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자매님에게는 마왕의 소질이 있다-65화 (65/109)

〈 65화 〉 먼 훗날, 당신이 이르길(3)

* * *

상황 파악. 제 전 주인님이신 베론 님의 소환수가 마기로 인해 변질, 폭주하고 있습니다.

보고. 저를 만드신 창조주는 베론 님이십니다.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소녀의 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인공 소환수.

의문. 그렇다면 어째서 저는 마기에 물들지 않은 겁니까? 마력 연결이 끊어졌기 때문에? 이미 베론 님의 소환수 자격을 잃어서?

논리 회로 오류. 어떻게 해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보도록 해, 티니아. 저게 네가 머물던 청색 마탑의 말로니까."

현재 저를 구속하고 있는 적색 마탑주, 카레니나의 명령에 따라 위를 바라봅니다.

현상 확인. 높은 확률로 카레니나는 잘못된 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저건 청색 마탑이 아닙니다. 저게 청색 마탑일 리 없습니다.

흉측하고, 끔찍하고, 꺼림칙하고,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저런 건물이 청색 마탑일 리 없습니다.

"최상층에는 베론, 아마 그자가 있겠지. 너를 만든 그 그 남자 말이야."

"베론... 님..."

의문 제기. 이 모든 일이 제 창조주이신 베론 님의 뜻이라면, 저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겁니까?

마물로 변질된 소환수와 함께 무고한 이들을 상처입혀야 하는 겁니까?

저 또한 마왕의 하수인으로 변모하여 저들의 손에 끔찍한 죽음을 맞아야 하는 겁니까?

베론 님, 당신이 읽어주었던 동화책에 나오는 악역이 되어야 하는 겁니까?

판단 불능.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습니다.

"자, 너도 힘을 보태 줘. 저것들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건 역시 너겠지?"

명령 이해 불능. 아무런 소리도 인식할 수 없습니다.

베론 님. 당신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어째서 저에게 자가 판단 기능을 만든 것입니까.

어째서 저를... 소환수가 아닌 인간처럼 대해 주신 겁니까.

'너는 내 딸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기억 회로 재확인. 백업된 데이터를 재생합니다.

'고위 마법사일수록 가정을 꾸리지 않아. 위대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가족 조차 족쇄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XX년 전의 기록, 제가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너무 적적하더구나. 가까이 있던 사람을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았거든.'

대조. 제가 알던 베론 님과는 일치하지 않습니다.

베론 님은 제게 미소 짓지 않으셨습니다. 제게 따뜻한 말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동화책을 읽어주었단 기억은 어디서 나온 겁니까?

'언젠가 눈을 감는 그날이 오면, 내 모든 걸 너에게 양도할 생각이다. 그때까지 노망이라도 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군.'

기억을 반복 재생합니다. 기억을 반복 재생합니다.

감정 회로 오류. 얼굴에 무언가가... 흐르기 시작합니다.

'조만간 어떤 자를 만나러 갈 거다. 부디 이번엔 실마리가 잡혔으면 하는 바람인데 말이다.'

기억 복구, 성공. 베론 님, 그자와 만나시면 안 됩니다.

가설 추론. 그자는 분명 마왕 추종자와 연관이 있는 존재일 겁니다.

'티니아, 그러니 부디 올바르게 자라다오. 내 뒤를 잇는 훌륭한 마법사가 되어 주려무나.'

......

기억 재생, 종료.

"이봐, 갑자기 왜 그래? 젠장, 설마 마기에 동조된 건가?"

"괜찮, 습니다."

언젠가, 언젠가 당신께서 이르셨습니다, 주인님.

올바른 길을 향해 나아가라고. 인자한 미소로.

그렇기에 저는 다른 소환수와 다른 것이겠지요.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주인님."

"티니아?"

미약하게 남은 마력으로나마 느껴집니다.

베론 님. 나의 주인님. 나의 창조주.

