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 마도 공화국(3)
* * *
"당신은?"
"알 거 없잖아!"
이쪽에는 조금의 눈길도 주지 않는다. 소녀의 시선은 여전히 괴물을 향해 있다.
허공의 보랏빛 마력탄이 폭사(??)하고, 빈자리에 다시금 마력의 알갱이가 채워진다.
이단심문관의 총보다도 빠른 속도로 쏘아지는 대포 수준의 화력에, 앞서 나오던 소환수의 무리가 형태를 잃고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신부님! 저 사람, 엄청 강해!"
"이쯤 되니 확실해지는군요."
확신은 사실이 되어 지금의 광경을 만들어냈다.
흩날리는 보라색 머리카락, 찬란히 빛나는 마법의 재능.
무엇보다도 저 눈빛. 마탑에서 연구만 한 마법사와는 확연히 다른, '실전'을 경험한 자의 눈빛이다.
"제가 말한 용사 파티, 아마 그녀도 파티의 일원일 겁니다."
"저 언니가?"
휘말리지 않게 약간의 거리를 두어 바라보던 중, 뒤에서 누군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피네!"
자욱한 연기를 뚫고 우리에게 온 남자. 저 마법사와 함께 다녔던 검은 머리의 용병이다.
스피네, 라고 부르는 건 저 여자의 이름이겠고...
"레이크, 너무 늦었잖아!" "난 마법을 못 쓴다고 말했잖아."
"흥. 그건 그렇고, 네 말이 맞았어. 어떻게 여기서 사고가 터질 걸 안 거야?"
"그거야 늘 그랬듯, 용병의 감으로..."
레이크. 그렇게 이름 불려진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마치 아는 사람을 본 것처럼 남자의 눈동자가 동그래지기 시작했다.
"...저 자들은 왜 여기 있지?"
"몰라! 아까부터 도망치라고 하는데도, 계속 여기 있잖아."
후우, 하고 한숨을 내뱉은 레이크가 말을 이었다. 나와 신시아를 가리키며 말이다.
"저 두 사람은 괜찮을 거다. 수준급의 강자야."
"강자라고?"
내가 저 둘의 잠재력을 파악했듯, 레이크라 불린 남자도 우리 둘의 힘을 어느 정도 가늠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더 이상 손 놓고 있을 이유는 없다.
'말이 통하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군.'
"신시아, 우리도 시작하죠."
"알았어, 신부님!"
양쪽 손에 총을 든다. 신시아는 반쪽 짜리 검은 날개를 펼쳤다.
이미 몇 번이고 맞춰온 호흡이기에, 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다음 움직임을 알 수 있다.
"자, 잠깐! 갑자기 달려들면 위험하단 말야!"
"괜찮아, 스피네. 넌 영창에 집중해라."
스피네의 어깨를 한 번 툭 치더니, 레이크도 검을 들고 우리의 뒤를 따랐다.
아니. 한 번 눈을 감았다 떴을 땐, 우리의 앞에서 소환수에게 검을 찔러 넣고 있었다.
'대체 무슨 속도가...!'
가공할 만한 속도. 나보다, 어쩌면 로제리오보다 빠를지도 모른다.
폭이 넓은 흑색의 검. 한 번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무더기의 소환수가 마나를 흩뿌리며 역소환 된다.
용사 파티의 저력. 마왕을 상대하는 데 있어 이 정도는 필요하다는 듯, 레이크는 무덤덤하게 적을 베는 데 집중했다.
[그르르르르르...]
[키시잇! 키샤아아앗!]
레이크의 검이 배를 가르고.
스피네의 마력탄이 머리를 부셨으며.
나의 총알이 급소를 파헤치고.
신시아의 마력으로 된 손톱이 가죽을 갈랐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후우, 후우."
"끝난, 거지?"
소환 마법진의 핵으로 보이는 마력석을 레이크가 깨뜨림으로써, 긴급 사태는 끝을 맞이했다.
"곧 사람들이 몰려들겠군."
"그리고 보상도 얻을 거고!"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듯, 스피네가 보람찬 웃음을 짓는다.
레이크의 등에 풀썩 기대더니, 마력으로 바람을 일으켜 땀을 식히기 시작했다.
"바람 방향을 바꿔라. 땀 냄새난다."
"흥, 됐네요."
용사 일행으로서의 진중한 모습은 사라지고, 다시 어디에나 있을 법한 전사와 마법사 콤비로 돌아왔다.
어디, 문제가 불거지기 전에 자리를 뜨지 않으면...
"잠깐."
신시아의 손을 잡고 몰래 빠져나가려던 찰나, 마법사 스피네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볼일은 끝났을 텐데요."
"아니, 볼일은 나한테 있어. 당신들, 잠깐 얘기 좀 해."
