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자매님에게는 마왕의 소질이 있다-33화 (33/109)

〈 33화 〉 알베르 프랑

* * *

프랑. 나와 알베르의 유일한 연결점.

허나 그마저도 이제는 너무 흐릿하다.

언제부터였을까. 우리가 서로 반대로 걸어가기 시작한 건.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어.

나의 의부였던 자, 프랑 사제. 그의 죽음과 함께.

­로렌스, 멈춰!

­탕­.

­너 대체 무슨 짓을...!

­이 자는 배교자다. 더 이상 아버지가 아니야.

­넌, 넌 괴물이야.

사실은 말하고 싶었다.

우리 '프랑'의 이름을 가진 형제들. 그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나서야만 했다고.

알베르, 너는 할 수 없었을 거다. 능력의 문제 같은 게 아니야. 우리 중 가장 그분을 따랐던 건 너였으니까.

그래서 나는 총을 들었다.

프랑 사제를 처단한 건, 내게 있어 최초의 살인이었으니까.

* * *

"로렌스­!"

알베르의 팔이 허공을 가로지른다.

빈 공간에 새겨진 두 개의 신성문자. 혼탁한 색으로 물든 그 문자가 이어지고, 꺾이며, 이윽고 기다란 사슬로 변한다.

"세바스. 공명하라."

알베르는 마왕의 힘, 마기를 건네받았다. 보통의 성법으로는 대처하지 못할 터. 이 간극을 좁힐 수 있는 방법은 성유물뿐이다.

"이어져라, 꿰뚫어! 뼈마디를 전부 꺾어버려 주마!"

검과 사슬이 맞부딪힌다.

허공에 무작위로 떠오르는 신성 문자들. 그 모든 것이 시작점이자 도착점이 되어 사슬의 경로가 된다.

조금이라도 판단을 그르치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단죄."

세바스의 검날이 울리기 시작한다.

가장 왼쪽에서 맞은편 끝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수평선을 긋는다.

선성력을 머금은 선은 검의 궤적이 되어, 경로의 모든 사슬을 베어낸다.

"하찮은 발악이다, 로렌스!"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본다.

대강당을 가득 채운 검은 신성 문자. 이건... 조금 힘들겠는데.

"이제 그만 꺼져."

시야가 사슬로 뒤덮인다. 도망칠 장소 따윈 없다.

그렇다면 '단죄'를 써서... 아니, 저 많은 사슬을 모두 베어내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수호성인."

검을 고쳐 잡는다. 손잡이를 위로, 검날을 아래로.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기술'이었던' 단죄.

그리고 성도에서 성유물을 돌려받고 나서 한 달의 시간 동안 터득한 두 번째 기술.

굉음과 함께 사슬이 내 머리 위로 쏟아진다.

피할 수도 없고, 받아쳐낼 수도 없다면 막아낼 뿐이다.

수호성인. 내 등 뒤로 빛 알갱이로 이루어진 깃발이 솟는다.

바람이 없어도 깃은 펄럭이고­, 거대한 벽에 부딪히듯 사슬이 튕겨져 강당 이곳저곳으로 떨어진다.

"방어형 성법? 성기사들이나 사용하는 걸 네가?"

"의외라는 표정이군."

"당연하지, 로렌스. 너한테 가장 안 어울리는 건, 누군가를 지키는 행동이잖아?"

알베르의 말이 맞다. 이단심문관 로렌스에게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성법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막기 전에 처단해버리면 될 일이니.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지켜야 할, 지키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

성유물은 마력의 집합체. 그리고 마력은 인간의 감정과 감응한다.

"어째서 그런 표정을 짓는 거지?"

"지금에 집중해라."

"어째서 그렇게 결연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거냐고!"

알베르가 양 손에 마력의 검기를 만든 채 나에게 다가온다.

그가 근접전으로 상대하길 바란다면, 나도 응대할 뿐이다.

"너는 감정이란 게 없는 괴물이잖아!?"

