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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매님에게는 마왕의 소질이 있다-103화 (103/109)

〈 103화 〉 숨은 후보 찾기(3)

* * *

“얘기요? 저랑 말인가요?”

내 말뜻을 눈치챈 건지, 마르첼로는 들고 있던 청소 도구를 벽에 걸치곤 내 눈을 바라보았다.

“그래요, 얘기. 아주 중요한 얘기를.”

나와 마르첼로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는 예배당.

특히 선대를 기리는 종류의 예배당은 출입이 엄히 금지되어 있기에, 느긋하게 얘기를 나누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다.

“당신에 대해 조사를 좀 했습니다.”

“얘기를 하자면서 뜬금없이 고해성사라니, 특이한 분이시네요, 신부님은.”

“알고 있었잖습니까, 저도 이단심문관 출신이라는 사실을 안 그런가요?”

“…대충은요. 그런 느낌만 있었다 뿐이지.”

나는 적당한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은은한 달빛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불러일으킨다.

‘아네모네를 처음 만날 때도 이런 날이었지. 슬럼가의 소녀 가장이 아닌, 성녀로서의 진짜 모습을 드러낸 그 날.’

그때도 지금처럼 달빛이 나를 감싸 안았다.

그러고 보니 달의 여신 난나가 관할하는 권능 중에는 ‘진실’도 있었지. 기막힌 우연이다.

“열심히 청소하고 있더군요. 다들 쉽사리 들어오려 하지 않는 선대 교황의 예배당에.”

“전 종자니까요. 그건 당연하죠.”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본론으로 들어간다. 내 스타일에도, 마르첼로의 스타일에도 쓸데없이 곁가지를 붙이는 건 좋지 않을 테니.

“생각이랄 거 있나요. 귀찮고, 힘들고….”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 일어나 청소를 할 정도인데?”

“말했잖아요, 종자라서 그런 거라고요. 신부님이 로제 형이나 란 님에게 한 말씀 해주시면 감사할 텐데. 노동 착취예요, 이 정도면.”

설마. 이미 로제리오에게는 확답을 받아 온 상태다.

이 수도원에서 밤늦게까지 일하는 종자는 아무도 없다. 모두 저 소년의 자발적인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지.

“교황을 존경하나 보군요.”

“존경? 하, 저 같은 일개 종자가 무슨 존경심까지 있겠어요. 그냥… 불쌍할 뿐입니다.”

교황이 불쌍하다, 라.

“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걸까요?”

“대부분의 교황은 천명을 누리지 못했어요. 차라리 초대 교황처럼 순교라도 한 거면 모를까, 결국 대부분은 같은 ‘사람’에 의해 목숨을 잃었죠. 그래요. 전대 교황님처럼.”

전대 교황, 프란체스코. 배교자 발랑틴 키리에에 의해 목숨을 잃은 비극의 교황.

“한이 서려 있을 것 같아서요. 저라면 분명 눈도 편히 못 감았을 텐데.”

“그래서 매일 밤 이곳에 나와 기도를 올리는 거고요.”

마르첼로의 표정이 눈에 띄게 달라지기 시작한다.

“…매일이라니, 아무리 저라도 그런 건 못해요.”

“종자면서 따르는 사람들을 너무 모르는 것 아닙니까, 마르첼로. 이미 다들 알고 있어요. 당신이 매일 밤 몰래 잠자리에서 빠져나가는 것도, 그 이유가 뭔지도.”

“다들, 알고 있다고요?”

“그렇습니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당신과 친한 로제리오, 그러니까 로제도 마찬가지고.”

마르첼로는 이곳을 청소하며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선대 교황의 죽음이 모두에게 알려진 그 날, 바로 그 시점부터 지금까지.

왜 갑자기 그는 선대 교황을 기리는 이곳으로 와서 청소를 하기 시작한 걸까.

대체 뭘 위해 기록실에 들어가 ‘교황’에 대한 서적을 읽기 시작한 걸까.

조금만 생각하면 간단했다.

더는 바라만 보게 될 수 없었던 것이다.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수도원의 일개 종자였을 그는, 교황이라는 이름을 떠안게 되었다.

그토록 멀리 있던 ‘교황’이라는 존재가, 자신의 인생에까지 침투한 것이다.

“당신에 대해 조사를 했다고 했죠?”

“뭘 말씀하고 싶으신 겁니까, 신부님.”

“당신의 이름은 마르첼로가 맞습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바깥’에 있을 때 쓰던 이름이더군요.”

