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 외전 4. 상실
* * *
무언가를 상실한 자의 슬픔은, 같은 상실의 아픔을 겪은 자만이 이해할 수 있다.
상실이 무서운 점은, 현실 세계의 일이 심상 세계에도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마음이 뚫리고 부서지며, 비워지고 사그라든다.
그리고 이윽고는 '공허'에 다다른다.
그렇기에 상실을 겪은 자들은 서로에게 끌리게 된다.
누군가의 빈자리를 다른 무언가로 채우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가령, 가족과도 같은 누군가를 잃은 사람들이거나.
* * *
"그럼 말씀하신 대로 진행하겠습니다, 마탑주 님!"
"마탑주 님이 아니라, 오웨인이면 됩니다."
마도 공화국의 다섯 마탑 중 하나, 흑색 마탑.
앞으로의 일에 대해 회의를 끝마친 오웨인은, 마탑 소속의 마법사들을 웃는 얼굴로 배웅하며 하루 일과를 마쳤다.
"후우..."
팔걸이 의자에 앉아 한숨을 내쉰다.
마탑주란 이토록 무거운 짐을 짊어진 자리였구나, 하고 오웨인이 머리를 짚었다.
'대체 마탑주 님은 어떻게 이 일들을 다 해내셨는지.'
자신이 앉은 자리를 바라본다.
책상 위에는 아직 결제되지 않은 서류 더미가 잔뜩 쌓여 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누군가의 명패가 놓여 있다.
모두를 위해 희생한,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의 이름이.
[길버트, 흑색 마탑의 위대한 스승.]
이미 의회의 뜻에 따라 정식으로 흑색 마탑주의 자리에 오른 오웨인이지만, 그는 아직도 자신의 명패를 만들지 않았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 자신은 어디까지나 '임시'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자리는 자신이 잠시 맡고 있을 뿐, 자신에게는 마탑주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렇기에 오웨인은 그의, 길버트의 자리에 앉았다.
'최근에는 골칫거리가 너무 늘었단 말이야.'
흑색 마탑의 부마탑주는 공석으로 남아 있다.
청색 마탑은 재건 중에 있으나, 아직 마탑주에 오를 사람이 결정되지 않아 난항을 겪고 있다고 한다.
베론의 소환수로 인해 파괴된 도시의 흔적은 아직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제국은... 지원을 명목으로 이것저것 이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가장 골치인 건...'
모두가 떠난 방, 누군가가 조심히 벽장 뒤에서 빠져나온다.
백발의 긴 머리에, 사파이어를 박아 넣은 듯 푸르게 빛나는 눈동자.
"안도. 모두 떠났습니다."
"또 그런 곳에 숨어 있던 겁니까, 티니아?"
티니아. 흑색 마탑에서 보호하기로 한 여인이었다.
한때 청색 마탑의 부마탑주였던 자. 베론이 만들어 낸 소환수 중 가장 완성에 가까운 작품.
그와 동시에 주인에게 등을 돌리고 대참사를 막아낸 자. 그렇기에 차기 청색 마탑주에 한 없이 어울리는 자이기도 했다.
"티니아, 언제까지 그렇게 모두의 눈을 피할 작정입니까."
"답변. 저는 죄인입니다. 주인을 지키지도, 주인을 막지도 못했습니다."
흑색 마탑에 오고 나서, 티니아는 계속 이런 상태다.
원래도 무뚝뚝하고 차가웠지만, 요즘은 의기소침하고 무력하기까지 하다.
그녀가 눈을 마주치는 상대는 단 한 명, 오웨인 자신뿐이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도 찾아왔습니다. 청색 마탑의 생존자들이던데."
"...으읏!"
티니아가 그대로 무릎을 굽혀 웅크렸다.
고개를 숙이고 귀를 막았다. 눈을 질끈 감고, 추위에 떠는 아기 고양이처럼 구석에 틀어박혀 덜덜 떨었다.
"부정, 부정. 저는 듣지 못합니다. 의사소통 능력을 상실했습니다."
"그럼 지금 저랑 하고 있는 건 대체 뭡니까."
아무런 목적도, 성취도 없이 하루하루를 무가치하게 보내는 티니아.
오웨인이 보기에, 그녀의 모습은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주인을 잃은 소환수에 관한 논문에서는 분명...'
티니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논문까지 살펴본 오웨인이었지만, 그곳에는 해결법 대신 골치 아픈 연구 결과만 나열되어 있었다.
소환수는 주인이 죽으면 마력 연결이 끊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특히 주인이 창조주일 경우 대개 자살을 선택하며, 그렇지 않더라도 극심한 무기력증에 빠진다.