"아무렇게나 생각해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를 속일 생각은 하지 마. 넌 괴물이었어. 결코 인간이 아니었지. 그런데 뭐가 너를 이렇게 바꿨지?"

세바스와 마력의 검기가 부딪혀 강한 반동을 일으킨다.

계속해서 합을 주고받으면서도, 나와 알베르는 서로의 눈을 응시했다.

내가 본 알베르의 눈빛에는... 분노와 원망이 담겨있다.

"그 마왕 꼬맹인가? 아니면 에델바이스?"

"네가 신경 쓸 사항이 아니야."

"나를 무시하지 마, 로렌스!"

알베르의 주먹이 불끈 쥐어진다.

강한 마기가 응축되어, 나와 알베르 사이에 거대한 폭발을 만들어 내었다.

"크윽!"

짙은 연기에 눈이 보이지 않는다. 최대한 신경을 집중해, 알베르의 움직임을 막는...

"멈춰."

연기가 걷어지고, 알베르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에델이 묶여 있는 성자 레고르의 동상 아래.

알베르가 에델의 단검을 뽑아 그녀의 목에 겨누었다.

"쓸 데 없는 힘싸움은 이제 끝이야, 로렌스."

"나는 신경 쓰지 마, 로렌스!"

에델이 눈을 질끈 감고 외친다.

괜찮아, 에델. 네가 생각하는 상황은 일어나게 두지 않을 테니.

"나락으로 떨어졌군."

"검을 버려. 아니면 에델바이스의 목숨을 버리던가."

좋아하는 사람의 목숨을 건드린다고?

알베르, 너는 대체 어디까지 타락할 셈이냐.

어째서 알베르가 이렇게까지 행동하는가. 무엇이 그를 망쳤나.

나의 선택이... 잘못된 건가?

"알베르."

"두 번 말하지 않아. 검을 버려."

그의 말대로 세바스를 먼 구석으로 던져 버린다.

두 손을 올리고, 알베르에게 천천히 다가가 말했다.

"얘기를 듣고 싶어."

* * *

도시를 타고 내려가는 거인. 잊혀진 죄인, 레고르.

그가 걷는 자리마다 검은 덩굴이 자라 주변 사람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한 번 괴성을 지을 때마다 역병으로 죽은 시체들이 일어난다.

불사의 연구의 마지막은,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없는 형태로의 변이였다.

"크롸아아아아아­!"

또다시 괴성이 울려 퍼진다.

그와 동시에 도시 곳곳에서 끔찍한 비명이 들려온다.

평범한 인간으로는 저 재앙을 막을 수 없다. '운명'의 인도를 거스를 수 없다.

"찾았다."

하지만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뛰어넘은 자들.

가령, '마왕'이라면, 이야기는 다른 국면을 맞이한다.

신시아. 성국의 마왕 후보자.

검은 깃털을 흩날리며 그녀가 거인의 앞에 섰다.

"더는 갈 수 없어. 신부님이 올 때까지, 널 아무 데도 보내지 않을 거야."

스으읍. 신시아가 호흡을 내쉰다.

저 거인에게는 자신과 비슷한 힘이 느껴진다.

마기. 마왕의 힘. 질서를 흐트러뜨리고 공포를 불리 일으키는 부의 에너지.

신시아는 알고 있었다. 저 거인을 상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시간을 끄는 것 밖에는 없다는 것을.

"신부님, 기도해 줘."

저 거인을 쓰러뜨리려면 성인이나 성녀 수준의 신성력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신시아는 마음을 다잡았다.

신부님을, 로렌스를 믿으니까. 그녀의 세상, 그녀의 이정표. 그게 '로렌스'라는 존재니까.

* * *

"이제 와서 무슨 얘기를 한다는 거냐."

"무엇이, 대체 무엇이 너를 이 지경까지 몰아붙인 거지?"

알베르는 신실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악에 물들지는 않았다.

그저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 칭찬에 웃고, 꾸중에 울고.

오히려 평범함과 거리가 있었던 쪽은 나였을 것이다.

"하, 하하하! 지금에야 그런 걸 묻는구나."

