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자매님에게는 마왕의 소질이 있다-91화 (91/109)

〈 91화 〉 만개(??) ­ Ep.4 끝

* * *

"생일 축하해, 에델."

"......"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눈을 깜빡였다.

아직 꿈을 꾸고 있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의 뺨을 꼬집어 보았다.

아니, 이것도 착각일 거야. 나도 참, 어지간히 애정에 굶주렸나 보네. 다른 사람도 아닌 로렌스가 선물을 주는 꿈을 꾸고. 둔하기로 소문난 로렌스가.

"아직도 잠에서 덜 깼다는 얼굴을 하고 있네."

로렌스가, 얼굴이 상처투성이인 로렌스가 내 얼굴을 끌어안았다.

흙투성이에 비릿한 피 냄새가 났지만... 너무나 따뜻했다.

얼마나 그려왔던 품일까. 얼마나 부러워했던 품일까. 항상 생각했다. 나도 신시아처럼, 아네모네처럼 어린아이였다면. 그랬다면 로렌스의 품에 안길 수 있었을까.

"이제 악몽은 꾸지 않아도 돼."

로렌스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악몽. 오래되어 바래진 기억 속의 악몽. 방에 틀어박혀, 매일마다 약물을 주입받는 악몽.

다시 떠올릴 때마다 아랫배가 쓰라렸다. 이 낙인은, '발랑틴'의 증거는 어떻게 해도 사라지지 않겠지.

로렌스를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이번에도... 굳게 입술을 다물 거야.

"널 옭아매는 건 이제 없으니까."

그런 나의 다짐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로렌스가 내 눈을 바라보며 말해줬다.

아랫배를 만진다. 낙인이. 지난 25년 동안 나를 붙잡았던 그 지옥의 각인이... 감쪽 같이 사라져 있었다.

"...정말로 꿈이구나."

깨끗해진 아랫배를 봤을 때, 처음으로 지금이 현실이 아닌 꿈속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망상. 몽중(夢中). 부끄러운 망상을, 로렌스와 몸을 섞는, 차마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상상을 할 때마다­. 로렌스가 말해줬다. '정말 깨끗한 몸을 가지고 있구나'라고.

잠에서 깨어나고 바라본 거울 속의 나는, 이미 쇠사슬에 묶여 있는 인형이나 다를 바 없는데.

'...이번에도 즐거운 꿈이었어. 로렌스가 날 안아주는 꿈이라니. 이런 꿈이라면 영영 깨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가 꿈에 나오지 않을 때면, 난 언제나 악몽을 꾸니까.

"꿈 같은 게 아니야."

로렌스가 내 볼을 잡고 양쪽으로 죽 당겼다.

어찌나 세게 잡아당겼는지, 뺨에는 얼얼한 통증이 가득했다.

통증. 통증이 느껴졌다. 이게 꿈이 아니라는, 현실이라는 증거가.

"로, 로엔으... 아하..."

"아프라고 당기는 거야. 언제까지 몽롱한 얼굴로 있을 건데?"

...시야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로렌스의 얼굴의 흐려지고, 얼굴이 축축해졌다.

"...흑, 으흑."

꼬집은 게 아파서? 아니, 아니야.

기뻐서. 너무 기뻐서. 로렌스가 내 앞에 있다는 게,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던 소중한 사람이 곁에 있는 게 너무 기뻐서.

하염없이 눈물만이 흘러내렸다.

"로렌스, 나..."

기쁨이라는 감정이 잦아들고 찾아온 것은, 죄책감과 후회였다.

뜻을 함께 했던 동료를 죽게 내버려 두었다. 드레이크 부국장은 어떻게 됐을까. 크리스는? 크리스는 어떻게 됐지?

"나, 나 대체 무슨 짓을­."

물거품이 수면 위로 떠오르듯, 기억과 현실이 짜 맞춰지기 시작했다.

키리에를 막지 못했다. 그녀가 내뿜는 위압감에, 과거의 악몽에 져버리고 말았다.

그 다음은 어떻게 했지? 그 여자에게... 아양을 떨고... 이 성도를 멸망시키려고...!

"난, 나는, 대체 뭐 때문에...!"

마지막으로 밀려온 감정은 혐오감이었다.

내 자신의 약함에 대한 혐오감. 이성을 잃고 한때나마 그 여자의 동생이 되었다는 생리적 혐오감. 그리고... 이 성도의 전복에 자신도 협조했을지도 모른다는 혐오감.

온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감각이다. 로렌스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총이 보였다. 저게 있다면, 이 추악한 목숨을 바친다면 조금은 편해질 수 있을까.

"그만."

