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화 〉 그는 변하지 않는다(1)
* * *
"마탑주 님, 들어가도 괜찮겠습니까?"
"오웨인이로군. 들어오게."
흑색 마탑의 최상층, 마탑주 길버트의 집무실에 오웨인이 발을 들였다.
본래 마탑주의 방은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오웨인은 달랐다.
흑색 마탑과 계약한 흑마법사. 최고의 경지라 평가받는 7서클의 바로 아래 단계인 6서클에 달하는 실력.
외부인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오웨인은 마탑주 길버트와 부마탑주 마리엣타 다음으로 꼽히는 3인자라고 할 수 있다.
"그래, 무슨 일로 온 건가?"
"보고를 드리기 위해섭니다. 청색 마탑주, 베론에 대한."
오웨인은 이전부터 베론의 뒤를 캐고 있었다.
그를 수상하게 여겼기 때문이기도 하고, 청색 마탑에게 압박을 가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이토록 열성적으로 베론을 끌어내리려는 이유는.
"오웨인. 진정하게나. 눈이 매섭군."
"...죄송합니다. 하핫, 이것 참. 역시 마탑주 님의 눈은 속이지 못하겠군요."
"아직도 증오를 품고 있는 건가, 오웨인." "......"
그것은 베론 개인에 대한 '증오심'. 그 단 하나의 감정이 원동력이 되어, 지금의 오웨인을 만들었다.
"잊으라고는 하지 않겠네. 복수하지 말라고도 하지 않아."
"마탑주 님."
"다만 이것만은 명심하게. 언제나 이성을 잃어선 안 돼. 그게 내가 자네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조언이야."
"...알고 있습니다."
오웨인은 흑마법사다. 마법사에게 있어서 천적과도 같은 흑마법사.
오웨인뿐만 아니라 그가 '가족'이라고 불렀던 자들 모두 같은 부류였고, 나름대로 '행복'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그날, 마탑주 베론이 자신을 찾아오기까진.
"저는 베론의 판단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강대한 힘을 양산하는 생체 실험은... 언젠가 끝을 맞이했어야 하니까요."
머리로는, 이성으로는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가슴속 깊은 곳에서 이렇게 외치고 있다.
베론을 용서하지 말라고. 그날, 베론이 자신에게 했던 그 말을 용납하지 말라고.
"후우. 자, 진정했습니다. 그럼 이제 말씀드려도 되겠죠?"
"별로 진정된 것처럼 보이지는 않네만."
"베론이 마왕 후보자를 노린 이유에 대한 추측입니다."
길버트의 말을 애써 흘리고, 오웨인이 문서를 건네며 말을 이었다.
"베론과 마왕의 관계. 자네가 밝힌 내용이지. 덧붙일 게 생겼나?"
"베론은 마왕의 권능을 노리고 있습니다. 마왕에게는 각자의 특징에 맞는 권능이 있죠. 가령 북왕국에서 나타난 '갈망의 바알' 같은 경우, 끝없는 재생 능력을 가지고 있거나 하는."
"그 말은?"
오웨인이 눈을 또렷이 떴다.
그가 찾아낸 사실. 그리고 그를 바탕으로 밝혀낸 진실.
"베론이 노리고 있는 권능은... '부활'입니다. 누군가의 부활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 거죠. 여기, 지난 20년 간 베론이 연구한 내용을 보면 유추할 수 있는 사항입니다."
마탑주의 탁상 위로, 오웨인이 수십 장에 달하는 보고서를 내밀었다.
"사자소생에 대한 금서 대출 기록. 소환술과 영혼에 대한 관계 고찰. 그리고 정신 세계에 대한 몇 년의 연구까지. 이런 건 바보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이죠."
"베론의 목적이 망자를 살리는 거라..."
의자를 뒤로 젖히며 사색에 잠긴 길버트.
어쩌면 마탑주들 중 누군가는 그런 생각을 할 거라고, 예전부터 알 수 없는 느낌을 받기는 했다.
"네, 부활. 아직 누구를 부활시키려고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좀 더 조사하다 보면 분명..."
"현자라네."
