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 〉 숨은 후보 찾기(1)
* * *
“그래서, 교황 후보는 언제쯤 찾을 수 있는 건데?”
이 수도원에 온 지도 벌써 1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 동안 우리가 한 일이라고는….
“너무 급하게 생각해도 좋지 않아요~. 교황 후보님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건, 분명 어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걸 테니까 말이에요!”
성녀 아네모네. 지난 2주에 달하는 시간 중 약 5일간을 침상에서 보냄.
반복적인 졸도의 원인은 모 수녀의 음식으로 추정됨.
“아, 란 자매님! 또 식사에 초대해주시면 감사할 것 같아요…!”
“어머, 그렇게나 제 음식이 마음에 들었던 건가요? 후훗, 성녀님한테 이런 찬사를 들을 줄이야.”
‘피의 권능’과 오랜 야산 생활 때문에, 아네모네가 괴식 취향이 되었다는 사실은 말하지 말자.
수도원장의 눈 밖에 나면 나쁘면 나빴지, 좋지는 않을 테니까.
“란 님은 아네모네 성녀님이 마음에 드신 모양이군요.”
로제리오 그레고리. 얘는 대체 뭘 하는 건지 도통 감이 안 온다.
잿빛 수도원에 소속되어 있는 로제리오라면 분명 교황 후보에 대해서도 들은 바가 있을 터.
물론 지난 2주 동안 우리가, 특히 에델이 집요하게 물어봤지만…, 대답은 똑같았다.
‘이건 일종의 시련이야. 이번 임무는 그렇게 쉽게 해결하려 들면 안 돼. 일단 내가 후보님이 누구인지 모르는 건 둘째치더라도, 잿빛 수도원인 내가 참가하는 건 공평하지 않으니까.’
그 특유의 말투로 남의 속을 살살 긁으면서, 반박하기 힘든 정론만을 내세우니 말이다.
물론 로제리오의 말이 맞다. 교황 후보를 찾으라는 명령은 내가 받은 거지, 로제리오나 다른 사람들이 받은 게 아니니까.
“그래, 임무에 진지한 건 나뿐이지?”
에델바이스 발랑틴. 이번 임무의 에이스 격이다.
내가 듣기론, 이 잿빛 수도원을 거의 뒤집듯 수소문했다고 한다.
전직 이단심문관의 실력을 살려 수색에 나선 건 좋았지만….
“난 이 수도원을 싹 돌아다녔는데 말이야. 이젠 집회실에 있는 촛대의 개수까지도 외울 지경이라고!”
“하지만, 결국 못 찾았잖아요.”
“그, 그건… 아네모네의 말이 맞지만.”
성과는 영 없는 모양이다. 하기야, 에델의 특유의 분위기를 보면 그녀가 이단심문관 출신이라는 걸 바로 알았을 테니까.
대대로 사이가 안 좋은 수도사와 이단심문관의 사이라면, 아마 에델에게도 큰 협조는 하지 않았겠지.
“헤헤, 이 과자 맛있어. 신부님도 먹어 봐!”
그리고 신시아. 신시아 생크 프랑.
신시아는… 귀여우니 괜찮다. 신시아만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저 옆에 있는 것만으로 내게 도움이 되니까.
“…뭘 그렇게 헤실거리면서 웃고 있는 거야?”
“전 아네모네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일에는 흐름이란 게 있는 법이니까요.”
“너도 옮은 거야? 아네모네한테?”
“무슨 소리를. 이미 에델, 당신이 증명해주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찾아도 교황 후보는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교황 후보는 나타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정체를 숨기고 있는 거겠지.
빛의 성녀는 말했다. 잿빛 수도원으로 가 교황 후보를 찾으라고. 이미 후보는 신의 계시를 받았으니, 자신이 다음 교황 후보라는 사실을 알 것이라고 말이다.
‘왜 교황 후보는 나타나지 않는 걸까. 그 이유를 아는 게 급선무다.’
“란 님. 잿빛 수도원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은 전부 수도사인 겁니까?”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은 그렇죠. 수도사나, 아니면 저 같은 일부 수녀뿐. 가끔 수도원의 일을 도와주는 잡부들이나, 성직자로 치지 않는 종자들도 있긴 하지만요.”
“수도사는 사제와 그 성격이 몹시 다른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맞아요. 사제는 성법의 발전을 추구하는 면에서 실리적인 부분이 있죠. 하지만 우리 수도사들은… 진리를 찾아요. 신이 남긴 이 세계에서, 신의 잔재를 찾는 거죠.”
