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 후보자, 집결(3)
* * *
베론이 우리에게 건 마법. 그건 공간 마법이나 시전 대상의 역소환(???)이 아니었다.
소환술이 아닌 환술(??). 이 회의실에는 처음부터 우리의 정신을 교란시킬 마법진이 짜여 있던 것이다.
'사전에 청색 마탑에 대해 조사해 본 게 정답이었어.'
소환 마법을 주특기로 하는 청색 마탑이나, 과거에는 정신을 교란시키는 마법도 함께 다루었다고 한다.
과거부터 청색 마탑에 계속 몸을 담았던 마탑주 베론이라면, 그 역시 환술의 대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정신 마법에 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과는... 예상 대로군.
"청색 마탑도 땅에 떨어졌군. 마탑주란 작자가 설마 다른 나라의 귀빈을 이렇게 대할 줄이야."
"허튼 도발은 그만 두어라, 성국의 신부여. 앞서 말했듯, 이 일은 성국의 교황 역시 동의한 사항이다."
"내용을 교묘히 조작했겠지. 마왕 후보자의 신체 검사라던가, 뭐 그런 항목으로."
베론은 아무런 대답 없이 나를 덤덤히 쳐다보았다. 혹시나 했는데 사실일 줄이야.
"ak, ak, fhfpstm, dhQk...!"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신시아."
신시아를 바라본다. 성도에서, 그리고 레고르에서 보았던 것보다도 더 심한 상태다. '마왕'이라고 부르기 충분할 정도로 변모한 모습. 이대로 시간을 끌어선 안 된다.
"환술을 풀어. 그리고 우리를 돌려보내라."
"거절하지. 아직 충분한 샘플을 모으지 못했거든."
"청색 마탑의 명예가 무너진다 하더라도?"
"명예? 명예라고? 크흡, 크하하핫!"
내 물음에, 베론이 처음으로 웃음을 내지었다. 아니, 실소에 가깝나.
"후우, 이보게, 젊은 신부. 마법사에게 있어, 명예란 우리의 원대한 목표에서 떨어져 나온 부산물에 불과해. 우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오직 '진리' 밖에 없지."
"마법사다운 사고방식이군."
"피차 똑같지 않나. 제국은 황제에게 충성하고, 성국은 신에게 뜻을 바치지. 우리 마법사는 '태고의 지식'을 탐구하는 거다. 조금도 다르지 않아."
쓸모없는 언쟁을 벌이던 사이, 부마탑주 티니아가 부상에서 회복되어 조심스레 일어났다. 힘 조절을 하지 않았는데도 저 회복력이라니.
"티니아, 명령이다. 저 신부를 제압해라."
"명령... 접수. 마법 공격을... 재개합니다."
퉁. 티니아가 다시금 바닥을 내리친다.
허공에 수많은 마법진이 그려지며, 마력의 선과 글자가 한 데 모여 길쭉한 창의 형태를 띠기 시작한다.
순수한 화력으로는 마법사를, 그것도 6서클 이상으로 보이는 대마법사를 상대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
"세바스!"
검의 이름을 부르자, 아무것도 없는 장소에서 검의 형태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주인으로 인정한 자의 부름에 답하는 성유물의 특징.
피할 수 없는 화력이라면, 맞받아치면 그만이다.
"성국의 신부, 그리고 성국의 마왕 후보자. 여기서 물러나 주시길 바랍니다."
"수호성인."
수십 자루의 마법의 창이 나와 신시아를 향해 날아든다. 그 앞을 가로막는 건 커다란 빛의 방패. 알베르와의 전투에서도 사용한, 세바스로 발현할 수 있는 두 번째 기술이다.
여지없이 막힌 빛의 창이 방 이곳저곳으로 튕겨 빛으로 사라졌다.
"너도 신시아를 공격했군. 그렇지?"
마탑주 베론. 부마탑주 티니아. 이 둘은 명백히 신시아를 '공격'했다.
신시아를 '마왕의 씨앗'같은 추악한 단어로 부르고, 신사아에게 고통스러운 기억을 심어 마왕의 힘을 각성시켰다.
더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겠다.
"단죄!"
제국과 공국의 후보자들을 피해, 회의실 전체에 검의 궤적을 그린다.
티니아는 블링크로 공격을 피했고, 베론은 보호막을 펼쳐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내 공격을 막았다.
'역시 움직이지 않는군.'
마도 공화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강대한 대마법사, 베론. 그가 어째서 나를 직접 제압하지 않고 티니아에게 시키는가.
생각해보면 이유는 단순하다. 마왕의 힘을 각성한 신시아가 폭주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이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아직도 깨어나지 않는 이유. 베론은 환술을 사용하는데 온 힘을 집중해야 한다.
"베론, 솔직히 당신이 상대라면 불가능한 싸움이었겠지만."
