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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매님에게는 마왕의 소질이 있다-51화 (51/109)

〈 51화 〉 마왕의 전조(1)

* * *

흑색 마탑에 온 지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다.

다행히 신시아의 상태도 많이 호전되어, 이제는 의무실이 아닌 손님용 방에서 잠을 자고 있다.

그래, 나와 같은 방에서.

"으윽, 으으윽..."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온몸에 느껴지는 중압감. 평소와는 다르게 몸이 무겁다.

그 원인은 아마... 내 이불 아래로 불룩 튀어나온 이 정체 모를 무언가 때문일 것이다.

"...신시아?"

"으음, 아, 신부님... 좋은 아침..."

신시아가 졸린 눈을 비비며 아침 인사를 건넸다. 내 허리 위에 찰싹 달라붙은 채 말이다.

"무겁습니다, 신시아. 아네모네보다 더요."

"수, 숙녀한테 무겁다니!"

역린을 건드린 탓에 마구 화를 내는 신시아지만... 신시아가 무거워졌다는 건 결코 살이 쪘다는 말이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성장'이라고 해야 할까. 불과 두 달 사이에 엄청난 기세로 성장해버린 신시아의 몸은, 몰캉한 촉감이 느껴질 정도로 부피가 커져 버렸다.

"어서 내려오세요, 신시아."

"안 무거운데..."

신시아가 몸을 돌려 내 옆에 눕더니, 내 얼굴을 마주 보며 방긋 웃었다. 그리곤 하는 말이.

"그래서, 오늘도 만질래?"

"지금 무슨...!"

칠교(七)의 일곱 신들께 맹세코, 나는 그날 이후로 신시아의 몸을 탐하거나 억지로 만진 적이 없다.

지금 신시아가 말하는 건, 꿈과 소망과 현실을 구별하지 못한 한창 때 소녀의 몽상과도 같은...

"하읏."

이성이 해답을 내놓기도 전에, 본성에 지배당한 손이 신시아의 옷 위로 무언가를 맹렬히 만지기 시작했다.

"흐힛, 신부님이라면 언제든지 만져도 좋아. 그, 그래도, 조금만 부드럽게 해 주면 좋겠는데에..."

"그건 안되죠. 허락한 건 신시아잖아요? 이건 교육이에요. 성인 남성에게 함부로 몸을 허락하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시, 신부님... 살살, 살살해 줘...!"

누군가에게 정신 조작이라도 당한 걸까. 이제는 입으로 나오는 소리마저 본성에게 침식당했다.

베론? 베론인가? 그자의 정신 마법이 아직도 효력을 끼치고 있는 건가?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신시아가 진심으로 저항할 때까지, 본성이 어디까지 내 몸을 움직이는가 실험해 보지 않으면­.

"로렌스 씨! 일어나셨습니까, 로렌스 씨?"

팅, 하고. 고무줄이 늘어났다가 다시 줄어들 듯 이성이 돌아왔다.

방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오웨인인가.

재빠르게 옷을 차려입고 방문을 연다.

"무슨 일입니까, 오웨인?"

"아, 좋은 아침입니다. 깨어 계셨군요, 로렌... 스... 씨?"

음? 나를 바라보는 오웨인의 표정이 뭔가 이상하다.

아니, 오웨인의 시선 끝에 걸린 건 내가 아니라 더 뒤에 있는 무언가.

"시, 신부님... 갑자기 문을 열면..."

신시아였다. 그것도 옷매무새가 엉망진창으로 흐트러진 채 서 있는 모습으로.

아니, 그것보다도 더 눈에 띄는 것은 신시아의 옷차림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입고 있었던 동물 잠옷은 어디 가고, 지금은 와이셔츠 한 장만 걸친 채 몸을 움츠리며 서 있다.

'젠장, 얼굴만 보여서 눈치 못 챘어...! 게다가 하의는 또 왜 안 입은 거야?'

내 것으로 보이는 와이셔츠를 입은 채, 얼굴을 붉히고 땀을 흘리며 가쁜 숨소리를 내뱉는 신시아. 지금 그녀의 모습은 마치...

