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자매님에게는 마왕의 소질이 있다-76화 (76/109)

〈 76화 〉 수면 아래에서(2)

* * *

­절그럭.

햇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감옥 안. 흔들리는 촛불에 의지하며 크리스가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절그럭.

쇠사슬로 묶인 두 손. 족쇄가 걸린 발목. 성법의 사용을 막는 특수한 저주가 걸린 족쇄가 크리스의 기운을 앗아간다.

­절그럭.

그럼에도 가장 크리스를 절망에 빠뜨린 것은 지금의 참담한 상황이 아니다. 감옥에 갇힌 것 따위, 고결한 그녀의 정신에는 조금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

손에서 나는 비릿한 피 냄새. 크리스의 마음을 갉아먹는 그 냄새가 어디로도 사라지지 않는다. 크리스는 그것이 가장 싫었다.

­절그럭.

성기사는 무릇 '지키는 자'를 상징한다. 약자를 지키고, 전우를 지키고, 충성을 바친 자를 지키고, 신앙을 지킨다.

하지만 크리스는 무엇 하나 지키지 못했다. 성기사를 동경하는 어린 소녀였을 뿐인데, 그녀의 후배는 참혹한 시체로 변해 그녀를 맞이했다.

­절그럭.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닿은 크리스의 손에는... 지워지지 않을 피 냄새가 배어버렸다.

보이지 않는 후배의 모습에 걱정하고, 여기저기 부서진 성벽의 모습에 위화감을 느끼며, 마침내 후배의 시신을 바라봤을 때는­.

"으흑, 으아아아아아­!"

귀를 막고 싶었다. 눈을 가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녀는 죄인일지도 모르는 몸이기에. 그녀의 손을 결박한 쇠사슬이 그 같은 행동을 막았기에.

­절그럭.

크리스가 쇠사슬을 비볐다. 맞부딪힌 금속은 귀를 찌르는 듯한 소음을 내며 절그럭거렸다.

그 위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진다. 이제는 말라비틀어졌을 눈물이.

* * *

"크리스가 범인일 리 없지 않습니까!"

한스의 멱살을 붙잡고 말했다. 그저 같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범인으로 몰리다니, 성도에는 바보들만 모여 있는 건가?

"오히려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로렌스."

더 화낼 힘도 없다는 듯이, 한스는 조용히 내 팔을 떼어냈다.

평소에도 지쳐 보였던 한스지만, 지금 바라본 그의 얼굴은... 염세적이기까지 했다. 지금 일어나는 모든 상황에 질린 채로.

"단장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 누구보다 크리스를 가까이서 지켜봐 왔던 분이니까. 하지만 어쩔 수 없었지. 이단심문관들이 입을 모아 그녀가 범인이라고 말하고 있으니까."

이단심문관에게는 살인 사건의 수사를 맡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

'죄 없는 자의 목숨을 앗아간 시점에서 범인은 이단이다'라는 논리를 들이밀며 말이다. 그리고 나 역시 이런 일은 몇 번이고 해왔고.

지금 상황에서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다른 이단심문관들은 모두 눈이옹이 구멍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이다.

"이번 일은 제가 맡겠습니다. 허접한 이단심문관들에게 맡길 바에야, 제가 직접 확인하는 편이 확실하니까요."

"하지만 로렌스, 넌 더 이상 이단심문관이..."

"내가 허락하지."

우리의 뒤에서 천천히 걸어온 사람은... 리날도 씨였다.

상처 투성이인 그의 얼굴은 지쳐 보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로렌스, 만약 크리스가 범인이라는 결과가 나와도, 꿋꿋이 진실을 밝혀낼 마음이 있나?"

"절 잘 아실 텐데요, 리날도 씨."

"...그래, 그렇겠지. 넌 거짓말을 잘하는 성격이 아니니까."

리날도 씨가 몇 걸음 다가오더니, 그대로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너에게 모든 권리를 양도하겠네. 난...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없어."

"크리스가 범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결코. 이단심문회만 아니었다면 크리스티나를 가장 먼저 변호했을 사람은 나야."

리날도 씨가 자신의 어깨에서 견장을 떼 나에게 건넸다.

성국 유일의 기시단, 성기사단. 그곳의 장(?)을 맡고 있다는 상징. 황금색과 붉은색이 섞인 견장.

그가 내게 이걸 건네줬다는 뜻은 하나다. 이 사건에는 리날도 씨가 개입하기 곤란한 어떤 문제가 연관되어 있다는 것.

'신시아와 아네모네에게 말해야겠어. 며칠 정도 늦어질 것 같다고.'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리날도 씨의 뒤에서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다.

"...로렌스 오빠."

"디나? 여긴 어째서..."

