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 탄생일 Ep.2 끝
* * *
모든 것이 무너진 폐허, 부국장 드레이크가 입에서 흐르는 피를 닦았다.
"마왕 추종자라, 우습게 볼 상대는 아니었군."
"하하하핫! 즐거워, 즐겁다고! 이봐, 어서 칼을 들어. 더 해보자고!"
눈 앞의 여자. 마왕 추종자 로리안. 그녀 역시 다수의 부상을 입었지만, 쓰러질 기색은 없다.
신경 쓰이는 것이 너무나 많다. 저 멀리 보이는 부패한 거인, 죽음에서 다시 일어나는 시체, 그리고 눈 앞의 마왕 추종자.
모든 의문을 떨쳐내기 위해 칼을 든 그 순간.
구구구구구구...
벽을 향해 다가가던 거인이, 불에 타 쓰러져 무너지기 시작했다.
"뭐야? 뭐야뭐야? 벌써 끝이라고? 아직 몸도 다 못 풀었는데?"
마왕 추종자의 반응이 이상하다.
드레이크는 확신을 가졌다. 저 거인을 일으킨 자가 바로 눈 앞의 자라고.
그렇다면 저 여자는 명백한 성국의 적.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해 빠른 속도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의 칼날이 로리안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오늘의 공연은 여기까지 입니다."
검은 안개가 드레이크를 가로막았다. 연기에 박힌 칼이 조금씩 부식되어 떨어지기 시작했다.
기분 나쁜 표정으로 주위를 바라보는 안경의 남자.
'그렇군, 저 자가 보고서에 나와 있던 마왕 추종자. 이름은 아마... 레서라고 했던가.'
성도에서 크루거를 이용해 테러를 일으킨 자.
그것 외에도, 대륙 곳곳에서 암약하여 여러 일을 벌인 자로, 이단심문회의 요주의 인물 명단에도 그 이름이 올라가 있다.
"이 도시의 역병, 저 거인. 모두 네놈들 짓이군."
"이제 와서 발뺌해봤자... 소용없겠죠? 맞아요."
"왜 이런 짓을 저지른 거지? 여기는 신의 뜻을 저버린 그늘, 신의 은총조차 닿지 않는 버려진 도시다."
"당신 말이 맞아요. 이곳은 쓸모없죠. '아직은' 말이에요."
"아직은?"
그 말은, 이 도시가 미래에 어떠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뜻인가?
"궁금해하는 표정이네요. 일단은 말해둘까요? 이 도시는 원래 성도의 주요 방어 기지가 될 정이었어요. 하지만 저희 '운명'께서는 그걸 가만히 둘 성격이 아니라서요."
"지금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알지 못해도 괜찮아요. 자, 로리안. 싸움은 여기까집니다."
"아아, 더 싸울 수 있는데. 쳇."
검은 안개가 두 사람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거기 서!"
급히 총을 연달아 발사해 보지만, 이미 안개에 먹힌 두 사람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마왕 추종자가 퍼뜨린 성국의 어둠. 이번 일 또한 그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부국장 드레이크는 깨달을 수 있었다.
"부국장님!"
저 멀리서 이단심문관 몇이 달려온다.
제복을 뒤덮은 핏자국, 만신창이가 된 얼굴. 그들의 싸움이 얼마나 격했는지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지난 수 시간 동안의 일을 보고해라."
"옙! 사망자 5명, 부상자 21명, 그 외 전원 임무 속행 가능합니다."
"임무, 임무라..."
결국 이번 임무도 사상자를 내고 말았다. 이번 일에 그만한 가치가 있었나? 의문은 갖되, 후회는 하지 않는다. 이단심문관은 성국의 어둠을 밝히는 자들이기에.
"채비를 갖춰라."
바닥에 떨어진 코트를 주워 어깨에 걸치며, 드레이크가 앞장선다.
"성녀를 맞이하러 간다."
* * *
"후우우우."
가쁜 숨을 몰아내쉰다. 어떻게든 해냈다. 아직 두 팔과 두 다리가 붙어 있다. 지켜야 할 사람을 지켜냈다. 그것만으로도 검을 들 가치는 충분하다.
"으응..."
대자로 뻗은 내 옆으로, 신시아가 나를 향해 몸을 돌려 자고 있다.
정말이지, 신시아가 없었다면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떨어졌을 것이다.
"잘했어요, 신시아."
그녀의 손가락을 잡았다. 방금 전까지 있던 마왕의 흔적은 온데간데 없고, 귀여운 소녀의 모습만이 그곳에 있었다.
"헤, 헤헤. 신부님..."
신시아의 잠꼬대를 들으며, 모든 것이 끝을 맺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로제리오의 편지로 시작된 이야기. 잊혀진 죄의 도시와 붉은 머리의 성녀. 성자 레고르의 비밀 실험과 마왕 추종자.