수도사는 진리를 찾는다. 그들이 속세를 버리고 이런 외딴곳에 틀어박힌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럼, 수도사는 교황이 될 것이라는 계시를 받았어도 움직이지 않겠군요. 맞습니까?”
“음, 그건 대답하기 곤란하네요.”
란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역시, 힌트는 더 주지 않겠다는 뜻인가.
“저는 수도사들의 뜻을 전부 아는 게 아니에요. 모두 같은 신들을 믿고 따르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 같은 생각을 하는 건 아니잖아요?”
입꼬리를 스윽 올리며, 란이 날카로운 눈초리로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전 일개 수녀인 걸요. 제가 그런 걸 어떻게 알겠어요. 호호.”
속뜻은 이거다. ‘만약 내가 수도원장이라는 사실을 알리면, 널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라는 협박.
난 애써 일을 만들지는 않는 편이다. 이럴 땐 조용히, 나만 알고 있는 편이 제일이지.
“그래서, 로렌스 넌 요즘 뭘 하고 있는 거야?”
“음? 저 말인가요, 에델?”
여기서 질문이 들어올 줄은 몰랐다. 나야, 뭐. 항상 하던 대로 매사에 최선을….
“하루 종일 방에서 꼼짝도 안 해. 가끔 보일 때도 수도사들이 사용하는 수련장이나, 아니면 이런 식당뿐이지.”
“가끔 밤마다 이상한 소리도 들려요, 에델 언니! 뭔가 삐걱대는 것 같은….”
“삐, 삐걱거리는 소리? 로렌스! 너 대체 신시아랑 뭘…!”
또 이상한 소문이 퍼지기 전에, 내가 먼저 차단해야 할 듯하다.
“단순한 검술 연습입니다. 요즘 ‘이거’에 푹 빠져 있어서.”
시련의 신, 우투. 그 잔재와 남긴 대화를 통해,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을 어느 정도 알았다.
우투는 네 번의 시련을 더 거치면, 세바스의 잠재력을 모두 이끌어 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신시아의 몸속에 있는 마왕을 처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거고.
‘하지만…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겠지.’
그 어느 누가 ‘제가 사실 신을 만났습니다’라고 하면 ‘아, 그렇구나’하고 믿어주겠는가.
특히 신앙심이 투철한 우리 성국에서는, 그런 말은 함부로라도 하면 안 될 금지사항이다.
“그, 그, 그거?”
“그렇습니다. 에델이 생각하는 그거요.”
시련이란 뭘까. 아직 감이 잘 오지 않아, 무작정 검을 휘두르기를 반복하고 있다.
내가 세바스의 안으로 직접 들어갔다가 나온 탓인지, 검과의 동조율이 크게 늘어 검술 실력은 더 늘어났지만…. 그 날 이후로 우투는 더는 만나지 못했다.
“저도 곤란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의 그 느낌이 되살아나지 않아서….”
“이, 이 나쁜 놈아!”
“…나쁘다니요. 저요?”
에델이 황급히 신시아를 내 곁에서 떨어뜨리며 말했다.
“이, 이렇게 작은 애를! 대체 신시아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뭔 짓을 하다니. 또 무슨 오해를 하고 있는 건가.
“아니, 진짜로 아무 짓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쪽이 못 버틸 만큼.”
“됐어. 저런 가짜 신부의 말은 듣지 마, 신시아. 아픈 짓은 안 당했어? 막 로렌스가 강제로 뭘 시키거나….”
“으응, 아무 짓도 안 했어. 2주 동안은, 내가 아무리 다가가도 꿈쩍도 안 했는걸.”
어째설까. 그렇게 말하는 신시아의 눈빛은 깊고도 어두웠다.
“…차라리 강제로라도 뭘 해줬으면 하는데.”
꿀꺽. 오늘따라 목이 막혀 차가 잘 넘어가지 않는다.
“흠흠,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죠. 저도 오늘부턴 ‘후보 찾기’에 본격적으로 가담하겠습니다, 에델. 그럼 됐죠?”
“흥. 진작에 그랬어야지.”
저래 보여도, 에델이 내심 기뻐 보이는 게 눈에 선할 정도다.
아직 이단심문관의 스타일은 버리지 못했나 보다. 저렇게나 임무에 열중 하다니.
‘드레이크가 아쉬워하겠어. 저런 인재를 수도원에, 그것도 생크 같은 변두리의 수도원에 빼앗겼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전 오히려 좋습니다.”
“…뭐, 뭐가 말이야?”
“뭐긴요. 에델 말입니다.”
생크 수도원에는 에델이 있어야 더욱 풍요로워진다.