모든 것을 체념한 얼굴, 분노가 담긴 눈빛으로 알베르가 나를 가리켰다.

"너야, 로렌스."

...예상하고 있었던 대답이다.

"어째서 넌 모든 걸 가져야 했지? 성직자로서의 명예도, 에델바이스의 옆자리도. 넌... 아버지를 죽인 살인자잖아."

"알베르, 그건 어쩔 수 없는..."

"닥쳐!"

에델이 알베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단검을 든 알베르의 손이 떨린다.

"그런 건 나도 이미 알고 있었어. 아버지는 죽을 운명이었다는 것도, 그런데, 왜 하필 너였지? 왜 성국은 너를 아버지에게 보낸 거지?"

"내가 원한 일이기 때문이다."

"아니, 그건 이유가 못 돼. 난 모든 게 증오스러워. 아버지를 현혹한 마왕이라는 존재, 아버지를 죽게 놔둔 이 나라. 그리고... 로렌스 너도."

알베르가 울분을 토할 때마다, 그의 뒤편에서 신성 문자가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느새 허공은 수많은 신성 문자로 빼곡히 들어찼다.

"이 세상 말이야, 한 번쯤 뒤집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너도 봤겠지, 로렌스? 이 도시의 추태."

이미 두 눈으로 보았다.

서로를 의심하는 사람들. 슬픔을 외면하고,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지르는 자들.

도시를 휩쓴 역병조차 신의 단죄가 아닌, 개인의 욕심의 산물이었다.

"이건 극히 일부에 불과해. 지금의 세대가 남아있는 한, 죄는 끊임없이 반복되겠지."

"그 대답이 멸망이라고?"

"그게 내 결론이야. 막상 이런 상황이 되니... 이제야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겠더군."

"......알겠어."

하늘을 바라본다. 그리고 마음을 먹었다.

알베르는 이미 오래전에 죽었다. 내가 프랑 사제를 죽인 그날, 알베르도 함께 죽어버린 것이다.

"알베르."

그러니까 이건, 내가 완수하지 못한 사명을 다하는 것이다.

"죽음이 너의 안식이 될 수 있기를."

세바스(안식일). 검을 부른다.

성유물은 '주인'이라고 인정한 자의 부름에 답한다.

멀리 떨어져 있던 검이 다시 내 손으로 날아온다.

"그게 네 대답이구나, 로렌스."

알베르의 단검이 에델의 목에 다가간다.

선혈이 검 끝을 타고 흘러나온다.

"나는... 신경 쓰지 마... 로렌스...!"

"아니, 걱정하지 마, 에델."

기지를 발휘해라. 언제나 벗어날 방법은 있다.

나에게는 없는, 에델의 품속에 있는 그것. 로제리오가 고안한 성법이 그려져 있는 양피지.

"붉은 장미의 정원."

에델의 품속이 빛나기 시작한다.

성녀를 가두기 위해 고안한 특수 성법. 본래는 오랜 시간을 들여 주위에 결계를 그려야 하지만, 술식만 있다면 흉내는 낼 수 있다.

"무슨 짓이냐, 로렌스?"

"그만 에델에게서 떨어져."

에델의 주위로 녹색의 빛으로 된 벽이 쳐지기 시작했다.

주위의 접근을 완전히 차단하는 격벽.

그래, 알베르. 너의 추악한 손길은 더이상 닿지 않아.

"크윽, 로렌스­!"

신성 문자가 사슬로 이어져 나를 향해 날아온다.

하지만 아까와는 상황이 다르다.

에델의 안전이 확보되었다. 말인즉슨.

"더는 적당히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지."

우우웅­.

베어낼 목표로 바라듯, 세바스의 검체가 크게 떨린다.

최대 출력의 '단죄'. 몸을 크게 돌려 거대한 참격을 만든다.

"알베르­!"

공중으로 흩어져 사라지는 신성 문자.

무방비해진 알베르의 틈 속으로 몸을 던진다.

"어째서야, 어째서냐고!"

알베르의 손날이 그림자를 품은 검을 만들어 낸다.

