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 견습 이단심문관(2)
* * *
[디나를 너에게 보낸다. 확실히 가르치도록.]
드레이크에게 받은 편지의 내용은 이게 전부였다.
편지보다 먼저 도착한 디나도 디나지만, 말의 앞뒤를 싹 다 잘라먹고 이런 식으로만 보내는 드레이크도 만만치 않다.
'그 오빠에 그 여동생이로군.'
"그럼 다시 한번 잘 부탁드립니다, 로렌스 오빠!"
"...후우, 알겠습니다."
옛날에 한 약속도 있으니, 일단은 해봐야지.
차라리 빠르게 번듯한 이단심문관으로 교육시켜 돌려보내는 편이 모두에게 이로울 것이다.
"그건 그렇고 디나, 정말로 이단심문관을 선택한 겁니까?"
"그야 물론이죠! 저희 오빠처럼 멋있는 사람이 되는 게 꿈인 걸요!"
디나의 눈빛에는 여전히 생기가 가득하다.
나와 에델이 막 견습 딱지를 떼었을 무렵의 표정을 생각하면... 그녀의 긍정성 하나만큼은 인정해줘야 할 듯싶다.
"디나라면 성기사가 더 어울릴 거라 생각했는데."
"성기사도 멋지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갑옷을 입으면 땀 냄새가 많이 밸 것 같아서..."
"이단심문관은 피 냄새가 밸 겁니다."
"...그런가요."
딱히 농담은 아니다. 성국의 온갖 더러운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손에 피를 묻힐 수밖에 없으니까.
당장 나만 해도, 이단심문관으로서의 첫 임무에서 손에 피를 묻혔으니.
다른 누구도 아닌 양아버지의 피를.
"흠흠, 그렇게 어두운 표정을 지을 필요는 없습니다. 심문관이 처단하는 대상은 '이단', 성국의 적이니까요."
"여, 역시 그렇죠? 무고한 사람을 해칠 일은..."
"있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그릇된 판단을 한다면."
"으으, 대체 어떤 말을 하고 싶은 건가요, 로렌스 오빠!"
디나가 입을 삐쭉 내민다. 저 표정만큼은 어린 시절과 똑같구나.
"우우우우우...!"
그리고 그건 신시아도 마찬가지다. 아까부터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고는, 팔짱을 끼고 '흥' 같은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렸다.
"신시아, 또 왜 그러는 건가요."
"됐네요. 전 잘 모르겠거든요! 귀여운 여동생 씨랑 마음껏 꽁냥꽁냥 거리시죠. 흥, 흥!"
"진짜로 그러면 화낼 것 아닙니까."
"당연하잖아!"
자기랑 나이 차이도 없는 동갑에게 저렇게 굴 줄이야.
가끔 보면 신시아의 성인식을 뒤로 미뤄야 하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다.
'성인식, 성인식이라. 그러고 보면 정말 얼마 안 남았군.'
성인식은 생애 가장 특별한 생일이기도 하다.
물론 신시아가 언제 태어났는지는 알 수 없어, 내 임의로 그녀의 생일을 정했다.
나와 신시아가 처음 만난 날. 원래는 그날로 정하려고 했지만... 그만뒀다.
그 이전까지 있었던 신시아의 인생. 그걸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신시아는 무슨 날이 좋나요?
...여름이 끝나는 날. 더운 건, 싫어.
그럼 그날을 축하하도록 하죠. 신시아의 '생일'로.
그렇게 신시아의 생일이 정해졌다.
8월의 마지막 날, 여름이 끝나가는 마지막 날.
'앞으로 두 달 정도밖에 안 남았군. 그러고 보니, 분명 곧 있으면 에델의 생일이었지.'
조만간 얼굴이나 볼까. 디나의 수행이 어느 정도 끝나고 나면, 직접 얼굴이나 내밀어야겠다.
...이단심문회. 예전에 몸을 담갔던 그곳에 말이다.
"수행을 받고 싶다고 했죠, 디나?"
"네, 넵! 이대로는 한 사람 몫의 이단심문관이 될 수 없다고 드레이크 오빠가 말해서요!"
그건 분명 드레이크의 기준이 너무 높아서 그런 것이다.
뭐가 어찌 됐든, 난 내가 맡은 책무를 다하는 성격이다. 그것이 보호자의 역할이든, 교관의 역할이든 말이다.
"좋습니다. 그럼 수도원의 마당에서 뵙죠."
"아, 지금 말인가요? 일단 짐부터 풀고..."
"임무 중에 느긋하게 있을 시간이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심문관 실격이군요, 디나."
"죄, 죄송합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에게 보낸 걸 후회하게 만들어 주마, 드레이크.
* * *
수도원의 뒤편에 있는 마당.
전투의 감을 잃지 않기 위해 평소 자주 이용하는 수련장이기도 하다.
이단심문관에게 가장 중요한 요건 첫 번째, 이단을 사냥할 수 있을 정도의 '전투력'이다.
