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 누군가의 선택
* * *
"신시아!!"
"멈춰라, 로렌스!"
부국장 드레이크의 외침은 로렌스에게 들리지 않는다.
자신의 예측을 벗어난 거대한 위협. 신시아의 안전이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로렌스는 더 이상 냉철한 판단을 내릴 수 없다.
잊혀진 죄인, 레고르.
저 거인은 압도적인 공포와 위압감을 준다. 마치 '마왕'의 현현을 바라보는 것처럼, 저것의 존재를 인지한 자는 이질적인 혐오와 공포에 몸을 떨었다.
"로렌스, 거기 서..."
"아하하하하핫!"
로렌스를 뒤쫓으려는 드레이크를, 푸른 장발의 여성이 막아선다.
광기에 찬 얼굴과 웃음. 이미 누군가의 피로 물든 단검.
드레이크는 본능적으로 그녀를 경계했다.
"당신이지? 당신 맞지? 이 나라에서 제일 센 놈들의 대장. 그러니까 이름이... 드레이크였나?"
"누구냐. 신속히 정체를 밝혀라."
"나? 나 말이야? 쿠쿠쿡, 알 게 뭐야. 지금은 그냥..."
올라가는 입꼬리 사이로 드러나는 송곳니.
단검에 묻은 피를 핧으며, 여성의 얼굴이 사냥꾼의 모습으로 바뀌어 간다.
"서로 죽여보자고."
드레이크도 자세를 잡는다. 총에 신성력을 불어넣고, 단검을 역수로 잡는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이 꺼림칙한 느낌은.
"이건?"
"하핫, 아하하하핫!"
주위를 살펴본다.
로렌스와의 전투의 흔적으로 생겨난 건물의 파편들.
그로부터 생겨난 수많은 그림자. 그 하나하나에 마기가 깃든다.
본래라면 결코 발현할 수 없는 힘.
이 더러운 이단의 힘을 쓰는 자는 둘 뿐이다. 마도 공화국의 흑마법사들이거나, 아니면.
"마왕 추종자군."
"용케 알아챘네? 맞아."
어째서 저 여자가 로렌스를 쫓지 못하도록 막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런 건 이제 중요하지 않다. 저 앞에 있는 것은 이단이다.
성국의 적, 대륙의 적. 그리고, 키리에 국장님의 적.
그렇다면 망설일 이유 따윈 없다.
"너를 처단하겠다."
"잘 부탁해?"
이단심문회의 부국장 드레이크. 마왕 추종자 로리안.
둘의 발걸음이 동시에 떨어지고.
전투가 시작되었다.
* * *
'상황이 너무 안 좋아...!'
신시아를 향해 달려가는 길. 불에 타 사그라지는 도시의 모습이 보인다.
하층부에 번졌던 불과 역병은 어느새 상층부로 옮겨 갔다.
불에 탄 건물. 악취를 풍기는 연기, 처참하게 죽은 시체.
그런데, 시체 사이에는 이단심문관으로 보이는 자들도 섞여 있었다.
'이단심문관이 죽었다고?'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무너진 잔해에서 무언가가 덮쳐왔다.
"크롸아아아아!"
"세바스!"
세바스의 검날이 무언가의 몸통을 거칠게 베어낸다.
헌데 검의 감촉이 이상하다. 사람을 가르는 것이 아닌, 좀 더 나무에 가까운 무언가를 벤 듯한 느낌이.
"...빌어먹을."
반으로 갈라진 잔해를 바라본다.
가시덩굴로 뒤덮인 시체. 이미 원본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원래의 '검은가시병'이라면 진작에 죽었어야 했는데, 어째서 갑자기 이런 행동을 보이는 거지?
"크아아아아아아아아!"
멀리서 거인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는...
"크르르르르."
"크르? 크르롸아아아."
울음소리와 함께, 잔해 사이에서 시체가 일어난다.
그들 모두 하나같이 검은 덩굴로 뒤덮인 모양새다.
그런 건가. 저 거인의 능력. 아마도 '검은가시병'에 감염된 자들이나 그 시체를 변이체로 만드는 종류일 것이다.
만약 저 거인이 이 도시를 벗어난다면... 성국은 끝이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지?"
거인은 대성당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대성당에 있는 건 에델, 알베르, 그리고 아네모네와 아이들이다.
하지만 신시아는?
그녀는 이단심문관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이 도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만약 내가 보지 못한 사이, 그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나는, 나는.
'진정해라. 냉철해져, 로렌스.'
지금 내가 해야할 일. 할 수 있는 일. 그 모든 것을 따져 봐라.
나는 성국의 성직자이다. 우수한 이단심문관이었으며, 성유물의 사용자이기도 하다.
나는 저 거인을 막을 수 있는가? 알 수 없다.
지금 신시아나 에델, 다른 사람들의 상태는? 알 수 없다.
