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 견습 이단심문관(1)
* * *
"두 사람 다 표정이 왜 그래요?"
그렇고 그런 일이 있었던 다음 날.
평범하기 그지없는 식사 자리에서 아네모네가 우리에게 물었다.
"......"
"뭐, 뭐가 말이야, 아네모네? 난 전혀 모르겠는데? 헤헤."
애써 웃음으로 넘어가 보려는 신시아였지만... 이미 표정에서 감정이 묻어져 나오고 있다.
"아까부터 둘이 눈도 안 마주치고, 어쩌다 만나면 얼굴부터 붉히고. 혹시 둘이 싸운 거예요?"
"싸우다니, 설마! 나랑 신부님은, 그, 사이 엄청 좋은걸!"
사이가 좋다라...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문제지.
"그치, 신부니임~?"
"흠흠, 신시아의 말이 맞습니다. 싸우다뇨. 말도 안 되죠."
억지 웃음을 지어 보이지만, 아네모네는 의심을 풀지 않는다.
예전부터 눈치가 빠른 그녀였지만, 오늘은 단단히 날을 잡은 듯하다.
"으음... 못 믿겠어, 못 믿겠어요!"
"또 뭐가 말입니까, 아네모네."
"진짜로 안 싸운 거면, '그거' 한 번 해보세요, '그거'!"
아니, '그게' 뭐란 말인가.
"이거요, 이거! 아앙."
아네모네가 입을 크게 벌리더니, 그대로 눈을 감았다.
그런 식으로 소리를 낼 만한 동작이라면 분명...
"신시아, 잠시만 실례할게요."
"응? 으응? 신부님 잠깐..."
아네모네가 똑바로 볼 수 있도록, 그대로 신시아의 가슴을 주무른다.
오해를 풀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충분히 감수해야만 하기에.
"신부님, 잠, 읏, 아앙♥"
"지,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예요!"
음? 이게 아닌가?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를 확인하는 행위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아네모네가 말한 대로 '아앙' 소리가 나오지 않았는가.
"이게 아니면 또 뭘 말하는 겁니까."
"서로 식사 떠먹여 주기요! 역시, 역시 신부 오빠는 변태예요! 제 눈은 틀리지 않았어요!"
"아니, 그렇게 말할 것까지야."
떠먹여 주는 게 뭐가 어렵다고 그러는지.
그러고 보니 최근에 아네모네의 방에 수상한 책이 잔뜩 쌓여 있던데... 언제 한번 자매님들을 불러 청소를 해야겠군.
"신부님! 로렌스 신부님!"
마침 맞게 베티 수녀가 식당으로 찾아왔다.
급한 일이라도 있는 듯, 숨을 헐떡이며.
"무슨 일입니까, 베티? 그렇게 숨을 내몰아쉬고..."
"손님이! 손님이 찾아왔는데, 그게...!"
베티가 다음으로 내뱉은 말은, 우리에게 적잖이 충격을 주었다.
"이단, 이단심문관이 찾아 왔어요...!"
* * *
이단심문관이란 무엇인가.
성국의 전역을 돌아다니며, 이단으로 의심되는 상대를 체포하여 심문하는 뒤편의 수호자.
특히 이단심문관의 집단인 '이단심문회'의 국장은, 재판을 거치지 않고 죄인을 직접 처단할 수 있는 즉결 심판권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실체는, 성국 내의 더러운 일을 전담하는 스페셜리스트들이지.'
성서 대신 총을 들고, 로자리오 대신 칼을 뽑아 든다.
일 대 일이라면 그 어떤 상대든 승기를 잡을 수 있다. 수도사 정도를 제외하면.
그들은 그림자에서 살기 때문에, 평범한 성직자라면 이단심문관을 볼 일이 드물다.
...자신이 이단으로 의심받을 짓을 하지 않는 이상.
"베티 자매님. 혹시 에델은 아니었습니까?"
"에델 자매님이었으면 제가 진작 알아봤을 거예요!"
그렇겠지. 순간 에델이 온 건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녀라면 이단심문관의 복장이 아닌, 수녀복을 입고 왔을 것이다.
'드레이크 부국장인가? 아니면 아예 다른 사람?'
아니, 그보다 어째서 이단심문관이 온 거지?
물론 의심 가는 곳이 하나 있긴 하다.
마도 공화국에서 흑색 마탑의 지원을 받은 일. 혹시나 싶어 외부에는 알리지 않았지만, 충분히 가능성은 있다.
흑색 마탑이 흑마법사들과 계약을 맺기 시작한 시점부터, 그곳은 이단심문회의 블랙리스트에 올랐으니까.
'누가 되었든, 생크 수도원을 공격한다면... 나도 가만있진 않을 거다.'
"저기, 저 사람이에요!"
베티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 어떤 자의 모습이 보인다.
검은색으로 뒤덮인 제복. 거기에 모습을 감추기 위해 눌러쓴 후드.
저 자는 이단심문관이 분명하다.
'체형으로 보면 여자인데... 그럼 설마 키리에 국장?'
...설사 국장님이라 하더라도 물러설 순 없다.
