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화 〉 그는 변하지 않는다(3)
* * *
"사람이 아니었다고요?"
"그래. 그건 확실해."
제국의 인물들, 올리비에와 렉스가 응급 조치를 취하고 있는 작은 건물.
올리비에는 팔과 다리에 붕대를 감고 있었고, 마왕 후보자는... 평온한 표정으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전신에 마법진을 새긴 인형이었지. 그것도 주위를 통째로 날려버릴 상위 마법이 새겨진."
"그리고 당신은 그 폭발 한가운데에 있었던 거고요."
분하다는 표정으로, 올리비에가 팔을 붕붕 저으며 말했다.
"신부. 현장의 숲은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 상황에서 목숨이 붙어 있는 것만으로도 용할 텐데 말이죠."
중상은 커녕, 붕대를 감는 것 정도의 부상만 입은 올리비에.
경이로울 정도의 육체다. 제국의 '기사단장'들이란 대체 어떤 생물들인 건지...
"마왕 추종자의 상태는 어떤가, 올리비에 경?"
"렉스 말이지? 그게, 나도 잘 모르겠어."
흑색 마탑주 길버트가 제국의 마왕 후보자, 렉스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평온히 잠든 그의 몸 위로 손을 올리더니, 조그만 목소리로 몇 마디 영창을 읊었다.
"흐음? 기묘하군."
"뭐가 말입니까, 마탑주 님?"
"몸 안에서 '마기'가 전혀 흐르지 않아."
마기란 에너지의 일종이다. 일반적인 마나와 방향이 반대일 뿐.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은 생명력을 가진다. 마법사의 몸에는 마나가 흐르고, 나 같은 성직자의 몸에는 신성력이 흐른다.
그리고 흑마법사나 마왕의 몸에 흐르는 것이 바로 '마기'다. 그것이 흐르지 않는다는 건...
"가사(?死) 상태란 말씀이십니까?"
"굳이 말하자면 그렇지. 잠깐만 더 살펴보도록 하마."
길버트가 천천히 손을 움직이더니, 심장 부근에서 얼굴을 찡그렸다.
"여기군."
길버트가 마력을 불어넣자, 렉스의 가슴팍에서 마법진이 빛나기 시작했다.
수십 개의 선과 원으로 이루어진 마법진. 언뜻 보기에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흔적이 엿보인다.
"...저게 뭐지? 설명 좀 해줄래, 마탑주 님?"
"마기를 억누르는 술식... 아니, 다르군. 저주의 일종이야. 마기를 강제로 뽑아내서... 밖으로 흘려 보낸다?"
"그게 무슨 뜻이지?"
자신이 해석했음에도 불구하고, 올리비에의 의문에 길버트는 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대체 무슨 목적으로 저런 저주를 박아 넣은 거지?'
마왕 후보자를 습격할 만한 집단은 둘 정도밖에 생각할 수 없다.
마왕 추종자, 혹은 베론 휘하의 청색 마탑.
그 둘의 공통점은 '마왕 후보자'의 힘을 노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렉스를 제압하고 데려가면 될 것을, 굳이 저주만 심고 물러났다고?
'마치... 렉스의 힘을 봉인시키려 한 것 같은...'
"아무래도 일이 복잡하게 꼬이기 시작한 것 같군."
"그러게나 말입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 상황이다. 개연성이 부족하다.
이단심문관의 감이 말하고 있다. 이 사건에는, 제삼자의 존재 가능성이 있다고.
"후우우우..." "왜 그럽니까, 카일. 손을 그렇게 떨고."
아까부터 카일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이유는 대강 알고 있지만.
"아나스타샤가 걱정되는 겁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놈들은 제국의 기사단장도 건드는, 예측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그런 자들이 아가씨를 노린다고 생각하면...!"
"솔직히 말하면 저도 그렇습니다."
마도 공화국에 오고 나서부터, 끊임없이 의심스러운 일들이 일어났다.
용사 일행을 만나고, 청색 마탑의 초대를 받고, 흑색 마탑으로 도망치고, 마왕의 전조를 쓰러뜨리고...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쉽사리 상상이 가지 않는다.
"안 되겠네. 이리 와 봐. 당신들에게 보여줄 게 있어."
올리비에가 자신을 따라오라는 손짓을 보냈다.
어느 허름한 창고. 그 안에 보관되어 있던 것은.
* * *
"크읏!"