당신은 마왕의 각성과 함께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마셨습니다.

당신의 업적은, 기록은, 흔적은 전부 사라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라도 남겠습니다. 마왕을 막고, 한때 대마법사였던 당신의 흔적이 사라지지 않도록 막겠습니다.

"마력 연결 접속. 통제권 권한 양도 개시."

당신이 내린 마지막 명령. 망집의 마왕이 아닌, 청색 마탑의 마탑주께서 내리신 마지막 명령.

'올바른 판단을 해라'. 전 그것을 따르겠습니다.

"설정 코드 변환. 차원문 통제. 권리자는 베론, 아니, 이제는 공석입니다."

"저게 뭐야... 소환수가 전부, 멈췄어?"

...코드 오류 발견.

"티니아, 그만 둬! 네 팔, 마기에 침식되고 있다고!"

"괜찮습니다. 소환수는, 충실하게 명령을 이행해야만 합니다."

강행. 물러설 수 없습니다. 물러서선 안 됩니다.

저 소환수의 무리를 가만히 두었다간, 분명 큰 희생자가 나오고 말 테니까요.

오직 저만이 할 수 있습니다. 청색 마탑주의 부마탑주인 자로서.

베론 님, 당신이 남긴 소환수의 통제권을 빼앗겠습니다.

"명령권자 변경. 티니아. 권한은..."

베론 님, 언젠가 당신에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베론의 혈연, 가족으로."

아버지, 라고. 그렇게 부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당신의 귀에는 들리지 않을 겁니다.

후회, 하지 않습니다. 절망, 하지 않습니다.

다만 모든 일이 끝나면, 아무도 없는 곳에서 눈물을 흘릴 겁니다.

그러니 지금은 부디­.

"...성공. 모든 소환수를 역소환합니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굳어버린 소환수.

어쩌면 저와 같은 처지일 그들이 연기로 변해 사라져 갑니다.

베론 님, 당신의 소환수가 더 이상 사람들을 해치는 데 사용되지 않도록 하는 것.

제 사고 회로를 모조리 사용해도, 이보다 더 나은 방안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하, 하하. 티니아, 설마 당신이 이런 걸 할 수 있을 줄은... 티니아?"

"......"

"울고 있는 거니?"

부정. 소환수에게 감정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제 뺨을 타고 흐르는 이것은 분명 눈물이 아닐 겁니다.

아래를 내려다 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뻐하고 있습니다.

이걸로, 이걸로 된 겁니다.

그러니까 베론 님, 언젠가 먼 훗날, 당신이 당신으로서 있을 수 있게 된다면 한 번만 말해주세요.

티니아, 넌 나의 자랑이었다고­.

* * *

"...흐음."

청색 마탑의 최상층, 마탑주 베론의 거처.

인간의 껍질을 불태우고 '마왕'으로서 다시 탄생한 베론. 그가 마력의 변화를 눈치채고 눈을 감았다.

"티니아, 네가 그런 것이냐. 결국 또 내 발목을 잡는군."

그러나 베론은 분노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았다.

이미 그에게는 일말의 감정도 남아있지 않았다. 감정은 오직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기에.

"그건 그렇고..."

베론이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망집을 끊겠다 자신한 용사. 그가 숨을 가쁘게 내쉬며 자신에게 검을 겨누고 있다.

"내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네만."

그리고 다른 자들은... 언급할 가치조자 없다.

"자네들은 정말로 용사 일행이 맞는가?"

베론에게 남은 감정은 없다. 허나 인간으로서의 잔재는 존재한다.

호기심. 탐구심. 자신의 힘이 어느 정도 통용될까 궁금해한 자신이 비참해질 정도로 싸움은 시시했다.

"빌어, 먹을..."

"젠장, 저 녀석 너무... 강해..."

베론이었던 자신이 강해서인가. 아니면 마왕이라는 '격'이 이 정도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인가.