"...네?"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는 듯, 확신에 찬 즉답을 내놓은 길버트를 보며 오웨인이 눈을 깜빡였다.
"현자. 지금은 공석으로 남아 있는 마도 공화국의 '우상'."
"현자라고요? 하지만 그자는 이미 20년도 더 전에 죽은 인물 아닙니까. 어째서 굳이 현자를...?"
"스승이기 때문이지."
스승. 그 단어를 들은 오웨인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 마도 공화국에서 '스승'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 흑마법사인 오웨인도 잘 알기 때문이다.
"전대 현자는 베론의 스승이었네. 그리고... 나의 스승이기도 했고."
"...지금 마탑주 님과 베론이 동문이었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뿐만 아니야. 적색 마탑주 카레니나. 그리고 금색과 백색의 마탑주까지. 우리 다섯은 모두 현자의 제자였네. 지금은 비록 길이 갈렸지만."
"자, 잠시만요. 아직 머리가 정리되지 않아서..."
오웨인이 머리를 짚었다. 갑자기 들어오는 정보에 약간의 현기증까지 느껴진다.
"현자가 허망하게 목숨을 잃은 것. 거기에는 우리의 책임도 있었네. 자세히 말하기는 곤란하지만."
"그런, 겨우 그런 것 때문에 베론은...!"
"스승과 제자의 정(?)이란 건, 어쩌면 가족의 정 보다도 진할 수 있는 법이지. 하지만 베론, 설마 자네가 금술에 손을 댈 줄은..."
대체 현자라는 자가 어떻기에 베론은 마왕의 힘을 빌려서까지 죽은 자를 살리려 하는가.
오웨인의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론 그에게도 있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살리고 싶은 사람이.
하지만 그는 마왕의 힘을 빌리려 하지는 않았다. 그것이 '당연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오웨인. 오해하지 말아줬으면 해. 난 이미 베론, 그자에 대해 아무런 감정이 없네."
"하지만 현자에 대한 감정은 남아 있겠죠."
"오웨인!"
보기 드문 마탑주의 호통. 하지만 오웨인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문 앞에서 멈춰 서서 그에게 자신의 다짐을 말할 뿐이다.
"마탑주 님. 저는 여전히 당신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저 같은 흑마법사를 거두어 주신 것부터 시작해서요."
"나 역시 자네를 신뢰하네. 그러니..."
"하지만 저는 저만의 길을 걸을 겁니다."
끼이익. 문이 열리고, 다시 닫힌다.
정적만이 남은 집무실에서, 길버트는 멍하니 닫힌 문을 바라만 보았다.
"후우."
"골치 아파 보이는 표정이네요, 오웨인."
"부마탑주 님?"
"마리엣타라고 부르라니까요."
검은 보브컷 머리에, 노출도가 높은 마녀 의상을 입은 부마탑주, 마리엣타.
집무실을 빠져나오자 마주친 것은 그녀였다.
"엿듣고 있던 겁니까? 좋지 않은 취미군요."
"너무 그렇게 날카롭게 굴지 마세요. 당신의 '계획'에 어울리려면, 적어도 이유는 알아야 하잖아요?"
"아니, 알아선 안 됩니다. 대신 이거 하나는 말씀드리죠. 저는 당신과의 거래를 어길 생각이 없다는 걸."
"당연히 그래야죠."
마리엣타가 매혹적인 손길로 오웨인의 가슴팍을 쓸어내렸다.
눈을 가늘게 뜨고 오웨인을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은... 먹잇감을 앞에 둔 거미처럼 보였다.
"마탑주 베론을 무너뜨리면, 그 모든 연구 기록을 제게 준다는 거래. 절대 잊으면 안 돼요?"
마리엣타가 장난스럽게 오웨인의 안경 콧잔등을 톡 건드렸다.
안경을 다시 고쳐 쓴 오웨인이 입꼬리를 올렸다.
"뭐든지요. 베론을 무너뜨리기만 한다면, 그깟 연구 기록."
"역시. 오웨인은 화끈해서 좋다니까요."
바이바이, 라는 인사말과 함께 마리엣타가 자리를 떠났다.