"꽤나 버티는군."
흑색 마탑의 최하층. 회랑의 끝에서, 백색의 성기사와 검은 로브의 남자가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가면의 남자가 쏜 마력의 칼날이 크리스의 방패에 부딪힌다. 비록 막아내고는 있지만, 크리스의 발이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너무 불리해...!'
성기사. 대륙의 일곱 나라 중 오직 성국만이 보유하고 있는 전력.
다른 기사들이 사용하는 투기(?) 대신, 그들은 '신성력'이라고 불리는 독자적인 방법으로 힘을 이끌어 낸다.
그들이 든 방패는 신의 가호이며, 그들이 쥔 검은 신의 심판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전장에서의 이야기다.
"대단하군. 그걸 맞고도 다시 일어나다니."
"후우, 후우."
신성력을 사용하는 성기사는 무겁고 강인하지만, 느리고 날카롭지 못하다.
여럿이 뭉칠 때는 누구보다도 강해지지만, 지금처럼 1대 1의 상황에서는 강점보다 약점이 크게 드러나는 법이다.
특히, 상대가 마법사일 경우에는 더더욱.
"알고 있을 텐데. 너희의 방패는 모든 마법을 막아낼 수 있는 게 아냐."
가면의 남자가 품에서 또 한 장의 스크롤을 찢었다.
찢어진 종이 파편이 타오르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사나운 뱀의 형상이 되어 크리스를 덮쳤다.
"신들이시여, 저를 보호하소서."
크리스가 이를 악물고 방패로 바닥을 내리쳤다.
그러자 그녀의 주위가 얇은 빛의 벽으로 둘러싸였다.
"어떤 단단한 벽에도 금이 가 있기 마련이지. 가령, 이런 식으로."
가면의 남자가 손가락으로 검은색의 마탄을 만들어 날렸다.
마탄은 벽에 가로막혔으나... 그곳으로 모든 공격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쩌그적. 마치 나뭇잎이 부서지듯 산산이 쪼개지는 빛의 보호막.
"크윽...!"
"정 나를 이기고 싶었다면, 마법 차단 재질의 갑옷은 입고 왔었어야지."
휘몰아치는 안개와 함께 남자의 모습이 사라졌다.
다시 눈을 깜빡이자, 남자는 어느샌가 크리스의 눈앞으로 다가왔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구체를 들고서.
"블링크?"
"잘 알고 있군."
"크헉!"
순간 무방비해진 크리스의 복부에, 가면의 남자가 정통으로 마탄을 꽂아 넣었다.
피와 침을 토하며, 크리스가 벽으로 날아가 부딪혔다.
"...아직도 설 힘이 남아있나?"
"쿨럭, 나는, 허윽, 성기사입니다. 지키고자 하는 사람을 지킬 때까진... 결코... 쓰러지지, 않아...!"
크리스가 이를 악 물었다.
불굴. 그녀의 방패 안쪽에 새겨진 단어가 의미하듯, 그녀는 몇 번이고 다시 일어설 것이다.
하지만... 상성이 너무나도 나쁘다.
변칙적인 수를 앞세우는 남자의 공격을 전부 막아내기에는, 크리스의 방패는 너무나도 작았다.
"그러니까 말하지 않았나."
남자의 손에 다시 마기가 모인다. 지금까지의 공격을 통틀어 가장 진하고 어두운 마기가.
"이제 그만 무대에서 퇴장해라."
투아아앙.
검은 마력이 창의 형상을 띄더니, 그대로 크리스를 향해 쏘아진다.
크리스는 직감했다. 지금의 저 일격은 결정타가 될 것이다.
방패를 들 시간도, 힘도 남아 있지 않다.
크리스의 눈꺼풀이 천천히 닫혔다. 그리고.
"크리스 언니!"
크리스의 백색 신성력과는 명백히 다른 붉은 벽.
그 벽이 성기사에게 향한 치명적인 공격을 튕겨낸다.
"...당신은."
가면의 남자가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괜찮아요, 크리스 언니?"
"아네모네, 뒤로 물러나! 저 사람이 노리는 건 분명... 나야."
성국의 성녀, 아네모네. 그리고 마왕 후보자, 신시아.
크리스를 찾기 위해 방을 나선 두 소녀가 마주한 것은, 한쪽 무릎을 꿇고 정신을 잃은 성기사. 그리고 그녀에게 적의를 드러내는 가면의 남자였다.
