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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매님에게는 마왕의 소질이 있다-36화 (36/109)

〈 36화 〉 성녀를 위한 마을 안내서(1)

* * *

아네모네가 오고 나서 다음 날 아침.

어제의 피로 때문일까, 왠지 몸이 무겁다.

"으응..."

내 이불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신시아가 또 내 품으로 파고들었나 보다.

어디, 잠꾸러기에게는 따끔한 벌을...

"음냐, 신부님, 좋아해..."

...신시아가 옆에서 곤히 잠들어 있다. 그럼 내 이불 속에 볼록 튀어나온 건 누구지?

"설마."

"으음, 아. 신부 오빠다. 안녕히 주무셨나요?"

"아네모네? 왜 제 방에서 잠을?"

"신시아 언니도 여기서 잠들잖아요. 신부 오빠 품은 편안해 보여서, 저도 모르게 그만. 히힛."

이건 좋지 않다. 만약 신시아가 이 모습을 보기라도 하면 그날엔...

"둘이 뭐해?"

"시, 신시아?"

"아네모네? 너, 너 뭐 하는 거야...! 거긴 내 거야. 나만의 자리라고!"

신시아의 눈이 한껏 무서워졌다. 방금 전만 해도 아기 강아지처럼 곤히 잠들었던 신시아는, 어느새 사나운 맹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흐음, 그렇구나."

"아네모네?"

"그럼 난 여기로 할래요."

아네모네가 내 팔짱을 끼고 웃음을 지었다.

그 나잇대의 소녀처럼 순수한 웃음, 은 절대 아니다. 소악마에 가까운 표정, 누가 봐도 신시아를 도발하는 표정이다.

"......"

의외로 신시아의 반응이 조용하다.

하기야, 신시아는 성인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부쩍 성장했다.

잊혀진 도시, 레고르에서의 그녀를 떠올려 본다. 따뜻한 마음으로 아네모네를 품은 그녀의 모습. 지금의 신시아라면 이런 도발 정도는...

"죽을래."

우지끈, 하고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신시아가 오랜만에 죽은 눈을 하고 방긋 웃기 시작했다.

"신부님이 계속 그 아이를 껴안고 있으면, 난 그대로 죽어버릴 거야."

"전정하세요, 신시아. 아네모네는 아직 어린애잖아요."

"나도 어린애야! 아직 성인식도 안 치른 귀여운 어린애!"

안타깝게도 어린이라고 하기엔, 몸 이곳저곳이 상당히 자라 버렸다.

아직 정신은 미성숙할지라도 말이다.

"신시아 언니는 평소에 항상 여기 있잖아요? 그러니까 잠깐 정도는 양보할 수 있잖아요. 안 그래요? 신시아 언, 니."

"이, 이 불여우가!"

신시아가 아네모네의 옷자락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신시아에게 생긴 또래 친구인지라, 함부로 상처를 입히지는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아, 화났다, 화났다! 지금 모습 엄청 귀여워요, 언니!"

"아네모네, 설마 당신 목적은."

내가 목적이 아니라, 화를 내는 신시아를 보고 싶었을 뿐인가.

"후훗, 아뇨아뇨. 신부 오빠 품이 편안한 건 진짜예요. 하지만, 신시아 언니가 어린애 같이 굴면 뭔가 가슴 속에서 끓어 올라서... 혹시 병이라도 걸린 걸까요?"

"어떤 면으로 보면 병이 맞을 겁니다."

본래 모습대로 행동해라. 분명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설마 아네모네가 이런 성격일 줄은 몰랐다. 좀 더 당차고 여린 성격인 줄 알았는데, 설마 작은 악마를 품고 있었을 줄은.

"당장 떨어져!"

"싫은 걸요. 자, 반대쪽 팔이 남아 있으니, 신시아 언니는 그쪽이나 쓰시지 그래요?"

"너, 너. 씨이..."

신시아가 터벅터벅 기어 오더니, 마지못해 내 반대쪽 팔을 껴안았다.

그러고는 입을 삐쭉 내밀며,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신부님 팔은 다 내 건데... 일어날 때마다 항상 꼭 껴안아주는 게 좋았는데..."

신시아의 투정을 들은 아네모네의 표정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살짝 상기된 얼굴로 뿌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번에는 무언가 떠올랐다는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참, 신부 오빠.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또 뭡니까."

"아네트 언니는 항상 일어날 때마다 제 이마에 그걸 해주셨거든요. 그러니까, 모닝 키스요."

분명 방금 지어낸 이야기이다.

하지만 신시아에게 그런 걸 분별할 이성은 없어 보인다.