부마탑주, 티니아. 분명 까다로운 상대다. 하지만... 이단심문회의 키리에 국장이나 드레이크 부국장에 비하면, 전투에서의 기교가 없다.
"저 인형 같은 여자가 상대라면, 전혀 질 것 같지가 않아."
"예의 없는 놈이로군."
티니아의 표정이 조금씩 일그러진다. 온몸에 난 생채기에서 흘러나오는 건... 마력인가?
"티니아. 명령을 수정한다."
"듣고 있습니다."
"로렌스 신부. 저 자를 제압하지 마라. 목숨을 끊어."
"...베론 님?"
베론은 덤덤한 표정으로 티니아에게 살인을 지시했다. 티니아의 반응이 조금 달라졌다. 눈을 커다랗게 뜨며 베론을 바라본다.
"명령, 이해 불능. 다시 한번 지시해주시기 바랍니다."
"두 번 말하지 않아. 명령이다, 티니아. 로렌스 신부를, 죽여라."
"오류, 오류, 오류. 저는, 티니아는, 소환수는 사람을 죽일 수 없습니다."
'소환수, 라고?'
"후우, 그래, 티니아. 넌 그렇게 설계되었지."
"명령을 바꿔주십시오. 상대의 제압 정도라면, 저도 어떻게든..."
"설정을 바꾸겠다."
베론이 조심스레 왼손을 들어 보였다. 손등에 그려진 별 모양의 마법진. 티니아의 눈동자에 있는 그것과 같은 모양이다.
"꺄읏, 꺄아아아앗!"
"자, 다시 한번 말하지. 로렌스를 죽여라, 티니아."
"명...령... 수행... 로렌스를, 제거한다..."
아까와는 명백히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저 티니아라는 부마탑주, 그녀의 정체가 어렴풋이 그려진다.
티니아의 뒤로 뻗어나가는 마력의 실. 나무가 가지를 치듯 뻗어나가는 실 끝에, 수없이 많은 마법진이 새겨지기 시작한다.
'소환 술식'. 마력을 열쇠로, 마법진을 통로로 삼아 다른 장소의 생물이나 제작한 키메라를 불러들이는 소환하는 술식. 어느새 한 없이 넓어진 순백의 공간을, 각양각색의 소환수가 채워 나간다.
'이건... 너무 벅찬데.'
통제가 풀린 티니아. 1인 군대라고 불러도 손색없는 소환수의 무리. 거기다 베론의 존재도 생각해야 한다.
제국의 기사단장 올리비에는... 깨어날 기색이 없다. 그녀가 도와준다면 해볼 만할 텐데. 신시아도 이미 이성을 잃었다.
아니, 생각하자. 이 상황을 타파할 어떤 방법이 분명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나를 도와줄 수 있는 건.
"로렌스 씨, 오른쪽을 보세요."
"이번엔 또 누구... 하."
아무도 없었을 내 오른편에, 검은색의 번개가 모여 인간의 형상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언젠가 들었던 가벼운 목소리. 안경을 고쳐 쓰며 자리에 나타난 것은, 일전에 만났던 흑마법사, 오웨인이었다.
"아무래도 제 도움이 필요하신가 보군요."
"당신도 여전하네요. 아무런 예고 없이 불쑥 나타나고."
"손님을 맞을 준비에 바빠서 말이죠. 그런데... 설마 이런 꼴이 되어있을 줄은."
오웨인이 신시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마왕에 대한 동경심을 품고 있는 그이지만, 눈을 반짝이며 흥미로운 눈으로 본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동행이신 성녀와 성기사님은 마탑 밖으로 빼냈습니다. 지금쯤 저희 사람이 접촉했을 거예요. 로렌스 씨는 신시아 님에게만 집중하면 됩니다."
오웨인이 말할 것도 없이, 지금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건 오직 신시아의 안위 뿐이다.
신시아가 없다면, 나는 나로서 있을 수 없다. 신시아가 있기에, 나는 매 순간 숨을 쉬는 것을 허락받는다.
"흑색 마탑의 흑마법사인가, 자네를 초대한 기억은 없다만."
"오랜만입니다, 베론. 언제쯤 돌아가시나 생각했는데, 설마 이 정도로 노망이 들어버리실 줄은 몰랐어요."
오웨인이 베론을 향해 장난스럽게 허리를 숙인다. 베론은 분명 그를 경계하고 있다.
"그런데 로렌스 씨, 청색 부마탑주의 상태가 조금 이상한데요?"
"베론의 짓입니다. 오웨인, 혹시 티니아의 정체는..."
"눈치채신 것 같네요. 부마탑주 티니아. 그녀는 베론이 만든 최고의 걸작입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녀에게 인간의 향기는 나지 않았다. 오히려 콜로세움에서 보았던 소환수에 더 가까울 지경이었으니.
