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자매님에게는 마왕의 소질이 있다-108화 (108/109)

〈 108화 〉 살아가려는 자들(1)

* * *

마르첼로는 꿈을 꾸었다.

가족에게 비극이 닥치는 일은 없이, 그저 평범하고도 소박한 행복을 누리는 꿈을.

하지만 마지막은 항상 악몽으로 끝났다.

­요한, 요한! 어디로 간 거니!

요한. 가족에게는 마르첼로라는 이름 대신 요한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하지만 마르첼로는 그 이름을 좋아하지 않는다.

요한이라고 불릴 때마다, 불길이 가득했던 그 날이 계속 머릿속에 떠올라서­.

­요한, 거기 있는 거지? 그렇지?

그의 집은 불길에 휩싸였다.

마물의 습격 같은 것이 아니다. 어느 한 미치광이 이단심문관에 의해, 그의 보금자리는 순식간에 재가 되어 사라졌다.

“으윽, 끄으으윽….”

아직 어린 나이였던 마르첼로는 그 광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불길 속에서 가족들이 비명을 지른다. 웃는 모습이 예뻤던 누나, 듬직한 아버지, 상냥한 어머니….

아버지가 자신을 창문 밖으로 내던진 덕분에 화재는 피했지만, 다른 가족들을 모두 잃고 혼자가 되었다.

그것은 마르첼로에게 있어 결코 ‘운이 좋았다’라고 할 수 없는 일이다.

­요한, 대답하렴!

타들어가는 집 안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어머니의 목소리다. 그 목소리가 애타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데도.

“으흐윽, 으윽.”

마르첼로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 그러지 않았다.

자신을 부르는 저 목소리는 분명 원망이 서려 있을 것이다, 라고.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째서 자신도 함께 죽지 않은 걸까.

저 불길 속으로 들어가면 가족과 영원히 함께할 수 있었을 텐데.

­요한, 너는, 너만큼은­.

뒷말은 들리지 않는다.

어머니의 말이 끝나기 전에 항상 아침이 밝아오기 때문이다.

* * *

“정신이 들어, 마르첼로?”

“…엄마?”

흐릿한 시야. 어째서인지 따뜻한 기분이 든다.

누군가의 무릎에 머리를 기댄 건 얼마 만일까.

“아니, 미안해요.”

눈을 비비고 자신을 보호하고 있는 여자를 확인한다.

그 검은 신부가 데리고 다니는 수녀다. 이름은 분명… 신시아라고 했었나.

어째서 이 누나가 자신을 지키고 있는 것인가.

아니, 그전에 등에 달린 두 장의 날개는 또 뭐란 말인가.

‘꿈? 아직 꿈에서 깨지 않은 건가?’

그게 아니라면 사후 세계라던가.

분명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날개가 달린 천사는 죽은 자의 혼을 천국으로 인도한다고.

만약 그 소문이 진짜라면, 가족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걸까.

“신시아, 그쪽으로 날아갑니다!”

“알겠어!”

현실과 꿈 사이의 몽롱한 기운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바위의 파편을 보자 날아가듯 사라졌다.

신시아의 날개가 마르첼로를 감싸 안는다.

날아오는 바위를 막아내는 두 장의 날개는, 천사의 그것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단단해 보였다.

“이제야 정신이 좀 듭니까, 마르첼로?”

“…신부님? 그리고 앞에 있는 건….”

뱀. 거대한 뱀이다.

사람의 몸뚱이보다 수십 배는 커 보이는 거대한 뱀이, 어두운 연기를 뿜으며 로렌스를 물어뜯으려 하고 있었다.

이곳은 꿈속이 아니다. 책에서 봤던 천국이라는 곳도 아니다.

현실이다. 굉장히 깜깜하고 어두운, 어딘가의 지하로 보이는 장소.

“제가 왜 이런 곳에….”

기억이 흐릿하다. 혼자 있고 싶어서 지금은 쓰지 않는 건물을 돌아다닌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거기서 처음 보는 얼굴의 수도사를 만나고, 그리고 그 뒤엔.

“별 것 아닙니다.”

마르첼로의 몸집만 한 검을 휘두르며 로렌스가 말했다.

“잠깐 꿈을 꾸는 겁니다. 눈을 붙이고 나면 잊을, 그런 아무것도 아닌 꿈.”

꿈, 꿈. 이런 꿈은 처음 꿔보는데.

어깨에 ‘성흔’을 받고 나서는 매일이 악몽의 연속이었다.

불길 속에서 가족들이 외친다. 요한, 어째서 너만 살아남았냐고.

‘어째서 저들은 목숨을 거는 거지?’

금방이라도 목숨을 앗아가 버릴 만큼 무서운 뱀이다.

저것이 뿜어내는 연기가 독안개라는 것쯤은,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마르첼로라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게 현실이라는 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들이 괴물에게서 자신을 지키려 하는 것도.

저 괴물이 노리는 게 아마 자신이라는 사실도.

­ 네가 교황 후보구나. 그렇지, 꼬마야?

그리고 모든 일이 자신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도.

기억이 났다. 의식을 잃기 전, 사악한 기운을 품은 여자가 자신의 목을 졸랐다.

내 목숨을 노린 거겠지. 선대 교황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내가 교황 후보라는 것 때문에?’

날 죽이려는 것도, 날 살리려는 것도.

모두, 모두 다. 이 빌어먹을 어깨의 문양 때문에.

“…이제 됐어요.”

이젠 싫증이 났다. 염증이 일었다.

난 아무리 해도 ‘교황’이라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죽는 게 무섭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사라진다는 게 무섭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것은.