"모, 모, 모, 모닝, 모닝 키...!"

"신부 오빠한테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네모네가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붉은 머리카락의 틈 사이로 깨끗한 피부의 이마가 드러났다.

"자요. 상냥하게 부탁드릴게요."

"안 돼!"

신시아가 손으로 내 얼굴을 가로막았다. 애초에 아네모네의 장단에 맞춰 줄 생각은 없었지만, 이렇게나 신시아가 당황하니 나도 조금 입꼬리가 올라갔다.

"팔까지는, 한쪽 팔까지는 용납해도 더 이상은 안 돼!"

"왜요? 신부 오빠랑 언니는 사귀는 사이도 아니잖아요?"

"아무튼 안 돼! 아네모네, 너는 신부님에게 접근 금지야!"

입을 가리며 쿡쿡대는 아네모네. 아무래도 그녀는 신시아라는 좋은 장난감을 찾아낸 것 같다.

한창을 떠들고 있던 그때, 밖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성녀님! 어디 계세요, 성녀님!"

이사도라의 목소리다. 아무래도 성녀의 일탈을 알아챈 모양이다.

"당신을 부르는군요. 이만 슬슬 가보시죠."

"네에. 이따 봐요!"

충분히 만족했다는 듯, 즐거운 발걸음으로 아네모네가 밖으로 나갔다.

어디 보자, 신시아의 상태는...

"훌쩍, 훌쩍."

"...뚝 그치세요, 신시아."

다른 사람이었다면 죽일 기세로 달려들었겠지만, 아네모네 상대로는 그것도 힘든 모양이다.

어린 동생에게 장난감을 빼앗긴 언니의 심정인가. 어쩌면 반대일지도 모르겠고.

"신부님, 신부님, 로렌스 오빠. 오빠는 내 꺼 맞지? 아무 데도 안 갈 거지?"

반대쪽 팔까지 잡아당겨 자신을 감싸더니, 울먹이는 목소리로 나를 바라본다.

"네, 네. 신시아가 원하는 만큼, 자유롭게 이용하셔도 돼요."

"훌쩍, 내가 마왕이 되면, 먼저 신부님부터 꿀꺽해버릴 거야."

"그건 좀 무섭군요."

하루종일 이 상태면 나도 곤란하다. 이럴 때 좋은 방법은.

"신시아."

"훌쩍, 왜 그래...?"

"움­, 해보세요."

신시아가 앙증맞게 음, 소리를 내며 입을 삐쭉 내민다. 흘러내린 눈물 때문에 눈가가 퉁퉁 불었다. 그 모습 하나하나가 사랑스러워서. 하마터면 웃음이 나올 뻔 했다.

"눈을 감으세요."

내 의도를 눈치챈 걸까. 신시아가 자세를 고쳐 잡고 무릎을 꿇었다. 마치 소중한 사람을 기다리는 아낙네처럼, 손을 모으고 다소곳이 입술을 내민다.

하븟.

조심스레 신시아의 입술을 내 입으로 덮었다. 신시아의 떨림이 내게도 전해져 온다. 이미 몇 번이고 한 입맞춤. 하지만 매 순간이 새롭고 긴장되며, 떨리기까지 한다.

그렇게 입술을 맞대고 있은지 한참이 지나고.

"푸하. 헤에, 헤에."

숨이 가빠져오기 시작한 신시아가 먼저 입술을 뗐다.

혀로 입가를 살짝 핥으며, 반쯤 풀린 눈동자로 웃음을 지어 보인다.

"이제 마음은 좀 풀렸나요?"

"헤헤, 응. 고마워, 신부님."

"그럼 저희도 슬슬 일어나죠. 오늘은 할 일이 많아요. 성녀를 모시고 마을 돌아봐야 하니까."

자리에서 일어나, 입고 있던 와이셔츠를 벗었다.

붕대를 감은 내 모습이 거울에 비친다. 저번 임무의 흔적. 배를 옆으로 길게 가른 상처. 알베르와의 마지막 합에서 입은 상처다.

'알베르...'

한때 나의 의형제였던 자. 그와의 마지막 문답에서 중요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매사에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나아가는 것. 그렇게 하기로, 알베르와 약속했으니까.

"신부님, 신부님."

콕콕. 신시아가 내 등 뒤를 찌르기 시작했다.

또 무슨 일인가, 하고 돌아보니.

"읏, 신시아?"

"한 번만 더 해 줘. 츄우, 해 줘."

이미 살짝 맛이 가버린 신시아가 애달픈 목소리로 나를 부르고 있었다.

그것도 잠옷을 벗은 채로.

"후우, 신시아. 일단 옷부터 갈아입고 말하시죠."

