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 달콤한 시럽의 추억
* * *
마도 공화국에 온 지, 그리고 흑색 마탑에 온 지 3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 사이에 있던 일들이라고 한다면...
"그럼 우린 이만 떠나볼게. 신세 많았어."
"저희 단장님 때문에 곤란하셨을 텐데, 정말 감사했습니다."
"렉스,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첫째. 제국의 기사단장 올리비에와 마왕 후보자 렉스가 마탑을 떠났다. 국경을 뚫고 바로 제국으로 돌아간다고는 했지만, 아직 렉스의 상태가 불안정해 국경 근처의 도시에서 휴식을 취하고 가겠다고 했다.
"만약 제국에 오게 될 일이 있다면, 내 이름을 팔아도 좋아. 이것도 인연이니, 한번 정도는 도와주지."
"별말씀을, 올리비에 경."
제국에 가게 될 일이라...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지만.
그리고 둘째. 베론의 행방이 어느 정도 밝혀졌다.
"청색 마탑에 있다고요?"
"네. 청색 마탑의 상층부에, 공간을 뒤틀어 놓은 의문의 장소를 발견했어요. 용사 파티가 우연히 발견했다는데... 솔직히 기적에 가까운 확률이었죠."
오웨인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설마 청색 마탑에 자신만의 비밀 공간을 만들었을 줄이야.
"그 공간을 뚫을 방법은 없는 겁니까?"
"아직은 무리입니다. 지금 신변보호 중인 부마탑주 티니아를 필두로, 청색 마탑의 마법사들이 손을 써보고는 있지만... 시간이 걸릴 것 같다네요."
청색 마탑주, 베론. 아니, 이제는 '전' 청색 마탑주.
마도 공화국의 의회에서 공식적으로 베론의 마탑주 직위를 박탈했다.
"만약 베론의 위치가 파악된다면, 부디 저도 불러주세요."
"물론이죠, 로렌스 씨. 빚을 갚으려는 거죠? 신시아 씨의."
오웨인의 말대로다. 베론은 신시아에게 있어 가장 아픈 기억을 건드렸다.
차라리 나를 공격했다면, 신의 말씀을 받들어 약간의 자비를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베론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건드렸다.
'널 지옥으로 이끄는 간수 중에는, 내 모습도 있을 거야, 베론.'
그리고 마지막으로 셋째. 이게 가장 중요한 소식이다.
"아, 신부 오빠!"
"로렌스, 용무는 마쳤습니까?"
의무실 앞, 방문을 열고 나오던 아네모네와 크리스와 마침 마주쳤다.
"네, 오웨인이랑 조금 얘기를 나누고 왔죠. 두 분은?"
"히힛, 신시아 언니의 얼굴을 보고 왔어요!"
"자, 로렌스. 안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크리스가 방 안을 가리켰다. 방문을 열자, 웃는 얼굴로 나를 맞아준 사람은.
"아, 신부님!"
신시아. 나의 자매님. 그녀가 마침내 눈을 떴다.
혹시나 아픈 기억에 침울해져 있을까 봐 걱정했지만, 다행히 신시아는 밝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신시아. 오늘은 신시아가 좋아하는 팬케이크를 좀 가져왔어요."
"팬케이크!"
마탑의 조리실을 빌려 만든 간이 팬케이크. 몹시 피곤해져 있을 그녀를 위해, 오늘은 특별히 평소보다 메이플 시럽을 더 넣어 보았다.
냠냠, 우물우물. 귀여운 소리를 내며, 신시아가 팬케이크를 조각내 먹기 시작한다.
"천천히 드세요, 신시아. 모자라면 말해요. 또 구워줄 테니까."
"정말? 히힛, 가끔은 이런 것도 좋네. 신부님, 평소에도 친절하지만, 요즘은 몇 배 더 친절한 것 같아!"
아, 이런. 신시아한테 이상한 버릇이 들면 곤란한데.