그것을 알기 위해선 저 자들이 조금 더 힘을 써줘야 할 텐데.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자신의 친우.

"길버트, 자네의 인생도 보잘 것 없었군."

"베론..."

"겨우 마왕에게 쩔쩔매어선, 우리가 바라 왔던 궁극의 지식은 그 그림자 조차 보지 못할 걸세."

지금 입 밖으로 나온 발언 역시 어떠한 감정도 담겨 있지 않다.

호기심이 잦아드니 그 다음으로 찾아오는 것은.

'지루함이군.'

대륙의 이름난 학자들이 모여 떠든 것이 생각났다.

어째서 마왕은 파괴 충동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어떠한 이유에서 인간들을 학살하는 것인가.

막상 자신이 마왕이 되어 보니, 그 이유는 한숨이 나올 정도로 지극히 단순했다.

지루해서. 지루하기 때문에.

인간이라는 날벌레들이 자신의 눈앞에 날아다니는 것이 보기 싫어서.

그런 보잘 것 없는 이유로 마왕은 인간들을 공격하는 것이다.

아니, 그걸 공격이라고 불러도 좋은 걸까.

마왕과 인간이라는 압도적인 힘의 차이 앞에, '공격'이라는 단어는 성립하지 않는다.

날벌레를 죽인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진단 말인가.

"...스펜타."

허나 그런 날벌레 중에도, 특히나 독이 강한 벌레는 있는 법인가.

용사 디바인. 그가 성검을 높이 들고 베론을 노려 보았다.

"그래, 용사. 자네만은 인정하지. 하지만 다른 자들은... 오히려 자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헛소리는 집어 치워라, 베론."

성검. 저것은 분명 마왕의 몸에 상처를 입힐 수 있을 것이다.

단 한 번의 일격만 통한다면, 분명 베론 자신을 쓰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디바인은 포기할 생각 따윈 없었다.

"아으으, 마력을 다 써버렸어..."

"괜찮나, 스피네?"

"아직은. 하지만 저건... 도저히 쓰러뜨릴 수 있을 거란 생각이 안 들어."

"첫 번째 마왕도 마찬가지였다. 못할 건 없어."

레이크는, 스피네는. 그리고 다른 자들은.

이미 북왕국에서 첫 번째 마왕을 공략한 적이 있다.

한 번 가능했던 일이라면, 두 번이라고 못할 것은 없다.

"...베론에게는 공략 조건이 있다."

레이크가 보았던 어떤 장면.

그곳에서도 베론은 마왕으로 각성했다.

하지만 지금과는 그 전개가 많이 달랐다.

"다른 마탑주의 협력을 받아낼수록 난이도는 낮아지지. 하지만 지금은 흑색 마탑주 한 명뿐이야."

"또 자기가 봤다던 꿈 얘기네. 그래서?"

"조건은 둘이야. 마탑주가 봉인 술식을 완성할 때까지 버티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원래는 성국의 마왕 후보자, 신시아였어야 할 마리엣타의 하수인. 그녀를 제압해 베론에게 집중되는 마기를 차단할 것.

'하지만 봉인 술식은 마탑주 혼자선 불가능하고, 마왕 후보자 쪽은... 그 신부에게 맡길 수밖에 없어.'

지금으로선 버티는 게 고작이다. 결착을 낼 수 없다면, 함부로 '광전사'로 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디바인 씨. 역시 제가 희생해야 할 것 같아요."

계속해서 베론에게 부상을 입는 디바인을 보며, 일렌이 가슴을 붙들고 말했다.

"아니, 그건 생각하지도 마라."

"이건 더 이상 저 개인의 문제가 아니에요! 제 자리를 채워 줄 사람은 많으니까, 저 밖에는 없어요."

일렌이 옷을 풀어헤쳤다. 하얀 살결 사이로 붕대가 드러났다.

가슴 부근에 묶은 붕대. 자신의 '심장'과 직결된 권능.