이걸로 부마탑주의 협력도 확인했다. 모든 준비를 마쳤으니, 이제 남은 과정은 단 하나뿐.
흑색 마탑. 그 회랑을 내려가며 오웨인은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베론. 네가 무슨 생각을 하든, 절대로 네 계획대로는 되지 않을 거다.'
그래, 어떤 수단과 방법을 쓰더라도.
오웨인은 흑마법사다. 그는 모략과 암약을 좋아한다.
오웨인은 흑마법사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오웨인은 흑마법사다. 그는 다른 사람의 이해를 바라지 않는다.
오웨인은 흑마법사다. 그의 목적은 처음부터 하나였다. 그건 다른 사람들을.
* * *
"더 가까이 온다면 나도 대응할 수밖에 없어."
어둠이 짙게 깔린 야산.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장소에, 분홍 머리의 여성이 창을 돌리며 몸을 풀고 있다.
기사단장 올리비에. '창성'이라고도 불리는 창술의 대가.
주위에 있는 것은 정체를 숨기는 로브를 입은 괴한들의 무리.
"......"
"아무래도 대답할 생각은 없나 보네."
저 자들의 목적은... 굳이 물어볼 필요조차 없다.
마왕 후보자 렉스. 아마 그를 노리고 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왕 추종자거나, 청색 마탑주의 똘마니들이겠군.'
전자라면 손대중을 할 필요 없고, 후자라면 조금은 힘을 자제해야 뒤탈이 생기지 않는다.
뭐가 어찌 되었든, 이 자리에서 올리비에가 패배하는 결말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압도적인 전투력. 그것이 제국의 '우상'이 지닌 조건이니까.
"......"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저자들이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최면에 걸린 것처럼 비틀거리며 움직이는 자들. 이들을 조종하는 누군가가 있는 건가?
"그쪽에서 나서지 않겠다면."
올리비에가 창을 고쳐 잡았다.
"이쪽에서 먼저 가겠어."
장창(??). 단창(??). 창의 명수인 그녀는 그 어떤 모양새의 창도 가리지 않는다.
지금 그녀가 장창을 든 이유도 순전히 기분이다. 한시라도 빨리 저들을 제압하고 렉스의 상태를 보러 가고 싶다는 기분.
땅긋기.
창 끝이 지면에 닿았다. 올리비에를 중심으로 크게 한 바퀴를 그리는 원.
그리고 그 원을 따라 땅이 뒤집히기 시작했다.
"운이 좋으면 크게 다치진 않을 거야."
굉음과 함께 바위 파편이 괴한들을 덮친다.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묵직한 돌덩이는 그 자체만으로 충분한 흉기가 될 수 있다.
물론, 단순한 힘만으로는 이런 위력을 낼 수 없다.
투기(?). 다른 이름으로는 '오러'.
그 근원은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마나와 같지만, 근접 전투를 선호하는 전사와 기사들에게 맞춰 개량된 또 다른 힘의 형태.
창 끝에 실린 투기가, 단순한 창의 움직임을 재해(災?)와도 같은 일격으로 탈바꿈시킨다.
"......"
허나... 뭔가 이상하다.
분명히 파편에 정통으로 맞았을 터인데, 로브를 둘러싼 자들은 비명은 커녕 조금의 신음조차 흘리지 않았다.
"흥, 근성은 있나 보네."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쓰러진 자들이 다시금 자리에서 일어난다.
넘어뜨려도 다시 일어나는 오뚝이 인형. 올리비에가 그들을 보고 떠올린 사물이다.
"......"
여전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로브를 입은 자들이 조금씩 거리를 좁혀 왔다. 손에 머금은 마력의 칼날. 올리비에를 공격할 의사는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말할게. 멈춰. 이번엔 목숨을 잃을 거야."
"......"
그래, 그렇겠지. 올리비에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다는 건 그다지 즐거운 감각이 아니다. 하물며 제대로 된 전장이 아닌, 이런 아무도 보지 않는 장소에서는 더더욱.
그럼에도 올리비에는 결심했다. 황제를 따르는 기사로서, 그리고 자신을 따르는 종자를 지킬 단장으로서.
