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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매님에게는 마왕의 소질이 있다-31화 (31/109)

〈 31화 〉 정화의 날(3)

* * *

성국에서 무력 집단이라고 부를 만한 곳은 두 군데뿐이다.

철퇴와 방패로 적을 섬멸하고 아군을 지키는 성기사단.

그리고 총과 횃불로 이단을 사냥하는 이단심문회.

둘 중 더 강한 세력이 어디냐,라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성기사단을 고를 것이다.

하지만 어느 집단이 더 우수하냐고 묻는다면, 대답이 조금 달라질 것이다.

소수 정예. 이단심문회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수식언이다.

"처음 널 봤을 때,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아나?"

"실력이 너무 뛰어나서 부러웠습니까?"

"재수 없는 놈. 언젠간 그 머리에 총알을 박아주지, 하고 생각했다."

철컥. 총포가 나를 향해 겨누어진다.

다른 한 손에 들고 있는 건... 단도다.

이단심문관의 가장 기본적인 무장. 한 정의 총과, 세 자루의 단검.

어떤 기연도 없이, 오직 노력과 집념만으로 이단심문회의 부국장에 오른 남자. 부국장 드레이크란 그런 사람이다.

"키리에 국장님은 잘 계십니까? 설마 아직도 만성 히스테리거나 하진 않고요?"

"그 더러운 입으로 국장님을 부르지 마라."

저 놈의 성격하고는. 저 무뚝뚝한 표정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이렇게 있으니 첫 대련 때가 생각나는군요. 그때 분명 당신은..."

"시간을 끌려고 하는군."

...쯧. 예상대로다. 허튼 수작은 안 통한다는 건가.

"지금쯤 성녀는 도망치고 있을 테고, 에델바이스와 마왕 후보자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겠지. 내 말이 틀린가?"

"뭐, 대충 맞는 말이죠."

물론 거짓말이다.

성녀는, 아네모네는 아이들을 두고 떠나지 않을 것이다.

신시아가 도시 바깥으로 향하고 있다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 역시 눈속임일 뿐. '대정화'가 끝날 때까지 성녀의 존재를 숨기는 것이 내 목적이다.

"...로렌스. 넌 그걸로 만족하나?"

"또 무슨 말씀을 지껄이시려고."

말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여전히 총과 칼날은 나를 향해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방심하지 않는 것이 부국장의 신조니까.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드레이크 부국장이 말을 계속했다.

"그래, 인정하지. 너는 우수했다. 어쩌면 내가 보아온 후임 중 가장."

"무슨 일로 갑자기 칭찬입니까?"

"지금 네 모습을 봐라. 넌 타락했어, 로렌스. 마왕 후보자를 감싸고 도는 걸로 모자라, 이제는 거짓 성녀까지 구하려 드는군."

거짓 성녀... 저것만큼 듣기 거슬리는 말은 없을 것이다.

"이런 건 네 방법이 아니잖나. 총을 들어. 신의 뜻에 위반되는 모든 것을 쏴 버려라. 그게 너의 진정한 모습이다."

"상당히 쓸 데 없는 말을 하시는군요."

"너의 재능은 이곳에 있다. 이단심문회로 돌아와라."

.....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

만약 내가 신시아를 만나지 않았다면, 검은 제복을 입고 이단심문관을 계속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나 자신의 답을 찾았을까? 구원을 얻었을까?

하지만 그 모든 의문조차, 그녀의 미소를 보면 먼지처럼 사라진다.

"이단심문회는 마왕 후보자의 존재를 용납하지 못합니다. 그렇죠?"

"물론이다. 모든 미왕의 씨앗의 처단. 그것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뜻이다."

"그럼 됐어."

그날, 죽고자 했던 어린 소녀를 구한 그날부터.

이미 나는 마음을 굳혔다. 피에 물든 손으로도 누군가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렇게 신부가 되었다. 신시아를 후견인으로 두었다.

신시아. 나의 자매님. 신시아를 바라보고, 신시아에게 행복을 선물하는 것이 내 마지막 의무다.

그걸 방해하는 놈들은 모두.

"주접 떨지 말고 총이나 들어."

"...드디어 미쳤군, 로렌스."