해결 방법은 소환수를 안락사시키거나, 혹은 새로운 주인을 찾아 주는 방법이 있다.
'주인, 주인이라...'
티니아는 베론이 만들어 낸 소환수다.
어떤 소녀의 죽어가는 육체를 베이스로 하여, 그의 연구 결과가 모두 들어간 최상위의 소환수.
그러던 중, 적색 마탑주 카레니나의 추적 끝에 소녀의 정체가 밝혀졌다.
베론과 혈연 관계, 더 정확히 말하면 친인척 관계에 있던 소녀였다.
아직 베론이 망집에 사로잡히지 않았던 시절, 평소 그와 가깝게 지냈던 소녀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 날, 마법 사고로 일가족이 목숨을 잃었고, 간신히 숨이 붙어 있었던 소녀에게 베론이 불법적으로 실험을 행한 결과가 바로.
"왜 그렇게 제 얼굴을 빤히 보시는 겁니까?"
"당신이 예뻐서 그랬습니다."
"판정. 오웨인 님은 거짓말을 하고 계십니다."
물론 오웨인은 이 사실을 티니아에게 알렸다.
하지만 그녀는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이, '아, 그렇습니까'라고 대답했을 뿐이다.
무얼 생각하고 있는지 알기 힘든 표정으로.
"흐음..."
또다시 방에 정적이 찾아왔다.
티니아는 멍하니 벽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어색한 침묵을 견디지 못한 오웨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티니아, 벌써 흑색 마탑에 온 지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긍정합니다."
"평소에는 뭘 하면서 시간을 보냅니까?"
"시간을... 보내다? 재확인. '시간을 보내다'라는 표현이 뭘 뜻하는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오웨인의 속에 깊은 한숨이 올라왔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지금 그녀는 바위 위에 놓여있는 계란이다. 언제 깨질지 모를, 아슬아슬한 상태란 말이다.
"당신에게도 여가 시간이 있을 것 아닙니까. 그 시간에 무슨 행동을 하는지 궁금한 겁니다."
"대답. 소환수에게 여가 시간은 필요치 않습니다. 오직 주인님을 위해 일할 뿐입니다."
"당신은 소환수가 아니지 않습니까. 아니, 소환수는 맞죠. 그러니까 제 말은..."
"오웨인 님은 재미난 말을 하십니다."
티니아의 순수한 대답에, 오웨인이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그걸 본 티니아는 고개를 갸웃거리기만 할 뿐이다.
"...당신의 오후 일과를 말해보세요."
"오후, 일과. 벽을 멍하니 보거나, 천장에 있는 얼룩의 수를 세거나, 바닥의 타일 개수를 세어본다거나..."
"그게 뭡니까!"
지금의 티니아를 보고, 청색 마탑의 부마탑주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을까.
인간으로서는 완성되지 않은 줄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렇게 생각한 오웨인이 한 가지 방법을 떠올렸다.
"좋아하는 음식은 있습니까?"
"대답. 소환수에게 음식은..."
"당신은 먹지 않습니까. 그것도 세 끼 꼬박꼬박."
"...부정, 하지 않겠습니다."
티니아가 먹어 보지 않았을 음식.
고지식하고 고리타분하며, 주인의 명령 말고는 속세에 아무런 흥미를 가지지 않았을 그녀와 상극인 음료.
"혹시 술은 마셔 봤습니까?"
"...없습니다."
"그럼 한 잔 할까요. 마침 공국의 괜찮은 와인이 들어와서 말이죠."
"거부. 인간에게 알코올은 필수 섭취물이 아닙니다. 알코올은 판단력을 흐리게 하며, 찬란한 지성과 멀어지게 하는 악마의 음료..."
퐁. 티니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오웨인이 어디선가 꺼낸 술병을 열어젖혔다.
"술은 마셔본 적 없다고 했죠? 그렇다면 모르겠군요. 술이 신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부정. 이미 알고 있습니다. 책으로."
"참된 지식은 경험에서 나온다죠."
오웨인이 잔에 술을 따라 티니아에게 건넸다.
"...꿀꺽."
"먼저 드시죠. 당신과는... 솔직하게 얘기하고 싶습니다."
* * *
두 사람 말고는 아무도 없는 방 안.
공기를 뜨겁게 달구는 취기만이 가득했다.
"그렇게 거부한 것치곤, 생각보다 굉장히 잘 드시네요."
"...딸꾹."
얼굴이 새빨갛게 변한 티니아.