사실 그래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부쩍 어른스러워진 신시아지만, 가끔은 옛날처럼 어린애로 돌아간 모습도 귀여우니까.
"천천히 드세요. 입가에 시럽이 잔뜩 묻었잖아요."
"후훗, 괜찮아! 신부님이 닦아줄 거니까. 그렇지?"
보란 듯이 입술에 시럽을 묻히는 신시아.
그래, 그녀의 말이 맞다. 시럽이 묻어 있다면 닦아 줘야지.
"신시아."
"응, 왜 그래, 신부님?"
말 없이 신시아를 바라본다.
몇 번 눈을 깜빡인 신시아는, 내 의도를 눈치채고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닦아 줘."
"고개를 살짝 젖히세요."
내 말을 따라 신시아가 고개를 까딱인다.
순순히 내 말대로 움직이는 신시아의 모습에, 배덕감과 더불어 알 수 없는 정복감이 차오른다.
혀를 살짝 내밀어, 조심스레 신시아의 입술에 묻은 시럽을 닦아낸다.
"읏, 흐읏."
"아직 한참 멀었어요."
입술에 혀가 닿자, 신시아가 움찔거리며 옅은 신음을 냈다.
아무래도, 닦아낼 시럽은 한참 남아있는 듯싶다.
"하븟."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대로 입술을 맞부딪혔다.
이번에는 신시아 쪽에서 먼저 혀를 내밀었다. 그에 맞춰, 내 쪽도 신시아의 혀를 어루만지듯 입 안을 마음껏 탐했다.
'달콤한... 메이플 시럽 맛이군.'
처음에는 미숙해서 풋풋했던 신시아지만, 이제는 혀를 쓰는 것에도 어느 정도 능숙해졌다.
이러다간 내 쪽이 신시아에게 먹혀버릴지도 모르겠는데.
"푸하아."
"이제 깨끗해졌네요."
"아니, 아직이야."
신시아가 새끼손가락으로 접시에 있는 시럽을 긁더니, 그대로 자신의 입술에 발랐다.
거기서 끝나면 또 모를까, 반대쪽 손가락으론 내 입술에 시럽을 발라댄다. 이건... 유혹이라고 봐도 좋은 거겠지.
"나쁜 아이네요, 신시아는."
"응, 맞아. 신부님을 괴롭히는 나쁜 아이."
그대로 신시아의 허리를 끌어안고는, 고개를 살짝 꺾어 다시 키스했다.
혹시나 신시아가 도망칠까, 다른 한 손으로는 신시아의 머리 뒤쪽을 잡고 그대로 내 쪽으로 당겼다.
"읍, 츄읍, 하아, 신부님, 츄읏."
이 끈적거리는 달콤함은 시럽 탓인 걸까. 조금씩 새어 나오는 신시아의 목소리에, 내 분별력이 조금씩 깎여 나간다.
"읍, 흐읍. 로렌스... 오빠아..."
아, 이건 안 되겠는데.
너무 신시아에게 달라붙었던 걸까. 신시아 쪽으로 과도하게 몰린 체중 탓에, 풀썩하고 침대로 넘어져 버렸다.
신시아에게 넘어지지 않도록 팔로 받치다 보니, 조금 자세가 이상하게 변했다.
"오빠..."
내 밑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신시아가 얼굴을 붉히고 있다.
너무 오래 입을 맞추고 있던 탓일까, 눈가에는 눈물이 조금 맺혀 있다. 이러고 있으니 마치 내가 신시아를 덮치고 있는 것 같은...
"읏, 미안합니다, 신시..."
"으응, 계속해 줘..."
신시아의 애원 섞인 목소리가 내 귀를 파고든다.
아니, 난 신시아의 보호자다. 정신 차려라, 로렌스.
방금 목욕이라도 한 걸까. 몸에서 좋은 비누 향기가 난다.
신시아는 아직 성인식도 치르지 않았다. 아직 선을 넘기엔...
