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 견습 이단심문관(3)
* * *
성국에는 공식적으로 다섯 집단이 있다.
추기경의 밑에서 신의 뜻을 탐구하고 성법을 연구하는 '사제'.
길 잃은 어린양을 보살피기 위해 성국 전역으로 퍼져 신의 뜻을 설파하는 '신부'와 '수녀'.
검과 방패를 들고 악에 맞서 신도를 지키는 '성기사'.
성국 안에 존재하는 '이단'이라는 싹을 뿌리 뽑는 '이단심문관'.
그리고 이들 모두를 감시하여 그릇된 길로 빠지지 않도록 막는 '수도사'.
이들 다섯 집단에는 그들을 이끄는 수장이 존재한다.
사제들의 수장은 '추기경'이다. 교황을 보좌하는 세 명의 추기경은 각자를 견제, 보완하며 성국을 이끌어 나간다.
신부와 수녀들의 수장은 명시되어 있진 않으나, 굳이 따지자면 '성녀'라고 할 수 있다. 성녀의 말 한 마디에는, 수많은 신도들을 이끌 힘이 있기 때문이다.
성기사의 수장은 성기사단장이다. 모든 성기사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남자, '리날도'. 그가 성국의 유일한 기사단장이다.
수도사의 수장은 대대로 '잿빛 수도원'이라는 곳의 수도원장이 맡았다. 그러나 지금 대의 수장은 나이도, 성별도 알려져 있지 않다.
그리고 마지막, 이단심문관의 수장.
이단심문관은 '이단심문회'라는 단체를 설립하여 그들 스스로의 명예를 이어왔다. 따라서 이단심문회의 국장이 곧 이단심문관의 수장이 된다.
그리고 그녀가 바로
* * *
"저도 돌아오고 싶진 않았어요, 키리에 국장님."
에델이 자신의 앞에 있는 여성을 쳐다보았다.
등까지 타고 내려오는 회색 빛깔의 머리. 제복 너머로 드러나는 매끈한 곡선의 몸.
그리고 저 눈. 무엇을 보는지, 무엇을 생각하는지 조차 알 수 없는 칠흑빛의 눈. 그 눈을 볼 때마다 에델의 몸은 움츠러들었다.
"너무 그런 말은 하지 마렴, 에델. 섭섭하잖니."
의자에 앉아 고고한 태도로 자신을 바라보는 자는... 이단심문회의 국장으로 있는 자다.
국장 키리에. 풀네임은, '키리에 발랑틴'.
"우린 '자매'잖니."
"자매라뇨, 그런 소름 돋는 말을. 그저 같은 사제님께 세례를 받았을 뿐인데."
에델은 애써 키리에의 시선을 피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에델은 키리에가 꺼려졌다.
언제나 자신을 여동생이라고 부르지만, 그녀의 눈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 의자는 또 뭔가요? 여왕이라도 될 속셈?"
금박으로 장식된 화려한 의자.
입고 있는 제복과는 맞지 않는 양식에, 에델은 질색을 표했다.
마치 자신을 여왕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여왕, 여왕이라... 그래,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
키리에가 자리에서 일어나 에델에게 다가갔다.
또각, 또각. 그녀의 신발에서 나는 굽소리에 맞춰, 에델의 심장이 요동쳤다.
에델의 앞에 멈춰 선 키리에가 에델의 턱을 집어 자신에게 당겼다.
마치 맘에 드는 인형을 고르는 것처럼.
"에델, 내 사랑스러운 여동생."
"이 손 놔주시죠, 국장님."
"아아... 어쩜. 그 반항적인 눈빛조차 사랑스러워."
키리에가 그대로 에델의 등에 손을 뻗었다.
제복 속에 손을 넣어 에델의 피부를 매만지고, 목부터 허리까지 쓸어 넣어 감촉을 느꼈다.
"...흐읏."
"난 알고 있었어. 언젠간 네가 내 곁으로 돌아오리라고. 그 로렌스인가 뭔가 하는 남자를 따라간다고 했을 때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말야."
키리에의 손가락이 에델의 허리 아래쪽에 닿았다.
그와 동시에 에델의 몸이 흠칫 떨리기 시작했다.
"...그만해요."
"에델이 그렇게 말하면 그만둬야지. 오늘이 마지막 날도 아니니까."
이래서 싫었다. 이래서 오지 않았다.
저 여자는 자신을 속박하려 한다. 마치 제일 좋아하는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처럼.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키리에의 밑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높은 등급의 이단심문관이 될 수 없었다.
에델, 난 너를...
에델의 머릿속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알베르. 그녀와 연이 있었던, 그녀를 좋아했던 옛 소꿉친구.
하지만 결국 악의 길에 타락해 버린 이단자.
난 앞으로 나아갈게.
그리고 다음으로 울리는 목소리는... 로렌스의 것이었다.
로렌스는 그의 친우를 앞에 두고 말했다.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그리고 그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를 죽인 죄업. 에델이, 자신이 그걸 짊어지겠다고 말했기에.
그녀 역시 멈춰 서 있어선 안 됐다. 앞을 향해 움직여야만 했다.