로렌스가 총을 집으려는 내 팔목을 붙잡았다.

왜? 어째서 막는 거야? 제발, 날 더 비참하게 하지 말아 줘.

"제발.. 로렌스... 나..."

"이제 그만해도 돼, 에델."

로렌스가 강하게 붙잡은 팔목. 떨리는 목소리.

그의 감정이 전해졌다. 나에 대한 분노.

날... 혼내려는 거야? 잘못했다고, 화내려는 거야? 너한테 그런 소리를 들을 바에야, 난, 난...!

"계속 달려왔잖아."

아니, 아니었다. 로렌스가 화 내고 있는 상대는 내가 아니었다.

내 너머에 있는 무언가. 그 모든 것. 내 악몽에게, 로렌스는 화를 내고 있었던 거다.

"힘들면 조금은 쉬어. 무릎 꿇고 싶으면, 가끔은 주저앉아도 돼."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로렌스가, 내 머리를. 마치 신시아나 아네모네에게 해주는 것처럼.

울 것만 같았다. 아니, 이미 눈물이 나오고 있었다.

이런 모습 보여주기 싫은데.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이런 엉망인 얼굴, 로렌스한테 만큼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데.

로렌스는 짓궂으니까, 분명 두고두고 놀릴 게 뻔할 텐데.

"그러다가 다시 달리고 싶을 땐, 앞으로 나아가고 싶을 땐..."

그림자가 보였다. 로렌스의 뒤편으로 길게 늘어진, 또 다른 남자의 그림자.

알베르 프랑. 그가 나를 바라보는 듯한 그림자가.

"내가, 네 손을 잡아당겨 줄 테니까."

그림자가... 사라졌다. 마치 작별 인사를 하듯이.

철컥, 하고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날 묶어왔던 무언가가, 발목에 감긴 족쇄가.

"...정말이야?"

이러고 싶지 않은데. 분명 나중에 후회할 게 당연한데.

"정말, 쉬어도 괜찮아...?"

울먹이며 말하는 내 목소리는, 내가 듣기에도 우스웠다.

하지만, 어리광 부리고 싶어. 아마도 다시는 기회가 없을 내 본심을, 내 마음을. 너한테는 보여줘도 될 것만 같아.

"훌쩍, 로렌스, 나, 항상 열심히... 널, 모두를... 함께 있고 싶어서..."

"알고 있어. 전부 다. 에델, 네가 고생했다는 것도."

로렌스가 날 껴안으며 속삭여줬어.

"미안해. 지금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서. 네가... 고통스러워하는 것도 몰라줘서."

"우흑, 우으, 으아앙­!"

그다음 기억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내가 몇십 분 동안이나 울었다는 거랑, 로렌스가 계속해서 내 곁에 있어줬다는 사실 말고는.

다만 한 가지 기억나는 건, 그날의 밤하늘이 정말로 아름다웠던 것 하고...

"고마워, 에델. 태어나 줘서, 내 친구가 되어 줘서."

최고의 생일 선물을 받았다는 사실. 이 두 가지뿐이었다.

* * *

성도에서 벌어진 가장 짧은 전쟁은 그렇게 끝이 났다.

너무 많은 게 바뀌었고, 많은 게 사라졌다. 지금 이렇게 정리하는 글을 쓸 수 있기까지도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으니.

"로렌스, 어디 다친 곳은 없느냐?"

가장 먼저 우리에게 온 것은 추기경님이었다. 아니, 지금만큼은 오를란도 스승님이라고 부르는 편이 맞을지도 모르겠군.

다행히 추기경도, 그리고 그의 곁을 함께 했던 교황청의 다른 사제들도 무사하다고 한다.

"성기사단장이 있었기 때문이지. 그가 오지 않았다면..."

피난소에서 본 리날도 씨의 등은... 너무나 무거워 보였다.

그가 교황청에서 물러나 한 발자국 뒤에 방어선을 구축한 덕분에, 추가적인 피해는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리날도 씨는...

"지키지 못했다."

그 말만을 반복하실 뿐이었다.

* * *

"신부 오빠!"

에델과 함께 걸어오는 날 향해 달려든 아네모네.

다행히 기력이 조금 소진된 것만 빼면, 다들 그렇게 큰 부상은 입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래도 잘 끝났나 보네, 로렌스."

로제리오는 옆에서 부상자의 수습을 지휘하고 있었다.

내전이 이렇게 빨리 끝날 수 있었던 이유는 두 가지. 사태를 예측한 잿빛 수도원의 재빠른 개입과...

"...키리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게, 사라졌다는 모양이야. 자신을 추종하는 무리들, 그 전부를 버리고서."

