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 최?초!?의 기?!?억
* * *
"신부님? 어디 있어, 신부님...?"
빛으로 이루어진 철창. 그 안에서, 가녀린 소녀는 있을 리 없는 사람을 찾는다.
"신부님, 나 무서워... 신부님, 신부님...!"
계속해서 울부짖어도 바라는 사람은 오지 않는다.
자시의 부름에 반응하는 건, 철창 밖에서 백의를 입은 악마들 뿐이다.
"로렌스, 오빠..."
여긴 어디지, 어째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소녀는 기억을 떠올린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은 로렌스와 함께 청색 마탑의 회의실에 있었다.
흐릿한 기억을 조금씩 떠올린 끝에, 이 말도 안 되는 악몽의 원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그 늙은이. 청색 마탑주라는 남자, 베론. 그가 발현한 마법이 자신과 로렌스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머리가 아파... 모든 게, 흐릿해져서..."
기억이 흐릿해지기 시작한다. 낡은 검 끝이 마모되어 가듯, 머릿속을 누군가가 헤집어 깎아내는 느낌이다.
"내 이름은, 내 이름은 tlstldk. tls, 우웁."
소녀가 뱃속을 게워냈다. 불을 삼킨 것처럼 속이 쓰려온다.
잊고 싶지 않아서, 잊으면 안 되니까. 소중한 그 사람이 지어준 이름을 연신 되뇌여 보지만, 입 밖으로 나오는 건 인간의 언어인지도 의심스러운 괴상한 발음 뿐이다.
"로렌스, 로렌스 오빠..."
흐릿한데도, 모든 기억이 다 지워져 가는데도.
오직 그 사람만은 선명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다.
로렌스. 나의 신부님. 나의 구원자. 내가 사랑하는 사람.
"우웃, 우으으으읏...!"
눈에서 눈물이 흘러넘치기 시작한다.
로렌스와의 추억, 즐거운 기억, 첫 만남, 평범한 일상.
망각의 파도 속에 오직 그 사람만이 또렷이 남아 자신의 마음을 파고든다.
"추워, 무서워. 어서 구하러 와줘, 로렌스 오빠!"
마왕도 뭣도 아닌 평범한 소녀가 이 끔찍한 지옥에서 정신을 놓지 않은 건, 마음을 굳게 닫아버렸기 때문이다.
저 백의의 악마들이 자신의 몸에 칼을 댈 때도 참을 수 있었다.
마수 실험체와 같은 방에 두고 서로 죽이라고 했을 때도 견딜 수 있었다.
세상에 태어난 것이 잘못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버틸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 소녀는 눈을 떠버리고 말았다.
그날, 비바람이 몰아치던 어느 서늘한 날. 한 남자가 자신을 찾아왔다.
드디어 죽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편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처럼, 손을 내밀어 줘...!"
하지만 남자는 그러지 않았다. 철창을 열고, 자신을 꺼내 주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tlstldk'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소녀는 마음을 되찾았다.
내일을 희망하는 마음, 아름다운 것을 보고 기뻐하는 마음.
그리고, 누군가를 간절히 사랑하는 마음을.
"아, 맞다. 그래, 꿈이구나. 다시 악몽을 꾸기 시작한 거야. 잠에서 깨면 로렌스 오빠가 웃는 얼굴로..."
모든 기억이 부서지고 으깨져, 지금의 상황을 '현실'로 인식해버린 소녀는 도피처를 찾았다. 이 상황은 꿈이다. 곧 있으면 사그라질 작은 꿈.
소녀가 생각하기를 그만두기로 한 무렵, 주위의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치직, 치지직. 눈앞에 회색의 노이즈가 일기 시작한다.
시간이 뚝뚝 끊기며 모든 시간이 가속과 정지, 건너 뛰기를 반복한다.
치직. 연구원들이 출입구 쪽을 바라 본다.
치직. 번쩍거리는 총의 불꽃과 함께, 연구원들이 시체로 변해간다.