"아, 제가 매너가 없었군요."

"아니, 아닙니다, 오웨인. 당신이 생각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았습니다."

오웨인이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동정 어린 시선으로 말했다.

"로렌스 씨. 저도 남자입니다. 오히려 괜한 변명은 파트너에게 상처를 줄 뿐입니다."

"오웨인, 설마 당신도 저를 못 믿는 겁니까?"

고개를 돌려 신시아를 바라본다. 지금의 오해를 풀려면 신시아의 도움이 절실하...

"훌쩍."

"시, 신시아?"

"훌쩍, 괜찮아, 신부님. 신부님이 싫다면 나, 훌쩍,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을 테니까..."

"신시아! 당신까지 왜 그럽니까!"

오웨인의 눈빛이 변했다. 마치 나를 쓰레기라도 본 듯한 시선이다.

참으리라. 일곱 신께 맹세코, 당분간은 신시아의 몸에 손가락 하나 대지 않으리라...!

* * *

"순찰이요?"

"네, 그렇습니다. 순찰."

오웨인이 말한 용무. 그것은 마탑 주변의 일대 지역을 순찰하자는 단순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지금 나간다면, 분명 베론이 눈치챌 텐데요."

"그건 괜찮을 겁니다. 베론이 노리는 건 어디까지나 마왕 후보자뿐이에요."

확실히 그 말대로다. 오히려 베론이 움직인다면 이쪽에서 감사를 표할 지경이니.

"무엇보다, 베론 그자도 이미 알고 있을 겁니다. 마왕 후보자들이 여기, 흑색 마탑의 보호를 받고 있으리란 사실을."

"그래서 흑색 마탑주님이 말씀하신 거군요. 함부로 공화국을 떠날 바에는... 흑색 마탑에 있으라고."

청색 마탑에 비해 세력이 작다고 하나, 흑색 마탑도 엄연히 마도 공화국의 인정을 받은 유서 깊은 마탑이다.

야욕에 사로잡힌 미친 대마법사를 막아내는 것쯤은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으음, 알겠습니다. 그럼 크리스도 같이..."

"아니, 괜찮습니다. 사람이 많은 것도 곤란하거든요. 그리고... 둘이서만 하고 싶은 얘기도 있고요."

* * *

한적한 오전. 평범한 공화국의 거리를 오웨인과 걷는다.

수다스러운 성격답지 않게 한참을 조용히 있던 오웨인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로렌스 씨는 흑마법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흑마법사, 요?"

흑마법사가 어떤 존재냐니, 갑자기 그런 건 왜 물어보는 걸까.

"갑자기 그런 건 왜 물어보는 겁니까?"

"물어볼 만하죠. 제가 흑마법사니까요."

"그건 압니다만, 굳이 저한테 이런 얘기를 할 줄은 몰랐거든요."

"음, 성국 출신의 사람과 깊게 대화하는 건 드문 기회기도 하고, 또..."

오웨인이 손을 들어 총 모양을 하더니, 그대로 나에게 '빵'하는 손동작을 취했다.

"로렌스 씨는 이단심문관 출신 아닙니까. 많이 만나보셨을 거라 생각했죠. 흑마법사들을 말이에요."

...확실히 그 말대로다. 모든 흑마법사들이 사악한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흑마법사는 사악하다고 생각되는 일을 벌인다.

마법사들이 윤리 관념이 희박하다고는 하지만, 흑마법사들은 수준이 다르다.

인간과 마수의 합성 실험이라던가, 끝없이 마력을 뿜어내는 고깃 덩이라던가. 일반인이라면 평생 끔찍한 기억으로 남을 장면을 많이 봐왔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좋은 감정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역시 그렇군요."

"아, 그렇다고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에요. 이분법으로 따지면, 긍정적인 편에 속하죠."

"괜찮습니다, 로렌스 씨. 전 겨우 그런 걸 신경 쓰는 놈은 아니에요."