역시, 쉽게는 안 넘어가는군.
* * *
"당신들, 평범한 사람은 아니지?"
"단도직입적이군요."
보라색 머리의 마녀, 스피네. 그녀가 매서운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본다.
눈빛에 담겨 있는 감정은... 경계, 의심, 그리고 불만.
"평범하지 않은 건 그쪽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나는 평범해! 이상한 건 레이크랑 다른 사람들이...!"
테이블을 쾅, 하고 치는 스피네를, 검은 머리의 용병, 레이크가 진정시켰다.
"진정해, 스피네. 저 사람들이 누군지, 너도 대충은 눈치챘잖아?" "진정하고 있거든? 본인 입으로 듣고 싶을 뿐이거든?"
대화의 첫 번째 규칙은, '말이 통하는 사람과 대화하라'다.
지금 상황에서는 저 용병 남자를 가리키는 것이리라.
"이 아가씨는 원래 항상 이런가요?"
"거의 대부분. 후우, 미안하다. 먼저 우리 소개부터 했어야 했는데."
스피네의 머리를 꾹 누르며, 레이크가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내 이름은 레이크. 레이크 노르만이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용병이고, 여기 이 마녀 아가씨에게 고용됐지."
"그리고 '용사 파티'의 일원이고요."
2
레이크가 스피네를 노려 보았다. 그의 표정은 마치, '저 나불거리는 입을 어떻게 하면 좋지'라고 말하는 듯했다.
"혹시 어디서 만난 적 있나?"
"콜로세움에서, 그리고 미술관에서도 만났었죠."
"후우, 스피네. 앞으로 밖에서 함부로 용사를 언급하는 건 금지야. 귀찮은 일에 말려들면 어쩔 거야." "나, 난 잘못 없어!"
거의 대부분은 스피네라는 마녀에게 잘못이 있지만 말이다.
"이 아가씨의 이름은 스피네. 스피네 블룸플라워. 전형적인 말괄량이에 성격이 사납고, 입이 가볍지만 어엿한 마법사지."
"잠, 너 지금 뭐라고...!"
"당신이 말했다시피 우린 용사랑 함께 다니고 있어. 사정상 오늘은 떨어져 있지만. 자, 이제 당신들 차례야."
레이크가 우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저쪽이 이름을 댔다면, 이쪽도 이름을 대는 것이 예의다.
...하지만, 저 남자의 눈빛은 어딘가 조금 이상하다.
"레이크, 당신은 이미 알고 있지 않습니까?"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질문을 하는 사람의 눈빛이 아니거든요. 마치 이미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허."
레이크가 고개를 푹 숙인다.
확실히 저 남자는 뭔가 껄끄럽다. 아까부터 초조함과 여유로움을 반복하는 저 얼굴.
"맞아, 대충은 알고 있어. 당신들, 성국의 마왕 후보자와 그 보호자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인다. 신시아가 사용한 '마기'. 아마 눈치를 챈 건 마기를 사용했을 때부터겠지.
신시아를 바라본다. 신시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가, 다시 눈빛이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다.
그야 그럴 법도 하다. 그녀의 정체를 알고 있는 자는, 우리를 제외하면 암살자나 마왕 추종자 따위의 적이었으니까.
"전 성국의 신부, 로렌스입니다. 그리고 이쪽이 마왕 후보자, 신시아고요."
"마왕 후보자... 전혀 그렇게는 안 보여."
신시아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본 스피네가 감상을 남긴다.
그야 당연하지. 신시아는 마왕보단 차라리 천사에 가까운 얼굴이니까.
"마도 공화국에 온 목적은... 아마 '마왕 후보자 소집 회의' 때문일 거고."
"생각보다 대단한 정보력이네요."
"이곳저곳을 떠도는 게 일상이라서 말이야. 게다가... 든든한 뒷배도 있고."
'용사'란 대륙의 일곱 나라가 모두 협력하는 유일한 존재다.
마왕으로부터 인류를 구할 희망.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고, 어느 누구라도 위험에 처하면 구하러 나선다. 그게 용사니까.
그런 용사에게, 대륙의 온갖 정보가 흘러들어 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다.
"용사 일행이 마도 공화국을 향해 떠났다는 얘기는 저희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설마 여기서 만날 줄이야."
"다른 사람한테는 비밀로 해 줘. 용사나 성녀님과 함께 다니는 바람에,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한테도 관심이 쏠리거든."
레이크가 상쾌한 웃음을 지었다.
나 역시 신부라는 직업 상 저런 미소를 많이 짓기 때문에 알 수 있다. 저건 '거짓 미소'다.
"당신들이 마도 공화국에 온 목적은... 혹시 '마왕 후보자' 때문입니까?"