혹여나 티니아가 술에 빠질까, 오웨인이 걱정스러운 마음에 물었다.
"이제 그만 드시겠습니까?"
"......"
'이미 한계를 넘었군.'
그렇게 생각한 오웨인이 티니아의 손에서 술잔을 조심스레 빼냈다.
아니, 빼내지 못했다.
"검거. 딸꾹, 제 술을 빼앗는 사람은 용서치 않습니다."
"...그렇게나 맘에 든 겁니까?"
"긍정. 너무 좋습니다."
티니아가 밝은 미소로 답했다.
모르는 사람은 티니아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할 표정으로.
'...혹시 지금이라면.'
흑색 마탑과 청색 마탑. 그 간극으로 인해 마음속에만 담아두었던 응어리를, 오웨인은 이번 기회에 해소하고 싶었다.
"몇 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잔을 홀짝거리며, 티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저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습니까?"
"......"
"당신이 몰래 제 뒤를 쫓아다니는 이유도, 얼굴을 마주치지 못하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까?"
지금도, 지금도 티니아는 오웨인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했다.
"당신이 청색 마탑의 마탑주가 되는 걸 거부하는 이유는..."
"그만해주세요."
티니아가 손을 떨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그녀가 해 온 행동. 무기력증, 탈력감.
그 모든 건, '어떤 사실'을 깨닫는 걸 거부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이 나라는 마왕의 상처에서 회복되고 있습니다. 청색 마탑은 베론 님의 흔적을 지우고, 의회에선 공식적으로 베론 님을 마법계에서 추방했습니다."
상처를 잊기 가장 좋은 방법은, 상처를 입힌 대상을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는 것이다.
"전, 전 베론 님이, 주인님이 남긴 유일한 흔적입니다. 그런 저에게 있을 곳은...!"
"바보 같군요."
오웨인이 티니아의 팔을 부여잡고 그대로 넘어뜨렸다.
티니아의 팔은 너무나도 얇아서, 이대로 건드린다면 툭하고 부러져버릴 것만 같다.
취기 때문일까, '베론', 그자의 이름을 들어서일까.
지금의 오웨인은 평소와 달랐다.
"뭐가 베론입니까. 뭐가 흔적이에요. 당신은 티니아입니다. 제발, 제 앞에서 그자를 언급하지 마세요."
티니아는 오웨인의 눈빛이 무서웠다.
증오를 넘어선 무언가, 후회와 체념이 한 데 어우러진 복잡한 눈동자.
그 너머에 담긴, 자신을 꿰뚫어 보는 자수정의 마안.
그럼에도, 티니아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웨인 님, 당신의 스승은 제 주인님으로 인해 목숨을 잃으셨습니다."
"저는 두 번 말하기 싫어하는 성격입니다."
티니아의 팔을 쥔 오웨인의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저항하지 못한다. 도망치지도 못한다.
그에게 꽉 쥐어져 옴싹달싹도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티니아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의문. 당신은, 당신은 제가 밉지 않습니까? 증오스럽지 않습니까?"
"......"
가끔씩 생각했다. 이미 죽어버린 베론에게 있어 최고의 복수는 무엇일까.
베론에게 얼마 남지 않은 소중한 것은.
"제가."
오웨인이 입을 열었다.
"제가 이 자리에서 당신을 망가뜨리면, 지옥에 있을 당신의 주인은 피눈물을 흘리겠죠."
오웨인의 주위로 검은 번개가 모여든다.
"피를 흘리고, 뼈를 부러뜨리고, 당신의 순정을 범하면... 그것 참 볼만 하겠군요."
아무래도 너무 독한 술이었나 보다.
설마 티니아의 앞에서 이런 말을 할 줄이야.
하지만 오웨인도 어쩔 수 없었다. 마치 자신이 죄인이라도 된 양, 베론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태도.
티니아의 그런 모습을 보니, 이런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분이 풀리지 않을 것만 같았다.
'차라리 떨어. 미안하다고 해.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고개를 저어.'
그런 오웨인과의 바람과는 다르게, 티니아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오웨인 님이 그걸 바라신다면."
그녀의 손길이 조심스레 오웨인의 뺨을 어루만졌다.
"부디,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취기가 올라서일까, 지금의 티니아는 고혹적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라면 괜찮은 게 아닐까. 티니아의 창조주에게 가장 많은 것을 잃어버린 자신이라면, 그녀를 어떻게 다루어도 괜찮은 게 아닐까.
그 찰나의 생각이 지나고.
'...나도 바보군.'
티니아에게 베론은 창조주가 아니라, 양부와 같은 존재였다.
