그는 마음의 준비를 끝마친 것이다.
"어차피 그냥 물러날 생각은 없잖습니까?"
불타는 도시. 혼탁한 연기. 꺼져가는 생명.
그 중심에, 두 명의 남자만이 서 있었다.
"오랜만에 놀아주시죠, 드레이크 부국장."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