쉬익. 공기를 가르며 올리비에의 창이 출두했다.
마치 못으로 달걀을 깨듯, 창 끝은 손쉽게 괴한 중 하나의 머리를 꿰뚫고 지나갔다.
두개골을 부쉈다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도 쉬울 정도로.
'...음?'
올리비에가 창으로 꿰뚫은 적의 머리는 언덕을 쌓을 정도로 많을 것이다.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이건, '사람'의 육체가 아니다.
올리비에가 창을 높이 휘둘렀다. 창날에 뜯어진 로브 아래로 괴한들의 정체가 드러났다.
사람조차 아닌, 어떤 것의 '인형'. 뼈와 살 대신, 철골과 나무로 이루어진 신체. 그리고 그 안에 새겨진 마법진은.
"...빌어먹을!"
올리비에가 미처 몸을 빼기도 전에, 그녀를 습격한 인형이 일제히 폭발을 일으켰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 그렇기에 방심했다. 휘몰아치는 폭발의 열기 속에, 올리비에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자신의 안위 따위가 아닌.
'렉스가 위험해...!'
자신의 종자, 제국의 마왕 후보자 렉스였다.
* * *
"크윽!"
마왕 추종자 렉스. 아직 앳된 소년이 그가 무언가에 밀쳐져 바닥에 나뒹군다.
척 보기에도 불길한 기운을 내뿜으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가면을 쓴 남자. 그리고 그의 뒤를 따르는 수많은 로브의 괴한들.
"당신들은... 대체 누구야!"
잠깐 나갔다 오겠다고 했던 단장이 돌아오지 않는다.
그녀가 저들에게 당했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분명 누군가에게 발을 묶인 거겠지.
그렇게 생각한 렉스가 연습용 검을 들고 전투 자세를 취했다.
"알 필요 없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목소리다. 의도적으로 목소리를 변조한 건가?
저들은 분명 자신을 노리고 있다. 그렇다면 마왕 추종자거나... 아니면 청색 마탑주 베론. 그자임이 분명하다.
'올리비에 단장님. 죄송합니다.'
어차피 이대로는 저 남자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차라리, 자신이 가진 힘을 사용해 맞서는 수밖에는 없으리라.
마왕화(化).
성국의 수녀, 신시아가 그러했고, 공국의 귀공녀, 아나스타샤가 그러했듯이.
렉스에게도 마왕의 힘을 이끌어낼 수 있는 힘이 있다.
그의 마왕의 형태는 짐승. 더욱 날카로워질 손톱은 그의 검이 되고, 전신의 근육은 단단한 방패가 되어 그를 한 개 분대의 기사단에 필적할 정도로 만들어 줄 것이다.
"아득."
렉스가 자신의 팔을 깨물었다.
그가 마왕이 되는 조건은, 누군가 자신에게 살의가 담긴 상처를 입힐 것. 그 대상에는 자기 자신도 포함된다.
그런데.
"...뭐야."
"쓸 데 없는 몸부림을 치는군."
"힘이... 나오지 않는다고?"
아득. 아드득. 계속해서 팔을 물어보지만, 아무리 해도 자신의 몸에는 일말의 변화조차 보이지 않는다.
입 안 가득히 퍼지는 피 맛과, 팔을 타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선혈뿐.
"쓸모 없는 저항이다."
"네가, 네가 그런 거야? 너희들은 대체 무슨 짓을...!"
가면의 남자가 한 손으로 펼친 마법진.
마법에 대해서 잘 모르는 렉스라도, 저것 때문에 마왕화가 되지 않는다고 직감할 수 있었다.
분한 표정을 지으며 이를 드러내는 렉스. 그의 모습을 본 가면의 남자가 대답했다.
"내가 너에게 바라는 건 단 한 가지다."
가면의 남자가 렉스에게 손을 뻗었다. 검은 마력이, '마기'가 담긴 손을.
"무대에서 잠시 퇴장해. 너는 이곳에 있으면 안 돼."
그리고, 렉스의 의식은 어둠 속으로 꺼져 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