오웨인은 본인을 흑마법사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세간에서 인식하고 있는 '흑마법사'의 개념과는 맞지 않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방정맞은 성격이야 둘째 치고, 흑마법사들의 상징인 불법 연구에는 손을 댄 흔적이 없다.

'오히려 청색 마탑주였던 베론 쪽이 더 흑마법사에 잘 어울릴 정도지.'

"제가 과거에 만났던 흑마법사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자는... 리치였습니다."

"리치. 푸흡, 그렇죠. 흑마법사의 목표. 하지만 그 모든 게 허상일 뿐인데."

리치. 수명의 한계를 느낀 흑마법사들이, 자신의 연구를 계속하기 위해 인간을 포기하고 다시 태어난, '전설' 상의 존재.

"그자는 거의 리치에 도달할 뻔했죠. 마을에서 실종된 어린아이들을 희생양으로 삼지만 않았다면."

"그 말은...?"

"죽였습니다. 이미 죽은 아이들을 살릴 순 없으니, 더럽고 타락한 영혼을 지옥으로 보내는 것만이 아이들을 달랠 유일한 방법이었죠."

이단심문관 시절, 잊고 싶지만 자꾸만 떠오르는 기억 중 하나.

그때의 이야기를 하자, 오웨인이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죄송합니다."

"오웨인?"

"흑마법사가 지은 죄는, 같은 흑마법사가 치러야 합니다. 하지만 저 혼자 모든 죄를 짊어지기엔... 저라는 그릇이 너무 작더군요."

악인의 죄마저 짊어진다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이단심문회가 지은 죄는 모두 내가 지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그 말을 하는 오웨인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오웨인, 당신은 그들과는 다릅니다."

"아니, 아니에요."

오웨인이 손을 들어 올렸다. 몇 마디 영창을 하더니, 그의 손 위로 검은 번개가 응축되기 시작했다.

"이걸 보세요. 이 힘, 이 불길한 마력."

"마기(??), 로군요."

"맞아요, 마기. 자연에 충만한 마나와는 다른, 모든 것을 부정하는 부(?)의 에너지."

오웨인이 손에 모은 검은 번개를 풀밭에 있는 민들레에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민들레는 끝부터 썩어 문드러져 가루로 흩어져 갔다.

"마기는 마왕의 힘이라고들 하죠. 마나의 흐름을 뒤집어 꺾은 대가로 얻은 거대한 힘."

"오웨인, 당신은..."

"마기를 한 번이라도 사용하면,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마법은 사용할 수 없게 됩니다. 금지된 지식을 탐한 대가죠."

그의 말이 맞다. 마법사와 흑마법사를 구분하는 이유.

마법사는 자연에 퍼진, 그리고 자신의 몸에 있는 마나를 마력으로 바꿔 마법을 시전한다.

하지만 흑마법사는 마나를 '변질'시켜 마기로 만든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필요한 연료가 바로 '생명력'이다.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오웨인?"

"네, 뭐든지요."

"당신은 마법사로 치면 최소 6서클에 해당하는 마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대가인 '생명력'은... 대체 어디서 공급받는 거죠?"

"언젠가 물어보실 줄 알았습니다."

오웨인이 다시 길을 걷기 시작한다. 뒷짐을 지고 하늘을 바라보고. 다시 터덜거리며 걷다가, 고개를 돌려 내게 말했다.

"로렌스 씨. 만약에, 만약에 말입니다. 악명을 떨친 흑마법사의 어떤 실험으로, 막대한 생명력을 가진 아이가 만들어졌다고 칩시다. 평생 흑마법을 사용해도 상관이 없을 정도로요. 로렌스 씨는 그 말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

오웨인은 나와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평범한 가정의 기쁨은 누리지 못하고, 처음부터 강해지도록 태어난 자들이 가진 눈빛.

"아, 어떡하지?"

"고양아, 내려와!"

길을 걷던 중,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커다란 나무 위에는 고양이가 덜덜 떨며 앉아 있었다. 고양이가 겁을 먹고 내려오지 못하는 것 같다.

"로렌스 씨, 잠시만요."

오웨인이 조심스럽게 아이들에게 다가간다.

