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 잇는 자 Ep.3 끝
* * *
여느 날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아침의 햇살.
무거운 눈꺼풀을 애써 들자 보이는 것은.
"으응, 신부님..."
쌔액쌔액 숨을 쉬며 곤히 자고 있는 신시아의 모습이었다.
걱정도, 불안도 없는 편안한 표정으로 말이다.
'...평화롭군.'
그렇다. 우리는 흑색 마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두 번째 마왕 베론은 용사의 손에 쓰러졌다.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인형극이 막을 내린 것이다.
* * *
"신부 오빠!"
부상자를 데리고 청색 마탑을 빠져나가자마자, 상처투성이인 소녀가 내게 달려들어 안겼다.
찢어진 성녀복 사이로 보이는 익숙한 붉은 머리.
아네모네. 그녀가 울먹거리는 표정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다행이에요, 정말 다행이야...! 제가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아세요!?"
"미안하게 됐습니다, 아네모네. 연락할 틈이 생기지 않아서 말이에요."
"으으, 훌쩍. 신시아 언니랑 신부 오빠를 위해 기도드린 보람이 있었어요."
주위를 둘러본다. 처절했던 전투의 흔적이 보인다.
마왕을 쓰러뜨린 건 용사 일행이나 우리뿐만 아니라, 그들의 역할도 있었다.
"고마워요, 아네모네."
"시, 신부 오빠?"
푸석푸석해진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무서웠을 텐데, 몸이 떨렸을 텐데도 아네모네는 훌륭히 자신의 사명을 다해주었다.
"아네모네의 기도 덕분에 이길 수 있었던 거네요."
"아, 그, 그냥 해본 말이에요오... 아, 아니 물론! 기도를 드린 건 맞지만...!"
많이 지친 건지, 아네모네의 얼굴이 빨갛게 변했다.
대견스러운 마음에 한참을 쓰다듬다가, 뒤통수에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에 뒤를 돌아보니...
"...신부님, 뭐 해?"
"시, 신시아?"
신시아가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나도 열심히 했는데! 신부님이 하라는 거 다 해줬는데!"
"후우, 알겠습니다, 신시아."
신시아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는 이미 알고 있다.
한 쪽 팔을 펼쳐 손짓으로 신시아를 불렀다.
"자, 들어오세요."
"...헤헷."
폭신한 감촉과 함께 신시아가 한쪽 품에 안겼다.
신시아가 원하는 건 아마도 이거겠지.
"잘했어요, 신시아. 신시아가 아니었다면 분명 해낼 수 없었겠죠."
"헤헤, 헤헤헤헤. 좀 더 쓰다듬어 줘, 신부니임!"
신시아의 머리를 헝클어질 정도로 마구 쓰다듬는다.
겨우 이런 거에 질투하다니, 어쩔 땐 어린애처럼 보이기도 한다니까.
"아, 로렌스!"
쓰다듬는 손이 슬슬 아파질 때쯤, 저 멀리서 부상자를 호송하고 있던 금발의 성기사가 내게 다가왔다.
성기사, 크리스. 나의 동기이자 친구. 그녀도 몸 이곳저곳이 전투의 흔적으로 가득했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로렌스!"
"당신도요. 크리스, 상황은 어떻습니까?"
"중상은 몇 있지만, 아직 사망자는 없습니다. 백색 마탑의 치유사들이 도착했으니 큰 걱정은 없을 것 같아요."
더 많은 희생자가 나오지 않은 것은 다행이다.
다친 사람은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지만, 죽은 자는 돌아올 수 없는 법이니.
그래, 마왕을 쓰러뜨리기 위해 목숨을 바친 '그 남자'처럼 말이다.
* * *
"그렇군. 길버트가..."
청색 마탑주 베론. 흑색 마탑주 길버트.
우리 중 그들과 가장 친분이 있는 자는 분명 그녀일 것이다.