키리에 발랑틴. 내전을 일으킨 주범이자... 이단심문회의 전(?) 국장.

교황청에서 빠져나가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그녀의 종적은 완전히 끊겼다.

'하지만 이렇게나 쉽게 단념하다니... 그럴 사람이 아닌데.'

본래의 그녀라면, 성직자를 향한 무분별한 학살을 일삼다가 유유히 사라졌을 것이다. 그런 그녀가 이렇게나 빨리 사라지다니,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아.

"...이건 아직 확실하지 않은 소문인데, 말단 성기사에 의한 어떤 보고가 있었어."

검은 그림자. 누군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떤 검은 로브를 입은 자가 키리에와 함께 있었다고 한다. 검은 안개 같은 게 피어오르더니, 그대로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고.

'마왕 추종자인가. 좀 더 조사해야겠어.'

"남은 이단심문관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게..."

* * *

거리에는 시체가 즐비해 있었다. 시체는 크게 두 종류였다. 총알에 꿰뚫린 성직자들의 사체와... 이단심문관의 사체.

"...오셨군요, 로렌스 오빠."

전신에 붕대를 감은 드레이크를 부축하고 있는 건, 그의 여동생인 디나였다.

다행히 두 사람에게 신변의 문제는 생기지 않은 듯했다.

"보세요, 로렌스 오빠."

질렸다는 듯, 디나가 발밑에 놓인 시체를 가리켰다.

손에 방아쇠를 걸치고, 자신의 머리를 겨눈 채 쓰러져 있는 이단심문관의 사체. 키리에를 따른 자들의 결말은 하나였다.

"자살했어요. 수도사들에게 잡히지 않은 심문관들은 전부."

"......"

디나의 입가에는 구역질을 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비위가 약해서가 아니다. 그녀가 그토록 선망했던 이단심문관이, 교황의 창이... 이런 결말을 맞이 했으니까.

'구역질이 나올 정도였겠지.'

내가 온 걸 눈치챈 드레이크가 슬픈 눈으로 말했다.

"말해봐라, 로렌스. 우린, 대체 뭘 위해 싸웠던 거지?"

신의 뜻을 위해서. 그렇게는 말할 수 없었다.

다만 별 볼 일 없는 질문으로 대답을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작정입니까, 부국장."

"부국장... 아니, 이제 그렇게 부를 필요 없다."

억지로 자리에서 일어서며 드레이크가 말했다. 총을 하늘 위로 쏘면서.

"이단심문회는 사라지지 않아. 내가, 모두를 책임지겠다."

그렇게 말하는 드레이크의 표정에는 수많은 감정이 뒤섞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단심문관의 숫자는 내전 이전에 비해 3분의 1로 줄었다. 이단심문회와 거리가 있었던 자들이나, 임무 중이라 내전의 화를 피할 수 있었던 자들. 성국의 그림자를 책임질 자들은 겨우 그들밖에 남지 않았는 데도.

얼마 뒤, 드레이크가 이단심문회의 새로운 국장으로 임명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디나는.

"저,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전 모든 걸 봤으니까, 이 끔찍한 역사의 산증인이니까...!"

정식으로 이단심문관이 되었다. 환멸을 느꼈음이 분명함에도, 그녀는 자신의 꿈을 결코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바꿀 거예요. 이단심문회도, 이 성국도. 죽어간 모든 사람들을 위해."

성숙해진 눈빛. 내가 디나에게 할 말은 하나뿐이다.

"당신이라면 분명 해낼 수 있을 겁니다, 디나."

* * *

"우리는 신의 곁으로 간 그분을 기억할 것입니다."

교황이 서거했다. 이미 모두가 예상했던 결말이었다.

범인은... 키리에. 그녀 말고는 생각할 수 없겠지.

"그거 들었어, 로렌스? 교황님의 마지막 순간."

로제리오가 말한 소문. 교황의 마지막 얼굴은 밝았다고, 다들 입을 모아 그렇게 말했다.

글쎄, 교황의 시신을 수습한 리날도 씨는 그런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래 봤자 소문이지 않겠습니까."

"난 일리가 있다고 봐. 교황님이라면 분명 담담히 받아들였겠지. 자신의 숭고한 운명을."

"...운명, 이라."

운명. 아니, 운명 같은 게 아니다.

교황은 선택한 거다. 자신의 목숨을 대가로, 성민들을 위한 '시간'을 얻어낸 거지. 그런 그의 결단을 겨우 '운명'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걸까.

"또 소란스러워지겠군요."

"그러게. 아직 차기 교황도 정해지지 않았으니."

교황의 장례는 바로 치러지지는 않을 것이다. 성국의 오랜 전통에 따라, 차기 교황이 선정되기 전까지 교황은 여전히 교황의 자리에 남아 있겠지.