"똑똑히 들어. 난 댁들에게 돌아갈 생각 없어. 질렸거든. 그 빌어먹을 구원 놀이를 하는 거."

"눈과 귀가 어두워졌군. 그 마왕의 씨앗이 원인인가?"

"신시아다."

가끔 감정적으로 굴 때는 난감하지만, 여전히 귀엽고 수줍은 나만의 자매님. 나의 구원의 증거.

"신시아 생크 프랑이라고. 마왕의 씨앗이 아니라."

"로렌스, 안타깝군."

드레이크 부국장이 눈을 감는다.

그가 중대한 판단을 내릴 때 하는 일종의 버릇이다.

"널, 이단심문회에서 제명하겠다."

"원하는 대로."

손에 쥔 세바스가 떨리기 시작한다. 이 검을 들고 이토록 감정이 격해진 적이 있을까.

눈 앞의 남자, 드레이크 부국장은 강하다. 성국에서도 손에 곱힐 정도의 강자. 아마 그보다 강한 자는... 이단심문회의 국장인 '키리에'나, 성기사단장, 빛의 성녀 정도가 다겠지.

'괜찮아. 떨쳐 버려, 로렌스. 네 목표는 부국장을 이기려는 게 아니잖아.'

시간을 끈다. 주의를 돌린다.

'대정화'가 끝날 때까지 부국장의 발목을 잡는다.

단지, 그뿐이다.

"세바스­."

에메랄드빛 검날이 나와 공명한다.

강대한 신성력이 내 몸에서 검날로 이동한다.

"갑니다, 부국장."

"시작하지."

* * *

"로렌스와 드레이크 부국장이 전투에 들어갔다."

허공에 떠 있는 수많은 신성 문자.

그중 하나를 들여다본 알베르가 에델에게 말했다.

"상황은? 로렌스의 상태는 어때?"

"...아직 괜찮아. 그 자식, 그동안 신부로서 놀기만 한 건 아닌가 보군."

신성 문자 너머로 전투의 장면이 이어진다.

육중한 세바스의 검날을, 드레이크는 단검 하나로 막아대고 있다.

정밀한 기술과 근력이 요구되는 대응법.

검과 검의 부딪힘. 둘의 속도가 너무나 빨라, 보통 사람이라면 눈으로 쫓기 힘들 것이다.

"에델바이스, 피의 성녀의 상황은 어떻지?"

"아네모네와 아이들 모두 지하 서고로 자리를 옮겼어."

그 통로의 존재를 알고 있는 자는 알베르와 로렌스, 그리고 에델뿐이다.

작정하고 기척을 숨긴다면, 지하실의 존재를 눈치채지는 못하리라.

"마왕 후보자는?"

"신시아라면, 지금 이단심문관의 추격을 받고 있어. 하지만 가공할 만한 속도야. 성국에서 보호받는 입장이라 함부로 공격하지도 못할 거고, 걱정할 사항은 없어."

에델이 망원경에서 눈을 뗀다.

상황은... 너무나도 비참하다.

도시는 역병과 불길, 그리고 사람들의 비명 소리에 파묻혔다.

도시에서 빠져나가려 한 사람들은 이미 머리에 바람 구멍이 뚫렸다.

이 상황에서도 검은가시병은 사라지지 않고 시체에 남아 새로운 숙주를 찾아 나섰다.

이 도시에 내일은 찾아오지 않는다. '대정화'가 끝난 땅에는 오직 고요함이 남을 뿐이니까.

"너도 참 고생이군, 에델바이스."

"뭔 일이야? 갑자기 분위기나 잡고."

무언가 결심한 듯한 얼굴의 알베르. 그가 에델을 향해 발걸음을 뗐다.

"물어볼 게 있다."

"지금은 급박한 상황이야. 사소한 거면 나중에 해."

"어째서 오를란도 추기경의 밑으로 들어간 거지?"

에델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알베르의 질문의 의도는 너무나 명백했기에.

"갑자기 그런 질문이야? 맥 빠지네. 성법에나 집중해."

"대답해, 에델바이스."

알베르의 눈에는 집요함이 깃들어 있었다.