성국에서는 보통 ‘세례명’을 평생의 이름으로 삼는다.

그 전까지 쓰던 이름은 일종의 태명(??)으로, 아기의 건강을 위해 전대 교황의 이름을 빌려 쓰기도 한다.

가정에 따라서는 이 태명을 애칭의 일종으로 쓰는 일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례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당신의 세례명이 따로 있더군요. ‘요한’이라는 이름이.”

“…분명 그런 이름도 있었죠. 가족이 모두 죽고 난 뒤에는, 요한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도 싫어졌지만.”

어째서 성국의 성민인데도 세례명을 끔찍히 싫어하는가.

약간의 조사 결과, 그 이유를 바로 알 수 있었다.

“당신의 가족이 죽었기 때문에 이름을 버린 거죠. 당신이 세례를 받은 기념일에 사고로 죽었으니까.” “…….”

마르첼로의, 요한의 가족은 사고로 죽었다.

아니, 사고가 아닐지도 모른다. 어떤 미치광이 이단심문관의 오인 공격으로 죽었다는 얘기도 있으니까.

그 이후로 마르첼로는 잿빛 수도원의 종자로 들어와, 속세와 연을 끊은 삶을 살고 있었다.

요한이라는 이름은 평생 묻어둔 채로.

“우리가 찾는 교황 후보의 이름, 공교롭게도 요한입니다.”

“대단한 우연이네요.”

“이 잿빛 수도원에 다른 ‘요한’은 없고요.”

“저 같은 경우가 또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이제 그만하죠.”

모든 퍼즐이 맞춰지고, 빠져 있던 톱니바퀴가 끼워진다.

교황 후보가 꼭 깨달음을 얻은 지긋한 중년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초대 교황은 막 성인이 된 젊은 나이에 즉위했고, 역대 교황 중 세 명은 여자였으니.

“당신을 모시러 왔습니다. 교황 후보, 요한.”

나는 정중히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이 소년이다. 혼란에 빠진 이 성국을 구원하고, 대륙의 역사에 그 이름을 새길 새로운 교황은.

모든 건 일곱 신의 뜻대로.

“제발, 제발 이러지 마세요….”

마르첼로가 당황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부정은 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도 없는 거겠지. 내가 다 알고 왔다는 사실을, 총명한 그라면 이미 알고 있을 테니.

“왜 교황 후보임을 알리지 않은 겁니까?”

나의 물음에, 마르첼로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마치 고단한 삶에 지친 인물처럼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말이다.

“전 교황의 자리에 어울리지 않아요.”

“당신은 신들의 계시를 받았잖습니까.”

“신들의 계시요? 겨우 누나 한 명을 만난 게?”

마르첼로가 머리를 쥐어 잡았다. 그것이, 그 기억이 인생 최대의 실수라는 것마냥.

“그 누나가 신이라는 걸 알았다면, 금방이라도 그 자리에서 도망쳤을 텐데. 하핫.”

마르첼로가 팔을 걷어 보였다.

그의 오른쪽 어깨에는 빛나는 각인이 새겨져 있었다.

성흔. 교황 후보가 신에게 선택받는 순간 새겨진다는, 신의 존재 증명이다.

‘얼마 전까지였다면 신을 만났다는 사실을 의심했겠지.’

하지만 나도 실제로 만나지 않았는가. 비록 분령이라지만, 일곱 신 중 하나인 우투 본인을.

“날 봐요. 어딜 봐도 비루한 종자에 불과해요. 그런데 내가 교황이라고요? 신에게 선택받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신들에게도 분명 뜻은 있을 겁니다.”

“난, 난 못해요. 교황이라니, 생각해 본 적도 없는데…!”

어째서 마르첼로는 이토록 완강하게 교황의 자리를 부정하는가.

자신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과분한 자리라고 생각해서?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진짜 이유가 따로 있다는 것 정돈, 내가 아니라 신시아도 눈치챌 수 있으리라.

“당신의 본심은 다르지 않습니까?”

“내 본심이요? 하, 그래. 다른 사람은 몰라도 신부님은 속일 수 없겠지.”

슬픈 눈동자를 하며 마르첼로가 말했다.

“…난 죽고 싶지 않아요.”

너무나 단순하고, 너무나 이기적이면서도… 너무나 당연한 이유였다.