신성력과 마기가 반발하여 거대한 폭풍이 일기 시작한다.

"대답해라, 로렌스! 너도 아버지가 틀렸다고 생각하나?"

"그렇게 생각했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지."

"어째서 막는 거냐? 이 세상은... 지킬 가치조차 없는데...!"

지킬 가치가 없는 세상.

나도 1년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든 돌아오는 건 비난과 비명뿐이다.

성직자의 사명? 신의 뜻? 질서를 위한 희생?

"나도 너랑 같아, 알베르."

"...뭐?"

나는 '성국'을 위해 싸우는 게 아니다.

성국에 속한 수많은 사람들. 에델, 한스, 크리스, 로제리오, 오를란도 선생님, 이사도라, 베티. 그리고­.

"신시아. 내가 계속 싸울 수 있는 이유야."

신시아를 지키기 위해서. 쓰러지지 않고 다시 일어섰다.

"처음부터 우린 닮아있었던 거야."

"이제 와서 한다는 말이 그거냐?"

"다만 걸어간 길이 달랐을 뿐이지."

알베르는 과거를, 양아버지를 향해 걸어갔다. 그렇게 마왕 추종자가 되었다.

나는 미래를, 신시아를 향해 걸어갔다. 그렇게 신부가 되었다.

우리의 시작점은 같았다. 허나 그 도착점은.

"난 네가 증오스러워."

"알베르."

"넌 여전히 설교뿐이군. 내가 너에게 듣고 싶었던 건 그딴 게 아닌데."

"......"

"검을 들어. 계속해야지. 안 그래?"

검을 들었다. 알베르도 검을 들었다.

나와 알베르, 두 사람의 검이 부딪히고.

"집중해! 우리 둘 중 하나는 죽어야 끝날 테니까."

두 사람의 이상이 부딪히고.

"너무 소극적이잖아, 로렌스. 설마 아직도 망설이나?"

두 사람의 신념이 부딪히고.

"난 네가 끔찍이 싫어하는 배교자잖아? 어서 죽여보라고."

두 사람의 과거가 부딪힌다.

기력이 다한 알베르가 숨을 내몰아 쉰다.

...지금 밖에, 말할 틈이 없군.

"알베르."

"그 입 닥치...!"

"미안해."

너를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아서.

너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해서.

프랑 사제를... 아버지를, 내 손으로 죽여서.

아무런 말 없이 사라져서.

"미안해, 알베르."

"하, 하하하하하하하!"

이마를 짚고 한참을 웃어대더니, 텅 빈 눈동자로 나를 바라본다.

"...빌어먹을."

만약 내가 그날 총을 쏘지 않았다면.

나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면.

알베르에게, 다른 동기들에게 상담이라도 했다면.

단 한 번이라도 알베르를 찾아왔더라면.

지금의 이 상황을... 바꿀 수 있었을까?

"너무 늦었어, 로렌스."

알베르의 주위로 마기가 끓어넘치기 시작한다.

그의 생애, 신념, 이상, 모든 것을 담은 마지막 일격을 준비한다.

알베르, 그게 너의 대답이구나.

"끝이다. 다시는... 네 얼굴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군."

"후우."

숨을 내뱉는다. 알베르의 마지막 일격에는, 그에 걸맞은 응대가 필요하다.

"사라져라."

"단죄."

내가 발휘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신성력.

알베르가 발휘할 수 있는 가장 거대한 마기의 덩어리.

물러설 곳은 없다. 물러나고 싶지 않다.

이건 자존심이고, 의지이며, 서로에 대한 존경이자 대답이다.

그 모든 것이 지금 이 순간, 격돌한다.

콰아아아아아아­!

거대한 굉음이 대강당을 감싼다.

그리고 그대로­.

* * *

"여기서 뭐 하냐?'"

"...알베르?"

아무도 없는 고요한 숲 속.

시끄러운 걸 피해 숨어있는 나를 알베르가 찾아왔다.

"오늘도 수업을 빼는 거야?"

"그렇지 뭐."

