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화 〉 망집의 탑(1)
* * *
청색 마탑의 최상층.
본래 마탑주가 머무르는 방이어야 할 그 공간은, 마기에 침식되어 뒤틀려 버린 지 오래다.
더 이상 '마탑'이라고 부르기도 힘든 마(?)의 공간.
그 한가운데에, 푸른 로브를 입은 한 명의 남자가 있었다.
전 청색 마탑주이자, 모든 일의 배후에 있는 인물.
'부르는 자, 베론'.
'오늘로써 마침내 나의 소망이 이루어진다.'
자신이 마탑주가 되고 나서, 아니, 되기 전부터 가지고 있던 소망.
그건 오직 단 한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
공석으로 남아 있는 '현자'. 동시에 그의 스승이기도 했던 자.
그를 되살리는 것. 집념의 원천은 그곳에서 나왔다.
'당신에게 할 말이... 너무도 많습니다, 스승님.'
베론은 이미 '현자'로 인정받을 만한 조건을 갖추었다.
그러나 현자의 자리에 오르지 않았다. 자신은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현자'라는 이름은 오직 그분만이 쓸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베론이 탑의 중심을 꿰뚫는 거대한 빛의 기둥을 응시했다.
사자소생(死者??).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는 마법을 실현하기 위해, 베론이 지금까지 준비해 온 마지막 수단.
이것이 죄라는 사실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어떻단 말인가?
목표를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이든 사용한다. 그것이 베론이 생각하는 '마법사'다.
'다른 마탑주들은 너무 고지식했지. 금기가 어떻고, 순리가 어떻고.'
금기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눈앞에 목표를 이룰 확실한 수단이 있는데, 그걸 행하지 않는 것 또한 무지(無?)의 죄를 저지르는 일이다.
"아하핫, 아름다운 광경이네요, 베론."
파지지직. 베론의 뒤편으로 푸른 차원문이 열린다.
차원문의 너머에서 넘어온 자는, 흑색 마탑의 부마탑주, 마리엣타.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마왕 추종자' 마리엣타가 옳을 것이다.
"왔군, 마리엣타. 마왕 후보자는?"
"여기, 말씀하신 대로."
마리엣타가 인형실을 당겼다.
마치 거미줄에 묶인 듯,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끌려 오는 백색 드레스의 소녀.
공국의 귀공녀이자 마왕 후보자, 아나스타샤였다.
"너무 먼 길을 돌아왔군."
마침내 모든 재료가 갖추어졌다. 과업의 달성을 눈앞에 두고, 베론은 눈을 감아 지난날을 회상했다.
베론은 알고 있었다. 그 어떤 마법도 죽은 자를 살릴 수 없다는 진리를.
그렇기에 그는 '금기'를 탐구했다. 잊혀진 마법을 끌어올리고, 신분이 불분명한 자들과 접촉했다.
흑마법사의 혈통을 가진 자들로 비인도적인 실험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들'과 접촉했다.
"당신도, 이 아가씨도. 재미있는 '운명'이지 않나요?"
고혹적인 웃음을 지으며 얼굴을 붉히는 마리엣타.
베론이 마지막으로 접촉한 자들은 마왕 추종자였다.
정상적인 마법의, 인간의 힘으로는 죽은 자를 살리지 못한다.
그렇다면 '마왕'의 힘을 사용한다면? 가능성이 차고 넘치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베론은 수면 밑에서 모든 것을 준비했다.
마왕 추종자들에게 정보를 건네고, 필요한 마법 소재를 준비했다.
의식에는 마왕의 힘을 짙게 품은 자, '마왕 후보자'가 필요했다.
마도 공화국의 권력자를 매수해, 타국의 마왕 후보자를 청색 마탑으로 불러들였다.
''오웨인'이라는 생각지 못한 변수가 있었지만, 시기가 조금 미뤄질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예상대로 모든 준비가 갖쳐줬다.
이제 남은 건.
"...시작하지."
"어라? 어라라? 갑자기 말수가 줄어들었네요?" "아무렇게나 지껄여라. 마왕을 따르는 우매한 놈."
"헤에, 그렇게 말해도, 마왕의 힘에 의존하는 건 당신 쪽이잖아요?"
마리엣타의 도발에도 불구하고, 베론은 담담히 의식 준비를 시작했다.