당연했다. 그에게는 어떻게든 '오늘' 안에 모든 의문을 해소해야 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성직자 학교에서 넌 언제나 수석이었지. 모두가 너에게 기대했어. 동경하고, 뒤를 따르길 바랐지. 나조차도 말이야."

"...본론만 얘기해."

"그런 네가 갑자기 학교를 그만두고 오를란도 추기경의 밑으로 들어간 이유. 모를 거라 생각하나?"

"이유 같은 건 없어. 난 단순히 내 의지에 따라..."

"로렌스를 쫓아간 거지?"

알베르의 말이 에델의 가슴을 꿰뚫는다.

아니, 아니야. 단순한 우연의 일치다.

에델은 강해지고 싶었다. 성직자 학교의 수석은 그녀에게 큰 감흥을 주지 못했다.

로렌스. 그 남자의 재능을 깨닫고 나서, 어린 나이였던 그녀는 몰래 눈물을 훔친 적이 많았다.

그를 이기기 위해 노력하고, 관찰하고, 경쟁하고.

그러다... 어느새 에델의 눈은 그의 모습만을 좇게 되었다.

"아니, 아니야. 로렌스? 풋, 그 자식이 나랑 무슨 상관이야?"

어린 시절이 영원히 계속될 줄 알았다.

모두에게 선망받는 뛰어난 자신.

모두에게서 외면받는 외로운 소년.

그의 손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자. 그렇게 계속, 계속 생각했는데.

"그 녀석은 그냥 친구일 뿐이야. 그런 말은 실례라고."

그러던 어느 날, 로렌스가 말했다.

'나, 학교를 그만둘 거야.'

오를란도 사제. 지금은 추기경의 자리에 오른 그의 밑으로 들어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

그럼 '나'는? 네가 없는 장소에서 1등을 한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지?

"이런 얘기는 이제 그만해."

그래서 너의 발걸음을 쫓았어.

오를란도 사제의 밑으로 들어가, 그의 제자가 되었지.

그분도 내 의도를 어느 정도는 눈치챘던 모양이야.

로제리오를 만나고, 크리스티나를 만나고, 마지막으로 한스가 들어왔지.

그 시간은 내게는 몇 안되는 행복한 기억이야. 로렌스, 네가 있고, 모두가 모여 함께 수련하며 미래를 꿈꿨지.

"에델바이스. 네가 말했잖아. '솔직해지라'고."

"그만하라고 했잖아!"

하지만, 하지만 말이야.

넌 변했던 모양이야. 눈에 슬픔이 가득했던 소년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기계처럼 차가운 눈을 가진 청년만이 남아 있었지.

누가 그런 걸까. 오를란도 선생님? 아니면, 혹시 나?

네가 이단심문관이 된다고 했을 때, 나도 내 미래를 결정했어.

이단심문관. 피와 죄의 길을 걷는 순례자.

난 말이야, 네가 사제가 되었다면 나도 사제가 되었을 거야.

성기사가 되었다면 나도 방패를 들었을 거고, 수도사가 되었다면 나도 수도복을 몸에 걸쳤겠지.

신부가 되었다면... 아니, 지금은 신부가 맞구나.

나는, 수녀가 되어 너랑 함께 했을 거야. 그래, 지금처럼 말이야.

그런데, 그런데.

"에델바이스, 네 표정을 봐."

"...뭐?"

"울고 있군."

신시아. 그 순수한 아이.

나는 너를 바꾸지 못했는데, 그 아이가 너를 구했어.

나로서는 안 됐었던 걸까? 너를 위한 내 노력은 부질없었던 걸까?

신시아가 부러웠어. 신시아가 미웠어. 신시아가... 증오스러웠어.

하지만 그 아이의 순수한 미소를 볼 때마다, 그리고 그걸 보는 웃는 너의 얼굴을 볼 때마다... 나 자신이 혐오스러워져.

그래, 맞아. 솔직해질게.

로렌스 프랑. 난 너를­.

* * *

"...좋아해."

"그래, 그렇겠지."

"난 로렌스를 좋아해. 나도 알고 있어. 이런 내가 이상하다는 거."

"에델바이스."