이 일의 원인은? 마왕 추종자들과의 관련은? 그것도 알 수 없다.
'정보가... 너무나도 부족해.'
어떻게, 어떻게 해야.
오를란도 선생님이라면, 에델이라면, 한스라면, 로제리오라면, 크리스라면.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
오를란도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네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여라.' 라고.
처음부터 답은 정해져 있었다. 내가 가장 지키고 싶은 사람은.
'신시아를, 찾으러 가야겠어."
* * *
"으음..."
검은 사슬에 묶인 검은 제복의 이단심문관.
에델바이스는 신음을 토하며 정신을 차렸다.
"깨어났나?"
"...알베르? 이게 대체 무슨..."
"말했잖아. 솔직해지라고. 이게 내 뜻이다."
에델의 상황 파악은 끝났다.
알베르의 돌발 행동. 마기를 뿜는 기술. 그리고 창밖에 보이는 끔찍한 거인의 형태.
알베르는 배신자다. 마왕 추종자와 내통한 자, 아니면 추종자 그 자체거나.
"결국, 너도 프랑의 이름을 더럽혔어."
"아들은 아버지를 닮는 법이지."
"쓰레기, 배신자! 한때나마 널 동정했던 내 자신이 한심해."
알베르가 에델에게 다가간다. 한 손으로 에델의 턱을 부여잡으며 음흉한 미소를 짓는다.
"쓸 데 없는 도발이야, 에델바이스. 난 내 선택에 한 번도 후회해 본 적 없어."
"거짓말."
알베르의 이마가 꿈틀거린다. '거짓말'. 그 단어는 그의 심기를 건드리기 충분했다.
짝. 알베르의 손이 매섭게 에델의 뺨을 후렸다.
그럼에도 에델의 눈은 변함없이 알베르를 향해 있다. 분노와 증오를 한 데 담은 눈빛으로.
"제발, 이 이상 내가 널 심하게 대하게 하지 말아 줘."
"아네모네는 어떻게 했어!?"
"걱정 마. 성녀가 보호 결계를 쳤더군. 나참, 썩었어도 성녀는 성녀야."
"어째서 이런 짓을 저지른 거야? 대체 언제부터?"
"언제부터라..."
알베르가 눈을 감고 미소를 지었다. 뒷집을 진 채 여유롭게 대강당을 거닐며, 그는 에델에게 지난날을 말하기 시작한다.
"어쩌면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날부터, 일지도 모르지. 이 도시에 온 건 일종의 도피였어. 로렌스, 그리고 그 녀석과 붙어 다니는 네 얼굴을 도저히 볼 자신이 없었거든."
품에서 십자 휘장을 꺼내 손에 쥔다. 성직자의 증표. 신에게 뜻을 바치겠다는 의지.
"모든 걸 증오했어. 어째서 이 세상은 내게 시련만을 내리는가. 만약 신이 있다면 굉장히 불공평한 자겠지. 로렌스, 그 녀석은 모든 것을 가졌는데, 나는, 어째서 나는?"
주르륵. 꽉 쥔 알베르의 손에서 피가 배어 나오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누군가가 찾아왔지. 그래, '운명'이 찾아온 거야. 마왕 추종자, 이 세상을 뒤집으려는 자들."
부스슥. 십자 휘장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그들은 내게 많은 걸 알려줬지. 이 도시의 역사, 지하실의 열쇠, 대성당의 지하에 봉인되어 있던 성자, 레고르...
로렌스의 추측대로, 안치실의 관에는 누군가가 봉인되어 있었다.
성자 레고르. 삶에 대한 추악한 집착으로 도시를 나락으로 빠뜨린 죄인.
"그를 봉인한 건 아마 빛의 성... 아니, 여기까진 말하지 말라고 했지. 뭐, 그 다음에는 뻔한 이야기야. 난 그들의 뜻에 감복했고, 마왕의 충실한 수하가 되어 너희의 방문을, 새로운 성녀를 기다리고 있었지."
투두둑 소리를 내며, 잘게 부서진 휘장이 바닥에 떨어졌다.
"저기 말이야, 에델바이스. 이 세상이란 거, 한번 쯤 부서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거짓말."
"...후우, 에델바이스. 도발은 그만하라고 말했..."
"거짓말이야."
에델은 알베르라는 남자에 대해 알고 있다.
처음부터 그에게 신앙심은 없었다. 그가 믿는 것은 오직 자신과 그의 양아버지뿐. 그는 진심으로 마왕을 추종하는 것이 아니다.
"로렌스에게 복수하고 싶어서, 힘을 얻고 싶어서잖아?"
"푸훗, 푸하하하하핫!"
이마를 짚고, 고개를 크게 꺾으며. 알베르의 광소가 대강당을 덮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로렌스, 로렌스! 잘 들어, 에델바이스. 그 자식은 마왕 후보자를 구하러 갈 거야. 이곳에는 오지 않아."