용사 일행이 굳이 지금 마도 공화국에 있는 이유.
마왕 추종자가 암약하는 현 시기에, 그들이 신경 쓸 만한 사건은 마왕 후보자들이 한 데 모이는 소집 회의 밖에 없을 것이다.
"마왕 후보자? 풉, 쿡쿡쿡쿡, 아니야. 우린 청색 마탑의... 아."
신나서 말하던 스피네가, 말을 멈추고 레이크의 눈치를 살폈다.
스피네의 입이 가볍다는 게 어떤 뜻인지, 대충은 알 것 같다.
"또 말실수...! 미, 미안해요. 죄송합니다...!"
"아니, 괜찮다. 이 두 사람은 믿을 수 있어. '절대로' 적이 되지 않을 거다."
...절대로?
"정말? 그럼 말한다? 흠흠, 우린 청색 마탑을 조사하기 위해 찾아왔어."
"청색 마탑이요?"
"그래. 그곳의 마탑주, '부르는 자, 베론'. 그와 그의 주변 인물 중 일부가 마왕 추종자와 연관이 있다는 조사가 들어왔어."
베론. 분명 그의 이름은 들어본 적이 많다.
대륙 사상 최고의 소환사. 이미 멸종한 용을 제외한 수만 가지 형태의 소환수와 계약, 그들을 통제할 수 있는 대마법사. 현자가 없는 현 공화국에서, 다음 현자 후보로 확실시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그에게 마왕 추종자에 대한 소문이 돈다니...
"그런데 아마 헛소문일 거야. 흑색 마탑이면 모를까, 유서 깊은 청색 마탑이라니... 말도 안 되는 얘기지."
"스피네. 언제나 모든 가능성은 열어둬야 해."
"우씨, 알고 있어!"
확실히 스피네의 말대로다.
몇 년 전에 등장한 인물이라면 모를까, 수십 년 동안 대마법사로 군림하고 있는 베론에게는 마왕을 따를 이유도, 필요도 없다.
"청색 마탑이라... 이거 우연이네요. 저희도 마침 그곳으로 향하는 길이거든요."
"회의가 열리는 장소지? 이미 알고 있어."
레이크의 시선이 저 멀리 있는 푸른 탑으로 이동한다.
청색 마탑. 3국의 마왕 후보자와, 용사 일행이 모두 향하는 곳.
"마음 같아선 이것도 인연이니 함께 가자, 라고 하고 싶지만..."
의자에 팔을 걸고, 레이크가 뒤를 돌아보았다.
방금 전까지 거리를 지나던 사람의 모습은 사라지고, 푸른색의 로브를 눈까지 가리게 쓴 마법사 몇 명이 무리를 지어 서 있었다.
"손님이 온 모양이군."
이 부자연스러운 공간. 일전에도 경험한 적이 있다.
흑색 마탑과 계약한 흑마법사, 오웨인. 그도 우리와 만날 때, 사람을 물리는 환술을 사용한 적이 있다.
'마법사란 족속은 이해할 수 없겠어.'
무리의 맨 앞. 다른 자들보다 높은 직책으로 보이는 마법사가 후드를 벗었다.
중간중간 푸른 브리짓이 섞인 백발의 머리카락. 사파이어를 박아 넣은 듯 반짝이는 눈동자가 인상적인 여인.
그녀가 레이크와 스피네를 바라보며 말했다.
"레이크 노르만 님. 스피네 블룸플라워 님."
자신의 이름을 정확히 말한 것에, 레이크와 스피네는 적잖이 놀란 눈치다.
그리고 그건 나와 신시아도 마찬가지였다.
"로렌스 프랑 님. 신시아 생크 프랑 님."
"시, 신부님... 저 사람 어떻게 우릴...!"
회의에 참석하기 전까지는, 우리의 신상은 마탑에 공개되지 않는다.
우리의 이름을 알고 있을 법한 인물은 청색 마탑의 단 두 사람뿐. 마탑주인 베론과...
"부마탑주, 티니아. 혹시 당신입니까?" "긍정합니다."
안색 하나 바뀌지 않고, 차가운 표정으로 말을 받는 티니아.
사람이라기보단, 감정 없는 인형에 더 가까워 보인다.
"여기 온 목적. 두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27분 전 일어난 제 1804차 소환 사고. 아무런 인명 피해 없이 사건을 해결해주신 것에, 베론 님을 대신해 감사의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마치 실로 매달린 인형이 움직이듯, 티니아가 꾸벅 허리를 숙였다.
"흥, 그런 감사 인사보단, 좀 더 현물적인 가치가 있는 걸..."