치지직. 모든 악마들이 죽었다. 그리고 검은 옷의 남자가 안으로 들어온다.
"...오빠."
양손에 총을, 등에는 대검을 들고 피를 닦으며 들어오는 남자.
성국을 상징하는 십자 문양이 달린 검은 제복. 차가운 얼굴에, 짙은 회색의 머리카락과 호박색의 눈동자.
"로렌스 오빠!"
소녀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소녀의 유일한 우상이자 신앙, 세계였다.
역시 자신을 구해줄 줄 알았다고, 그렇게 생각한 소녀의 얼굴에 웃음이 번져갔다.
치지직. 철창의 문이 열린다.
치직. 어느새 로렌스는 소녀가 갇힌 감옥 안까지 들어왔다.
"헤헤, 신부님. 나, 안 울고 잘 기다렸어! 아니, 울기는 했지만... 그래도, 분명 신부님이 올 거라고 생각해서, 나 있지...!"
너무나도 반가운 마음에, 소녀는 횡설수설 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괜찮다. 로렌스라면 분명 웃는 얼굴로 '진정하세요, tlstldk. 저는 어디에도 가지 않습니다.'라고 말해줄 것이다.
소녀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손을 뻗었고, 로렌스는.
"죽어라, 마왕의 씨앗."
"...에?"
철컥. 이마에 총이 겨누어진다.
어째서? 어째서 로렌스 오빠가? 그러나 소녀의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그날과는 달리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로렌스는 방아쇠를 당겼다.
탕.
머리를 관통당한 소녀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러나 의식은 끊기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선명하게 지금의 상황을 인지시켰다.
"어... 어째서야...? 로렌스... 오빠...?"
"아직도 살아 있나, 끔찍한 괴물."
로렌스가 천천히 다가온다. 손을 잡아주기 위해서가 아닌, 확인사살을 하기 위해서.
"아, 에헤헤, 그렇구나. 악몽이... 맞구나."
그러나 소녀는 조금의 원망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상황이 한낱 꿈임이 확실해졌다. 신부님은, 로렌스는 결코 저런 말을 할 리가 없다.
오히려 로렌스로 말도 안 되는 꿈을 꿔버린 자신을 자책하며, 소녀는 꿈에서 깨길 기다렸다.
그리고,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실패로군. 배신감은 그녀의 각성 조건이 아니야. 다른 조건으로 바꾸지.]
세상이, 다시금 그 형태를 바꾼다.
* * *
"여기서 헤어지자. 저 마을로 가. 그리고 길 한복판에서 울어라."
"...여긴?"
비가 그친 하늘. 양 옆에 꽃이 만개한 진흙길. 갈림길에 서서, 로렌스가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면 너는 어느 정도 평범한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그곳이다. 로렌스가 자신에게 'tlstldk'라는 이름을 지어준 장소.
로렌스는 소녀에게 손을 내밀었고, 소녀는 기쁜 눈물을 흘리며 그 손을 잡은 추억의 장소.
풀숲에는 여전히 아름다운 히아신스가 만개해 있다.
"자, 어서 가라. 내 마음이 변하기 전에."
"하지만, 오빠. 나, 오빠를 따라가고 싶어."
그날처럼 소녀는 간절한 눈빛으로 로렌스를 쳐다보았다.
아니, 소녀의 마음은 그때보다 더욱 커지고, 깊어지며, 진해져 있었다.
"손을 놓지 말아 줘...!"
소녀가 손을 뻗어 로렌스의 손을 잡으려 했다. 피로 얼룩진 상처투성이의 손을.
하지만.
"아니, 그럴 순 없어."
"...오빠?"
툭. 로렌스는 매정하게 소녀의 손을 쳐냈다.
그다지 아프지는 않았다. 아니, 송곳으로 찍는 것만큼 아팠다. 피가 옮겨 묻은 손이 아니라, 소녀의 가슴 안쪽이.
