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화 〉 성흔을 삼키는 뱀(1)
* * *
신에게 직접 간택 받은 차세대의 성인(?人).
신의 곁으로 돌아간 선대 교황 프란체스코의 뒤를 이을, 교황의 자리에 새롭게 앉을 후보.
마르첼로. 잿빛 수도원의 종자가 바로 다음 교황이었다.
잿빛 수도원에 도착한 지 약 2주가 지나서야 베일에 싸인 교황 후보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수도원의 폐쇄적인 분위기도 한몫했지만, 이번 임무에서 가장 난항인 점은 교황 후보 본인에게 있다.
‘마르첼로, 그 소년은 교황이 되기를 원하지 않아.’
마르첼로는 눈앞에서 가족을 잃은 기억이 있다.
아직 정체성도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을 어린아이의 끔찍한 기억은, 죽음에 대한 극도의 공포감을 불러일으켰다.
그 결과가 지금의 도피고. 목숨의 위협을 받는 교황의 자리에는 결코 오르지 않겠다는, 어른이 되지 않은 아이의 작은 반항.
“그래서, 결국 어떻게 할 셈인데?”
비밀 예배당에서 마르첼로와 얘기한 그 다음 날, 나는 에델을 비롯한 주변 인물을 불러 모아 상의했다.
“강제로 데리고 가는 것도 방법의 하나겠지만, 이번 일은 그렇게 단순한 얘기는 아닐 겁니다.”
차기 교황. 대륙에 단 일곱 개밖에 없는 나라 중 가장 영향력이 큰, 성국의 지도자를 뽑는 일이다.
그런 자리에 지금의 마르첼로를 앉혔다간…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임무는 어디까지나 교황 후보를, 그러니까 마르첼로를 ‘무사히’ 데리고 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그의 상태는 ‘무사히’랑은 거리가 있고요.”
“역시 내가 나서야 할까? 마르첼로를 만나서 조금 ‘설득’하면 잘 풀릴 것 같은데.”
“아뇨, 그건 그만두죠. 당신의 설득은 제가 아는 설득과 개념이 다르잖습니까.”
이러나저러나 에델은 뼛속까지 이단심문관이다.
대화보다는 폭력, 온화한 방식보다는 강압적인 방식을 취해 온 그녀에게는 함부로 맡길 수가 없다.
“남은 방법은, 마르첼로 스스로가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리는 것 정도가 다겠네요.”
“결국 그렇게 되는 건가….”
그때, 우리의 말을 가만히 듣던 아네모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마르첼로의 마음을.”
아네모네는 쓰고 있던 베일을 벗었다. 성녀의 신분을 상징하는, 새하얗고 고결한 베일을.
성녀의 차림을 벗어던진 아네모네는 평범한 소녀의 모습이다.
레고르에서 아이들을 보살피기 위해 하수구를 드나들던 소녀의 모습. 비록 그때랑은 달리 지금은 붉은 머리를 하고 있지만 말이다.
“저도 신부 오빠를 만나기 전까진, ‘성녀’라는 삶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이야기였으니까요.”
성녀 베일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아네모네는 말을 이어 나간다.
“온몸이 흙투성이가 되도록 돌아다니고, 어떻게든 아이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식량을 모으고. …제 힘을 이용해,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르기도 하고.”
지금의 마르첼로와 가장 상황이 비슷한 건 역시 그녀다.
“무서울 법해요. 갑자기 중요한 자리에 앉는다는 건, 엄청나게 부담되거든요.”
“글쎄요, 아네모네는 금방 익숙해졌지만 말입니다.”
“우으, 지금 그런 말을 하자는 게 아니잖아요!”
아네모네가 팔을 방방 흔들며 반박한다.
“결국 신부 오빠 때문이에요! 신부 오빠는 분위기를 너무 무섭게 잡는 버릇이 있다고요!”
“그게 왜 제 잘못이 되는 겁니까?”
“교황 후보님을 만나러 갈 때도 어두운 밤이었죠? 그런 얘긴, 밝은 낮에 해도 아무런 문제 없는 거잖아요!”
“아니, 그건 어디까지나 비밀 유지를 위해….”