"으읏..."
베론이 손가락을 까딱이자, 아나스타샤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빛의 기둥 앞에 마련된 석조 의자. 이곳에서 아나스타샤는 아주 잠시 동안 '마왕'이 될 것이다.
그녀가 가진 마왕의 형태는 식물. '소생'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그녀는 세 명의 후보자 중 가장 적합도가 높았다.
"계약 내용은 알고 계시죠, 베론?"
"알다마다."
"혹시 모르니까 다시 확인할게요. 당신은 마왕의 힘을 사용해 현자를 되살린다. 그 후에는 새로운 마왕으로 제가 뭘 하든,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는다. 맞죠?"
베론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자가 없는 나라 따위, 어떻게 되어도 별 상관없으니까.
"시작한다." "새로운 마왕의 탄생이네요."
의자에 묶인 아나스타샤. 베론이 그녀의 이마에 손을 짚었다.
저번 회의장에서 아나스타샤는 마왕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기억을 읽은 베론은 알 수 있었다. 그녀의 각성 조건을.
"마왕 후보자의 각성 조건에는 '감정'이 연관되어 있지."
성국의 마왕 후보자, 신시아는 '애정'에 큰 영향을 받았다.
그녀와 연인인 신부가 죽는 모습을 보여주니, 그녀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마왕의 힘을 내비쳤다.
그리고 아나스타샤의 조건은...
"고독. 자네의 각성 조건은 고독일세."
"으읏, 끄으으읏...!"
베론의 정신 조작 마법. 아나스타샤가 바라보는 세계가 회색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잘못...'
그녀의 가족이 자신을 가둔 어두운 방 안.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칠흑의 공간. 귀를 따갑게 하는 정적.
굳게 닫힌 마음을 열고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온다.
카일. 그녀의 호위기사. 그녀의 첫 번째이자 유일한 친구.
"카...일..."
기억이 재생된다. 함께 놀고, 함께 지내고, 함께 웃었던 추억.
그리고 그날이 찾아온다. 암살자가 자신의 방에 들이닥친 그날.
"오면... 안... 돼..."
카일이 암살자에게 달려든다. 그리고.
푸욱. 암살자의 단검이 카일의 복부를 찌른다.
"으으, 흐으으, 끄으으으...!"
카일의 존재가 사라진다. 아나스타샤의 세계가 사그라든다.
그렇게 고독이 찾아온다. 언제 끝날지 모를 끝없는 고독이.
"아, 아아, 아아아아!"
"이 정도면 되었군."
아나스타샤의 모습이 변모하기 시작한다.
발 밑에 자라난 덩굴. 등 뒤에 연결된 거대한 꽃봉오리.
불게 변한 눈에 베론의 모습이 비친다.
"안타깝지만, 자네는 마왕이 되어줘야겠어."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마왕'에 한 없이 가까운 존재의 힘이다.
이를 위해 수많은 금기를 범하고 연구를 계속해 왔다.
이 방은 '마왕'의 각성을 가속화시킨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끌어올리고, 마기를 기존의 몇 배로 증폭시킨다.
"하하, 하하하하하!"
흉악한 마기와 함께 폭발이 일어난다.
연기가 걷히자 드러난 것은, 팔을 크게 올리며 웃는 베론과...
"skf... enrh rkwl ak..."
"흐음, 당신은 이런 모습이군요."
온몸이 식물에 가깝게 변화한 아나스타샤의 모습이었다.
거대한 꽃 위에는 아나스타샤의 상반신이 달려 있고, 그 주위에는 덩굴과 꽃잎이 가득하다.
그 모습을 본 마리엣타가 감탄사를 자아냈다.
"음, 아직 '마왕'이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하지만, 시간문제겠죠. 지금부터 이 도시에 있는 모든 마법사를 먹이로 삼을 예정이니까요."
"스승님, 스승님! 이 못난 제자 베론이, 드디어 해냈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제가! 당신을!"
카타르시스를 느낀 베론이 무릎을 꿇었다.
대마법사인 자신과도 비교되지 않는 강대한 힘. 격을 달리 하는 이 힘이라면 분명 기적이 일어나리라 의심치 않았다.
"...부디, 기쁜 마음으로 눈을 뜨시길."