적색 마탑주, 카레니나. 그녀가 그들과 동문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알게 되었다.
"...예상은 하고 있었어. 베론이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것도. 길버트, 그 녀석의 성격이라면 그런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것도."
"슬픈 얼굴을 하고 계시는군요."
"그야 당연하지. 한때나마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이였으니까. 황색과 백색 마탑주에게도 전해야겠네. 그 둘이 어떻게 우리 곁을 떠났는지."
카레니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그녀의 두 눈에는 이미 눈물이 고여 있었다.
"하핫, 나도 참. 이 나이 먹고 눈물이 나오려고 하네."
"괜찮으십니까?"
"괜찮지. 괜찮고 말고. 오히려 나보다... 저 녀석이 걱정이지."
카레니나가 누군가를 가리켰다.
반쯤 부서진 안경을 쓰고, 찢어진 검은 로브를 둘러 맨 남자.
이미 차갑게 식은 길버트의 시신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남자를.
"...오웨인."
"아, 오셨습니까, 로렌스 씨."
오웨인은 길버트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마치 잠을 자는 것처럼, 길버트는 평온한 얼굴로 바닥에 누워 있다.
"뭐라 말씀드려야 할지..."
"괜찮습니다, 로렌스 씨. 정말로요."
오웨인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오열하지도 않았다.
애써 슬픔을 억누르려 하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마탑주의 죽음을 애도했다.
"로렌스 씨, 저는 복에 겨운 사람입니다."
"......"
"마탑주 님은, 길버트 님은 저를 아들처럼 생각해 주셨습니다. 가족을 잃은 저에게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 주셨죠."
용사 일행이 말하길, 길버트는 마지막 순간까지 오웨인을 걱정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건 오웨인도 마찬가지였다.
"후회가 되진 않습니다. 마탑주 님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이건 그분의 선택이니, 제자인 저도 그분의 뜻을 따라야죠."
그 말을 하는 오웨인의 손은 떨렸다.
"하지만 딱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마탑주 님을, '아버지'라고 불러 보지 못했네요."
두 사람이 쌓아 온 시간은, 나로선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깊으니까.
"마탑주 님 앞에선 의연하게 있어야죠. 아마 흑색 마탑으로 돌아가고, 그분의 빈자리를 느끼면... 그제야 눈물을 흘리지 않을까 싶네요."
"오웨인, 힘들면 언제든지 말하세요. 이야기 상대는 되어 드리겠습니다."
오웨인이 그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슬픔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망집에 빠지지도 않을 것이다.
오웨인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렇기에 그는 의연하게 작별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 * *
"떠난다고? 벌써?"
용사를 향해 누군가가 외쳤다.
참고로 이 말을 한 건 우리 쪽 사람이 아니라, 같은 용사 일행인 스피네였다.
"그래. 더 이상 여기에 머무를 이유는 없다."
"하지만, 하지만! 영웅 대접 좀 받자니까? 힘들게 싸웠는데, 이대로 떠난다는 건...!"
의문을 표하는 스피네에게, 레이크가 대신 답했다.
"거기까지만 해, 스피네. 물론 마왕의 목에 칼을 꽂은 건 우리지만, 마왕을 막은 건 이 나라의 사람들이야."
엄밀히 말하면 우리 같은 다른 나라 사람도 있었지만 말이다.
"게다가 이미 챙길 건 챙겼잖아? 지금 떠나면 다신 못 올 것도 아니고, 다음에 또 오도록 하자고."
"으으, 알겠어, 알겠다고!"
신시아가 내 옆을 툭툭 건들며 말했다.
"신부님, 신부님! 계속 생각한 건데, 저 둘, 사귀는 사이인 게 아닐까?"
"우연이네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 중이었습니다, 신시아."
서로 투닥거리는 스피네와 레이크.
그 모습을 보고 일렌이 소리 죽여 쿡쿡거리며 웃었다.