에델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자신, 아니, 성직자의 직무와 신시아의 이지선다.
로렌스가 어떤 답을 고를지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 거..."
"흐음?"
"그런 거, 이미 알고 있었어. 하지만 이거 잘 들어. 네가 어떤 위협을 한다 하더라도 내가 너를 바라볼 일은 없을 테니까."
"그래, 이게 '에델바이스 발랑틴'이지. 그 올곧은 모습에 반한 거니까."
알베르가 손날을 세웠다. 검은 마기가 그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다.
철근도 바로 잘라버릴 수 있을 만한 절삭력.
꽃을 짓밟기 전의 어린아이 같은 표정으로, 알베르가 에델에게 다가간다.
"우선 팔 하나면, 조금은 얌전해지려나?"
에델은 눈을 감았다.
로렌스를 원망하지는 않는다. 모든 건 내가 미숙했기 때문이니까.
하지만, 만약 네가 와주었다면.
조금은... 다른 결말을 맞이할 수 있었을까?
"안녕이야, 에델바이스."
마력의 칼날이 에델의 팔에 닿고, 그대로...
"그만."
바깥에서 들어오는 빛이 에델의 눈을 따갑게 한다.
활짝 열린 문 너머로 떠오르는 해가 보인다.
빛을 등지고 이쪽을 바라보는 저 남자는...
"거기까지야, 알베르."
"로렌...스? 정말로...?"
로렌스 프랑. 에델바이스 발랑틴의 동기이자 친구였다.
* * *
'신시아를 구하러 가야...'
시야가 흐리다. 이런 데서 발목을 잡힐 수는 없다.
좀 더 빨리, 신시아의 손을 잡고 이 도시를.
[신부님.]
그 순간, 머릿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토록 듣고 싶었던 목소리. 나의 자매님, 신시아.
"신시아? 어디 있는 겁니까?"
[아마도 아주 먼 곳.]
"그럼 어떻게 대화를 할 수 있는 거죠?"
[후후, 한 번 시도해봤어. 신부님이 나한테 입맞춤을 해줬을 때.]
신시아가 부끄러워하는 목소리로 조심스레 말한다.
[마력을 연결한 거야. 나랑 신부님이 떨어져도 얘기할 수 있게. 다행히 성공했나 보네.]
"신시아, 조금만 기다리세요! 제가 바로..."
[안 돼.]
단호한 신시아의 목소리에,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다.
[신부님은 해야 할 일이 있잖아? 나는 괜찮으니까, 신부님은 신부님의 일을 해 줘.]
"하지만 신시아, 당신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내 걱정은 하지 마. 나는 신부님이 제일로 소중해. 그러니까, 주변 사람이 다치면 힘들어할 신부님을 보고 싶지는 않아.]
머리가 따끔거린다.
신시아의 마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감에 따라 느껴지는 증상이다.
신시아는 대체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신시아, 로자리오를 벗은 겁니까?"
[응, 맞아. 미안해, 신부님. 하지만 어쩔 수 없는걸. 저 거인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마도 나 밖엔 없을 거야.]
쿠구구구궁.
도시 전체에 굉음이 울려퍼진다.
잊혀진 죄인, 레고르. 그가 거대한 몸을 이끌고 도시 아래로 내려가려고 하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막아볼게, 신부님. 난 신부님을 믿으니까.]
머리가 요동친다.
멀리 떨어져 있을 그녀의 모습이 눈 앞에 흐릿하게 비쳤다.
검은 날개는 온전히 한 쌍의 모습을 갖췄다.
뿔은 조금 더 길어졌고, 그녀의 두 눈은 붉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할 수 있는 거야. 날 rndnjs해 준 것처럼, 에델 djssl를 rndnjs해 줘.]
신시아의 언어에 진언이 섞이기 시작한다.
마왕의 힘을 쓰는 것은 신시아에게 있어서 독이나 다름 없다.
그럼에도 그녀가 리미트를 해제한다는 것은, 그만한 각오가 있다는 뜻이다.
"저도 아직 미숙하군요."
신시아가 저렇게 힘을 내고 있다.
그런데 나는? 발걸음이 멈춰 서 있다.
"알겠습니다, 신시아. 에델과 다른 사람들은 맡겨주세요."
[응, dmddnjs할게. tkfkd하는 신부님.]
* * *
"아니었길 바랐는데."
"왔군, 로렌스 프랑."
"알베르, 네가 배신자였어."
"이제 와서 뭘 새삼스레."
로렌스가 등 뒤에서 검을 빼들었다.
이미 그에게 있어, 눈 앞의 남자는 더 이상 의형제나 친구가 아니었다.
"알베르 프랑, 당신을 처단하겠습니다."
"역시 넌 그대로군. 그래, 좋아."
알베르가 팔을 펼쳤다.
로렌스와 신시아, 에델이 처음 대성당에 발을 들였을 때처럼.
"끝내자, 로렌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