"에휴, 내 생각 좀 해라. 네가 그렇게 굴면 다른 애들이 널 뭐라고 생각하겠냐?"

알베르가 내 옆에 자리를 잡더니, 그대로 풀썩 누워버린다.

"무슨 일 있으면 얘기해. 우리는 그, 형제잖아."

"성이 같을 뿐이잖아."

"또 그 소리. 아버지가 같잖아. 프랑 사제님."'

프랑 사제님. 우리에게 세례를 내려주고, 고아였던 나를 거두어주신 분.

나는 은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알베르는 친아버지처럼 대하고 있다.

"다음 주면 오시겠네. 아버지 말야."

"진짜야?"

"그럼, 물론이지. 편지도 있는걸. 여기 봐."

알베르가 품속에서 꼬깃한 편지 한 장을 꺼냈다.

"뭐라고 적혀 있는데?"

"음, 어디 보자. '조만간 도착할 것 같구나', '너희들이 훌륭한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뭐 이런 내용."

푸른 하늘에 커다란 구름이 떠 간다.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던 알베르가 고개를 돌려 내게 물었다.

"로렌스, 넌 커서 뭐가 될 거냐?"

"나? 글쎄,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너는?"

"난 말이지..."

알베르가 주먹을 쥐어 하늘을 향해 뻗었다.

"모두를 지켜주는 성기사도, 아버지를 따라 사제가 되는 것도 좋지만... 이단심문관이 되고 싶어."

"이단심문관?"

"그래, 이단심문관. 내 친구들을 괴롭히는 나쁜 악당을 물리치는, 그런 멋진 사람! 그게 내 꿈이야."

"그거 멋지네."

나와는 다르게, 알베르에게는 목표가 있었다.

그런 알베르가 너무나도 부러웠다. 나도 꿈을 가지고 싶었다.

내 생각이 표정으로 드러났는지, 알베르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로렌스, 너는 신부님이 딱이네."

"신부님? 글쎄다."

"너처럼 조용하고 신앙심 깊은 놈은 신부님이 딱이야."

"시끄러운 애들 돌보기는 질색이야."

"그래? 하하하하!"

알베르가 웃는다. 나도 따라 웃는다.

고요하던 숲 속이 두 남자아이의 웃음소리로 가득 찬다.

햇살이 눈에 부시다. 눈앞이 아득해져서­.

* * *

"로렌스...?"

누군가 나를 깨운다. 의식을 잃은 건가?

여기저기 찢어진 제복. 검은 포니테일의 여자.

에델바이스 발랑틴. 에델이 나를 불렀다.

"에...델...?"

"다행이야, 정신이 들었구나...!"

주위를 둘러본다.

대강당의 천장이 날아가 밤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성자 레고르의 동상은 완전히 파괴되어 잔해만이 남았다.

다행히 에델은 결계 덕에 무사한 듯 보였다.

그리고 알베르는...

"...알베르."

"쿨럭."

나와 맞은편의 벽, 만신창이가 된 알베르가 피를 토하며 앉아 있다.

"이제 그만 포기해."

"흥, 쿨럭, 포기고 자시고."

알베르가 손으로 감싸고 있던 배를 들어 보였다.

깊게 베인 복부.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피.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이다.

"결국 이렇게, 크흑, 되는군."

"...알베르."

에델의 부축을 받아 알베르의 앞으로 다가간다.

...후회는 하지 않는다. 이건 내가 다하지 못한 사명의 결과다.

비록 그가 과거에 어떤 관계였든, 배교자는 전부.

­로렌스, 아버지가 오셨어! 빨리 나와 봐!

"훌륭해, 로렌스."

­너도 이단심문관이 되겠다고? 그거 잘 됐네!

"너는, 쿨럭, 네 목표를 위해서라면. 누구든 짓밟을 수 있군."

­우리 둘이 콤비를 이루는 거야. 프랑 형제! 멋지지 않아?

"그게 로렌스 프랑이니까. 내 형제니까."

"알베르."

마음은 다잡았을 텐데, 슬퍼하지 않으려 했는데.