"디바인 씨. 다음은 어디로 갈 건가요? 제국? 아니면 남왕국?"
"공국으로 가볼 생각이다. '귀공자', 그리고 '귀공녀'에 대한 의문이 생겨서 말이다."
디바인을 필두로 용사 일행은 발걸음을 내디뎠다.
저들은 마왕을 막기 위한 여행을 계속할 것이다. 그들의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서.
...그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이왕이면 만날 일이 적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일렌 언니, 가시는 거예요?"
"후훗, 다음에 다시 만날 날이 올 거예요, 아네모네."
성녀 아네모네. 성녀 일렌.
둘은 함께 손을 모아 상대를 위해 기도했다.
""당신의 앞길에 축복이 있기를.""
* * *
"신세 많이 졌어, 흑마법사 씨."
기사복 차림으로 갈아입은 분홍 머리의 여인, 올리비에.
제국의 기사단장인 그녀도 공화국을 떠날 채비를 끝마쳤다.
"내 종자를 공격한 건 아직도 치가 떨리지만... 그래도 사정을 봐서 이 정도로 끝내주지."
"그거 참 감사하네요."
오웨인의 얼굴을 바라본다. 이곳저곳에 멍이 들어 퉁퉁 부은 것이, 마치 두꺼비를 연상케 한다.
"...단장님. 아무리 그래도 조금 심한 게..."
"아뇨, 괜찮습니다, 렉스 씨. 올리비에 씨가 요구한 건 흑색 마탑의 지원이고, 이 상처는 다른 분들이 낸 거니까요."
저 할퀸 자국은 아네모네, 새파란 멍자국은 아나스타샤.
그리고 얼굴 전체를 뒤덮은 주먹 자국은 신시아가 낸 거다.
"언젠가 제국에 오게 된다면 내 이름을 대도록 해. 무조건은 아니지만, 너희에게 어느 정도 도움은 줄 테니까 말이야."
"이미 한 번 했던 말 아닙니까."
"그랬나? 뭐, 그만큼 확실히 값을 쳐주겠다는 뜻이지!"
그 말을 끝으로, 올리비에와 렉스가 제국으로 향하는 차원문을 건넜다.
제국, 제국이라... 되도록이면 갈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신부님, 신부님! 제국에는 달콤한 과자가 유명하대!"
"정말요, 신시아 언니? 혹시, 혹시 작은 동물을 이용한 요리도 있을까요...?"
다시 생각해 보니, 관광을 목적으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다.
올리비에에게 최고급 레스토랑 식사권을 요구해 볼까.
* * *
"어떻게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신부."
"제가 할 말이죠, 카일."
공국의 마왕 후보자, 아나스타샤. 그리고 그녀의 기사, 카일.
가장 걱정되었던 두 사람이지만, 다행히 며칠 가지 않아 상태가 호전되었다.
"걱정했었어, 아나스타샤 언니!"
"자, 자꾸 언니라고 하시면 부끄러워요... 나이로 따지면 동갑이잖아요..."
"그래도 언니는 언니야! 왠지 언니 느낌이 나는걸!"
신시아가 아나스타샤의 품에 파고들어 볼을 비비기 시작했다.
지난 며칠간 계속 함께 있었던 그녀들이니, 저렇게 친하게 행동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응? 왜 그렇게 빤히 보는 거야, 신부님?"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흐응, 혹시 부러운 거야? 신부님도 부비부비 해줄까?"
이럴 때만 눈치가 빠르다니까.
"흠흠, 그건 그렇고,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카일?"
"아가씨의 건강이 낫는 대로 공국으로 돌아갈 예정... 이었지만, 2주 정도는 느긋하게 돌아다녀 볼 생각입니다."
카일이 먼 경치를 가리켰다.
멀리 있는 산에는 울긋불긋한 꽃나무가 가득했다.
"이 나라를, 이 경치를 말이죠."
"어깨에 힘을 빼는 법을 드디어 알았네요."