헐렁한 환자복 너머로 드러나는 굴곡. 저 윤곽. 신시아는 이미 훌륭한 어른의 몸을 하고 있다.
신시아에게 상처를 입힐 순 없어. 신시아가 원하지 않는 한, 나는...
어설프게 매인 단추. 헐렁한 옷 틈 사이로, 신시아의 가슴골이 슬쩍 드러났다.
넌 쓰레기다, 로렌스. 음마에 사로잡힌 구제불능의 쓰레기.
신시아의 입술이 반짝거린다. 그래, 입술만이라면.
"오빠는 우유부단."
"...신시아?"
뭉클하고, 내 손이 신시아의 가슴에 파고든다.
보다 못한 신시아가 내 팔을 잡고 자신의 몸을 만지게 유도한 것이다.
"시, 신시아...! 지금 무슨...!"
"너무 머뭇거리잖아, 오빠."
신시아가 팔에서 손을 뗐다. 놓아야 하는데, 더 만지고 있으면 안 되는데... 어째선지 가슴에서 손이 떨어지지 않는다.
"하읏, 간지러워, 오빠..."
간지럽다고? 아래를 바라보니, 나도 모르게 신시아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놓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순수했던 신시아의 표정은, 어느새 색기가 감돌아서...
"미안합니다, 신시아."
또 다시, 신시아의 입술을 빼앗아 버렸다.
안 되는데, 이런 건 옳지 않은데. 신시아를 향한 나의 본성이, 이성을 저 멀리 한 구석으로 밀쳐낸다.
"푸하. 하아, 하아. 로렌스, 오빠..."
"신시아, 미안해요. 이럴 셈은 아니었는데."
"으응, 괜찮아. 난... 오빠만 괜찮다면..."
환자복의 맨 위 단추를 풀며 신시아가 말을 이었다.
"언제든지 해도... 괜찮으니까. 나, 힘낼 테니까..."
......
머릿속에서 툭, 하고. 뭔가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신시아의 선택을 존중하기 위해 여태껏 참아왔지만,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신시아가 내게 품은 감정은 동경 같은 게 아니라는 걸.
그렇다면, 더 이상 참을 이유가 있는 건가?
"신시아."
"응, 와 줘, 로렌스 오빠."
신시아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진다. 나는 그대로 신시아의 몸을.
"저, 저기..."
그때, 옆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저도 있다는 걸 잊으신 건... 아닌가요."
아나스타샤. 공국의 마왕 후보자. 병실에 있는 건 나와 신시아 뿐만이 아니었다.
"아니, 물론 아닙니다! 설마 그럴 리가 있나요, 하하."
"그럼 그 말은... 평소에도 남들의 시선은 신경 안 쓰고 그런 짓을 한다는..."
이런. 좀 더 주위를 살펴봤어야 했는데. 신시아만 앞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시야가 좁아진다.
"칫."
칫? 신시아, 방금 무슨 말을...
"훗, 후훗. 전 괜찮아요. 하지만 설마 신부님과 수녀가 그렇고 그런 관계라니... 성국에 대한 편견이 사라져 가네요."
"그렇고 그런 관계라뇨. 저랑 신시아는 보호자와 후견인일 뿐입니다."
"변명하지 않아도 돼요, 신부. 세상의 어느 신부가... 수녀의 입술을 빼앗고, 가슴을 만지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몸을 탐하려 하겠어요."
...젠장. 어느 하나 반박할 수 없다. 요즘 들어 절제력이 사라지는 느낌이 한두 번 드는 것이 아니다.
성도에서 처음으로 입을 맞춘 이후로는, 신시아에게 입을 맞추는 걸 참을 수 없게 되었다.
레고르에서 혀를 어루만진 뒤로는, 단순히 입술을 부딪히는 걸로는 성에 차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참는 것이다. 그래서 멈추는 것이다. 만약 신시아와 일선을 넘게 된다면, 내 쪽에서 매일 밤 그녀를 원해버릴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더 안 할 거야...?"