"인간형 소환수라니, 악취미로군요."
"엄밀히 따지자면 '어떤 인간'을 베이스로 한 키메라에 가까운데... 뭐, 나중에 설명해 드리죠."
오웨인이 들어 올린 손가락 끝에, 검은 번개가 모여 응축되기 시작한다. 검은 마력은 순식간에 불어나, 이윽고 거대한 검은 번개의 투창을 만들어 내었다.
"시작하죠, 로렌스 씨. 저도 청색 마탑에는 화풀이를 할 게 좀 있어서요."
"오웨인,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검을 고쳐들며, 나지막이 오웨인에게 말했다.
"5서클 마법사라는 말, 거짓말이죠."
"이제 와서 그런 농담을."
어떠한 신호도 없이 동시에 발이 떨어진다. 나는 티니아에게, 오웨인은 소환수를 향해.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검은 번개가 순백의 공간을 검게 물들여 간다.
"명령... 수행... 모든 이들을... 죽여..."
"인형 놀이는 여기까지다."
티니아가 허공에 마법진을 그려 공격을 감행한다. 수없이 쏘아지는 마력탄. 위력과 범위가 크게 늘었지만, 정밀성은 오히려 떨어졌다.
'역시 더 약해.'
이곳에 오기 전에 만났던 용사 파티의 마녀, 스피네.
그녀가 무영창으로 발현한 마력탄은 이보다 더 뛰어났다. 마력에 조금의 낭비도 없었고, 마력을 쏘아내는 기술도 더 깔끔했다.
그에 반해 티니아의 공격은, 성이 잔뜩 난 어린아이의 몸부림과 다름없을 정도다.
"명령... 따라... 제압..."
"잠시 잠들어라."
티니아의 뒤로 돌아가, 그녀의 목 뒤에 있는 점혈을 손날로 내려친다.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티니아가 힘 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오웨인은 쪽은..."
사방에서 몰아치는 검은 번개. 오웨인이 한 번 걸음을 뗼 때마다 검은 벼락이 바닥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어 낸다.
그러고 보니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마법사는 군대를 상대할 때 가장 위협적인 존재'라고.
청색 마탑의 대마법사가 1인 군단을 내세운다면, 그 군대를 와해시키는 존재를 부르면 된다. 그것이 저 특이한 흑마법사, 오웨인라는 말이고.
"오웨인. 넌 내 실험에 들어가서는 안 되는 존재다."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베론이 마침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자리에서 목과 몸통이 분리되어야 할 사람은 단 한 명, 베론 뿐이다.
"로렌스 씨, 베론을 노리세요!"
"알고 있습니다!"
검을 곧게 든다. 목표는 베론의 목. 아무리 마법사가 인간의 인식을 뛰어넘는 묘기를 부린다 하더라도, 목이 떨어졌는데 살아나지는 못할 것이기에.
"대마법사를 너무 우습게 보는군."
왼손은 가만히 둔 채, 베론이 오른손을 들어 나를 향해 뻗었다.
"마법사가 어떤 존재인지, 그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아라."
"으읏...!"
영창도 없이 동시에 세 가지의 마법을 구현한다. 얼음의 창, 기이한 마수의 팔, 푸른 번개의 그물. 전혀 다른 성질의 복합적 공격에 나의 검이 가로막혔다.
'오웨인에게 도움을, 아니, 소환수를 상대하느라 이쪽은 돕지 못할 거야. 단죄를 사용해야 하나? 하지만 아직 다른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이 있는 테이블을 바라본다. 그런데... 누군가의 모습이 사라져 있다.
"너무 오래 잔 모양이네."
퍼엉. 공기가 터져나가며, 내 옆으로 누군가의 주먹이 뻗어 나와 베론에게 향했다.
기사단장 올리비에. 싸움의 여파로 눈을 깬 그녀가 베론을 향해 달려들었다. 베론이 급히 방어막을 펼쳐 막아냈지만, 견고하던 마력의 벽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눈을 뜬 것은 올리비에 뿐만이 아니다. 공국의 기사도 환상에서 깨어나 그의 아가씨를 지키는 자세를 취했다.
"재밌는 장난질에는 보답을 해줘야겠지. 받는 건 어떻게든 돌려준다. 그게 제국민이거든."
"제국을 너무 우습게 봤군. 이건 실책이 맞아."
올리비에가 등에서 장창을 꺼내 들었다. 제국의 제 3기사단장 올리비에. 창의 명수로 이름 높은 그녀가 창을 뽑았다는 것은, 진심으로 상대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봐, 신부님! 가서 너네 마왕 후보자를 진정시켜. 이 노인네는... 내가 맡을 테니까."
"감사를 표합니다, 기사단장."
올리비에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그녀 역시 한 나라의, 그것도 제국의 '우상'이니까.