"무슨 일이니, 꼬마야?"

"아, 안경 오빠!"

"있지있지, 고양이가 말이야, 아무리 해도 내려올 생각이 없어서...!"

아이들의 말을 주의 깊게 듣던 오웨인이 고개를 들어 고양이를 보았다.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만 같은 나뭇가지. 그르렁거리던 고양이가 중심을 잃고 간신히 가지에 매달렸다.

"아, 고양아, 안 돼!"

"잠시만, 얘들아."

오웨인이 손가락을 들었다. 그러고는 아이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모두 눈을 감고 숫자 다섯만 세어 주겠니?"

"응 알겠어... 하나아­."

아이들이 눈을 감은 걸 확인하자, 오웨인이 손가락 끝에 번개를 모아 그대로 나뭇가지를 향해 날렸다.

"두울­. 세엣­."

"냐, 냐아앙!"

아래로 떨어지는 고양이를 품에 받으며, 오웨인은 나뭇가지에 마기를 불어넣어 가루로 만들었다.

"네엣­, 다서엇­. 다 셌어, 안경 오빠."

"아, 고양이다!"

마치 마법처럼 바닥에 내려온 고양이를 향해 아이들이 달려간다.

"정말 다행이야!"

"고마워요, 안경 오빠!"

오웨인이 손을 흔든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다시 걷던 길로 돌아온 오웨인이 고개를 긁적이며 내게 말했다.

"보셨죠? 전 이런 한심한 놈입니다."

"아이들을 도와주고, 고양이를 구해 준 선행이 말입니까?"

"평범한 마법사였다면, 나무에 상처를 입히지 않고 고양이만 구해낼 수 있었겠죠. 하지만 전..."

오웨인이 다시금 손가락 끝에 검은 번개를 모았다. 무엇이라도 자를 수 있을 법한 절삭력을 가진 번개를.

"이런 방법 밖엔 못 쓰죠. 이게 마법사와 흑마법사의 차이입니다."

오웨인이 바랐던 건, 어쩌면 평범한 마법사가 된 자신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눈에는.

"확실히 차이가 있군요."

"그렇죠?"

"네. 아이들이 도움을 청하는 데도 무심히 지나가는 마법사들과,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도움의 손길을 건넨 흑마법사."

내 말을 들은 오웨인이 고개를 내리더니, 큭큭거리며 조그맣게 웃기 시작했다.

평소의 그의 모습다운, 그런 평범한 웃음을 말이다.

한참을 걸은 끝에 도착한 곳은 넓은 광장이었다.

역대 대마법사들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가운데에는 커다란 분수가 자리 잡고 있는 광장.

"자, 거의 다 왔군요."

"다 왔다니요?"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사람을 물리는 술식은, 공화국 사람들의 기본 소양이라도 되는 건가.

"로렌스 씨. 혹시 무기는 챙겨 오셨습니까?"

"항상 가지고 다니기는 합니다. 그런데 그건 왜?"

오웨인이 하늘을 가리킨다. 불길한 마력이 가득한... 보라색의 독구름.

"오늘 로렌스 씨를 부른 두 번째 목적입니다."

결연한 표정으로 오웨인이 내 얼굴을 보며 말했다.

"마왕의 전조를 막는 데, 힘을 보태주세요."

"마왕의 전조?"

휘이이잉. 불길한 바람이 가운데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단순히 큰 구름에 지나지 않았던 독구름은, 어느새 소용돌이의 형태로 변해 하늘에 큰 구멍을 만들어 냈다.

"슬슬 시작하겠군요."

콰지직. 고막을 찢어버릴 만큼 세찬 굉음이 울려 퍼진다.

소용돌이의 틈 사이로 내려온 자주색의 번개. 그 한가운데에 마수의 형상이 모습을 드러낸다.

천 년 전, 초대 용사가 마왕을 상대하던 시절.

마왕이 탄생하기 전 나타났다는 마왕의 전조. 망조의 짐승.

"무쉬, 후쉬..."

북왕국의 휩쓸었던 끔찍한 재앙이, 마도 공화국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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