보라. 저 신시아의 발그스름한 표정. 저 표정을 볼 때마다 머리가 흐릿해진다.
지금도 손이 저릿하다. 신시아의... 가슴의 촉감. 이제 난 신시아가 조금만 도발해도, 모래성이 무너지듯 손쉽게 음행을 저질러 버리겠지.
'고해성사를, 한스를 불러다가 고해성사를 해야겠어.'
"신시아, 죄송합니다. 지금은 가봐야겠어요."
"...다음에는, 절대 안 놔줄 거야."
뾰루퉁한 신시아와 입을 가리고 웃는 아나스타샤를 뒤로 하곤, 도망치듯 방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방 밖에는... 기사 카일이 들어오려 하고 있었다.
"응?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신부?"
"아니, 아닙니다. 아무것도."
"그런데 신기한 일이군요. 신부의 얼굴이 빨갛게 변한 건 처음 보는 데요."
"지금은, 지금은 묻지 말아 주세요."
대답할 새도 없이, 그대로 계단을 타고 도망쳤다.
비겁해, 비겁하다, 로렌스. 책임을 지진 못할 망정, 선택한 게 도망이라니. 신시아도 분명 실망했겠지.
아, 입술에는 아직도 메이플 시럽의 은은한 향기가 남아 있다.
* * *
로렌스가 떠난 의무실, 멍하니 서 있는 카일을 바라보며, 아나스타샤는 입을 가리고 조심스레 웃었다.
"쿡쿡, 설마 성국의 신부님도 저런 표정을 짓다니... 두고 볼 일이네요."
"으으, 너무해! 아나스타샤 언니!"
절호의 기회를 놓친 신시아가 팔을 쭉 뻗으며 말했다.
조금만 더 있으면 로렌스를 함락시킬 수 있었는데, 조금만 더 있으면 로렌스와 끈적한 짓을 할 수 있었는데.
"왜 거기서 말을 건 거야!"
"그야... 가만히 보고 있자니, 조금 심술이 나서요."
같은 병실을 쓰면서 부쩍 친해진 아나스타샤와 신시아. 같은 '마왕 후보자'라는 처지가 둘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혔다.
"뭐, 그래도 됐어. 신부님, 의외로 가슴을 좋아했어. 으음... 좋아! 신부님을 뿅 가버리게 만들 정도로 가슴을 키워야지!"
"거기서... 더요?"
신시아의 나이답지 않은 몸을 바라보며, 아나스타샤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체형에는 제법 자신이 있는 편이지만... 어느 특정한 부위는, 처참하다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빈약했다.
'카일, 이런 내 몸도 좋아해 줄까...'
자신 쪽으로 걸어오는 카일의 얼굴을 보며, 아나스타샤는 생각했다.
"음? 무슨 일입니까, 아가씨?"
"......"
"시키실 일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카일. 카일은 내 몸... 맘에 들어?"
로렌스와 신시아의 과격행동을 보았던 탓일까, 아나스타샤는 꽤 단도직입적으로 카일에게 물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아."
카일이 눈치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나스타샤는 침을 삼켰다.
"저는 아가씨의 모든 것을 존경합니다. 아가씨의 몸 어느 하나라도 다치지 않도록 지켜드릴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바보."
바보. 바보. 멍청이. 둔감탱이. 눈치 없어. 바보바보바보.
역시 카일은 바보라고 생각하며, 아나스타샤는 이불을 푹 덮어썼다.
"아, 아가씨?"
"...어서 가. 난 몰라."
"후우. 아가씨가 좋아하는 블루베리를 가져왔는데 말이죠."
"...블루베리?"
블루베리. 그 달콤한 한 마디에, 아나스타샤가 벌떡 일어나 카일을 바라봤다.
"어디 있어?"
"제가 떠먹여 드릴 테니, 아가씨는 입만 벌려주세요."
수저로 블루베리를 퍼 입에 가져다 대는 카일. 그리고 조막만 한 입을 애써 벌리며 그걸 받아먹는 아나스타샤를 바라보며, 신시아는 생각했다.
