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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매님에게는 마왕의 소질이 있다-74화 (74/109)

〈 74화 〉 친구를 위한 선물

* * *

'생일? 그런 건 관심 없어.'

11살의 에델이 한 말이다.

'내 생일 말이야? 이미 지났어.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고.'

14살의 에델이 한 말이다.

'생일은 무슨 생일이야. 당장 시험이 코 앞인데.'

16살의 에델이 한 말이다.

'저기, 로렌스. 오늘이 혹시 무슨 날인 줄 알아?'

'그런 말 할 시간에 임무에 집중해라.'

...20살의 내가 한 말이다.

그리고 올해. 나와 에델, 그리고 다른 친구들은 벌써 20대 후반을 달리고

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에델에게 마땅한 생일잔치도 못 해줬으니.

한스의 편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

로렌스에게.

살아 있냐, 로렌스?

공화국에서 뭘 하고 다녔는지는 잘 봤다. 신문에 네 사진이 큼지막하게 박혔던데? 친구한테 말도 안 하고 그런 짓을 하고 다니다니 말이야.

스승님도 걱정이 많으셨어. 뭐, 아무튼 무사해서 다행이다.

설마 겨우 안부 인사나 하려고 편지를 부친 건 아니겠지, 라고 생각하고 있지? 네 생각대로야.

곧 에델의 생일이야. 설마 잊어버린 건 아니겠지?

모두 모이기로 했어. 에델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서 말이지.

나는 물론이고, 크리스에, 잘하면 로제리오도 올 지 몰라. 본인의 일이 거의 끝났다고 편지를 전해 왔거든.

당연히 너도 올 거지? 에델, 네가 안 오면 엄청 섭섭해할 걸.

약속 장소는 성도야. 못 올 것 같으면 미리 연락 줘. 엉엉 울어버릴 에델을 위로할 멘트를 짜야하거든.

...그래도 웬만하면 와라. 꼭 와, 자식아.

10년지기야, 10년지기. 게다가 넌 우리보다 에델을 오랫동안 봐 왔잖아?

그동안 생일 파티 한번 못 해줬어. 그러니까 이번이 기회라고.

그럼 기다리고 있을게!

p.s. 같이 공화국에 갔을 때, 혹시 크리스가 나에 대해 말하거나 한 거 없어? 혹시나 해서 묻는 거야.

한스 크라운 보냄.

­­­

"아무래도 다들 마음에 걸렸나 봅니다. 한스나 크리스, 심지어 로제리오도 생일 때 모두 모여 축하를 한 기억이 있는데."

"에델 언니요? 에델 언니 말이죠?"

아네모네가 눈을 반짝거리며 되물었다.

원래 이런 행사라면 빠지지 않는 성격에다, 아네모네는 에델을 특히 더 좋아하기도 했으니.

"에델, 에델... 서, 설마 제가 아는 그 에델바이스 님을 말하는 건가요?"

눈을 반짝이는 건 디나도 마찬가지였다.

것보다 에델바이스 '님'이라니, 대체 뭘 에델바이스가 뭘 어떻게 했길래 '님'이라는 말이 붙은 것인가.

"맞네요, 맞아! 분명 로렌스 오빠랑 에델바이스 님이 같이 다니는 걸 많이 본 것 같아요! 세상에, 설마 두 분이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니!"

"둘도 없는 친구 사이긴 하죠."

신시아의 눈이 무섭게 변하기 전에 먼저 선수를 쳐야지.

"흐음, 그러고 보니 디나는 에델을 볼 기회가 별로 없었겠군요. 저와 드레이크 씨와는 다르게, 에델은 다른 곳에서 따로 훈련을 받았으니까요."

나와 에델은 거의 동시에 정식 이단심문관으로 인정받았다.

그 전까지는 서로 얼굴을 보는 일은 거의 드물었으니.

내가 알기론, 에델은 '그녀'의 밑에서 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이단심문회의 국장, 키리에. 같은 '발랑틴'이라는 성을 가진 그 여자의 밑에서 말이다.

'어쩌다 보니 제대로 된 생일 선물 하나 해주지 못했군. 오를란도 추기경님의 제자로 들어간 후에는 생일 같은 건 챙기지 않았고, 그 후로는 내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으니.'

생일을 챙겨준다면 올해가 좋을 것이다.

세월의 흐름이 빠른 것도 있지만... 우리에게 '내년'이 있을지 조차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불확실한 것이 나의 미래든, 에델의 미래든, 아니면 이 세상의 운명이든 말이다.

"신부님, 어떻게 할 생각이야?"

"물론 가야죠. 다른 누구도 아닌 에델의 생일이니까요."

"후훗, 역시 신부님이야!"

에델의 생일이 불과 일주일 뒤니, 그때까지 여러 준비를 끝마쳐 놓아야 한다.

수도원의 업무를 한 번에 처리하고, 이사도라와 베티에게 해야 할 업무를 미리 알려주고. 후우, 또 실망하겠군. 그 두 사람.