신시아에게도, 아네모네에게도. 아직은 어린 두 사람에겐 든든한 언니라는 존재가 필요할 테니까.
“…정말, 그렇게 띄워주지 않아도 더 잔소리하거나 하진 않을 테니까.”
잔소리가 없는 에델이라니, 그것만큼 완벽한 인물이 또 있을까.
“그럼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죠. 신시아, 물론 같이 갈 거죠?”
“그런 건 굳이 안 물어봐도 돼, 신부님. 바늘이 가는 곳에, 어떻게 실이 안 따라갈 수 있겠어?”
“좋습니다. 아네모네는요?”
“저요? 저는….”
아네모네가 누군가의 눈치를 보면서 망설인다.
“후후, 성녀님은 저한테 양보해 주셔야겠네요, 로렌스. 오늘은 성녀님을 위해 제 요리 솜씨를 십분 발휘할 생각이니까요.”
“으으, 미안해요, 신부 오빠!”
아네모네는 이미 고른 것이다. 우리와의 유대감이 아니라, 란의 요리가 주는 육체적인 쾌락을.
“…성녀를 뽑는 기준을 다시 한 번 고려해달라고, 교황 후보님을 뵈면 그렇게 부탁드려야 하겠네요.”
“미, 미안해요!”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그 날도 아네모네는 식사를 마친 후 바로 병동으로 실려 갔다.
그 표정이 누구보다도 행복해 보였다는 얘기도 있고.
* * *
“여긴….”
“기록실입니다. 교황청이나 이단심문회의 본부에서도 볼 수 없는, 온갖 옛날 기록이 모여 있는 곳.”
우리가 처음으로 찾은 곳은, 수도원의 구석에 딸려 있는 기록실이었다.
평소라면 들어오고 싶어도 못 들어올 환상 속의 공간이지만, 교황 후보를 찾는다는 명목 아래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그런데, 당신은 왜 따라 온 겁니까?”
로제리오. 녀석이 벽에 기대어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감시. 란 님의 명령, 아니, 부탁을 받아서 말이야.”
“감시 말입니까? 우리 사이에요?”
“안타깝지만, 잿빛 수도원에 있을 때만큼은 난 이곳의 수도사야. 친구도 소중하지만, 수도사라는 정체성도 내겐 소중하니까.”
“알겠습니다. 머리가 아파져 오니 여기까지만 하죠.”
아마 그거겠지. 이 틈을 이용해 자기 잇속만 챙기지 말라는 뜻.
또 나랑 신시아 둘뿐이면 모를까, 이단심문관 출신이었던 에델도 함께 있으니 더 경계하려는 거고.
‘주도면밀하군. 이곳의 수도원장은.’
“그래서, 우린 기록도 들여다보면 안 된다는 거야?”
“그건 아니야. 하지만 기밀 기록만큼은 안 돼. 그건 수도원장님이랑, 그분께 허락받은 몇몇만 볼 수 있는 거라서.”
“수도원장, 수도원장! 대체 그분은 어디 계시길래, 너한테 그런 명령을 내리는 거야?”
차마 에델보다도 한참은 어려 보이는 수녀가 수도원장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이건 내 신변이 걸린 문제니까. 수도사, 그것도 그중의 최고봉인 수도원장이랑 싸운다면… 아마도 내가 지겠지. 상성 문제로.
“자, 빨리 시작합시다. 오늘 하루는 아마 이곳에만 있어야 할 거예요.”
“으으, 대체 무슨 정보를 찾으라는 건데!” “그런 건 이미 정해져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찾는 건 교황 후보다. 그리고 역대 교황 후보들은, 모두 비슷한 방식으로 후보로 선정되었고.
“역대 교황.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선출되었는지. 뭐 그런 것들.”
“…그럴듯해.”
목표를 잡은 우리는, 각자 구획을 나눠 책을 찾기 시작했다.
교황의 계보부터 시작하여,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고대 민간 설화까지 모조리.
“으으, 무거워. 이건 됐고, 다음으로 찾아야 할 책은… ‘최초의 교황’?”
책을 이리저리 옮기던 중, 에델이 다음 책이 꽂혀 있는 책장으로 손을 뻗었다.
“이 책을 찾나 봐요?”
“아, 감사합니다. 근데 누구신….”
에델이 누군가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그대로 눈동자가 동그랗게 변했다.
대체 누구 길래 그런가 하니….
‘소년? 종자인 건가?’
풋풋한 인상의 소년이 에델에게 책을 건네며 말했다.
“또 만났네요,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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