두 사람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아나스타샤는 여전히 마왕 후보자다. 분명 두 사람의 앞에는 또다시 장애물이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저 둘이라면 분명 능히 헤쳐나갈 수 있겠지.
'나도, 신시아도 지지 않도록 힘내야겠어.'
"자, 아가씨. 가고 싶은 장소를 생각해 보시겠어요?"
"으, 응..."
다시 '아가씨'로 돌아온 건가. 아직 답답한 면은 남아 있군.
"빤."
"...갑자기 무슨 소리를 내는 겁니까, 신시아. 그 눈은 또 뭐고요."
"신부님이 기사 오빠를 보고 '둔하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
"...마왕의 능력 중에는 독심술도 있습니까?"
갑자기 신시아가 연신 한숨을 내쉰다.
뭐지? 갑자기 신시아가 왜 저러는 거지?
"그건 그렇고 아나스타샤, 정말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 겁니까?"
"아, 그, 그게... 네, 죄송해요. 뭔가 꿈을 꾼 느낌이라,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아서..."
안타깝지만 아나스타샤에게는 거짓말의 재능이 없는 것 같다.
떨리는 동공. 우물쭈물거리는 손가락. 무엇보다 아까 전부터 카일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저 둔감한 기사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지만, 굳이 나설 이유는 없겠지.
"응? 아니야, 아나스타샤 언니! 몸은 마음대로 움직여도 기억은 확실히 남는걸!"
".......!"
푸훕. 맙소사.
"아가씨, 저 말이 사실입니까?"
"아, 아, 아냐, 카일! 난 정말로 아무 기억도 안 나서, 그게, 그러니까...!"
아나스타샤의 얼굴이 아네모네의 머리색 만큼이나 빨개졌다.
그리고 그건 카일 쪽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잘했습니다, 신시아."
"응? 뭐가뭐가?"
어쩌면 조만간 두 사람의 좋은 소식을 듣게 될지도 모르겠는데.
"그럼 저흰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 저기, 고맙습니다, 성국의 신부님."
"잘 지내, 언니!"
방문이 닫히기 전, 아나스타샤가 우리에게 외쳤다.
"두 사람을! 두 사람을 꼭 공국으로 초대할 테니까요! 꼭 와 주셔야 해요!"
지금까지 들은 목소리 중 가장 밝은 목소리로 말이다.
* * *
"이제 당신들만 남았군요."
흑색 마탑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찾은 마탑주의 방.
길버트가 앉던 그 자리에는 오웨인이 있었다.
"이제 흑색 마탑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오웨인?"
"흑색 마탑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 여전히 강령술과 인형술을 연구할 것이고, 다섯 마탑의 한 축을 차지하겠죠. 그리고 과분합니다만..."
오웨인이 정중히 손을 가슴에 올리고 말했다.
"제가 흑색 마탑주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임시지만요."
"그거 축하할 만한 일이네요. 흑마법사가 마탑주가 된 건 처음 있는 일이라고 들었습니다."
"전 책임 지고 마탑을 떠날 생각까지 하고 있었지만... 다른 분들이 말리더군요. 흑색 마탑에는 당신이 필요하다면서."
그 말을 꺼낸 오웨인의 표정은 밝아 보였다.
비록 길버트는 떠났지만, 오웨인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능력을, 그의 성품을 알아본 수많은 흑색 마탑의 마법사들이 함께 할 것이니 말이다.
"길버트의 편지는 읽어보지 않을 생각입니까?"
"아직은 시기상조입니다. 언젠가 제가 이자리에 어울린다고 생각하면 뜯어볼 생각이에요. 어쩌면 그리 멀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군요."
새로운 흑색 마탑주, 오웨인.
올바른 길을 걷기 시작한 그라면, 분명 역사에 이름을 떨칠 수 있을 것이다.
오웨인은 흑마법사다. 어딘가 이상한, 조금 특별한 흑마법사.