"생일 선물! 생일 선물은 어떻게 할 거야?"

"...생일 선물이요?"

굳이 생일 선물이라고 할 것까지야. 맛있는 밥 한 끼나 머리장식 정도면 끝나는 문제 아닌가.

"신부님. 설마 머리장식 같은 걸로 때우려는 생각은 아니겠지?"

"...역시 독심술을 사용할 수 있게 됐군요, 신시아."

"진짜! 신부님은 여자의 마음을 너무 몰라!"

아니. 같은 남자의 마음도 알지 못하는 것이 사람인데, 어떻게 여자의 마음을 알겠는가.

이단심문관의 훈련 중 '통찰'이 있긴 하지만, 좋아하는 선물 취향까지 알아내기는 힘든 법이다.

"가자, 신부님! 최고로 멋진 선물을 고르는 거야!"

"지금 말인가요? 성도에서 골라도 늦지 않..."

"후우, 이래서 신부님이 둔하다는 거야. 소중한 사람의 생일 선물을 만나기 직전, 그것도 현지에서 산다고? 으으..."

신시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네모네와 디나가 '응응' 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한다.

여자들의 마음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자, 어서 따라와! 오늘 하루는 에델 언니를 위해 투자할 거니까!"

"잠깐만요. 그래도 디나의 훈련은 끝마치고 나서..."

"저, 전 괜찮아요! 자, 빨리 가자구요, 로렌스 오빠."

* * *

추위가 가고 여름이 다가오기 시작한 날씨라 그런지, 거리에는 지나다니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토종 농산물을 파는 가게 주인, 다른 지역에서 온 행상인, 직접 만든 장신구를 파는 아낙네들까지.

"이곳도 오랜만에 오는군요. 안 그런가요, 신시..."

"이거 봐, 아네모네! 네가 좋아하는 토끼야!"

한눈만 팔았다 하면 이상한 곳에 가 있단 말이지.

초롱초롱한 눈으로 토끼를 바라보는 신시아와... 여전히 침을 흘리며 토끼를 노리는 아네모네의 모습이 교차한다.

"오늘 저녁은 토끼 스튜로 해드릴까요, 아네모네?"

"가, 갑하기 무흔 마흠을 하히는 거헤오?"

"흐르는 침은 닦고 말하시죠."

"츄릅."

토끼, 토끼라. 그래, 저 위에 있는 커다란 토끼 인형은 어떨까?

­토끼 인형? ...로렌스, 날 대체 몇 살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이런 건 어린애들이나 가지고 노는 거라고.

...그렇게 말할 게 뻔하다.

신시아는 동물 인형만 주면 좋아라 하던데. 물론 전부 회색이지만.

"자, 쌉니다, 싸요!"

저 멀리, 익숙한 상인의 목소리가 들린다.

신시아와 함께 자주 들렀던 장신구 가게. 신시아와 아네모네에게 준 선물도 저곳에서 샀지.

신시아의 머리에 있는 제비꽃 머리핀. 아네모네의 머리에 있는 아네모네 머리핀. 에델에게도 머리핀을 주는 건... 역시 너무 수수하다.

"로렌스 오빠. 그럼 저건 어때요?"

디나가 어떤 가판대를 가리켰다. 이 날씨에 두꺼운 로브를 뒤집어 입은 어떤 여인의 가판대.

판매 상품은 작은 약병에 담겨 있는 액체... 향수인가?

"어머, 어서 오세요. 여성 분께 드릴 선물을 찾고 계시나 보죠? 그것도 아주 소중한 분께."

"어, 어떻게 안 건가요?"

"후훗. 제겐 보이거든요. 여러분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디나의 얼굴에 당황한 낯빛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렇게 놀랄 건 없다. 이런 건 간단한 관찰로도 대강 알 수 있으니.

건장한 남자인 내가 토끼 인형을 뚫어지게 쳐다본 것. 여성용 장신구 가게를 들락날락거린 것. 그리고 이 근처를 돌아다니며 나눈 대화.

거기다 '소중한 사람'이라니. 그럼 선물을 소중한 사람에게 주지, 다른 누구에게 주겠는가. 점쟁이들이나 자주 쓰는 하찮은 수법이다.

"그런 여러분께 제가 추천드리는 건 이거랍니다. 모두 남왕국에서 수입해 온 진짜들이죠."

여인이 가판대 아래에서 상자를 꺼내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척 봐도 고급스러운 장식으로 꾸며진 고급 상자. 보아 하니 이 가게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건 바로 저 상자임이 분명했다.

"여기에는 여러 향수가 있답니다. 먼저 이것. 이 향수는 뿌린 여성의 몸을 더욱 매력적이고 어른스럽게 만들어 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마법사들도 실패한 성장의 비술 말인가요? 참나, 굉장히 재미있는 말을..."

"살게요!"

앞으로 나선 건 아네모네였다.