팔짱을 낀 스피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뒤에 서 있던 마법사 한 명이 들고 있는 상자를 열었다. 척 보기에도 상당한 금액의 마력석이 가득 담겨 있다.
"...있는 걸 바라고 한 일은 아닌 걸요! 암, 암! 아, 하지만 이건 감사히 받을게요!"
사람 좋은 표정으로 바뀐 스피네가 히죽거리며 상자를 받아 들었다.
또 다른 마법사가 우리에게도 같은 상자를 건넨다.
"아니, 저희는 괜찮습니다." "맞아, 신부님. 저건 맛없어 보여!"
...신시아의 지능이 떨어진 건 아닐까, 약간 걱정이 든다.
"확인. 두 번째 목적. 마왕 후보자이신 신시아 생크 프랑 님, 그리고 보호자 역으로 오신 로렌스 프랑 님을 마탑으로 모시기 위해 왔습니다." "아, 그거라면 잠시 기다려주세요. 아직 일행이..."
"성녀, 아네모네 님 외 1인은 이미 마탑으로 모셨습니다."
외 1인이면... 아마도 크리스를 말하는 것일 테고. 두 사람이 안전하다면, 굳이 저들의 마중을 사양할 필요는 없다.
"알겠습니다. 자, 가죠, 신시아." "응, 신부님."
나와 신시아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마력석을 뒤적거리고 있던 스피네가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말했다.
"자, 잠깐! 마탑에 가는 거라면 우리도 같이...!"
"불능, 부정. 현 마탑주, 베론 님의 명령이 있었습니다. 명령 내용, 마왕 후보자와 관계자를 제외한 다른 외부인은, 마탑에 들이지 마라. 설사 용사라 하더라도."
"우으, 우으으으으...!" "이상, 용무를 마쳤습니다. 자, 신시아 님. 로렌스 님."
티니아가 지팡이로 바닥을 툭 치자, 그녀의 뒤편에서 작은 포탈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땅한 마법진도 없이 무영창으로 포탈을 생성할 줄은... 저 부마탑주란 여자도, 상당히 수준 높은 마법사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이만 작별 인사를 드려야겠군요."
"아마 또 만나게 될 거야. 오래지 않아서."
레이크가 또다시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그 옆에는, 스피네가 신시아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또 봐, 귀여운 마왕님!"
"신부님... 나 저 여자, 정말 싫어..."
포탈의 틈으로 발은 디딘 그 순간, 마법을 타고 레이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청색 마탑주 베론, 그를 조심해.]
뒤를 돌아본다. 이미 두 사람의 모습은 사라진 뒤였다.
그들의 이름을 부를 틈도 없이, 포탈의 마력은 나와 신시아의 몸을 마탑으로 전송했다.
* * *
"아가씨, 곧 다른 마왕 후보자들이 도착할 겁니다."
"...너무 추워."
조금씩 몸을 떠는 아나스타샤에게, 그녀의 기사, 카일이 망토를 뜯어 그녀에게 둘러주었다.
"괜찮으십니까?"
"조금... 나아졌어. 고마워, 카일."
"아가씨. 아까부터 계속 불안해 보이십니다. 걱정되시는 겁니까? 다른 후보자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카일의 걱정 어린 질문에, 아나스타샤가 고개를 저었다.
"으응, 아니야. 그냥... 난 이곳이 마음에 들지 않아. 마치 벽 너머로,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있는 것처럼..."
"아가씨."
카일이 아나스타샤의 어깨를 잡았다. 그러고는, 그녀의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다른 사람의 시선은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당신을 계속 보고 있는 건... 저 밖에 없으니까요."
"...정말?"
"네, 물론입니다. 아가씨가 잠드는 순간까지, 전 당신의 곁에 있을 겁니다."
"그럼 약속해 줘."
아나스타샤가 새끼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너무나도 가늘고 앙상해, 톡 치면 금방이라도 부러져 버릴 것만 같은 손가락을.
"난 마왕이 되지 않을 거야. 하지만, 만약 내 마음이 꺾여 버린다면,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해치기 시작한다면.."
다른 한 손으로, 아나스타샤는 자신의 목을 가르는 시늉을 하였다.
"내 목을 베어 줘. 그렇게 하겠다고, 카일이 약속해주면... 나,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아."
"...알겠습니다."
카일이 아나스타샤의 새끼 손가락에 자신의 손가락을 걸었다.
'기사에게 있어 맹세는, 오직 검을 어깨에 드는 것 뿐.'이라고.
자신의 주인과 거짓된 약속을 나누면서.
'아가씨, 당신이 마왕이 되도록 두진 않을 겁니다. 기필코.'
공국의 우상, '귀공녀' 아나스타샤.
그녀가 지금, 마왕 후보자의 신분으로 청색 마탑에 도착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