그렇기에 돌아왔다. '이단심문회'라는 좋지 않은 기억의 장소에.
"표정이 안 좋네, 에델? 혹시 몸이 안 좋기라도 한 거니?"
"당신 때문이잖아요. 이 빌어먹을 언니가."
"어, 언니? 방금 언니라고 불러 준 거니, 에델?"
키리에가 양 팔로 자신의 몸을 부둥켜안으며 떨기 시작했다.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쾌락을 느낀 창부처럼.
"아아... 역시 널 망가뜨리지 않고 내버려두길 잘했어. 넌 내 여동생'들' 중 최고였으니까 말이야."
얼굴을 붉힌 채 가쁜 숨을 내쉬며 키리에가 말을 이었다.
주위에 있는 이단심문관들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이것이 이단심문회다. 키리에를 중심으로 세워진 이단심문관들만의 왕국.
"에델, 이젠 어디에도 가지 않을 거지? 이 언니를 두고 매정하게 떠나버리지 않을 거지?"
말의 형태는 부탁이었으나, 눈빛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협박. 자신을 떠나는 순간 목숨을 끊어주겠다는 협박.
키리에의 말에 에델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다시 로렌스에게 돌아가기 위해선, 이런 치욕은 몇 번이든 참아야 했으니까.
"떠나지 않을게요. 적어도 당신이 비참하게 죽기 전까진."
"그래. 그거면 된 거야, 에델. 넌 내 최고의 보물이니까."
장난감 중에선 최고의 보물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에델은 어금니를 꽉 물었다.
"정말 좋은 타이밍에 왔어, 에델. 너도 이미 드레이크에게 들어서 알고 있겠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흐음, 그걸 알면서도 돌아온 거구나. 에델에게도 말괄량이 같은 구석이 있네."
키리에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심복 두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미리 준비한 지도를 반대쪽 벽에 붙였다.
대륙의 전도(??). 그 한가운데에 있는 성국.
철컥. 키리에가 총을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빵야, 푸훗."
지도의 한 복판에 작은 구멍을 뚫었다.
성국의 수도, 닌우르타. 그곳을 꿰뚫는 구멍을 말이다.
"시대가 변하고 있어.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지도자가 필요한 법이니까."
키리에가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모두가 침묵한 가운데, 소리를 내는 건 오직 그녀 한 명.
에델은 주먹을 꽉 쥐며 애써 표정을 관리했다.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야말로 '옳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발, 성도로는 오지 말아 줘, 로렌스. 그냥 그대로 생크에, 평화로운 마을에서 웃음을 지어 줘. 그러면 모두 끝나 있을 테니까.'
* * *
"꺄앗!"
"주저앉아 있을 틈 없습니다. 일어나세요!"
"알겠... 습니다!"
디나가 우리 수도원에 신세를 진 지도 벌써 2주일가량 지났다.
번듯한 이단심문관으로 만들겠다고 한 건 나지만... 이건 놀라울 정돈데.
"왼쪽, 오른쪽, 다시 왼쪽에서 두 방. 좋았어!"
"좋았어, 라뇨. 그런 말 할 여유는 없을 텐데."
"꺄악!"
처음 겨뤘을 때만 해도 몇 합조차 받아내지 못한 디나였으나, 지금은 10분가량 싸워도 크게 밀리지 않을 만큼 성장했다.
그 오빠에 그 여동생이라고, 재능 하나만큼은 닮은 건가.
"바로 1 대 다(?) 훈련으로 넘어가겠습니다."
훈련장 여기저기에 쓰러져 있던 나무인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아는 흑마법사, 지금은 흑색 마탑의 마탑주로 있는 어떤 남자에게 받은 선물 중 하나다.
처음엔 어떻게 쓰라는 건지 애매했지만, 설마 이런 식으로 사용할 수 있을 줄이야.
"끄기기기긱."
"쉽게 당하진 않아요!"
디나가 인형을 밟고 하늘 높이 뛰어올랐다.
그대로 뒤로 돌면서, 찰나의 사이 십수 발에 달하는 탄환을 쏘아대는 그녀.
처음에는 '이게 대체 뭔가요~!'라고 말하면서 허둥댔는데, 이젠 어느 정도 대처력이 생겼다.
"나쁘지 않군요. 여기까지만 할까요?"
"아직, 아직 괜찮아요! 로렌스 오빠, 어서 다음!"
"호오, 이제 그런 식으로 나올 정도로 힘이 남아도나 보군요. 그렇다면."
총을 땅에 내려놓고 손을 뻗었다.
이제 허접한 무기에는 어느 정도 익숙해진 것 같으니까... '진짜'를 보여줄 차례다.
"세바스(안식일)."
근처에 놓여 있던 검 형태의 성유물, 세바스가 내 손에 안착했다.
영롱하게 빛나는 청록색의 검신. 이걸 본 디나의 반응은.
"그, 그, 그건 뭔가요, 대체!"
"뭐긴요. 당신이 상대할 적의 무기죠."
"그거 성유물이죠? 반칙, 반칙이에요! 그런 엄청난 걸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실전에서 그런 변명은 통하지 않습니다. 자, 어서 몸을 움직이세요."