"신시아 언니, 크리스 언니를 부탁해요!"
아네모네가 가면의 남자를 막아섰다.
성녀의 상징인 성녀모(?)를 벗어 던지고, 피처럼 붉은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당신의 상대는 저예요."
"......"
성녀는 성국의 '우상'이다. 잠재한 힘만큼은 제국의 기사단장이나 공화국의 대마법사에 밀리지 않는다.
특히나 아네모네가 가지고 있는 권능은 '피'. 온갖 형태로 변할 수 있는 피의 권능만큼 전투에 최적화된 힘은 없을 것이다.
"갑니다!"
아네모네가 손을 뻗자, 그녀의 주위로 혈검(血?)이 떠올랐다.
일전에 로렌스와 신시아를 상대할 때도 사용한 혈검. 자유 의지를 갖고 성녀를 지키는 권능 앞에 남자가 선택한 방법은.
"아직 미숙하군."
남자가 손을 휘저었다.
단지 그것만으로, 아네모네의 혈검은 형태를 잃고 바닥에 쏟아졌다.
"어, 어떻게...?"
"너무 허술해. 군더더기도 많고. 전사나 기사를 상대로 하는 거면 모를까."
뚜벅, 뚜벅. 가면의 남자가 천천히 아네모네에게 다가온다.
"난 마법사거든."
"으읏...!"
아네모네가 그를 향해 피를 흩뿌린다.
검이 되어, 창이 되어, 화살이 되어, 파도가 되어. 피 웅덩이에서 태어난 온갖 형태의 공격이 남자를 노린다.
그러나... 그 어느 것 하나 닿지 않았다.
마치 한적한 거리를 걷듯, 남자는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것만으로 모든 공격을 무(無)로 돌렸다.
"마, 말도 안 돼..." "아네모네, 피해! 여기선 내가..."
신시아가 로자리오를 뜯어내고 앞으로 나섰다.
이제는 제법 능숙하게 마왕의 힘을 사용할 수 있다. '마기'란 마왕에 근원을 두는 힘. 이걸 사용한다면 어떻게든.
"...아."
뭔가 이상하다. 검은 날개도 돋아나지 않고, 뿔이 돋아나지도 않는다.
아니, 애초에 어떤 '마기'도 흘러나오지 않는다. 너무나도 원했던 감각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피하고 싶었던 상황.
"신시아 언니?"
"아네모네, 나. 힘이..."
딱.
남자가 손가락을 튕기자, 신시아의 몸이 날아가 벽에 묶였다.
아무리 버둥거려도, 그녀의 몸을 속박한 검은 사슬은 풀릴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신시아 언니!" "아네모네, 앞 쪽!"
아네모네가 앞을 돌아봤을 땐, 이미 가면의 남자가 그녀의 팔목을 붙잡은 후였다.
"이거 놓...!"
"잠들어라."
일순간, 아네모네의 시야가 반전된다.
온몸의 혈액이 역류하는 느낌. 알 수 없는 이물감. 빠져나가는 힘.
아네모네의 세상이 천천히 어두운 늪으로 빠져 들어가기 시작했다.
'언니...'
자신의 무력감만을 체감하며, 아네모네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이걸로 끝이군. 드디어."
목표하던 성국의 마왕 후보자는 포박했고,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성녀도 제압했다. 그리고 성기사는.
"히야앗!"
"...읏."
반응할 틈도 없이 하늘을 향해 휘둘러진 성기사의 검.
지켜야 할 소중한 사람, 성녀의 목소리를 들은 성기사의 일격이었다.
그녀의 눈은 의지와 긍지로 가득 차 있었다.
쩌저적. 가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조각나며 바닥으로 떨어진 가면. 그리고 그 안에 드러난 얼굴은...
"...당신은?"
크리스를, 그리고 신시아를 당혹감으로 빠트리기 충분했다.
* * *
"시체?"
"아니, 인형이야. 내가 처음에 꿰뚫은 녀석. 비록 불타긴 했지만, 어떻게든 잔해는 건졌지."
올리비에의 것으로 보이는 창에 머리가 꿰뚫린 인형.
마탑주 길버트가 이 사건의 유일한 증거를 천천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왜 미리 말씀하시지 않은 겁니까?"
"당신들 중에 범인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이건 내가 가진 유일한 증거거든."