그런데도, 목 안에서 끓음이 넘치기 시작했다.

"나는."

"됐어, 로렌스. 더 이상 미련은 없어. 날 밟고 지나가. 네가 하고 싶은 말을 하도록 해. 넌... 어릴 때부터 솔직하지 못했으니까."

"....."

알베르 프랑. 나의 의형제.

그의 목숨이 꺼져 간다. 정말 이대로 그를 보내도 되는 걸까?

그가 나에게 듣고 싶은 말은 뭐지? 사과? 용서? 혐오? 후회?

아니면­.

"알베르."

"또 뭐야. 쿨럭."

"나는, 앞으로 나아갈게."

멈추지 않고, 꿋꿋이 앞으로.

네가 나에게 처음 얘기한 것처럼.

"하, 하하. 야, 로렌스. 난 처음부터 그게 보고 싶었던 거야."

"뭘, 말이지?"

"그 눈빛. 이제야 좀 사람답군. 처음의 너는, 쿨럭, 혼이 빠진 인형 같아서. 크허억!"

알베르가 피를 토한다. 그의 사제복이 혼탁한 붉은색으로 물들어 간다.

"그만. 더는 말하지 마, 알베르."

"계속 들어. 이 형님이, 후우, 마지막으로 말하는 거니까."

알베르가 고개를 돌려 에델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미련과 후회, 그리고 우수가 깃들어 있다.

"그리고, 에델바이스. 너에게도."

"난... 듣고 싶지 않아...!"

에델을 바라본다. 애써 눈물을 참고 있다.

알베르는 에델에게 있어서도 친구였다. 지금 그녀의 마음은... 나와 비슷할 것이다.

"로렌스, 난 네가 부러웠어."

"나도 마찬가지였다."

"재능을 부러워한 게 아니야. 넌 언제나 앞만을 볼 수 있었고, 네가 원하는 걸 이루는 힘이 있었으니까."

"바보 같았지. 옛날의 나는."

알베르의 눈이 흐릿해지기 시작한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에델바이스. 솔직해지라고, 말했었지. 맞아. 너를 좋아하게 된 건... 로렌스에 대한 열등감이 시작이었어."

"그만, 제발 그만해, 알베르...!"

에델의 뺨을 타고 한 줄기의 눈물이 떨어진다.

사후의 심판을 앞에 둔 친구의 마지막 고백이다.

"하지만 말이야. 난... 정말로 네가 좋아지게 됐어."

"그만!!"

"비록 네 마음은 내게 없어도, 부디 네가..."

타앙­.

고요한 대성당의 폐허. 한 발의 총성이 정적을 깬다.

에델의 손에서 총탄의 연기가 피어오르고.

알베르는, 말을 잇지 못하고 뒤로 고꾸라졌다.

"에, 델? 어째서...?"

"나는, 훌쩍, 나는. 후회하지 않아. 동정하지 않아."

"당신이 그럴 필요는...!"

"아니, 그럴 순 없어. 알베르의 죽음은, 훌쩍, 네 평생의 족쇄가 될 거야."

에델이 팔로 눈물을 닦아낸다.

단호한 얼굴로 내 앞에 걸어와, 내 눈가도 닦아주었다.

"울고 있었잖아. 아까부터 계속."

"에델, 나는..."

"그 짐은, 내가 대신 지고 갈게. 그러니까 너는."

에델이 내 품에 이마를 대었다.

아직 떨리는 손을 애써 부여잡고, 결연한 표정으로 입을 뗐다.

"앞으로 나아가."

에델이 내 곁을 스쳐 지나간다.

그녀의 말이 맞다. 나는 아직 멈춰 있을 수 없다.

'알베르, 네게 말한 것, 꼭 지키마.'

형제의 죽음에도, 비참한 운명에도, 절망적인 상황에도. 나는 멈춰서지 않는다.

흘러나오는 눈물을 삼키고, 눈물을 흘리고 있을 사람들을 위해서.

한 발자국 씩, 앞으로 나아간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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