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자매님에게는 마왕의 소질이 있다-105화 (105/109)

〈 105화 〉 성흔을 삼키는 뱀(2)

* * *

회상한다. 교황의 자질을 지닌 소년과의 대화를.

부담감을 토로하며 부정적인 말만을 늘어놓던 그 소년은, 대화의 마지막에 내게 물었다.

­ 신부님은 목숨을 잃는 게 두렵지 않은 건가요?

목숨을 잃는 것. 죽는 것. 성국의 고위 성직자들은 이걸 흔히 ‘신의 곁으로 돌아간다’라고 표현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투. 검의 형태를 한 성유물의 속에서 그의 파편을 보았다.

뭔가 처음 생각한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신이라는 존재는 조금 더 위대하고, 나 같은 평범한 인간은 범접할 수 없는 규격 외의 존재일 줄 알았는데.

뭐랄까, ‘사람답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투는 말했다. 그들은 우리 인간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라고.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적어도 하나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죽더라도, 신의 곁으로 가는 일은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일곱 신의 곁으로 가는 일은 없겠지. 다른 신들이 전부 우투와 같은 느낌이라면, 그들은 결코 수억의 인간의 영혼을 다스릴 만한 재량은 없을 것이다.

‘결국 죽음이란 미지다. 목적지를 알 수 없는 머나먼 여행.’

인간은 죽음 이후를 알 수 없다.

공화국의 마법사들은 죽음 이후를 무(無)라고 규정짓고, 연방국의 전사들은 끝없는 전쟁이 계속되는 것으로 생각하지.

그렇기에 무섭고, 그렇기에 경이 받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에… 하나밖에 없을지 모를 삶을 소중히 생각해야 하는 거고.

‘애석하게도, 그걸 깨달은 건 신부가 된 후였지만 말이야.’

이단심문관이었을 때는 내 목숨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충실한 신의 종. 성국의 창. 단지 그렇게 살았을 뿐이니.

신시아를 만나고 지난 시간을 후회하기 전까지는, 내 삶에 의미는 없었다.

친구들과 스승님 덕분에 약간의 즐거움은 있었지만, 그 모든 시간은 성국의 미래를 위해서지, 온전히 내 삶을 위해 쓴 것이 아니니.

하지만 지금은… 의미가 생겼다.

신시아의 삶. 신시아의 행복. 신시아의 밝은 모습.

그 모든 것이 내게 기쁨이자 의미가 되었으니.

그제야 비로소, 죽음이 두려워지게 되었다.

삶에 의미가 없었을 때는 죽음에도 의미가 없었다.

삶에 의미가 생기자, 죽음에도 의미가 부여되었다.

결국 그런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건….

‘지금의 삶을 사랑한다는 뜻이니까.’

그렇게 말해야 했었나. 대화란 건 언제나 지나간 뒤에나 좋은 생각이 떠오르는 법이다.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말해줘야지.

­끼이이익.

자신의 훗날에 대해 고민하는, 길 잃은 어린양에게.

* * *

마르첼로를 찾기 위해 로렌스가 향한 곳은, 잿빛 수도원에서도 금지 구역이라고 알려진 ‘옛 성소’라는 장소였다.

마르첼로를 찾기 시작했을 때, 로렌스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잿빛 수도원에 금지 구역으로 지정된 곳이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었다.

평소 수도사들이 다니는 곳이라면, 분명 누군가는 마르첼로와 마주쳤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무런 말이 들어오지 않았다는 뜻은 마르첼로가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곳을 향했다는 뜻이고.

그래서 떠오른 곳이 금지 구역이다. 오래된 종교 시설에는 언제나 금지 구역이 있기 마련인 데다가, 특히 잿빛 수도원처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라면 더더욱.

‘옛 성소’로 들어가는 문을 보자, 로렌스는 자신의 예감이 맞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먼지로 쌓인 문은 더러웠지만, 손잡이만큼은 깨끗했기 때문이다.