우리들 중에 범인이 있다니, 농담으로도 넘기기 힘든 말이다.
제국의 사람들을 공격할 동기도, 가능성도 없...
'...동기?'
"잠깐, 이건 설마...!"
"왜 그래? 뭐라도 알아낸 거야?"
인형을 살핀 길버트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설마 그럴 리가, 하지만 이 술식은 분명..." "뭐라고 하는 거야!? 알기 쉽게 설명해!"
길버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너무나도 뜻 밖이었다.
"이건... 우리의, 흑색 마탑의 연구물일세." "흑색 마탑? 하핫, 뭐라는 거야, 당신. 흑색 마탑은 당신의 탑이잖아?" "그렇기에 누구보다도 확신할 수 있는 걸세. 아무리 봐도, 이 인형은 우리 마탑의 독자적인 술식으로 만든 것이 맞아."
흑색 마탑의 인형. 마왕 후보자의 습격. 사건의 알리바이.
우리가 공화국에 온 목적. 우연을 가장한 초대. 마왕의 전조.
모든 단어가 하나의 퍼즐을 이루듯 짜 맞춰지기 시작한다.
흑색 마탑은 사령술과 인형술이 주특기입니다.
이건 흑색 마탑의 인형일세.
길버트의 증언. 흑색 마탑의 인형이 제국의 후보자를 습격했다.
마리엣타 부마탑주 님은 인형술을 특기로 하십니다.
마리엣타 님은 몇 년 전부터 두각을 드러내어...
흑색 마탑의 부마탑주, 마리엣타. 몇 년 전부터 두각을 드러낸, 거꾸로 말하면 그 이전엔 신원이 불분명한 자.
티니아. 성국의 마왕 후보자를 회수하게.
베론은 마왕 후보자를 노리고 있습니다.
저는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반드시 그자를 막을 겁니다.
베론은 마왕 후보자를 노리고 있다. 그리고 오웨인은 그런 그를 막으려 했다. '어떤 수단을 쓰더라도'.
당신들은 마도 공화국으로 갈 예정이죠?
여러분을 모시러 왔습니다.
범인의 조건 중 하나. 각국의 마왕 후보자가 청색 마탑으로 모이는 것을 사전에 알고 있던 사람.
마왕을 연구하는 건 흑마법사의 목표와도 같으니까요.
원래라면 저도 가야 하지만... 아쉽게도 할 일이 있어서요.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사고 회로가, 내게 최악의 가능성을 선보였다.
다른 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그러나 생각할 수 없는.
그런... 단 한 사람을.
보셨죠? 전 이런 한심한 놈입니다.
이런 방법 밖엔 못 쓰죠. 이게 마법사와 흑마법사의 차이입니다.
그럴 수는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
지금 그가 있는 곳은... 흑색 마탑이다. 신시아와 다른 사람들이 있는.
로렌스 씨, 당신은 흑마법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인."
"신부, 방금 뭐라고..."
"오웨인, 이 사건의 뒤에 있는 건 분명..."
"괜찮은 거야, 신부님? 왜 이렇게 몸을 떠는 거야?"
"오웨이인!"
* * *
"당신이, 어떻게...!"
"실망했나요?"
부서진 가면의 반쪽, 그 안에 드러난 것은... 감정 없는 남자의 얼굴이었다.
마안.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자수정과도 같은 눈동자.
흑마법사 오웨인. 방금까지 맞붙었던 남자의 정체.
"거친 방법은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더는 뒤로 미룰 수 없었거든요."
"...로렌스."
"미안합니다, 크리스 씨. 말했잖아요. 당신이 설 무대는 이곳이 아니에요."
남자의, 오웨인의 손이 크리스의 얼굴을 뒤덮었다.
더는 숨길 필요 없다는 듯이, 그의 상징인 검은 번개가 그녀의 전신에 흘렀다.
"크리스 언니! 오웨인, 당신이 어째서...!"
"괜찮아요, 신시아 씨. 잠시 정신을 잃은 것뿐입니다."
"신부님이, 로렌스 오빠가 가만있지 않을 거야...!" "물론이죠. 오히려 바라던 바입니다. 자, 그럼."
오웨인이 신시아에게 다가갔다. 평소의 표정과는 다른, 어떤 웃음도 담기지 않은 차가운 얼굴로.
"잠시, '마왕 후보자'의 자리에서 내려와 주시겠습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