교황은... 언제나 존재해야만 하니까.

* * *

"준비는 됐나요, 신시아?"

"응! 난 이미 끝났어!"

그리고 마지막. 어쩌면 가장 중요할 수 있는 사안에 대하여.

정갈한 복장으로 차려입은 나와 신시아가 향한 곳은... 법정이었다.

"왔구나, 로렌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스와 크리스가 정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 한스의 몸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듣기론 스승님이 개발한 어떤 성법을 쓰느라 몸에 무리가 갔다고 하는데, 후유증은 남지 않는다고.

크리스는... 괜찮다고 말할 순 없다. 점차 기력은 회복하고 있지만, 마음에 난 상처는 쉽게 아무는 것이 아니니까.

"크리스. 정말로 이곳에 괜찮습니까?"

"...저도 언제까지고 주저앉을 순 없는 노릇이니까요."

허나 크리스는 약한 사람이 아니다. 옆에서 한스가 보듬어 준다면, 머지않아 극복해내겠지.

그리고 또 한 명. 우리가 맞이해야 할 사람이 있다.

*

"본 법정은 피고 에델바이스 발랑틴에게 고위 성직자로서 누렸던 모든 권리의 박탈을 명하는 바이다. 그리고..."

심판. 죄인이 용서받기 위해 거쳐야 할 필수적인 과정.

"대죄인 키리에 발랑틴의 조사에 긴밀히 협조한다는 가정 하에, 그 외 모든 혐의를 유예 처리한다."

땅, 땅, 땅. 세 번의 망치 소리와 함께, 판결이 종료되었다.

"유, 유예? 그게 무슨 뜻이야, 신부님?"

"죄가 없다고는 하지 않되, 일단은 처벌을 내리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그, 그럼 잘 된 거잖아!"

얼굴에 미소를 환히 머금으며, 신시아가 재판장을 걸어 나오는 에델을 향해 안겨들었다.

"에델 언니! 정말, 정말 다행이야!"

"응. 걱정시켜서 미안해."

그렇게 말하는 에델의 낯빛이 밝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눈동자에 생기를 잃은 것은 아니었다.

"...로렌스."

에델이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 에델을 기다렸던 수많은 사람들을.

팔을 활짝 열며, 그녀에게 말했다.

"잘 돌아왔어요, 에델."

* * *

에델이 무사히 우리의 곁으로 돌아온 것을, 그리고 조금 늦은 생일을 기념하는 자리. 비록 교황이 서거한 터라 파티는 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에델의 표정은 밝아 보였다.

"정말이지, 너무해! 에델 언니는 잘못한 게 없는데!"

"아냐, 신시아. 키리에의 명령에 따랐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그로 인해 목숨을 잃은 사람은 분명 있고. 그걸 생각하면... 오히려 너무 가볍게 나오지 않았나 싶어."

"그렇다고 낙인에 대해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요. 아랫배를 까도 남아있는 흔적이 없으니."

"잠... 로렌스, 너!"

발갛게 변한 에델의 얼굴. 모두가 웃는다.

나도, 에델도. 다른 사람들 모두. 이제야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 같아.

'...계속 묶고 있구나. 내가 준 리본.'

부디 에델이 더 이상 악몽을 꾸지 않기를.

그렇게 마음속으로 기도하던 찰나, 깜빡하고 있었던 게 생각났다.

"참, 에델. 당신에게 줄 게 있습니다."

"또 뭐야? 새, 새, 생일 선물이라면 이미..."

"아, 에델 언니. 얼굴 엄청 빨개졌어요!"

"조용히 해, 아네모네! 그, 그래서 줄 게 뭐야?"

"잠시 눈을 감아볼래요, 에델?"

조심스럽게 눈을 감는 에델. 지금의 그녀에게 가장 필요한 건...

"자 눈을 떠보세요."

"흐, 흐흠. 뭔 지 잘 모르겠지만, 고맙게 잘 받을..."

내가 준 물건을 받아 든 에델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어간다.

"이, 이게 뭐야?"

"보면 알잖아요? 수녀복입니다."

"그건 나도 알아! 그런데 왜 하필 이 타이밍에 이걸...!"

"그게, 에델은 지금 갈 곳이 마땅히 없잖아요? 마침 저희 수도원에 수녀 자리가 하나 비어있는데." "...그걸 왜 지금 말하는 거야!"

에델이 깨끗이 수선된 수녀복을 흔들며 나에게 따진다.

하지만 어떻게 사실대로 말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들의 앞에서 생일 선물을 주는 게... 부끄러웠다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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