오래되어 삐걱거리는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힘겹게 문을 열고 들어간 ‘옛 성소’는… 불길함이 풍겨오는 장소였다.

“마르첼로?”

로렌스가 마르첼로를 부른다.

“마르첼로, 안에 있습니까?”

어차피 불러도 나올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한 로렌스가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탐색을 계속했다.

부서진 스테인드 글라스, 누렇게 바랜 은촛대, 누군가를 조각한 건지 알기 힘든 조각상.

마치 누군가에게 제물을 바치기 위해 마련해 놓은 것 같은 석판.

“…여기 있었군요.”

안쪽에 있는 긴 의자에는 누군가가 앉아 있다.

익숙한 뒤통수를 보자 로렌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들 걱정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만 돌아가죠, 마르첼로.”

“…….”

소년은 대답이 없었다. 로렌스의 부름에도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그저 묵묵히 정면을 바라볼 뿐이다.

“이미 아네모네에게도 꾸중을 듣고 오는 참입니다. 제가… 섬세하지 못했죠. 네, 인정할게요.”

혹시 자신에게 화라도 난 걸까. 그렇게 생각하며 로렌스는 한 걸음씩 마르첼로에게 다가갔다.

“너무 강압적이었습니다. 저는 당신도 평범한 성직자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아니었죠. 당신은 소년입니다. 신의 뜻 같은 건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아주 평범한 소년.”

굳이 바로 교황의 자리에 오르지 않아도 된다.

언젠가 마르첼로 본인의 결심이 서면, 그때가 되어 밖으로 나오더라도 늦지 않는다.

로렌스는 차분히, 그러면서도 조심스럽게 마르첼로를 설득했다.

어느덧 로렌스와 마르첼로의 사이가 채 반걸음도 남지 않았을 때.

“그러니까 일단은 돌아가서… 음?”

뭔가 이상했다. 마르첼로의 반응이 없었다.

어떤 사람도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반응은 지울 수 없다. 가령 갑자기 손뼉을 치면 움츠러든다던가.

그런데 마르첼로에게는 그런 것이 보이지 않았다. 잠이라도 자고 있는 걸까?

“괜찮습니까, 마르첼….”

로렌스가 어깨를 잡자, 그는 그대로 의자에 쓰러졌다.

혼절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처음부터.

찰나. 채 1초도 되지 않을 아주 짧은 시간.

로렌스는 상황 파악을 시작했고­.

“아하핫!”

채앵­. 검을 뽑아, 천장에서 날아드는 불의의 습격을 막아내었다.

“어? 막았네에? 암, 좋아. 손쉽게 당해버리면 나도 실망했을 테니까 말이야.”

“…당신은 누구입니까.”

아니, 물어볼 필요조차 없었다.

자신을 공격한 의문의 여인. 그녀에게선 풍겨왔기 때문이다. 사악하고 끈적거리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운이.

‘마리엣타. 그자와 똑같은 부류다.’

마왕 추종자. 흑마법사가 아니면서 마기를 다룰 수 있는 존재는, 마왕의 은총을 업은 이단자들밖에는 없을 테니.

“나? 나 말이야? 음, 뭐라고 소개해야 할까.”

단검에 묻은 피로 된 얼룩을 만지며 여자가 고민한다.

연쇄 살인마, 강도, 암살자, 첩보원, 신도, 도적, 자객.

수많은 말이 떠올랐지만, 그 무엇도 그녀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 그래.”

그러다 문득 떠오른 한 가지 단어.

“예술가야. 가장 좋아하는 주제는… ‘운명’이고.”

운명의 마왕. 그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마왕 추종자, 로리안.

그녀가 단검을 돌리며 로렌스를 바라보았다.

‘저 여인의 인상착의, 분명 드레이크에게 들어본 적이 있어.’

로렌스의 눈빛이 냉철하게 변했다. 눈앞에 둔 상대를 ‘적’이라 인식했을 때 드러나는 그의 습관이었다.