“바로 그 점이에요! 안 그래도 무겁고 진지한 얘긴데, 정작 말하는 당사자까지 그런 태도를 취해버리면 공포심은 배가 된다고요!”
또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보았더니.
“음, 음.”
에델도, 로제리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는 반응을 보였다.
“내가 이런 말 할 처지는 아니지만, 로렌스는 조금 그런 구석이 있어. 진지함이 도가 넘친다고 해야 하나.” “에델의 말대로야. 스승님의 밑에서 함께 배우던 시절에도 그랬었고.”
결국 내 편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옆에서 내 팔에 찰싹 달라붙고는, 열심히 나를 변호하는 신시아를 제외하고는.
“하지만, 그게 매력인걸!” “신시아….”
“신부님이 진지해졌을 때 지어지는 이마 주름, 그걸 볼 때마다 두근거려. 난 옆에서 계속 봐왔으니까 알 수 있거든!”
역시 나를 이해해 주는 건 신시아뿐이다.
너무 진지해서 탈이라니, 그게 얼마나 상처가 되는 말인지도 모르고.
신시아의 변호 덕분일까. 그녀의 얼굴을 흘깃 보더니, 에델이 헛기침을 몇 번하고는 말을 번복한다.
“…나, 나도 나쁘다고는 생각 안 해. 그냥 조금 그런 느낌이 든다, 이거지.”
“저도 신부 오빠가 나쁘다는 말은 한 마디도 안 했어요! 그냥 교황 후보님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 보니…!”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진 테이블. 신시아, 아네모네, 에델. 이 세 사람이 모이면 항상 이런 분위기가 된다.
사이좋은 자매처럼 보이니까 안심은 되지만, 이래고서야 제대로 된 회의는….
“로제, 로제 있나요?”
시끄러운 분위기를 진정시킨 건, 로제리오를 부르는 수녀 란의 목소리였다.
“아, 여기 있었네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란 님?”
“문제가 생겼어요.”
잿빛 수도원장, 란. 처음 만났을 때부터 항상 가벼웠던 그녀의 표정이, 오늘따라 무겁고 진지하게만 느껴진다.
그리고 그 예상은 현실이 되어 귓가에 울린다.
“마르첼로가 사라졌어요.”
마르첼로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는 란은, 어쩐지 내 얼굴을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마르첼로가 사라지는 건 흔한 일 아닙니까, 란 님.”
“아니, 그게 아니에요. 지금 성법을 사용해 마르첼로의 위치를 살펴봤는데,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사람을 찾는 성법. 따로 정해진 명칭은 없다.
대상이 되는 사람에게 미리 성법을 걸어놓고, 성법의 범위가 되는 장소 안에만 있다면 어디든지 그 사람의 위치를 알 수 있는 기술이다.
그런데도 마르첼로의 위치를 알 수 없다는 건.
“둘 중 하나겠군요. 이미 이 잿빛 수도원을 떠났거나, 아니면 마르첼로 본인이 스스로 성법을 해제했거나.”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었는데, 당신도 그렇게 말하니 어쩔 수 없네요.”
란이 내 곁에 다가와 귓속말로 속삭인다.
“이번 일에는 당신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으니까, 마르첼로를 찾는 걸 도와주면 고마울 것 같은데요?”
다시 말하면 이 얘기다. ‘호되게 당하고 싶지 않으면 어서 따라와라.’.
“수도원장님의 말씀인데, 저 같은 신부가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능청은. 자, 어서 실력 좀 발휘해 봐요. 이단심문관 경력은 뒀다 어디 써먹게요?”
불안정한 시기에 일어난 소동이다. 마르첼로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자칫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 * *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잿빛 수도원의 정문이다.
외지인의 출입이 허락된 장소이자, 그와 동시에 외부로 통하는 유일한 출입구이기도 한 이곳.
“오셨습니까, 수도원….”
“쉿, 쉬잇!”
수녀 란의 모습을 보자, 출입문을 지키고 있던 수도사가 급히 인사를 하려다 그만두었다.
우리의 모습을 봤기 때문이겠지. 수녀 란은 우리 같은 외부인에게는 정체를 숨긴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거다.
그래도 란의 정체를 알 정도면, 이곳의 수도사 중에도 꽤나 높은 위치에 속한 자임은 분명해 보인다.