베론의 영창이 시작되었다. 죽은 자를 살린다는, 불가능한 위업을 이루기 위하여.
빛의 기둥이 검붉은 색으로 물들어 간다.
* * *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이미 일은 벌어지고 말았다.
오웨인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아나스타샤는 청색 마탑으로 끌려갔다.
마왕 추종자 마리엣타. 그녀의 정체를 간파하지 못했기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결과가 일어나 버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난 것은 아니다.
"마리엣타를, 베론을 막아야 합니다."
"......"
이를 악문 카일의 어깨를 붙들고 말한다. 그의 몸은 여전히 떨리고 있다.
허나 주저앉는다고 해서 다른 누군가가 일을 대신 해결하지는 않는다.
"아직 기회는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청색 마탑에 들어가 아나스타샤를 되찾는다면..."
"그렇게 낙관할 수는 없습니다."
카일을 위로하는 나의 말을 끊은 건 오웨인이었다.
더 분한 표정을 짓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의 눈빛에는 오히려 결연함이 가득 차 있다.
"오웨인, 그게 무슨 말입니까." "베론의 목적. 그것은 마왕의 힘을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아마도 아나스타샤 씨는... 마왕이 될 가능성도 있겠죠." "당신이...!"
카일이 오웨인의 멱살을 잡았다.
그의 분노가 향할 대상은, 지금으로선 한 곳밖에 없었기에.
"당신이, 이런 거지 같은 짓만 꾸미지 않았어도...!"
"...알고 있습니다. 전 멍청했죠. 바보였어요. 하지만."
오웨인이 카일의 손을 잡아떼어냈다.
"베론은 언젠가 이런 일을 저질렀을 겁니다. 어쩌면 더 빨랐을 수도 있었고."
"......!"
오웨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오웨인이 베론의 계획을 망쳐놓았기에 지금까지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을 수 있었다.
그 사실은 카일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사죄드리겠습니다. 아나스타샤 씨의 앞에서, 반드시."
오웨인은 마음을 굳게 먹은 듯하다.
그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렇기에 잘못된 방법을 선택했다.
허나 지금은... 서로를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모두가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한 방향으로 행동하길 원한다.
"...한 번. 마지막으로 단 한 번입니다."
바닥에 떨어진 방패를 주워 들며, 카일이 읊조렸다.
"당신을 믿어보겠습니다."
목표는 하나다. 베론의 야욕을 막는 것.
아나스타샤를 구출하고, 베론을 제압하며, 마리엣타를 처단한다.
간단명료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목표이기도 하다.
"오웨인. 청색 마탑으로 향하는 차원문을 열 수 있습니까?"
"방금 전에 열린 차원문의 마력이 아직 잔류해 있습니다. 이걸 이용하면 비슷하게는 갈 수 있어요. 다만 마력이 아직 회복되지 않아서..."
"내가 하겠네."
흑색 마탑주, 길버트. 그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한 때나마 같은 스승의 밑에서 배운 사형제라네. 베론의 과오는, 내가 바로잡아야지."
"감사합니다, 마탑주 님."
지금 청색 마탑으로 갈 수 있는 자는, 오웨인, 길버트, 카일, 그리고 나 정도가 한계인가.
"신부님, 나도 같이 갈게." "신시아? 안 됩니다. 베론은 어쩌면 당신까지 노릴 수..." "신부님."
내 이름을 부르는 신시아의 표정은 확고했다.
"아나스타샤 언니가 납치됐어. 그런데 내가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
"신시아..."
신시아는 언제나 그랬다. 자신이 아니라 남을 위해 움직인다.
그녀의 후견인 되는 자로서, 신시아를 막는 건... 역시 안 되겠지.
"알겠습니다, 신시아.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제 옆에 꼭 붙어 있으십시오. 다시는 떨어지지 않게."
"...응!"
눈앞에 차원문이 열렸다. 청색 마탑으로 이어지는 공간의 통로.
이 앞을 건너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출발하죠. 감사합니다, 신부."
"이번엔 발목 잡지 않겠습니다, 로렌스 씨." "신부님이랑 함께니까, 난 전혀 무섭지 않아!"
물러나는 이는 없다.
저 너머에는 소중한 사람이, 지켜야 할 신념이 있기 때문에.