“당신입니까? 버려진 도시 레고르에서 드레이크 부국장을, 아니, 국장을 상대로 싸운 사람이.”

“드레이크? 어, 그게 누구였더라.”

“이단심문관입니다. 어깨에 큰 상처가 있는.”

“아, 맞아! 나랑 싸웠는데도 도무지 밀리지 않아서 기억하고 있었어!”

그 말은, 눈앞의 여자는 마왕 추종자가 확실하다는 뜻이다.

버려진 도시 레고르에 잠입해 성인의 유해로 끔찍한 재앙을 일으킨.

그리고­.

“…혹시 알베르라는 남자도 기억하고 있습니까?”

“음, 생각날 것 같은데….”

한참을 떠올리다가, 로리안이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하하, 기억났어! 그 얼빠진, 실력도 없는 신부 말이지? 알지, 알고말고. 그야….”

마치 로렌스를, 그리고 그의 엣 친우를 영혼까지 조롱하듯.

“그 남자한테 혈청을 건네 준 게 나였거든. 샌님의 부탁이긴 했지만 말이야. 제법 멋진 공연을 보여줬던데? 나만큼은 아니지만.”

“…….”

드디어, 찾았다.

친구를 타락의 구렁텅이에 밀어 넣은 악의 하수인이.

되갚아 주리라고, 친구의 무덤에서 몇 번이고 맹세한 복수의 대상이.

“세바스.”

로렌스가 검에 묶인 사슬을 풀었다.

성유물이 폭주하지 않도록 감아 놓은 그 사슬은, 신시아의 힘을 봉인하는 로자리오와 같은 재질이었다.

“당신의 힘을 빌려주십시오.”

봐줄 생각이 없는 것이다. 중요한 참고인이고 뭐고,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치기는 싫었으니까.

“으흠, 맘에 들어. 그 눈.”

로렌스의 얼굴을 본 로리안이 웃었다.

샌님이 말한 ‘변수’. 직접 마주하는 건 처음이지만, 왜 그렇게 레서가 그를 주시했는지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이 남자는, 일반인과는 다른 길에 서 있는 것이다.

그래, 어딘가 살짝 미쳐 있는 자신들과 같이.

“좋아, 좋아, 좋아! 샌님의 말을 듣길 정말 잘했어! 이래야지, 이래야 힘들게 이곳까지 온 보람이 있지!”

“어서 무기를 드십시오. 저항하지 않는 상대를 베는 취미는 없으니.”

로렌스는 의문을 품었다. 이 여자의 목적은 마르첼로가, 교황 후보가 아니었나?

“네 실수를 알려줄까?”

기이한 각도로 고개를 꺾으며, 로리안이 로렌스에게 말했다.

“너 말이야, 저 꼬맹이를 구하러 온 거지?”

“그렇습니다.”

“그럼 도망쳤어야지. 나한테 시간을 빼앗길 게 아니라.”

교황 후보를 찾는 임무보다, 개인의 복수를 우선시했다.

그 찰나의 선택이 로렌스에게 있어 치명적인 실수가 될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저 여자는.

“무대를 바꿀게.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는 개미지옥으로.”

로리안이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건물의 바닥에 생긴 거대한 원. 바닥은 모래처럼 변해 거대한 구멍으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이건 대체…?’

혼자라면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르첼로는.

로렌스가 마르첼로를 부둥켜안았다. 기절한 그가 다치지 않도록 함께 바닥으로 떨어지며.

깊고 어두운, 독사가 머무는 둥지를 향해.

“자, 신사숙녀 여러분! 대륙 최고의 아티스트 로리안의, 1421번째 공연이 시작되겠습니다!”

“이런, 빌어먹을…!”

무너져 내린 바닥을 타고 그들이 도착한 곳은, 옛 성소 지하에 있는 거대한 공동(??)이었다.

“공연 제목은… ‘길 잃은 어린양’.”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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