비록 과거에 이단심문회에 몸 담은 적 있어도, 지금은 다르니까.
생크 수도원의 신부로서 모두를 지킬 의무가 있다.
"누구십니까, 당신은."
이단심문회의 사람이라면, 날 못 알아볼 리 없으리라.
낯선 이를 가로막고 정체를 물은 그 순간.
"아, 혹시 로렌스 씨?"
가늘고 작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키리에 국장은 분명 아니다. 그런데... 분명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인데...
"제가 로렌스는 맞습니다만..."
"아, 맞았다! 드디어 찾았어!"
이단심문관이 갑자기 제자리에서 폴짝 뛰어올랐다.
아니, 이단심문관이 맞는 건가? 이런 경박한 성격을 가진 사람은 본 적 없는데.
"신부님, 저 사람 대체 누구야?"
"저도 모르겠습니다."
'모른다'. 그 말을 듣자, 갑자기 눈앞의 여자가 충격이라도 받은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 모른다뇨! 로렌스 오빠, 절 잊어버리신 거예요?"
"로렌스... 오빠?"
신시아의 눈빛이 매섭게 변하기 시작했다.
신부님, 신부 오빠, 로렌스, 로렌스 씨, 로렌스 님.
많은 호칭으로 불리고 있지만, '로렌스 오빠'라고 날 부르는 건 신시아가 유일하니까.
"신부니, 흠흠, 로렌스 오빠. 이 여자 누구야? 또 아는 사람?"
"아뇨, 신시아. 이번엔 진짜로 모르는 사람입니다!"
뭔가 이상하다. 어째서 내가 신시아에게 변명을 해야 하는 건가.
"아까부터 계속 모른다, 모른다! 저예요, 저! 이러면 알아보시겠어요?"
낯선 여자가 덮고 있던 후드를 벗었다.
대체 누구길래 이런 말을 하는가. 나를 '로렌스 오빠'라고 부를 만한 사람은 기껏해야 신시아와 아네모네 정도...
"아."
맞다. 한 명 더 있었지.
내가 아직 이단심문관이었을 시절, 내 뒤를 졸졸 뒤따르던 꼬맹이.
그때는 귀찮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름의 호의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후드를 벗자 드러난 것은, 검은 머리를 양갈래로 땋은 여자 아이.
아니, 이제는 아이라고도 부를 수 없겠군. 성인식은 이미 지났을 테니.
"...당신이었군요, 디나."
"이제야 알아보시는 거예요, 로렌스 오빠?"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고 나를 바라보는 이 여자의 이름은 '디나'.
이단심문관 시절 같이 지냈던 녀석이자... 드레이크의 여동생이다.
"야, 양갈래 머리...! 신부님, 대체 누군데 그래!"
"제 상사의 여동생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전' 상사이긴 하지만요."
"그, 그래? 헤헤, 다행이다! 그럼 별 상관없는 사이지?"
신시아가 안도의 한숨을 짓는다.
이게 소유욕이 넘치는 연인을 둔 기분이라는 건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신시아의 기대처럼 아무런 사이도 아니진 않았다.
"상관없다뇨! 저랑은 2년 넘게 알고 지낸 사이잖아요!"
"2년? 그럼 나보다도 더 오랜...!"
굳이 따지면 2년이긴 하다.
같이 있는 시간으로 따지면, 일어날 때부터 잠들 때까지 계속 함께 있는 신시아 쪽이 몇십 배는 더 길긴 하지만.
"거기다 만날 때마다 도시락도 싸드리고!"
"도시락? 애정이 담긴?"
애정은 모르겠고, 자신의 오빠인 드레이크의 도시락을 싸면서 겸사겸사 내 것까지 만든 것뿐이다.
"게다가, 게다가..."
이번엔 또 무슨 오해를 살려고 뜸을 들이는 것인가.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얼굴을 붉히더니, 디나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겨, 겨, 결혼 약속도 했고요..."
"...네?"
결혼 약속이라니, 대체 그게 무슨 소리야.
이번 건 농담으로라도 웃어넘길 수 없는 얘기다. 신시아가 괜한 오해라도 하면...!
"신부님."
아. 이미 늦었나.
검은 날개 한쪽을 편 채, 죽은 눈으로 날 바라보는 신시아의 모습은... 마왕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다.
"신부님, 거짓말 한 거야? 내가 처음이었다는 것도?"
"처, 처음?"
뒤따라 오던 아네모네가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꺄' 거리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만히 뒀다간 오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얘기하죠. 베티, 차를 만들어 주시겠어요?"
이왕이면 마음에 진정을 주는 차로.
* * *
"로렌스 오빠는 어째서 이단심문관이 된 거예요?"
오전 훈련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던 중, 어느 꼬맹이가 내 옆에 앉아 물었다. 당돌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나의 선배인 '드레이크'의 여동생이라고 들었기에, 함부로 쳐내기도 곤란했다.
그건 그렇고, '이단심문관'이 왜 되었다라... 오랜만에 듣는 질문이다.
"나에게 이단심문관의 소질이 있었기 때문이지."
나의 스승, 오를란도 사제.