그리고 알베르. 나의 형제.
이제야 좀 사랍답군, 로렌스.
그래, 알베르. 그날, 그 숲 속에서 나눈 대화처럼 난 신부가 되었지만... 아직 어른은 되지 못했던 모양이야.
나는 여전히 미숙하다. 언젠가 아네모네가 말한 것처럼, 형제의 손 하나 잡아주지 못하고 떠나보냈다. 아직도 마음 한구석이 텅 빈 느낌이다.
하지만, 미숙하다는 건 성장할 여지가 남아있다는 뜻이니까.
'난 앞으로 나아갈게.'
알베르에게 한 약속. 잘못된 길을 걸어가지 않도록, 너와의 언약을 가슴에 품는다.
"로렌스!"
"신부 오빠!"
저 멀리 에델과 아네모네가 달려온다.
신성력을 그렇게나 소진했음에도, 아네모네의 머리카락은 여전히 붉었다.
"성녀... 아니, 아네모네. 감사합니다."
"아냐, 그 말은 내가 해야 하는걸. 고마워, 신부 오빠, 신시아 언니. 덕분에 모두를 지킬 수 있었어. 리사도, 소피아도, 엘렌도 모두 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아네모네가 내 손을 잡았다.
"당신의 머리색은... 돌아오지 않는 겁니까?"
"아, 들켰네. 그러게, 돌아올 기미가 안 보여."
붉게 변한 머리카락 끝을 만지작거리며, 아네모네가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 뭐 그런 뜻인 걸까?"
"아니, 아닐 겁니다."
조심히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당겼다. 이건 검붉은 피의 색이 아니다. 눈이 부실 정도로 선명한 붉은색. 마치 아네모네 꽃처럼 말이다.
"당신이 결정한 자신의 모습. 그걸 반영한다고 생각해요."
"...역시 신부님은 미워. 남의 마음을 함부로 알아채고."
"그럼 정식으로 불러야겠네요."
그녀의 머리색만큼이나 붉어진 아네모네의 얼굴. 수줍은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기쁜 마음으로 말했다.
"아네모네, 성녀가 되지 않으시겠습니까?"
"...응!"
성국에 새로운 성녀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자, 일단은 몸을 회복하고 난 뒤 부국장부터 찾아가야겠군.
만약 아직도 성녀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면, 동귀어진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놈 면상에 주먹을...
"여기 있었군."
익숙한 목소리. 눈을 흘겨 위를 바라보니, 부국장 드레이크와 몇 명의 이단심문관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은 타이밍이 안 좋은데.
"잠깐, 멈춰주세요, 부국장!"
에델이 팔을 벌려 아네모네의 앞을 막아섰다.
그녀는 어디까지나 이단심문관. 이단심문회의 명령은 그녀에게 절대적이다. 그럼에도 에델이 부국장을 막아서겠다는 것은, 그만한 각오가 있다는 뜻이다.
"이게 무슨 짓이지? 비켜라, 에델바이스."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부국장! 그녀는 결코 이단자가...!"
"두 번 말하지 않는다. 물러나."
후우, 하고 한숨을 쉰 부국장이 거인의 잔해를 살펴본다.
그러고는 누워 있는 내게 다가와, 더러운 신발로 어깨를 툭툭 쳤다.
"대단한 짓을 저질렀군."
"칭찬으로 받아들여도 됩니까?"
"로렌스, 네가 한 짓이 무엇인지 알고 있나?"
"대충은요."
"상관에 대한 모독, 하극상, 공무집행 방해, 상해치사 외 9건. 즉결처분을 당해도 할 말이 없겠어."
즉결처분. 그 말을 들은 아네모네가 내 앞으로 다가와 팔을 벌렸다.
그리고 눈을 질끈 감으며 소리 질렀다.
"자, 잡아 갈거면 저만 데려 가세요!"
"그래, 이 꼬맹이가 성녀군. 피의 성녀, 로는 안 보이는데."
아네모네의 얼굴을 빤히 바라본 부국장이 입을 뗐다.
"우리 이단심문회에게 있어 키리에 국장님의 명령은 최우선으로 여겨진다."
또 앞뒤 꽉 막힌 말이나 지껄일 생각인가...!
"하지만."
드레이크가 뒤로 돌았다. 흩날리는 금색 알갱이들이 도시를 가득 메운 장면이 보인다.
"절대적이지는 않지. 국장님의 그릇된 명령을 수정하는 것도 나의 역할이니까."
"빙빙 돌리지 마시고 제대로 말씀하시죠."
"우리 이단심문회는 아네모네를 성녀로 인정하겠다."
예상 외의 대답. 저 고집불통이 쉽사리 생각을 바꾼다고?