악의 속삭임에 현혹된 어린양들을 구원할 성녀가, 길거리 상인의 말에 홀라당 넘어간다고?

"이것만, 이것만 있으면 저도 말캉말캉...!"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아네모네! 당장 돌려놓으세요!"

"그리고 이 향수는, 이성에게 호감을 살 수 있는 향을 낸답니다."

흥. 원래 향수의 목적 중 하나는 이성에게 호감을 사기 위한 것이다. 저런 포장된 말에 넘어갈 사람은.

"이, 이성에게? 저! 제가 살게요!"

그래, 있었지. 디나가 전부 사들일 기세로 주머니에서 금화를 꺼냈다.

"디나, 당신도 관심 있는 남자가 있었나요?"

"저, 그게, 이걸 쓰면 드레이크 오빠가 한 번 쯤은 돌아봐 주지 않을까 해서..."

그래, 그랬지. 디나는 답도 없는 오빠 바라기다.

옛날에 '디나는 커서 누구랑 결혼할 거야?'라고 사람들이 물었을 때도, 당당하게 '디나는 오빠랑 결혼할 거야!'라고 해서 큰 웃음을 샀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그 성격이 이어진 걸 보면... 흐음.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향수. 이건 조금 특이한데, 본인이 아니라 상대에게 뿌리는 용도죠."

"무슨 효과입니까? 들어나 봅시다."

"놀라지 마세요? 무려 뿌린 상대가 처음으로 바라본 상대에게 뿅 가버리게 하는 향수랍니다!"

차라리 매혹 마법이 담겨있다고 해라.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신부님, 여길 봐!"

"신시아? 갑자기 무슨... 쿨럭."

­치이이이익.

나의 안면에 사정없이 뿌려지는 지독한 향수.

어찌나 많이 뿌렸는지, 숨이 막혀 눈물이 나올 지경이다.

"신부님, 어때? 눈앞에 뭐가 보여?"

"...제 얼굴을 꽉 잡고 있는 신시아의 얼굴이 보이네요."

"어때? 두근거려? 막 날 안고 싶어서 안달이 나 못 참겠어?"

"저런 물건에 당할 리가 없잖습니까. 설사 저게 진품이라 하더라도 저한텐 통할 리가 없고요."

나한텐 대부분의 약물이나 저주가 듣지 않으니까.

덕분에 한번 상처를 입으면 강력한 성법 말고는 통하지 않게 됐지만.

"그런 향수 같은 거에 의존하지 않아도, 전 언제나 신시아에게 두근거립니다. 이렇게 꼭 껴안고 싶을 정도로."

"시, 신부님?"

그러니까 지금 두근거리는 이 심장은, 확실한 나 스스로의 마음이다.

품 안에 쏙 들어오는 조그만 머리도, 얼굴을 가까이 대면 은근히 풍기는 달큰한 피부 향기도 모두 다 내가 느끼는 사랑스러움이다.

"그러니까 이상한 짓은 그만하죠."

"으, 응..."

* * *

어느덧 하늘이 붉은 노을빛으로 물들었다.

길거리를 가득 메우던 사람도 흩어지고, 장사꾼들도 하나 둘 점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결국 아직 에델에게 줄 선물은 고르지 못했군요."

"다른 물건은 엄청 사버렸지만요."

"청빈한 태도는 이단심문관의 기본 조건입니다. 돌아가면 정신 교육부터 다시 시작해야겠군요."

아무리 해도 좋은 선물이 떠오르지 않는다.

먹을 것? 성도로 가는 도중에 상하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옷이나 머리장식? 고르는 것마다 아네모네와 디나에게 '무겁다', '센스가 별로다'라는 말을 들었다.

전투용품? 생일 선물로 그런 걸 주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어쩔 수 없군. 오늘은 그만 포기하고, 성도에 도착하면...'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눈에 어떤 물건이 비쳤다.

검고 얇은, 그리고 기다란 무언가. 에델이 '저걸' 사용한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어울리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전에 에델이 잠자코 저런 걸 사용해 줄까 싶지만.

"...전 이걸로 하겠습니다."

"뭔데요, 신부 오빠? 아, 저거면 괜찮네요! 결국 머리장식이랑 별 반 차이 없는 선물 같긴 하지만."

아무렴 어떠랴. 선물은 결국 주는 사람의 마음이 중요하니까.

­머리는 왜 안 자르냐고? 흥. 굳이 자르지 않아도 방해만 안 되면 되잖아?

언젠가 에델이 내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임무에 방해가 되니 머리를 짧게 자르는 건 어떠냐고, 그런 망언을 서슴없이 해버렸지.

그러니까 이건 그에 대한 사죄 겸 보답이다. 내 옆을 지켜 준, 소중한 친구를 위한 선물.

'에델이 좋아하면 좋겠는데.'

그런데 지금 그녀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니, 굳이 지금 궁금해할 필요는 없겠지. 곧 성도에서 에델을 만날 수 있을 테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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