그녀를 믿고, 신시아에게로 걸음을 돌렸다.
"오만하구나, 올리비에. 이제 겨우 30년을 산 핏덩이가 나를 상대하겠다고?"
"그 핏덩이의 공격부터 받아내고 말씀하시죠, 노망난 늙은이."
뒤를 돌아본다. 자세를 취하고 호흡을 가다듬은 올리비에가, 베론을 향해 일창(一?)을 가한다.
내지른 일격은 목표하는 대상에게 향하는 경로의 모든 것을 씹어삼키며 나아간다. 제국을, 그리고 황제를 지키는 기사들 중 최강자의 격은 쉽게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막아라. 나의 아이들아."
베론의 앞에 소환진이 새겨진다. 일격을 가로막는 것은 십수 기의 골렘들. 지금의 일격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버림패들은, 그 존재 의의를 바쳐 기사단장의 일격을 막아내고 부서졌다.
"소환술... 귀찮은 능력이야."
"눈치챘어야지, 올리비에. 자네들이 청색 마탑에 들어온 순간, 이미 모든 흐름은 정해져 있었어."
베론의 말대로다. 청색 마탑에 있는 이상, 베론을 이길 수단은 없다.
소환수를 처리하며 상황을 살피던 오웨인이 품에서 마법 스크롤을 꺼내 들었다.
"지금은 무사히 빠져나가는 것만 생각하세요! 자, 다들 이쪽으로!"
스크롤을 찢자, 거대한 암흑의 통로가 허공에 나타났다. 오웨인은 아마 이 상황도 예측하고 있던 거겠지.
제일 먼저 귀공녀와 호위가 빠져나가고, 올리비에가 그의 종자 렉스를 번쩍 들어 통로에 집어넣고 베론을 견제하러 돌아섰다. 이제 남은 건 나와 신시아 뿐.
"tlsqnsla, tlsqnsla..."
"절 찾고 있는 거죠, 신시아?"
신시아의 눈앞에 다가간다. 내가 앞에 있음에도, 신시아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계속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그녀가 얼마나 끔찍한 기억을 봤는지 알 수는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런 모습이 될 정도로 마음이 무너져 내려갔다는 것 정도.
"이봐, 신부님! 빨리 마왕 후보자를 데리고 가!"
올리비에가 나에게 외친다. 오웨인은 숨을 죽이고 포탈에 계속 마력을 흘려보내고 있다.
나는... 신시아의 얼굴을 바라본다. 눈에는 진한 눈물 자국이 새겨져 있다. 신시아를 진정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신시아, 제가 약속했었죠. 잘 해내 주면 입맞춤을 해드리겠다고."
"fhfpstm... dhQk...?"
"비록 상황은 이렇게 됐지만... 약속은 지켜야죠."
그녀의 뺨을 조심스레 쓸어내린다. 신시아는 저항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손을 조심스레 잡고 부드럽게 뺨에 가져다 댔다.
"그러니까 이건, 악몽에서 깨어나라는 아침 인사입니다."
신시아의 입술에 조심스레 내 입을 가져다 댄다. 부드럽게 맞닿은 촉감, 평소보다 조금 짜고 말라있는 입술 사이로, 애정의 의미를 담아 혀를 집어넣는다.
"신부? 지금 대체 뭐하는..."
"잠깐만요, 기사단장. 신시아 씨의 상태가..."
조심스레 눈을 뜬다. 신시아의 몸을 감싸던 마기가 조금씩 흩어진다.
너무나도 익숙한 촉감. 차가웠던 입술에 따뜻한 기운이 돌아온다.
날개는 꺾이고, 뿔은 가루가 되어 흩어진다. 붉은 눈동자는 다시 아이보리색으로 돌아왔다.
"신, 부님..."
"네, 당신의 신부님입니다, 신시아."
"너무 무서운... 꿈을 꿨어."
"잊어버리세요. 더는... 그런 꿈은 꾸지 않을 테니까요."
안심한 표정을 지은 신시아가 내 품에 안겨 잠들었다.
"곧 포탈이 닫힙니다! 서두르세요!"
오웨인의 말에, 올리비에가 창에 투기를 담아 사방으로 휘두른다. 굉음을 내며 무너지기 시작하는 순백의 방.
"흥미로운 일을 벌였군, 신부."
베론이 지팡이를 내려놓은 채, 나를 보고 말했다.
대답은 하지 않는다. 그럴 가치가 없는 자니까.
포탈에 발을 딛는다. 이 건너편이 어디 일지는 대충 유추가 간다.
오웨인은 말했다. '손님'을 초대한다고. 신시아를 업고, 마도 공화국에서 가장 기피되는 곳을 향해 발을 움직인다.
'갑시다, 신시아. 우리를 보호해 줄 장소. 흑색 마탑으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