"준비는 되었나요, 디나?"
"네. 로렌스 오빠랑 마주 보고 있으니 조금 긴장되네요... 헤헤."
조금 거리를 두고 디나와 마주 섰다.
성기사처럼 튼튼하지도, 사제처럼 성법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것도 아닌 이단심문관에게 거리 조절은 필수니까.
"잘 어울리는 제복이네요, 디나."
"감사합니다! 사실은 그게, 저한테 맞는 체형이 드물어서 가슴 부분을 개조한..."
탕.
디나의 옆으로 총탄이 스쳐 지나간다.
비록 위력을 조절한 연습용 탄환이긴 하지만, 맞으면 멍이 들 정도는 될 것이다.
"로, 로, 로렌스 오빠? 갑자기 이게 무슨...!"
"아니, 그런 건 알고 싶지 않습니다. 전장에선 집중해야죠, 디나. 이런 사탕발림에 바로 넘어가다니."
"너, 너무해요, 오빠! 제가 얼마나 두근거렸는데!"
"뭐, 제복이 잘 어울리는 건 사실이지만요."
디나의 표정이 다시 풀어졌다. 길거리에 나도는 슬라임처럼.
"저, 정말요? 헤헤, 역시 고민한 보람이 있..."
타앙.
이번엔 반대쪽으로 스치는 총알. 방금보다 더 얼굴에 가깝게 쐈다.
"집중하라고 했죠? 다음엔 이마에 정통으로 쏠 겁니다."
"죄, 죄송합니다...!"
디나가 재빨리 총을 꺼내 임전 태세를 취한다.
훈련이 시작되고 45초가 지나서야 총을 뽑다니.
"디나, 교육을 하나 할까요?"
손에 든 총을 손바닥으로 툭툭 두드렸다.
"이단심문회의 심벌에 그려져 있는 것이 뭔 지 압니까?"
"안 속아요. 또 그 사이에 총을 쏠 속셈이죠?"
이제 기본은 됐군.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빨리 대답하지 않으면 진짜로 쏠 겁니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교차된 두 자루의 총. 맞죠?"
그렇다. '이단심문관'하면 떠오르는 건 '총'. 그리고 '총'하면 떠오르는 건 '이단심문관'이다.
공국과 성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는 총을 사용하지 않는다.
제작 과정이 복잡할뿐더러, 총은 명예를 깎아 먹는다는 것이 그 이유다.
특히 제국의 기사들이 그러하다. 총이라면 질색을 하며 싫어하니.
"총이 어디서 기원했는지, 어째서 이단심문관들이 총을 주로 사용하는지 아십니까?"
"음... 그건 생각해 본 적 없어요."
"그럼 이번 기회에 알려드리죠."
총을 처음으로 발명한 나라는 공국이다.
기술자를 우대하는 공국에서 처음으로 총이 발명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처음에는 귀족의 취미 중 하나였던 '사냥'을 위해 개발되었지만, 군사적인 목적으로 개량되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하지만 정작 공국 내에선 이런 모양의 총을 거의 찾아볼 수 없죠."
총은 약자에게 너무나도 강한 힘을 건넸다.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 있었던 대공(大?) 암살 사건을 끝으로, 병사를 제외한 일반인은 총을 소유할 수 없도록 법으로 정해졌다.
아무런 수련도 하지 않은 약자가, 방아쇠를 당긴 것만으로 위대한 지도자의 목숨을 빼앗았다.
강자가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금지한 것이 바로 총이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저희 이단심문관들은 칼을 들고 다녔습니다. 참수도(???)라고 불리는 무기 말이죠."
내가 빌려 쓰고 있는 성유물, '세바스'도 참수도의 일종이다.
그러던 중, 이단심문회의 초대 국장에 의해 총이 수입되었다.
"총은 이단심문관과 어마어마한 시너지를 냈습니다. 명예보다 효율을 중시하는 우리에게, 총은 디메리트가 조금도 없는 완벽한 무기였으니까요."
총알을 신성력으로 대체하고, 오직 이단만을 죽이기 위해 총을 손에 쥐도록 맹세받았다.
그것이 이단심문회의 시초, 총을 든 심문관의 탄생이다.
"물론 검도 쓰고, 말뚝이나 단검을 쓰기도 합니다. 하지만 역시 주가 되는 건 총이죠. 디나, 당신도 총은 쏠 수 있겠죠?"
"그야 물론이죠! 이래 봬도 졸업 시험에선 최고 성적이었다고요!"
"그럼 보여주시죠. 당신이 지금까지 배운 걸."
"...다쳐도 전 몰라요?"
꽤나 자신감을 보이는군. 하기사, 총을 쏘는 데 가장 중요한 건 흔들림 없는 마음가짐이니까.
"그럼, 시작할게요!"
디나의 양손에 한 자루 씩 총이 들린다.
총기술(???)의 기본은 속전속결. 눈으로 따라갈 수 없는 쾌(?).