'언니는 욕심쟁이. 두 사람도 부러울 정도로 잘 어울리는 걸.'
* * *
"결국 베론을 쫓으려면 시간이 걸린다는 뜻인가."
"그에겐 마왕 추종자와 접촉한 정황이 있습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를 붙잡아 물어보는 거예요, 디바인."
성검 스펜타를 허리에 맨 금발의 청년.
그리고 온몸 이곳저곳에 붕대를 감은 회색 머리의 여인.
용사 디바인과 성녀 일렌. 당대 용사 일행인 두 사람이 청색 마탑의 상층부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레이크가 아니었다면, 베론의 은신처를 찾는 일은 불가능했겠지."
"평범한 분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설마 그 정도로 감이 좋으신 줄은 몰랐어요."
광전사 레이크. 서연방국의 용병 출신이라는 그는, 이상하리만치 사건의 실마리를 밝혀내는 데 소질이 있었다.
"아, 혹시 미래라도 보는 건 아닐까요? 분명 음유시인 중에는 그런 자도 있다고 들었어요."
"글쎄, 그럴지도 모르지. 시간의 신의 축복을 받은 자일 지도."
자신의 얘기를 한 줄 아는 걸까, 마침 레이크와 스피네가 저쪽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레이크 씨, 스피네 씨!"
"으으, 힘들어..."
기진맥진한 스피네를, 레이크가 반쯤 업고 걷는 중이었다.
"스피네 씨, 왜 그렇게 피곤해 보이세요?"
"말도 마. 레이크가 나를 데리곤 마탑 이곳저곳을 들쑤셔서, 지금 마력이 완전 바닥나버렸어."
"그래도 덕분에 쓸만한 물건을 많이 구하지 않았나."
레이크의 등 뒤에 매달린 커다란 봇짐. 그 안에는, 의리의 보상이라고 할 수 있는 다양한 물품들이 들어 있다.
"...언제 봐도 레이크 씨는 대단하네요."
"곤란에 처한 사람은 구한다. 주는 호의는 거절하지 않는다. 그게 내 용병으로서의 신조거든."
"그런 말이 아니에요. 레이크 씨는... 뭔가 신기하단 말이죠. 이번에 베론의 은신처를 찾아낸 것만 해도 그렇고. 혹시 미래라도 알 수 있는 건가요?"
눈을 반짝이며 묻는 일렌의 말에, 레이크는 고개를 긁적이며 고개를 돌렸다.
"흥, 무슨 말을. 그냥 감이 좋을 뿐이야."
그 말대로다. 레이크는 남들보다 감이 좋다.
어쩌다 보니 운명적인 만남을 갖고, 어쩌다 보니 희귀한 무기를 손에 넣었다.
그렇다고 해서 완벽한 것은 아니다. 자신에게도 모르는 것이 있고, 예상과는 다른 결과가 나올 때가 자주 있다.
엄밀히 따지면, 그것은 미래를 예지 하는 것이 아닌 좀 더.
"거기까지 하자, 일렌. 너무 묻는 것도 좋지 않아."
'음, 디바인 씨가 말한다면 그렇게 할게요."
디바인과 다른 일행들이 밖을 바라보았다.
마탑의 창문을 통해 보이는 바깥의 하늘. 마도 공화국은 흐린 날이 많은 편이지만, 저 멀리 오는 구름은 기분 나쁠 정도로 색이 짙다.
"이건 내 감인데 말이야."
"또 용병의 감? 이번엔 또 뭔데?"
스피네의 투덜거림에도 레이크는 말을 계속했다.
"조만간 큰일이 생길 거 같군. 가령... 마왕의 전조라던가."
"나도 느끼고 있었다."
레이크가 느낀 불길함을, 용사 디바인 역시 느끼고 있었다.
마왕의 전조. 망조의 짐승. '무쉬후쉬'.
그 재앙의 짐승이 곧 이 나라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는 사실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