"그게, 참아보려고 했는데, 신부님 등을 보니까, 뭔가 심장이 콕콕 찔리는 느낌이 들어서..."

이 정도의 참을성도 없어서야, 두 달 뒤에 있을 성인식에서 잘 해낼 수나 있을련지. 너무 늦으면 아네모네나 다른 자매님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차라리 빠르게 끝내버리는 편이 이로울 터.

"신시아, 입술 내미세요."

"히힛, 음­."

신시아의 어깨를 잡고, 다시 한번 입술을 맞춘다.

에델이 없어서 망정이지, 지금 이 모습을 다른 사람이 본다면 분명 오해...

"언니, 오빠! 왜 아직도 안 내려오는... 히익, 꺄아아앗!"

그래, 이렇게 될 줄 알았지.

하지만 아네모네가 보든 말든, 신시아는 놓아줄 기색이 없다. 이렇게 된 거, 일단 지금은 즐겨 볼까. 아네모네에게는 나중에 해명해야겠다.

* * *

"말도 안 돼! 실망, 실망이에요!"

아침 식사 자리. 한껏 성이 난 아네모네가 입울 삐쭉거리며 투덜거린다.

"그러니까 말했잖아요, 아네모네."

"또 변명하면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전부 오해입니다."

쾅. 아네모네가 테이블을 강하게 두드렸다.

"오해? 오해요? 두 사람이 벌거벗고 온갖 이상한 짓을 해대는 게 오해라고요?"

"그렇게 말하면 이상하게 들리잖습니까. 제가 벗은 건 상의뿐이었고, 신시아도 속옷은..."

"그만! 더는 듣고 싶지 않아요."

아네모네가 귀를 틀어막았다. 신시아는... 아무런 생각 없이 빵을 흡입하고 있다. 마치 자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듯이.

아니, 생각해보면 잘못한 게 없다. 애초에 남이 사랑을 나누고 있는데, 노크도 없이 불쑥 들어온 쪽이 더 잘못하지 않았나.

"저랑 신시아의 행동이 그렇게나 이상합니까?"

"그야 당연하죠! 두 사람은 신부랑 수녀잖아요! 순결은 지키지 못할 망정, 신성한 수도원에서 그렇고 그런 짓을... 파문이에요! 성녀의 권한으로 파문하겠어요!"

아, 그것 때문인가. 확실히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른 교리가 퍼져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아마 아네모네는 다른 교리로 알고 있었나 보다.

"잘 들으세요, 아네모네. 저희 칠교(七)에서는 신부나 수녀의 결혼을 막지 않습니다. 오히려 권장하죠."

"...네?"

아네모네에게 상세한 설명을 해준다.

칠교는 그 이름대로 일곱 명의 신을 모시는 종교다.

대륙의 97%가 따르는 국교(國). 단일 신을 모시는 타 국가의 소수 종교와는 다르게, 성국에서는 칠교 외에 다른 종교는 찾아볼 수 없다.

"일곱 신 중 하나인 닌후르삭. 대지를 관장하는 그녀는 출산의 여신이기도 하죠. 특히나 성국에서는 닌후르삭을 가장 우대하니, 다른 나라보다 그쪽 방면으로는 여유로울 수밖에요."

"그, 그럼..."

아네모네가 침을 삼킨다. 손부채질로 얼굴을 식히더니, 그녀의 머리카락보다 붉어진 얼굴로 조심스레 나에게 말했다.

"두 사람은, 그, 결혼할 생각인 거예요? 아이도 갖고?"

"음, 그건 아직 모르죠."

"모르긴 뭘 몰라요! 이미 신시아 언니의 여러 곳을 더럽혔으면서!"

"지금 무슨 말을..."

"책임지세요! 신시아 언니를 책임지란 말이에요! 이 쓰레기 신부!"

책임지라는 말에, 신시아도 옆에서 동조하기 시작했다.

"책임져, 신부님. 내 성을 '프랑'으로, 아, 벌써 신시아 생크 프랑이구나."

...이사도라에게 부탁해서, 이상한 책들부터 다 갖다 버리라고 해야겠군. 대체 누가 저런 말을 가르친 건지.

"잡담은 그만두죠. 오늘은 바쁜 일이 있으니까요."

"바쁜 일?"

그렇다, 바쁜 일. 오늘 하루를 전부 써야 할지도 모르는 그런 일.

"아네모네, 당신에게 보여드리죠. 이곳, '생크'가 어떤 곳인지."

성녀에게, 그녀가 앞으로 머무를 이 조용한 마을을 안내하는 일.

그것이 오늘의 임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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