"후후, 이제 마탑주도 되었겠다. 슬슬 이곳을 마왕님의 근거지로 만들 계획을 시작해야겠군요."
"농담 같지 않아서 무서운데요. 혹시 마왕님이란 건..."
"히잇!"
신시아가 내 등 뒤로 숨었다. 앙증맞은 강아지처럼.
"그야 신시아 씨죠.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으으, 신부님, 역시 안경 오빠는 기분 나빠."
성국, 공화국, 제국, 공국. 모든 나라의 사람들은 각자의 장소로 돌아갔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한 명.
"...청색 마탑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청색 마탑은 마탑주를 잃었다.
소환수가 마기에 타락한 일련의 사건은, 소환 마법의 입지를 통째로 뒤흔들 것이다.
수많은 청색의 마법사들이 목숨을 잃은 지금의 상황에서, 그들을 한 데 모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청색 마탑은 무너졌습니다. 하지만 아직 그들의 계통을 이은 사람들은 남아 있죠. 그리고..."
오웨인의 뒤로, 어떤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얀 머리에 푸른 눈을 한 인형 같은 여인.
배론의 소환수이자 청색 마탑의 부마탑주, 티니아.
처음 만났을 때보다 부쩍 인간미가 늘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낯빛은 어두웠다.
"다른 이들은 그녀를 차기 청색 마탑주로 추대하고 싶어 합니다."
"부정.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마탑주의 그릇이 될 기능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뭐, 아직은 이런 상태지만 말입니다."
티니아는 당분간 흑색 마탑이, 오웨인이 맡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비록 베론의 충실한 수족이었던 그녀지만, 마지막에는 자신의 의지로 그에게 거역했으니 그들의 생각이 이해는 간다.
"감사. 베론을, 옛 주인님을 막아주신 것에 감사를 표명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하죠, 티니아."
티니아는 만들어진 존재다. 어떤 소녀를 베이스로, 베론의 연구 성과가 합쳐진 최적의 결과물.
허나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인간'이 아닌 것은 아니다.
"당신은 살아 있습니다. 그걸 명심하세요."
"...의미, 불명?"
티니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앞으로가 걱정되는 그녀지만, 오웨인이 곁에 있어준다면 천천히 변해가겠지.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오웨인."
"잘 있어, 기분 나쁜 안경 오빠!"
흑색 마탑을 나서는 마지막 발걸음.
한참을 망설이던 오웨인이 우리를 향해 입을 열었다.
"치, 친구!"
여유로운 그의 모습은 어디 가고, 소극적인 아이처럼 뻣뻣한 표정으로.
"앞으로 여러분을 '친구'라고, 그렇게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입꼬리를 올린다. 설마 저런 얘기를 입 밖으로 낼 줄이야.
"웃기는 말씀을 하는군요, 오웨인."
언제부터인지는 모른다. 분명 처음부터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말할 수 있다.
"우린 이미 '친구'잖습니까."
"하, 하하하하."
오웨인이 웃었다. 음험하지도 않고, 가식적이지도 않은 순수한 얼굴로.
"여러분이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가겠습니다, 친구."
"언젠가 생크로 와주세요. 첩보가 아닌, 손님으로서."
흑색 마탑을 빠져나오는 길. 주위의 풍경이 보인다.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는 마법사들. 마도구로 가득한 거리의 상점들.
이곳은 앞으로도 영원히 마법의 중심지가 될 것이다.
"어땠나요, 신시아? 마도 공화국은."
나의 물음에, 신시아가 웃는 얼굴로 답했다.
"엄청, 엄청 즐거웠어!"
가벼운 발걸음으로, 우리는 차원문으로 발을 옮겼다.
서둘러 가지 않으면 아네모네와 크리스가 기다릴 것이다.
수도원으로 돌아가면, 일지를 쓰도록 하자.
평생 잊지 못할 어떤 나라의 이야기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