"넌 마왕의 씨앗이야. 그런 널 나보고 챙겨 달라고? 재밌는 소릴 하는군."
"오빠? 오빠!"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 좋겠군. 또 손에 피를 묻히긴 싫거든."
로렌스가 등을 돌려 자신의 길을 나아간다. 소녀는 혹여나 그를 놓칠 세라 뒤를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아무리 달려도 로렌스와의 거리가 가까워지지 않는다. 그는 걷고, 자신은 달리고 있는 데도.
"로렌스 오빠! 기다려, 로렌스 옵..."
철퍼덕 소리를 내며, 소녀가 진흙탕 위에 엎어 쓰러졌다.
"로렌스 오빠...!"
온몸이 진흙 투성이로 더러워졌는 데도, 로렌스는 돌아보지도 않고 점점 더 멀어져 간다.
자신이 무언가 잘못한 걸까? 귀찮게 달라붙은 게 문제일까, 머리가 나빠서 로렌스 오빠를 곤란하게 만든 게 문제일까.
어쩌면, 내 존재가 문제인 걸까. 의심의 끝은 비참한 자기비하였다.
"미안해, 미안해... 죄송합니다. 로렌스 오빠, 내가 잘못했으니까... 제발 돌아와 줘..."
로렌스는 나쁘지 않다. 모든 문제의 이유는 자기 자신에게 있다. 그런 생각이 소녀의 마음을 갉아먹고, 잘근잘근 씹어 가루로 만든다.
그리고, 또다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번에도 실패군. 아까보다는 괜찮지만... 그래, 조금만 앞으로 돌려볼까.]
히아신스가 시들어 부서진다. 세계가 다시금 뒤섞인다.
* * *
"괜찮나?"
"로렌스... 오빠?"
다시 눈을 뜬 소녀가 주위를 바라본다.
검을, 그의 성유물을 뽑고 앞을 주시하고 있는 로렌스.
맞은편에 있는 것은... 뜯어 먹힌 연구원의 시체와, 괴이한 형태를 한 마수의 모습이었다.
연구 시설의 성공작. 소녀가 아닌, 짐승의 형태를 한 마수. 그것과의 마지막 결전으로, 소녀의 시간이 되돌아와 있었다.
"뒤로 물러나 있어. 위험하니까."
그래, 저 표정이다. 저 모습이 자신이 아는 로렌스 신부님이다.
가만히 있을 땐 차가워 보이지만,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상냥한 나의 신부님.
그에게 영문 모를 안심을 느끼며, 소녀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세바스(안식일)!"
로렌스가 검을 들고 마수를 향해 뛰어들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감히 서 있을 수도 없을 정도의 위압감을 뿜어 내는 마수.
하지만 소녀는 걱정하지 않는다. 로렌스니까, 자신의 신부님이니까. 로렌스는 지지 않는다. 그 믿음 하나로, 소녀는 참혹한 싸움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오빠, 힘 내!!"
그날, 그때의 소녀가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말. 로렌스를 향한 응원을 원 없이 쏟아낸다.
그리고 마침내 결착이 났다.
로렌스의 대검은 마수의 배를 반으로 갈라 그대로.
[수정.]
푸확. 새빨간 선혈이 소녀의 얼굴을 뒤덮었다.
이 피는... 마수의 것이 아니다. 반으로 갈라져 내장을 드러낸 건 마수가 아닌.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에에에!!"
로렌스. 그의 잔해였다.
약간의 숨소리를 내더니, 로렌스의 몸은 그대로 축 늘어져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아아아아아아!"
소녀는 울부짖었다. 자신이 이런 소리를 낼 수 있었나 의문이 들 정도로, 애처롭고 끔찍한 비명이었다.
눈앞에서 로렌스 신부님이 죽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 자신이 로렌스를 죽도록 내버려 두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소녀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은 단 하나였다.