"저도 마냥 어린애는 아니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디나의 두 눈에선 결의가 느껴졌다.

죽은 자의 마지막 순간을 파헤치는 일은 결코 마음 편한 일이 아니다.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의 경우, 죽은 자의 심정과 지나치게 깊숙이 공감해버려 정신적인 외상을 입기도 한다.

아직 이단심문관보다는 일반인에 가까울 디나를 부르고 싶지는 않았지만...

"저도 알아야 하잖아요. 도망치면 안 되잖아요. 이런 일을 해결하는 게 이단심문관이니까, 저의 일이니까."

이미 그녀는 이단심문관으로서의 길을 한 걸음 내디뎠다.

"나도 같이 가, 로렌스. 크리스의 편이 되어 줄 사람이 한 명은 있어야 하잖아."

"...알겠습니다."

리날도 씨의 견장을 어깨에 얹었다.

불합리한 누군가의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서. 그녀를 죽인 수면 아래의 그림자를 찾아내기 위해서.

* * *

어느덧 해가 지기 시작한 시간. 누군가의 죽음을 구경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흩어지고, 무거운 공기만이 주위를 가득 채웠다.

"그럼, 지금까지 조사한 내용을 조합해 보죠."

알아야 할 것은 세 가지다.

첫째, 피해자는 어떤 자였는가. 그리고 어째서 죽임을 당했는가.

둘째, 피해자는 언제, 어디서 죽음을 맞았는가.

셋째, 그렇다면 법인의 정체는 대체 무엇인가.

"죽은 성기사의 이름은 마리나 포르베아. 크리스와 같은 세례를 받은 고아 출신이야. 혈통이 특이한 것도 아니고, 크게 눈에 띄는 구석도 없었지."

포르베아... 하필이면 크리스와 같은 성을 쓰는 성기사였다니. 크리스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짐작 조차 되지 않는다.

"원한을 산 흔적도 없어. 오히려 주위에게 호감을 사는 성격이었지. 성기사단 내에서는... 후우, 활력소 같은 존재였다고."

종이를 쥔 한스의 손이 부들거리며 떨렸다. 이 세상에 죽지 않는 사람은 없어도, 죽지 않았으면 하는 사람은 있으니까.

"디나, 다음은 당신입니다."

"네, 네! 흠흠, 마리나 씨는 성벽 순찰 임무를 섰다고 해요. 크리스티나 씨와 같이. 보통 시간차를 두고 둘씩 번갈아 가면서 교대로 순찰하는데, 피해자의 강력한 의지로 크리스티나 씨와 섰다고 들었어요."

두 사람이 같은 시간대에 같이 있었던 이유는, 순전히 마리나의 변심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크리스의 결백을 입증하기엔 약하다.

"마리나가 발견된 장소는..."

"성벽 아래였죠. 피해자가 순찰하던 경로. 무언가가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를 듣고, 성문 쪽의 경비병이 달려갔고..."

"그곳에서 본 건 피해자를 꼭 껴안고 있는 크리스. 맞지? 젠장, 이미 수십 번은 들은 얘기야."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크리스와 마리나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순찰을 했다. 정상적으로 흘러갔다면, 크리스와 마리나가 만나는 건 반대쪽 성문이었겠지.

하지만... 추락 소리를 들은 경비병은 크리스가 마리나의 시체를 껴안은 모습을 봤다고 했다.

"모순이군."

경비병의 말이 사실이라면, 두 가지 가능성만이 남게 된다.

크리스가 거짓말을 했거나, 아니면... 크리스의 기억에 오류가 있거나.

"지금으로선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피해자, 마리나에게 난 상처의 종류만 가지고선 말이죠."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로렌스 오빠? 이대로 가다간 크리스 씨가...!"

이 대륙에서 살인은 중죄다. 특히 성국은 더.

신실한 성직자를 살해한 것은 그 자체만으로 '이단'의 죄가 적용된다. 즉결 심판도 가능할 정도로.

"아니, 그렇게 두지 않습니다."

아직 듣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 이 사건의 중심에 있는, 그럼에도 아직 숨을 쉬고 있는 한 사람.

"크리스에게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 * *

"식사입니다, 크리스티나 님."

고요한 정적만이 가득한 감옥. 그 안에 갇힌 금발의 죄수.

성기사의 갑옷을 입은 어떤 이가 그녀의 감옥에 먹을 것을 밀어 넣었다.

­절그럭.

하지만 크리스는 음식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저 멍하니 자신의 손을 응시하며, 눈물 자국이 선명히 난 얼굴을 바닥에 비빌 뿐이었다.

자신이 존경했던 여기사의 몰락을 보자, 답답한 마음에 말단 성기사가 철창을 잡고 물었다.