“봤잖아요, 신부님도. 역대 교황들은, 몇몇을 빼고는 전부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어요. 용과 싸우다 죽고, 암살당해 죽고, 내부 투쟁 때문에 죽고, 후대 교황에게 죽고, 반란으로 죽고.”

모두 신의 품으로 갔을 겁니다, 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고.

나도 신앙심이 깊은 편은 아니니까. 나조차 죽어서 천국으로 갈지 지옥으로 갈지 모르는데, 그 누가 어찌 영혼의 최후를 알겠는가.

“당신의 말이 맞습니다, 마르첼로.”

“난, 난 말이죠. 살고 싶어요. 아주 오랫동안. 늙어서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그런 교황도 있습니다.”

“가족도 만들고 싶어요. 혼자는 싫으니까.”

“그런 교황도 있습니다.”

일곱 신은 맹목적인 믿음보다 인류의 번영을 중시한다.

그렇기에 교리 상 추기경이나 수도사, 심지어는 교황이나 성녀라 하더라도 결혼을 하고 가족을 꾸리는 것에는 지장이 없다.

“내가 교황이 되면, 누가 저랑 결혼해 주겠어요?”

교황의 가족이 된다는 것은, 그로 인해 따라올 위험을 함께 감내한다는 뜻이 된다.

“난 두 번 다시 가족을 잃고 싶지 않아요.”

“…….”

6년 전의 비극. 일가족에게 닥친 불행.

그때 살아남은 건 요한, 마르첼로 밖에 없었다.

가족이 미친 이단심문관에게 살해당하는 모습을, 마르첼로는 눈앞에서 똑똑히 지켜봤다.

“그러니까 제발, 그런 끔찍한 족쇄를 제게 주지 마세요.”

“요한.”

“그 이름으로 부르지도 말고요! 신부님도 아실 거 아녜요. 난 후보일 뿐이에요. 내가 거절하고, 또 거부하다 보면… 언젠가 새로운 후보가 나타나겠죠.”

마르첼로의 희망이 담긴 말에, 나는 반박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당신도 알지 않습니까.”

역대 교황 후보는 모두.

“모든 후보는, 결국 그 가시관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한 명도 빠짐없이, 교황의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마르첼로 또한 그렇게 될 것이다.

“…오늘은 이만 가주세요. 그리고 이것만은 명심해 주세요.”

마르첼로가 청소 도구를 주워 들더니, 이내 자리를 떠나며 말했다.

“전 무슨 일이 있어도 교황은 되지 않으리라는 걸.”

떠나가는 마르첼로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쳤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째서­.”

딱 하나, 모순되는 행동이 하나 있었다.

교황이라는 존재를 끔찍이 싫어한 마르첼로가 했다고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

“왜 이곳에 오는 겁니까. 매일 밤, 마치 선대 교황의 넋을 기리듯.”

“…그러게요. 신부님의 말이 맞아요. 내일부턴 오지 말아야겠어요.”

끼이익, 턱. 예배당의 문이 닫혔다.

이미 떠나고 없을, 아니, 문 뒤편에서 내 목소리를 듣고 있을 마르첼로를 향해 조용히 중얼거렸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마르첼로.”

너는 결국 교황이 될 거다, 요한.

비록 신들의 뜻을 모두 헤아릴 수는 없으나, 지금의 성국에는 네가 필요하다.

마치 과거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누구나 가지고 있을 그 시절을.

아무래도 더 오랫동안 수도원에 머물러야 할 것 같다.

* * *

마르첼로가 건물을 빠져나간다.

자신의 정체를, 모든 진실을 알아차린 검은 옷의 신부에 의해서.

“찾았다.”

그리고 그 모든 대화를 듣고 있던 자가 한 명.

기둥의 뒤편에서 남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평범한 수도사로 보이는 남자. 아니, 남자가 아니었다.

“샌님이 알면 좋아하겠네~.”

수도가사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대고 쓸어내리자, 얼굴의 형태가 변하기 시작한다.

육체의 모습도, 수도사의 선천적인 신성력도.

“거추장스러운 꼬맹이를, 드디어 찾아냈다고 하면 말이야.”

모든 것을 거짓으로 꾸며 낸 여인.

변장을 해제하자 풍겨 오는 피 냄새는, 그녀가 결코 평범한 존재가 아님을 나타낸다.

마왕 추종자, 로리안.

교황 후보를 제거하기 위해, 운명의 ‘변수’가 될 로렌스를 제거하기 위해.

최악의 살인마가 지금 이곳, 잿빛 수도원에 모습을 드러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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