"미안해, 알베르. 하지만 역시 안 되겠어. 나름대로 괜찮은 척을 해보고 싶었는데, 하하, 역시 안 되네."

에델의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가슴을 부여잡은 채 에델은 호소를 계속했다.

좋아하는 여자의 약한 모습. 그 모습에 알베르는 고개를 떨궜다.

"에델바이스. 너에게만 말해 둘게."

"뭘, 훌쩍, 말이야?"

"이 도시의 모든 것이 사라질 거야. 저 이단심문관도, 성녀도, 마왕 후보자도, 네가 좋아하는 로렌스조차."

"그게 무슨..."

알베르가 대강당의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성자 레고르. 그의 동상 바로 아래.

스테인드 글라스로 달빛과 불빛이 한 데 섞여 들어온다.

마치 신에게, 아니 '운명'에게 바라듯 알베르가 손을 뻗었다.

"이런 더러운 세상, 한 번쯤 뒤집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알베르, 너 설마..."

"마지막으로 물을게, 에델바이스."

무릎을 꿇고, 구애의 눈빛으로.

알베르가 입을 뗐다.

"나로는 안 되나?"

"......"

에델이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말했다.

"아니, 넌 로렌스가 될 수 없어. 미안해, 알베르."

그녀의 눈빛에 있는 건 동정, 연민, 미안함, 혐오...

괜찮다.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역시 로렌스에게 가봐야겠어. 아무리 로렌스라도 혼자서는 무리..."

"에델바이스."

하지만 만약에, 아주 만약에 그녀가 내 손을 잡아주었더라면.

난 '괴물'이 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알베르?"

"어딜 가려는 거야, 에델바이스."

경악. 에델이 느낀 유일한 감정.

허공에 수많은 신성 문자가 떠오른다. 하지만 그 원동력은... 신성력이 아니다.

마기, 짙고 어두운 부의 에너지. '마왕'과 연관된 자들만이 사용하는 힘.

신성 문자는 이윽고 검은 사슬이 되어 에델을 휘어감았다.

"꺄앗!"

"고마워, 에델바이스. 네가 말했지? 솔직해지자고."

알베르의 발 밑에서 검은 기운이 치솟는다.

검은 가시 덩굴. 마치 이 도시를 가둔 역병과도 같은 그 모양.

"이게 내 의지야."

"알베르, 너... 마왕 추종자와...!"

"그래, 맞아."

알베르가 손을 들어 올렸다.

광기에 가까운 미소를 지으며, 거대한 힘을 주먹에 모은다.

"비명을 질러 봐, 에델바이스! 로렌스는 너를 구해주러 올까?"

그는 이미 진작에 망가져 있었다.

"아니면 그 마왕 후보자를 구하러 갈까?"

알베르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누군가의 피부 조각이 담겨있는 시약병. 그것의 용도는.

"성자 레고르여, 도시의 제물을 양식 삼아 피를 돋우시옵고..."

"그만 둬, 알베르!!"

"이 땅에, 다시금 당신의 권능을 보이소서­."

* * *

"후우우, 아직 젊으신데요, 부국장님?"

"인정해라, 로렌스. 네 패배다."

로렌스는 땅에 검을 박고 주저앉았다.

반면, 드레이크는 조금의 표정 변화도 일으키지 않고 자세를 잡았다.

결투의 승패가 결정 나기 직전인 그때.

콰아아아아아앙­.

도시를 뒤흔드는 거대한 굉음.

그 방향은... 대성당이었다.

"저곳은...?"

"에델? 알베르!?"

당황한 로렌스가 뒤를 돌아보았다.

자욱한 연기의 틈 사이로, 거대한 거인의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아­!"

시체와 검은 덩굴을 얼기설기 엮어놓은 끔찍한 형태.

로렌스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저 거인의 정체가 무엇인지.

"성자... 레고르...?"

어째서 저런 모습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허나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 '저것'을 가만히 둔다면, 이 도시는 흔적도 없이 파괴될 것이다. 자신도, 신시아도, 다른 모두도.

"신시아...!"

로렌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시는 여전히 불길에 휩싸여 있다.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잊혀진 죄인, 레고르.

그가 긴 시간을 지나 다시금 죄의 도시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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