"크리스티나 님, 전 믿고 싶지 않습니다. 정말로, 정말로 당신이 마리나를 해친 겁니까?"

"......"

"뭐라고 말 좀 해보십쇼...!"

크리스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를 바라본 크리스의 눈빛은 어둡고 공허했다. 마치 그의 의문과 분노가 당연하다는 듯이.

"이런 빌어먹을!"

탕. 남자가 철창을 발로 찼다.

저건 자신이 알던 '크리스티나 포르베아'가 아니다. 그 신실하고 믿음직스러웠던 성기사가 아니다, 라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그의 뒤에서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렸다.

"지금은 말해봤자 듣지 못할 겁니다."

남자가 뒤로 고개를 돌렸다.

검은 신부복을 입은 남성의 모습이 눈에 보였다. 회색 머리에 호박색 눈을 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신부의 모습이.

"당신은...?"

"로렌스, 로렌스 프랑입니다. 이번 사건을 맡은."

이윽고 로렌스의 뒤로 두 사람이 따라왔다.

양갈래 머리를 한 이단심문관 여성과, 턱수염을 깎지 않은 불량한 차림의 사제.

사건의 해결이라니, 그런 건 성기사와 이단심문관의 몫이다. 눈앞에 있는 남자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자신은 크리스티나에게 접근하는 모든 자를 배제할 임무가­.

"응, 그건?"

그런데 앞에 있는 신부의 옷차림이 조금 이상했다.

어깨에 달려 있는 황금의 견장. 그는 저 견장을 본 적이 있었다. 그 역시 성기사였기 때문에.

"다, 단장님의 견장? 당신은 대체...!"

"알아봐 주시니 감사하네요. 따로 구질구질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겠어요."

남자가 재빨리 옆으로 물러났다. 눈앞의 신부는 적어도 성기사단장과 연관이 있는 사람이 분명했기에.

"많이 수척해졌군요, 크리스."

"......로렌스?"

물 한 잔도 제대로 마시지 못해 수척해진 크리스의 얼굴.

그녀의 비참한 모습을 본 한스는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다.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습니다."

"......"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을 떠올릴 수 있겠습니까?"

"...으윽, 으흐읏!"

­절그럭.

크리스가 머리를 바닥에 박고 신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친구의 저런 모습은 바라보기 힘들다는 듯, 로렌스가 눈을 감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제발, 제발 묻지 말아 주십시오, 로렌스... 전, 저는...!"

"당신을 구할 수 있는 건 당신뿐입니다, 크리스."

"...아무것도,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쉰 로렌스가 말단 성기사에게 다가갔다.

"잠시 열쇠를."

거의 빼앗듯 감옥의 열쇠를 받아 든 로렌스는, 감옥의 문을 열고 크리스의 곁으로 다가갔다.

가까이서 본 크리스의 모습은 중죄인과 다를 바 없었다. 고통에 몸부림치고 지난 기억을 지우려 발광하는.

"크리스, 떠올리셔야 합니다."

"부탁이니 나가주십시오, 로렌스. 한스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조용히 해."

로렌스의 태도가 변했다. 이전에는 없던 험악한 표정으로.

이유는 한 가지다. 그녀가 그녀 답지 않았기 때문이다.

로렌스가 알던 크리스는 이런 약한 사람이 아니었다. 어떤 시련이 닥치더라도 당당히 맞서는 강인한 성기사, 그것이 크리스티나 포르베아일 텐데.

그런데 지금의 모습은... 비에 젖은 어린 짐승이나 다름 없지 않은가.

"이게 마지막 경고야, 크리스. 이대로 입을 다물고 있으면 넌 교수형에 쳐해지겠지. 네가 그토록 바라던 천국에도 가지 못할 거야."

"잠깐, 로렌스! 너,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닌..."

철컹. 로렌스의 주먹이 철창을 강하게 때렸다.

하지만 크리스는... 여전히 초점이 풀린 눈동자로 로렌스의 얼굴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그래, 알겠어, 크리스.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군."

"로렌스, 그만해! 크리스에게 대체 뭘 하려고?"

"...잠시만 가만히 있어 줘, 한스."

로렌스가 장갑을 벗었다. 전투를 할 때든, 일상생활을 할 때든 벗지 않았던 검은색 장갑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야."

로렌스가 크리스의 이마를 붙잡았다. 아무것도 끼지 않은 맨손으로.

그녀의 새하얀 이마에 마법진이, 아니 성법진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아, 아아아아아아­!"

"너의 기억을 드러내라, 크리스."

성법이었다. 로렌스가 사용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성법.

기억의 조작, 기억의 재구성.

이단심문관만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성법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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