“항상 수고하네요. 혹시 특이 사항은 없었나요?”
“별 다른 건 없었습니다. 기껏해야 보급 물자가 온 정도였고요.”
“달리 나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거기 계신 손님을 포함해서.”
평범한 성의 경비병이었다면 신용할 수 없었을 테지만, 이들은 모두 ‘정예’라고 부를 수 있는 잿빛 수도원의 수도사들이다.
실수로라도 헷갈리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당장 지금도, 우리를 향해 계속해서 감지 성법을 발동하는 중이니.
‘그렇다면 출입구가 아니라 산을 타고…. 아니, 그건 아니겠지.’
벽으로 둘러싸인 건너편을 바라본다. 까마득한 절벽이다.
따로 훈련받은 우리 같은 성직자들이라면 모를까, 일개 종자에 불과한 마르첼로가 이 절벽을 타고 내려갔을 리는 만무하다.
“아무래도 마르첼로는 아직 수도원 안에 있는 모양입니다.”
“그렇다는 건 성법을 본인 스스로 해제했다는 뜻인데, 그게 가능할까?”
에델의 물음에 란이 대답했다.
“아뇨. 마르첼로라면 가능할 거예요. 그 아이, 다른 건 몰라도 성법은 조금 할 줄 알거든요.”
“성법을요? 정식으로 성직자가 된 것도 아닌데?”
“종자라지만, 그 아이 역시 엄연히 잿빛 수도원의 소속원이에요. 기본 소양으로 성법을 가르쳤거든요. 여기 계신 이 수도사님께서.”
란이 로제리오의 옷깃을 꼬집으며 말했다.
“뭐, 어깨너머로 배운 것도 있었겠죠. 그 아이, 머리 하나만큼은 뛰어나니까.”
“그 머리를 좀 좋은 데 사용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말입니다.”
설마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는 듯, 로제리오가 머리를 짚으며 말했다.
결론은 하나다. 마르첼로는 아직 잿빛 수도원 어딘가에 있다는 것.
그리고… 어딘지도 모를 곳에 숨어서, 감정적으로 굉장히 피곤해하고 있을 거라는 것.
“신부님, 괜찮아? 아까부터 표정이 복잡해 보여.”
“그렇게 보였나요? 괜찮습니다. 그냥 조금… 과했나 싶어서요.”
신의 선택을 받았다는 건 성직자로서 둘도 없는 명예다.
하지만 마르첼로는 성직자가 아니다. 그 사실을 왜 조금 더 일찍 눈치채지 못했을까.
“여기서부턴 흩어져서 찾아보죠. 계속 같이 다니는 건 비효율적일 테니까.”
엉켜버린 실은, 그걸 꼬아버린 사람이 풀어야 하는 법이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마르첼로가 이런 돌발 행동을 벌인 것에는 나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을 테니까.
‘마르첼로가 갈 만한 곳, 이라고 한다면.’
이단심문관으로서의 경험을 최대한 살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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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도망쳐도 되는 걸까요.”
어느 어두운 건물 안. 그곳에는 한 소년이 있었다.
오른쪽 어깨에는 신을 영접한 증거인 성흔이 박혀 있는, 눈에 슬픔을 담고 있는 소년이.
“그럼, 당연하지. 너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들이 바라는 건 마르첼로가 아니라 교황 후보일 뿐이니까.”
그런데 소년의 눈이 조금 이상했다.
초점은 없고, 무언가에 홀린 듯 멍하니 허공만을 바라보는 눈.
그건 결코 생기를 가진 소년의 눈이 아니었다.
“그래요, 그렇겠죠. 모두가 바라는 건… 내가 아니라….”
“성흔. 교황의 자격. 그것밖에는 없다는 거야, 너의 가치는.”
그리고, 소년의 곁에는 수도사가 한 명.
아니, 수도사가 아니었다.
“그럴 바에는 우리를 위해 쓰지 않겠어? 그 잘난 신이 내린 증거를.”
먹이를 입에 밀어 넣는 뱀의 눈을 한 그 여인은.
“우리의 위대하고 위대하신… ‘운명’을 위해.”
마왕을 따르는 여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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