아마 이걸 사용한다면 분명 이길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자신을 대가로 사용할 수 있는 단 한 번의 권능이지만.

"...꿀꺽."

붕대 끝에 손을 댄다. 이걸 푸는 순간, 더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나올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그것이 자신의, '성녀'의 역할이니까.

비록 다시는 디바인을 볼 수 없다 해도,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은...

"멈추게."

아련하게 떠는 일렌의 팔을 붙잡은 것은... 흑색 마탑주, 길버트였다.

"용병 청년. 당신이 말한 봉인 술식이란 건, 혹시 제가 알고 있는 겁니까?"

"...아마도 그럴 겁니다. 아니, 확실히 그렇습니다."

"당신은 그걸 어떻게 알고 있죠?"

자신과 베론, 카레니나. 그리고 다른 마탑주들이 알고 있는 어떤 술식.

지금은 사라진 현자가 남기고 간 비술(??).

그 정체도, 용도도 알 수 없었지만 흉내라면 가능했다.

"용병의... 감입니다."

"감이라, 후훗. 그래, 세상엔 말할 수 없는 사정도 있는 법이겠지요."

길버트가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보았다.

구멍이 뚫린 천장으로 하늘이 보였다. 어느덧 해가 저물어 별이 뜨기 시작한 밤하늘이.

'걱정할 것 없어, 길버트. 애초에 각오는 하지 않았는가.'

모든 마법사들은 사후 세계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살고 있는 삶에서도 모든 지식을 깨우치지 못했기에.

하지만... 이런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우기는 한다.

'생애 마지막으로 사용하는 마법은 어떤 것이 될까.'

삶의 마침표. 그렇게 멋진 마무리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 마법이라면. 스승이 자신들에게 가르쳐 준 마지막 마법이라면.

흑색 마탑주, 길버트. 그의 이름에 먹을 칠하지 않는 마무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별이 맑군. 오웨인 녀석, 별을 참 좋아했었지."

한 번의 심호흡. 그것으로 길버트는 마음을 굳혔다.

"용사 여러분, 부탁이 있습니다."

생애 최후의 마법. 7서클, 그 너머에 닿은 마법.

자신의 모든 마력, 거기에 자신의 '생명력'을 다한다면, 다른 마탑주의 몫을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이건 잘못된 길로 빠진 동문에 대한 죗값이기도 하면서, 친우였던 그에 대한 마지막 경의이기도 하다.

"잠시만 시간을 벌어주십시오."

"길버트 경? 설마 당신..."

"이제 슬슬 후대에게 맡겨도 좋을 거란 생각이 들더군요."

"그게 무슨...! 아래층에서 마왕 후보자를 제압하지 못하면 전부 허사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레이크가 그를 말렸으나, 이내 그만뒀다.

그의 눈동자는 이미 모든 준비를 끝마쳤기에.

"전 믿습니다. 오웨인을, 다른 분들을."

언제나 베론이 부러웠다.

부마탑주 티니아. 그에게는 이미 가족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있었기에.

어쩌면 오웨인을 데려오기로 결정한 그날도, 이기적인 마음으로 그런 결정을 한 건 아닐까 걱정되었다.

'...걱정할 필요는 없었군.'

끝이 다가오자 알 수 있었다.

자신에게는, 베론을 부러워할 이유가 조금도 없었다는 것을.

눈물을 흘리며 빵을 먹던 어떤 소년은, 자신의 도움으로 훌륭한 마법사가 되었다.

그것만으로, 그의 인생에 더 이상의 미련은 없었다.

길버트가 거대한 마법진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인생의 마지막 대마법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거대하고 웅장한 마법진을.

"...허튼 수작을 부리는군, 길버트."

"자네를 위한 마지막 선물일세, 베론."

망집의 베론. 두 번째 마왕을 쓰러뜨리기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 이 이야기의 마지막 열쇠, 마왕 후보자 아나스타샤.

그녀가 있는 아래층에서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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