성직자 학교에서 겉돌던 나를 이끌어 준 분이기도 하다.
그분이 말했다. 너에겐 이단심문관의 소질이 있다고. 그렇기에 지원했다.
이단심문관으로서의 사명 따윈 가지고 있지 않다. 그저 성국의 '적'인 자들을 전부 총으로 쏴버리고 싶었을 뿐.
내가 있을 만한 자리는 이곳, 이단심문회 밖에 없었기에.
그런 보잘것없는 이유로 나는 이단심문관이 되었다.
"그럼, 원래는 어떤 직업이 하고 싶었는데요?"
하고 싶은 직업. 그런 건 생각해 본 적 없다.
중요한 건 '무엇을 할 수 있느냐'였다. 거기에 내 감정은 굳이 집어넣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친구였던 알베르는 신부를 해보라고 하긴 했는데.ㄴ
"없었어. 뭘 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럼 후회 같은 건 안 해요?"
당돌한 소녀의 질문은 끝이 없었다.
후회라. 그런 건 이미 수도 없이 했다.
하지만 어느샌가 깨달았다. 후회 따위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
중요한 건 명령뿐이다. 성국의 안녕뿐이다. 그걸 위해서라면, 내 손이 아무리 피에 물들어도 별 상관없었다.
"후회 안 해."
"흐음, 그렇구나! 히힛, 저도 언젠가 오빠처럼 멋진 이단심문관이 되고 싶거든요!"
"오빠, 라면. 드레이크 씨?"
"둘 다요!"
소녀의 페이스에 휘말려 한참을 얘기하다, 드레이크가 디나를 데려가기 위해 나에게 왔다.
"아, 드레이크 오빠!"
"잘 있었니, 디나?"
드레이크는 자신의 여동생 앞에선 엄청난 웃음이 나온다.
평소에는 조금도 표정 변화가 없는데, 어떻게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지.
"응! 로렌스 오빠가 놀아줬어!"
"그래? 잘 됐네. 흠흠, 수고 많았다, 로렌스. 애 돌보기에도 재능이 있군."
"과찬이십니다."
디나는 내년부터 성직자 학교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머리를 쓰는 일은 질색이라, 성기사나 이단심문관에 지원한다고 말했었지.
"있지, 오빠. 디나는 멋진 이단심문관이 될 거야! 오빠들처럼!"
"그거 잘 됐구나. 디나라면 분명 멋진 이단심문관이 될 수 있을 거야."
디나의 저 밝은 웃음이 어떻게 일그러질까. 그걸 생각하면 쓴웃음밖에 지어지지 않았다.
"있지, 로렌스 오빠. 내가 멋진 숙녀가 되면... 오빠를 따라가도 될까?"
나를 따라가고 싶다는 건... 아마 그걸 말하는 거겠지.
페어 시스템. 두 명의 이단심문관이 합을 이루어 임무를 수행하는 제도.
때에 따라선 실력 차이가 많이 나는 심문관을 함께 편성하여, 멘토와 멘티 체제로 일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이지, 디나."
내 말에, 디나의 표정이 환히 밝아졌다.
"...후우. 너라면 디나를 맡길 수 있겠지. 잘 부탁한다, 로렌스."
"자, 잘 부탁해, 로렌스 오빠!"
* * *
"그게 결혼 약속이었다고요?"
"다, 당연하죠! 여자의 마음을 뭘로 아는 건가요, 대체!"
아니, 약속이라고 하기엔 너무 뭉뚱 그려서 말하지 않았는가.
아, 그래서 그런 거였나. 드레이크가 특별히 나한테 더 많은 훈련을 시켰던 것도, 이단심문회를 떠나자 죽일 기세로 나를 대하는 것도.
"뭐야~. 그런 거였구나! 헤헤, 난 처음부터 믿고 있었어, 신부님!"
상쾌한 웃음을 짓는 신시아.
분명 거짓말이다. 만약 내가 정말로 그런 짓을 했다면, 지금쯤 수도원이 반 정도 날아갔으리라.
"그건 둘째 치고... 대체 왜 절 찾아온 겁니까?"
"응? 이미 편지로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무슨 편지요?"
그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며 외쳤다.
"로렌스 신부님! 편지 왔습니다!"
평소 편지를 배달해 주는 청년의 목소리.
그렇다는 건 설마...
"디나. 혹시 편지를 보내고 바로 출발한 건가요?"
"네! 한시라도 빨리 로렌스 오빠를 만나고 싶어서요!"
디나의 해맑은 미소에 두통이 밀려온다.
그래, 이런 아이였지, 디나는.
"흠흠,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오빠!"
"잘 부탁드린다뇨? 앞으로? 대체 뭘 부탁한 겁니까?"
답답한 나의 질문에, 내 속도 모르는 디나가 해맑은 얼굴로 답했다.
"수행이요! 견습 이단심문관으로서, 로렌스 오빠의 밑에서 수행을 하기 위해서 온 거죠!"
머리가 아파온다. 불길한 예감은 항상 틀리지 않는구나.
...일단, 죽일 듯한 표정을 한 신시아부터 달래줘야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