어쩌면 마왕 추종자가 그의 머리를 헤집어 놨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우리는 기적을 목도했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 보고가 들어왔다. 도시의 모든 역병, 검은가시병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군."
아네모네가 일으킨 기적. 그것은 다만 악을 물리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고통받는 사람들, 죽어가는 빈자들을 훌륭히 구해낸 것이다.
"로렌스, 이것도 추기경의 명령이라고 했지?"
"그렇죠. 아시잖습니까."
"후우, 그래, 알겠다. 성녀의 총애를 받을 너를 건드려봤자, 나한테 좋을 건 없지. 하지만 말이다."
쉬이익. 단검이 날아와 내 얼굴 옆에 박혔다.
분노와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부국장이 경고를 날렸다.
"다시 이런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네놈 대가리에 총알을 쑤셔 박아 주마."
"그때를 기대하겠습니다."
돌아선 부국장의 틈 사이로, 옅은 미소가 눈에 띠었다.
"철수한다. 인원을 반으로 나눠라. 반은 부상을 입은 자를 치료하고, 남은 자들은 나와 함께 대성당으로 간다."
시야 밖으로 이단심문관들이 사라지자, 아네모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정말 어떻게 되는 줄 알았어요."
"어쩌다 보니 성녀님께 빚을 지었군요."
"성녀님이라고 하지 마세요, 신부 오빠!"
하늘을 바라본다. 짙었던 연기는 사라지고, 푸른 하늘이 도시를 감싸 안기 시작했다.
따뜻한 바람. 눈이 감겨온다. 일단은...
"으응, 신부님, 거긴 안 돼...!"
여전히 깰 기미가 안 보이는 신시아랑, 늘어지게 한숨 자볼까.
* * *
그 이후의 일을 정리하자면,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다사다난. 보통 일이 아니었기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으니.
우선 아네모네가 돌보던 아이들.
"앗, 신부 오빠다!"
""신부 오빠!!""
리사와 다른 아이들은 근처 마을의 수도원에 들어갔다.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느라 아직 바쁜 것 같지만, 아이들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거 봐, 아네트 언니의 무덤에 올릴 꽃다발을 만들었어!"
"굉장히 예쁘네요. 누구 솜씨인가요?"
아네모네는 아네트의 기억을 그 아이들에게 돌려주었다. 도피는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까. 이건 당연한 일이라고 아네모네가 말했다.
아네트의 시신은 이곳 수도원으로 옮겼다. 그리고 수녀의 직위를 내렸다. 아이들을 보듬어 준 그녀가 천국에서라도 신의 품에 들 수 있도록.
다음은 버려진 도시, 레고르.
도시 하층부의 절반 가까이가 이번 사건으로 목숨을 잃었다.
더 이상 지금까지의 구조는 유지될 수 없었고, 많은 사람들이 다시 도피의 길을 선택했다.
교황청에서는 이번 일로 레고르를 정식 도시로 편입, 새로운 신부와 수녀, 성기사를 보내 도시를 재건할 계획임을 공표했다.
아직 이 도시에는 아네모네의 아이들처럼 버려진 고아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지금의 개혁이 작은 희망의 불씨가 되길 바랄 뿐이다.
알베르는... 교황청에서 정식으로 제적당했다.
그러나 나의 증언으로 마왕 추종자에게 세뇌당한 것으로 알려져, 그의 명예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의 잘못은 어디까지나 하나. 신실한 신앙심을 가지지 못해 악의 칩입을 견디지 못한 것뿐.
알베르의 무덤은 성도 한구석의 작은 수도원에 마련되었다. 아주 작은 묘비만이 그가 살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알베르의 무덤에 꽃을 바치러 올라가던 중, 이미 와 있던 선객의 존재가 눈에 들어왔다.
"에델."
"아, 로렌스. 왔구나."
꽃을 올리고, 손을 모아 기도를 올린다.
그는 죽었지만,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나와 에델이 그를 기억할 것이기에.
내가 '프랑'의 성을 쓰는 한, 그를 잊는 일은 없을 것이기에.
"로렌스, 할 말이 있어."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에델이 입을 열었다.
"나, 당분간 생크 수도원을 떠날 거야."
"...이단심문회로 돌아갈 생각입니까."
"응, 오래 걸릴지도 몰라. 하지만 이제 알았어. 모든 걸 정리할 때가 왔다는 걸."
"후훗, 백수가 되면 언제든지 저희 수도원에 오세요. 수녀 자리 하나쯤은 비어 있으니까요."
나의 말에 에델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이런, 너무 놀렸나.
"...고마워."
"네? 뭐라고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거든."
그때였다. 멀리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뎅, 뎅, 뎅. 오후 세 시를 알리는 종소리.
"곧 시간이네."
"슬슬 가봐야겠군요."
* * *
"로렌스! 에델! 나 좀 살려줘...!"