아직 모범생의 안 좋은 버릇은 못 고쳤군.
결과를 예측해 미리 속단해버리는 것. 저 태도를 고쳐야 1인분의 이단심문관의 역할을 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살살, 살살 부탁드릴게요오...?"
"단죄."
"잠만, 누가 봐도 강력해 보이는 이름의 기술이잖아요, 그거!"
본래 비장의 기술이란 적이 방심한 그 틈에 사용하는 것이 제일이다.
결정적인 순간에만 기술을 쓸 거란 생각은 흔히 있는 착각이지.
"자, 피해 보세요. 맞아도 죽진 않을 겁니다."
"히이이잇!"
그 순간, 옆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신부니임! 디나! 간식 시간이야!"
"이것 좀 드셔 보세요!"
간식이 든 바구니를 든 채 이쪽으로 달려오는 신시아와 아네모네.
디나의 훈련, 그리고 신시아의 수제 간식.
내가 뭘 더 중요하게 생각할지는 이미 정해져 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죠."
"히이잇... 네? 정말요?"
세바스를 대충 바닥에 내던진다.
신시아가 나를 위해 손수 간식을 만들어줬는데, 훈련이 무슨 대수랴.
"방금 훈련도 실전처럼 한다고 하시지 않..."
"정말 실전이었다면, 3초 안에 상대를 죽이고 피를 닦으며 신시아에게 다가갔을 겁니다."
"...로렌스 오빠, 신시아 씨의 얘기만 나오면 다른 사람이 되네요."
다른 사람이라니, 말이 심하군.
나는 전혀 이상하지 않다. 오히려 신시아를 앞에 두고 감탄 조차 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의 눈이 이상한 것이다.
"봐, 신부님! 나랑 아네모네가 샌드위치를 만들어 봤어!"
"이사도라 언니랑 베티 언니도 도와줬지만 말이에요..."
신시아의 웃음과 신시아의 샌드위치, 그리고 신시아의 향기.
천국이 있다면 분명 이곳이겠지.
"자, 여기! 이건 신부님 꺼! 내가 특별한 재료를 넣어서 만들어 봤어!"
"...후우, 감동입니다, 신시아."
신시아가 건넨 샌드위치를 집어 든다.
부드러운 빵 사이로 두툼하게 들어간 속재료. 고소해 보이는 햄과 치즈 위에, 신선한 양배추와 토마토가 올라가 있다.
"중간에 흘러나오는 빨간 소스는 핫소스인가요?"
"...일단 먹어 줘, 신부님."
훗, 이런 장난을. 보나마나 매운 소스를 듬뿍 뿌린 거겠지.
하지만 아직 어린 소녀들의 귀여운 장난이다. 어른으로서 한번쯤은 넘어가 줘야 하는 법.
'어차피 매운맛은 잘 못 느끼니까.'
그대로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예상대로 입에 가득 퍼지는 매콤한, 매콤한...
"어때, 신부님? 맛있어?"
"...비릿하네요."
이제는 오히려 익숙한 맛이다. '사랑의 주술'인가 뭔가 하는 책은 분명 버렸을 텐데.
"히힛, 에헤헷."
그래도 저렇게 밝게 웃는 신시아의 얼굴을 보니, 이것도 나쁘진 않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오히려 맛있게 느껴진다. 신시아의 일부분을 먹는다고 생각하니, 알 수 없는 배덕감이 나를...
"쿨럭, 커헉! 하마터면 넘어갈 뻔했군요, 신시아."
"...칫."
"피를 매개로 한 정신 조작, 이건 이미 '사랑의 주술'도 뭣도 아니지 않습니까! 아네모네, 당신이 도왔죠?"
"저, 저요? 전 잘 모르겠네요오... 헤헤."
휘, 휘 소리를 내며 잘 부르지도 못하는 휘파람을 부는 시늉을 하는 아네모네. 성녀가 아니라 소악마에 가까운 모습이다.
"아참! 그러고 보니 편지가 하나 왔어요!"
"화제 돌리기인가요, 아네모네?"
"아니에요! 정말인데...!"
주섬주섬거리더니, 아네모네가 품에서 편지 한 장을 꺼냈다.
편지. 또 편지다. 이걸 받을 때마다 무슨 일이 벌어지던데.
"어디 볼까요."
딱히 수상한 점은 없는 평범한 편지지.
그 겉에 커다랗게 그려져 있는 'H'라는 글자.
"누구야? 누가 보낸 편지야, 신부님?"
"호, 혹시 드레이크 오빠인가요?"
이 시기에 올 편지라면 하나밖에 생각할 수 없다.
특히 H로 시작하는 인물이 보낼 만한 편지면 말이다.
아마도 이걸 보낸 사람은... 여자를 좋아하는 주제에 제대로 사귀어 본 적 없는 가짜 난봉꾼.
일에 치여 살다가도 친구의 일이면 바로 달려가는 그런 녀석일 것이다.
"예상대로네요."
한스 크라운. 같은 스승을 둔 동문이자, 내 몇 안 되는 친구 중 하나.
"한스가 보낸 편지입니다. 에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성도에서 모이자고 말이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