"...그럼, 출발하죠."
* * *
청색 마탑의 최상층. 마왕의 옥좌.
그 앞에서 의식을 끝마친 베론은.
"어째서, 어째서냐!"
"어머."
땅을 치며 절망했다.
어째서지? 모든 게 완벽했는데.
마왕의 힘, 성질, 규격. 사자소생을 위한 세 종류의 마법.
그 외에 서로 다른 조건의 수십 번의 의식에도, 그의 스승은 되살아나지 않았다.
"뭐가 문제지? 소재가 잘못되었나? 아니, 그럴 리는 없다." "결국 헛수고였네요, 베론 씨? 후훗, 이럴 수가, 라고 할까요."
마리엣타의 비웃음은 베론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자신의 실패에 대한 모멸감, 그리고 스승을 보지 못한다는 절망감만이 가득 차 있었다.
"zkdlf, zkdlf, rhlfhdnj..."
영문도 모른 채 마기만을 흘려보내는 아나스타샤의 마왕체.
그녀를 본 베론은 일그러진 얼굴로 외쳤다.
"이 하등 쓸모없는 오물이, 쓰레기가! 어째서, 어째서 이런..."
"...하핫, 안타깝게 됐네요, 베론. 뭐, 계약대로, 후보자 씨는 제가..."
아나스타샤에게 다가가던 마리엣타가 발걸음을 멈췄다.
두근, 두근. 전신의 감각이 움츠러들며, 생존 본능이 경고를 보내왔다.
'...이 느낌은 분명, 마왕님의.'
마리엣타가 정면을 바라보았다.
분명 의식이 실패했음에도, 빛의 기둥은 여전히 끈적이는 검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마탑을 뒤흔드는 마기. 하지만 아직 아나스타샤는 마왕으로 각성하지 않았을 텐데, 어째서?
"큭, 쿡쿡쿡."
"설마, 당신...?"
베론의 허탈한 웃음이, 점차 광소(??)로 변해가기 시작한다.
그 순간, 마리엣타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맞아, 맞아, 맞네요! 꼭 마왕 후보자만 마왕이 되라는 법은 없죠!"
'마왕'이란, 특정한 조건을 가진 자들이면 출신과 혈통을 불문하고 누구나 변모할 수 있는 존재다.
설령 그 상대가 일국의 마탑주라 하더라도.
"결국, 결국 무리였던 건가..."
베론의 몸에서 흘러나오던 마력이 변질되기 시작한다.
마왕의 기본적인 조건. '강대한 마기를 몸에 품을 것'.
"아니, 그럴 리 없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돼. 금기를 깨뜨리고, 소재를 모으고."
청색 마탑이, 베론의 손길이 닿은 모든 곳이 그와 공명한다.
이 마탑 전체가 그의 마법진이자, 마력 창고이자, 그만의 '공간'이기에.
"...스승님. 당신은 말씀하셨죠. 가장 중요한 일은, 자신이 직접 행해야 하는 법이라고."
베론이 있을 수 없는 각도로 고개를 꺾어 마리엣타를 바라보았다.
그 눈동자는 아무 것도 담고 있지 않았다.
그의 끝없는 망집(??)을 제외하고는.
"이봐, 거기 자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온몸이 오싹거린다. 마리엣타가 양팔로 몸을 부여잡았다.
이 느낌. 자신을 매료시킨 이 황홀감. 이것을 느끼기 위해 그녀는 마왕 추종자가 되었다.
감격의 표정을 지으며, 마리엣타는 한 남자의 변모를 지켜보았다.
"이제 뭔가 조금... 알 것 같군."
마탑의 마력이 공명한다.
검붉은 빛의 기둥 속으로 베론의 육체가 섞여 들어간다. 그리고.
"청색 마탑주 베론. 이젠 당신을 이렇게 불러야겠네요."
창백한 피부. 거대한 악마의 형상을 이룬 마력.
전설 속에 나온다는 리치. 대륙의 두 번째 재앙이 기나긴 잠에서 깨어났다.
"망집의 베론, 이라고 말이에요."
마도 공화국에서 탄생한 두 번째 마왕.
망집(??)의 베론.
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른 모두에게, 자신이 겪은 절망감을 똑같이 안겨주기 위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