끔찍할 정도로 강렬한 자살 충동. 이유는 간단하다. 로렌스가 없는 세상 따위, 살아갈 일말의 가치조차 찾아볼 수 없으니까.
"로렌, 스, 오, 빠아아..."
마음이 부서진다. 이성의 끈이 끊어진다.
세상이 다시 회색으로 변해간다. 더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
이 끔찍한 고통을 어떻게 해야 할까.
"tkfkdgo, aldksgo, whgdkgo... Ekfkrkfrp."
더 이상 인간의 언어를 사용할 여유따윈 없다.
그를 죽게 놔둔 운명에, 신들에게, 이 세상에 복수를.
부수자.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로렌스 오빠를 위한 추모비로 만들자.
소녀의 깊은 곳에 있는 '마왕'이 눈을 뜬다.
* * *
순백의 방. 일전까지 각 나라의 대표들이 모여 회의를 나누던 곳.
청색 마탑주, 베론은 성국의 마왕 후보자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성공이군. 저 소녀의 각성 조건은 바로 저 신부였어."
무의식의 상태로 마왕 상태에 들어간 성국의 후보자.
검은 날개는 한 쌍이 아닌, 크고 찬란한 두 쌍이 튀어나왔다.
머리에는 길고 붉은 뿔 한 쌍이 나와 있고, 눈은 진홍색의 보석보다도 더 깊고 붉다.
"다른 자들은... 아직 멀었나."
후보자와 함께 온 동행자들, 성국의 신부나 제국의 기사단장, 공국의 호위기사는 의식을 잃고 바닥에 쓰러져 있다.
어차피 필요한 것은 마왕 후보자뿐. 다른 자들은 상관없다.
"흥미롭군. 정말 흥미로워."
제국의 마왕 후보자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쥐어 감싸고 있다. 마왕의 형태는... 짐승과 인간을 섞은 모습이군.
반면 공국의 마왕 후보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심리적인 요인인가?
가장 매력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역시 성국의 후보자다. 아마도 셋 중 가장 '완성'에 가까운 것은 그녀가 아닐까.
"이걸로 필요한 데이터는 모두 얻었어. 티니아, 마왕 후보자에게 봉인 구속구를 씌우도록."
"명령 확인. 알겠습니다, 베론 님."
티니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소녀에게 다가간다. 손에는 고리의 형태를 한 구속구가 들려 있었다.
"tlsqnsla, tlsqnsla, djel dlTdj?"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는군. 서두르게, 티니아."
저 마왕 후보자는 자신에게 있어 중요한 샘플이 될 것이다. 미래를 향한 위대한 한 걸음. 이 순간을 방해할 자는 아무도.
"멈춰."
탕. 한 발의 총성이 티니아를 향해 날아간다. 총탄에 맞아 금이 간 구속구가 산산이 부서졌다.
베론이 고개를 돌린다. 그곳에 있는 건, 매서운 표정으로 총을 들며 똑바로 서 있는 한 명의 신부였다.
"...흥미롭군. 어떻게 환상에서 깨어났지?"
"나에 대해 더 꼼꼼히 조사했어야지. 환술 계열에는 내성이 높거든."
"티니아, 놈을 제압해라."
고개를 끄덕인 티니아가 지팡이를 들어 로렌스에게 향했다.
그러나 반응할 틈도 없이 티니아의 안쪽으로 파고든 로렌스의 일격에 공격이 가로막힌다.
"당신들, 내 자매님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꽤나 날카로워졌군, 신부. 마왕의 씨앗이 그렇게나 소중한가?"
철컥. 로렌스가 베론에게 총을 겨누었다.
그리고는, 호박색의 눈을 번뜩이며 낮게 읊조렸다.
"그녀의 이름은 마왕의 씨앗 같은 게 아니야."
그날, 비가 그치고 무지개가 솟아오르던 그 꽃의 길에서.
꽃보다도 청초한 소녀에게, 히아신스에서 따 지어 준 그 이름.
"신시아. 신시아 생크 프랑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