한스 크라운. 나의 동기이자 사제. 그가 녹초가 된 얼굴로 내 앞에 쓰러졌다.
"다 죽어가는군요. 회복 성법이라도 써 드릴까요?"
"됐수다. 나원 참, 두 번째 성녀가 나타난 지 얼마나 됐다고 세 번째 성녀가 탄생하다니... 덕분에 공표식 준비로 죽을 지경이야."
성도 닌우르타. 그 중심, 교황청의 가장 높은 건물.
바깥에는 엄청난 규모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그야 그럴 만도 하다. 성국에 유래 없을 성녀의 연속적인 탄생이니까.
"성녀는 어디에 있죠?"
"저 방 안에. 아마 신시아도 같이 있을 거야."
방 문을 조심스레 연다.
그곳에는 예쁘게 차려입은 신시아하고...
"아, 신부 오빠!"
순백의 성녀복을 입은 아네모네의 모습이 있었다.
"신부님, 이거 봐! 이 옷, 아네모네한테 엄청 잘 어울리지?"
"이것 참..."
이마에 손을 짚는다. 내 반응을 보고, 아네모네가 고개를 숙이고 수줍게 위를 쳐다보았다.
"왜 그래? 혹시... 안 어울려?"
"아니, 아닙니다. 지나칠 정도로 잘 어울려서 조금 놀랐을 뿐이에요."
아네모네의 붉은 머리카락과 대비되는 백색의 성녀복. 그녀의 본래 성격, 아이다운 순수함을 잘 표현해주는 아름다운 옷차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왜 그렇게 뚫어지게 보는 거야, 신부님!"
"아, 미안합니다, 신시아. 신시아도 무척이나 예뻐요."
"정말? 헤헤, 헤헤헤헤!"
뎅, 뎅. 다시금 종이 울린다. 이제는 때가 되었다.
아네모네는 곧 성녀로 공표된다. 성국의 역사에 영원히 남을 성녀.
"이제는 정말 성녀님이군요."
"후후, 짖궂은 말을 하네. 나한테 신부 오빠는 계속 신부 오빠야."
그녀에게 손을 건넨다.
아네모네는 입을 가리며 수줍게 웃고는, 밝은 표정으로 내 손을 잡았다.
"가시죠, 아네모네."
"...응!"
* * *
마침내 일상으로 돌아왔다. 생크 수도원은 여전히 조용하다.
비록 에델이 자리를 비웠지만, 그래도 다시 찾은 일상에 감사함을 느낀다.
"신부님! 편지가 왔어!"
"편지 말인가요? 또요?"
꽃에 물을 주고 돌아온 신시아가 내게 편지를 건넸다.
"어디 보자, 추기경님?"
무슨 일이지? 스승님이 갑자기 편지를 보내고.
'로렌스, 잘 지내느냐. 다름이 아니라, 중요한 소식이 있어서 급히 편지를 작성했다.'
편지를 계속해서 읽어내려간다.
내용은 이러했다. 이미 성도에는 빛의 성녀가 있어, 세 번째 성녀인 붉은 성녀가 머무를 수도원을 물색하고 있다고. 그리고...
"신부님! 밖에 이상한 마차가 있어!"
성녀의 강력한 희망으로, 한 곳의 수도원을 고르게 되었다, 라.
"신시아, 아무래도 중요한 손님이 온 것 같군요."
"손님?"
"같이 모시러 갈까요?"
"응!"
커튼으로 가려진 마차. 누군가를 마중하기 위해, 나와 신시아는 천천히 마차로 다가갔다.
끼이익, 문이 열리고, 베일로 얼굴을 감춘 소녀가 천천히 내려왔다.
"정말이지, 재미있는 생각을 하셨군요."
"어? 어어?"
미소를 짓는 입가.
그녀의 정체를 눈치 챈 신시아가 놀라면서도 기쁜 미소를 짓는다.
"후훗. 후후훗."
"아네모네!"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신시아 언니? 신부 오빠?"
베일을 벗고, 소녀가 모습을 드러낸다.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는 붉은 머리. 그녀 다운 순수한 미소.
붉은 성녀, 아네모네. 그녀가 생크 수도원에 도착했다.
"이사도라가 놀라겠군요. 설마 생크 수도원이 이렇게나 출세할 줄이야."
"영광으로 아세요, 신부 오빠."
"으음, 원래 이런 성격이었나요?"
"글쎄요. 하지만 이렇게들 말하잖아요. 사람은 변해가는 거라고."
앙증맞은 발걸음으로 폴짝 뛰며, 아네모네가 수도원으로 뛰어갔다.
"가요, 신시아 언니!"
"잠깐, 같이 가, 아네모네!"
...아무래도, 수도원이 조용해질 날은 오지 않을 것 같다.
이사도라에게 빈 방을 하나 부탁해야겠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