목표한 대상이 눈치챘을 땐, 이미 심장이 터져있어야 한다.
"속도는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궤도가 너무 정직하군요."
디나의 총에서 빛으로 된 탄환이 격발 된다.
나의 머리를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오는 탄환. 하지만 이미 궤적이 읽힌 탄환이 내게 닿을 일은 없었다.
"피, 피했어?"
"저희가 사냥할 이단은 과녁이 아닙니다. 가만히 있어주지 않아요."
발 끝에 신성력을 담아 강하게 뛰쳐나간다.
총의 단점 중 하나, 일정량의 탄환을 사출하고 나면 재장전 시간이 생긴다.
아무리 신성력을 원료로 하더라도, 충 안에 탄환을 만드는 데는 시간이 걸리니까.
"급소는 머리 한 군데가 아닙니다."
순식간에 디나의 앞으로 다가선다.
급하게 가드를 올려보는 디나지만... 역시나 너무 정직해.
"팔꿈치, 허벅지, 발목 뒤편, 목, 배."
"크읏...!"
디나의 급소를 가격한다.
'가격'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건드리는 것 정도밖에 안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가슴."
"히얏! 어, 어딜 만지는 거예요!"
"변태 신부님! 어딜 만지는 거야!"
나무 그늘에 앉아 우릴 구경하고 있던 신시아도 동시에 소릴 질렀다.
아니, 기껏해야 심장 부근을 건드렸을 뿐이다. 실전이었으면 어쩌려고.
"...특히 심장이 있는 곳을 노리면 좋습니다. 관절을 노리면 행동불능, 근육을 노리면 재기불능으로 만들 수 있죠."
"이거... 놔요!"
나에게 팔목을 붙잡힌 디나가 관절을 꺾어 빠져나갔다.
그리고 바닥에 드러눕더니...
"이것도 한 번 막아보세요!"
'휠윈드?'
그대로 사방을 총알 투성이로 만들었다.
휠윈드. 초대 국장이 고안한 전방위 제압 기술.
다른 사람이라면 당했을 수도 있겠지만...
"꺄앗!"
"이미 에델에게 질리도록 당한 기술입니다."
그대로 디나의 발목을 잡아 거꾸로 들었다.
에델의 휠윈드에 비하면, 디나의 휠윈드는 바람개비 수준이다.
눈에 훤히 보이는 공격 방식, 책에 나온 걸 우직하게 재현하는 교과서 같은 스타일.
어째서 드레이크가 내게 디나를 보냈는지 알 것 같군.
"놔, 놔 주세요...!"
"실전에서도 그럴 생각입니까? 적에게 구걸하면서?"
'아니, 저, 그게 아니라..."
분명 소질은 있다. 의지도 있고, 사격 실력도 출중하다.
하지만 그 정돈 누구나 따라갈 수 있는 경지다. 자기만의 전투 스타일을 고안해 내지 못하면 결국 도태될 뿐이다.
시간을 들여 꼼꼼히 가르쳐야...
"신부님, 지금 뭐 하는 거야!"
"또 뭐가 문제입니까, 신시아?"
신시아를 바라보자, 그녀가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켰다.
...내 눈앞? 대체 뭐가 있다고 그런
"...아."
"패, 팬티가 보이잖아요..."
중력 때문에 아래로 젖힌 치마 사이로 드러난 흰색의 천.
아까부터 디나가 저항하지 못한 이유는 이거였나.
"흠흠, 미안합니다, 디나."
"...괜찮아요. 로렌스 오빠니까."
만약 드레이크가 봤다고 생각하면... 어우.
"어쨌든 이걸로 테스트는 끝입니다."
"어, 어땠나요?"
"전형적인 모범생이었습니다. 가르쳐 준 건 뭐든 할 수 있는, 하지만 그 이상은 하지 않는."
"으으, 역시 그런가요..."
풀이 죽은 디나가 고개를 숙였다.
...과거의 나라면 그냥 돌아섰겠지만.
"그래도 가능성이 엿보입니다."
굳이 차가운 태도를 취할 이유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모든 사람은 변할 수 있다는 걸 배웠기에.
내가 그랬듯이. 신시아가, 아네모네가 그랬듯이.
"약속했잖습니까. 당신을 번듯한 이단심문관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로렌스 오빠..."
"자, 일어나세요. 다음 훈련입니다."
그러니까 디나도 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 * *
이단심문회의 총본부.
검은 제복을 입은 수많은 남녀들이 줄을 지어 서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있는 건
"어머, 설마 네가 이곳에 돌아올 줄은 몰랐는데."
로렌스와 같은 회색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미려한 외모의 여성.
"잘 지내셨나 보네요, 국장."
그리고, 검은 머리를 한 데 묶은 여인이었다.
국장 키리에와, 일급 이단심문관 에델바이스.
긴 악연을 넘어, 그 둘이 다시금 같은 장소에 마주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