부모는 자식을 세상으로 꺼내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식의 소유권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티니아. 당신이 말했었죠. 자신은 베론이 남긴 흔적이라고."
"......"
"그렇다면 묘비가 되세요."
"묘...비...?"
오웨인이 티니아를 풀어주었다.
입김으로 뿌옇게 변한 안경을 닦으며, 그녀에게 속삭였다.
"죽은 자는 그 무엇도 속박할 수 없습니다. 정녕 당신이 베론의 흔적이 사라지는 걸 원치 않는다면, 묘비가 되세요. 무덤 하나 없이 잊힐 베론을 기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당신 같은 사람이 묘비가 되어주는 수밖에 없으니까요."
오웨인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바보지만 어리석진 않았던 티니아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이제야 깨닫게 된 모순.
티니아는 공화국이 마왕의 공포에서 벗어나길 바랐다.
티니아는 베론의 흔적이 남아있기를 바랐다.
그 두 감정이 섞여, 자신을 '죄인'으로 규정지었다.
"제가 드릴 말은 이것뿐입니다."
"......"
티니아의 얼굴 옆을 따라 무언가가 흐르기 시작했다.
부정하고 싶지만, 반박하고 싶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베론의 소환수 따위가 아니다. 존경받아 마땅했을 대마법사 베론을 알고 있는 유일한 양녀. 그것이 자신이었다.
"...잇겠습니다."
"결심이 든 건가요."
티니아의 눈이 푸른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베론이 마지막으로 남긴 모든 술식. 그것이 담겨 있는 청색 마탑의 정수.
"저는... 청색 마탑의 마법사입니다. 주인님이, 아버님이 평생을 바친 마탑의 부마탑주."
"이제야 마법사답군요."
아직 청색 마탑은 사라지지 않았다.
티니아가 남아 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아직 베론이 남긴, 베론조차 풀지 못한 비술이 담겨 있다.
그녀를 따를 사람이 있다. 그녀가 돌아갈 공간이 있다. 그것만 있다면, '청색 마탑'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내일이라도 당장 연락해야겠네요. 청색 마탑의 차기 마탑주가 마음을 굳혔다고."
홀가분한 미소를 지으며 오웨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오웨인 님, 그전에 잠시."
"네? 갑자기 무슨... 읍."
무언가가 오웨인의 입술에 닿았다.
티니아의 차갑지만 부드러운 입술이, 그가 방심한 찰나의 순간에 자신에게 다가왔다.
두 사람의 타액이 한참을 섞이다, 덤덤한 표정으로 티니아가 먼저 입을 뗐다.
"티, 티, 티니아? 이게 대체 무슨...?"
"주인님이 읽어 준 동화책에 나와 있었습니다. 감사를 표하기 위해 키스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후우, 그건 볼에다 하는 겁니다. 그것도 공국의 일부 지역에서나 한정된 인사법이고요."
티니아가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입술의 의미는...?"
"애정을 느낀 사람한테나 입술에 하는 겁니다. 알겠으면 다음부턴 이런 짓은 하지 말..."
오웨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티니아가 다시금 오웨인에게 입을 맞췄다.
발그레한 표정으로 혀를 할짝거리면서.
"정정. 그렇다면 전, 착각하지 않았습니다."
"......!"
이때를 기점으로, 오웨인의 기억이 뚝하고 끊겼다.
* * *
"으윽, 머리가...."
오웨인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짓누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경이..."
"여기 있습니다, 오웨인 님."
"아, 감사합니다."
익숙한 목소리가 그에게 안경을 건넸다.
"...티니아?"
안경을 통해 눈앞에 보인 것은... 티니아였다.
엉망진창으로 구겨진 옷으로 가슴만 간신히 가린, 실 한 올 걸치지 않은 나체의 모습으로.
"...제가 혹시 당신에게 무슨 짓을?"
"다행입니다, 오웨인 님. 당신이 말한 일이 대부분 이뤄졌습니다."
정말로 안심이 되었다는 듯, 티니아가 자애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제 몸에 피를 흘리게 하고, 제 순정도 빼앗으셨습니다."
"네?"
"이제 제 뼈만 부러뜨리시면, 오웨인 님이 말씀하신 대로 되는 겁니다."
티니아가 눈을 꼭 감고 팔을 건넸다.
티니아의 몸 이곳저곳에 남은 흔적들. 지난밤을 설명하는 수상한 자국들.
'생각할 게... 더 늘었어.'
오웨인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조만간 로렌스 씨를 찾아가자. 그리고 그에게 고해성사를 하자,라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