“날 두고 가요. 제가 교황 후보라는 이유 때문에 무리하실 필요 없어요.”

‘마르첼로’가 사라지고, 교황 후보 ‘요한’만이 남는다는 사실.

그건 마치 자신의 과거를, 불길 속에서 죽어간 가족을 부정하는 것만 같아서.

마르첼로는, 결코 교황이 되고 싶지 않았다.

“신부님도, 그리고 수녀 누나도. 사실은 저 같은 걸 돕고 싶지 않잖아요?”

어깨에 있는 문양. 이 작은 문양이 없었다면, 그래도 저들은 자신을 구하려 목숨을 걸 수 있을까.

또, 저 괴물이 자신을 노리려 했을까? 아니, 결코 아니지.

“난, 이제 지쳤어요. 매일 밤 악몽을 꾸는 것도, 희망 없는 내일을 기다리는 것도.”

그럴 거라면, ‘마르첼로’인 지금 죽음을 맞이하자.

천국이든 지옥이든, 이 몸에서 떠나 가족들을 만나러 가자.

­ 요한, 너는, 너만큼은­.

그게, 지금도 유일하게 살아남은 자신을 애타게 찾을 가족들을 위한 마지막 위로가 될 테니까.

그리고 그런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의 말을.

“착각하지 마십시오, 마르첼로.”

로렌스는 정면으로 부정했다.

“당신이 교황 후보라서 그런 게 아닙니다. 그런 건 아무런 이유도 되지 않아요.”

뱀의 독안개를 걷어내며, 로렌스는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유유히 할 말을 이어 나갔다.

“당신이 교황 후보든, 아니면 미래에 재앙이 될 가능성을 지닌 운명이든.”

로렌스가 지금 하려는 말은, 마르첼로가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말이다.

“그런 건 아무런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요한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살아 있으니까.”

두근. 심장 박동 소리가 오늘따라 크게 느껴진다.

살아 있다는 것. 그날, 그 불길 속에서 죽지 않았다는 것.

자신이 애써 눈을 돌리고 있던 그것이, 왜 지금 이토록 크게 느껴지는 걸까.

“살아 있기 때문에 살리려는 겁니다. 죽어 마땅할 자가 살아 있는데, 어째서 미래가 창창한 아이를 죽게 내버려 두겠습니까.”

“신부님의 말씀대로야. 아직 어린애네, 마르첼로는.”

어린애, 어린애. 지금 내가 몇 살이더라.

15살이었나. 16살이었나. 아니, 15살이 넘기는 했던가?

“교황이 되지 않아도 좋습니다, 마르첼로. 하지만 말입니다.”

뱀이 덮쳐온다. 하지만 로렌스는 선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발을 떼지 않았다.

수호성인. 검으로부터 생겨난 빛의 벽이, 독으로 가득 찬 송곳니를 막을 뿐이다.

“함부로 삶을 포기하려 하지 마십시오.”

은은한 빛을 머금은 검.

그 검을 들고 자신을 돌아보는 로렌스의 모습은 마치, 먼지가 잔뜩 쌓인 책에 나오는 주인공 같아서.

“…용사.”

마르첼로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얼마나 아프더라도, 지레짐작해서 먼저 포기하지는 마.”

신시아도 로렌스의 말을 거들었다.

가족을 잃는 슬픔이 뭔지 그녀는 모른다. 처음부터 가족이라고 부를 만한 게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것만큼은 말할 수 있다.

“살다 보면 언젠가는 좋은 일이 찾아오더라고.”

행복의 가장 밑바닥에 있었을 그녀에게도, 언젠가 햇살이 잔잔하게 비추는 수면 위로 올라올 날은 있을 거라고.

“그러니까 너도 분명 괜찮을 거야.”

날개를 휘날리며, 신시아가 생긋 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요한, 너는, 너만큼은­.

마르첼로의 귀에, 타닥거리는 불길의 소리가 들려온다.

눈을 감으면 보이는 것은, 언제나 그날의 풍경이다.

어머니의 격정적인 말. 그 뒤에 따라 나오는 건 얼마나 두려운 저주일까.

어린 요한은 귀를 막았다.

그리고 귀를 막은 두 손을, 종자 마르첼로가 조용히 떼어낸다.

­ 너만큼은, 살아야 해.

이제야, 들렸다.

반평생 자신을 괴롭혀 온 악몽의 끝은, 평범한 가족의 마음이었다.

어머니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 애정과 사랑.

“…바보 같네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마르첼로가 말했다.

“너, 진짜! 신부님이 무슨 마음으로 말하는지 아직도 모르겠어?”

“아니, 신부님을 말한 게 아니에요.”

이토록 단순한 걸, 왜 지금까지 모르고 있던 걸까.

오른쪽 어깨에 성흔이 있든, 없든. 결국 마르첼로는 마르첼로다.

살아 있으니까. 계속해서 살아가고 싶으니까. 이런 성흔도 받을 수 있었던 걸 텐데.

“이제 괜찮아요. 제가 너무 어린애 같이 굴었어요.”

“그래도 괜찮아. 넌 아직 어린애가 맞으니까.”

“음, 못해도 수녀 누나보다는 어른 같다고 생각했는데.”

뱀을, 그리고 뱀에 맞서 싸우는 로렌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팽팽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로렌스 쪽의 체력이 먼저 바닥날 것이다.

“힘들어 보이네요, 신부님.”

마르첼로는 바닥에 성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성법을 ‘알고’ 있을 뿐, 사용할 수는 없다.

제대로 훈련도 받지 않은 종자가 가지고 있는 미약한 신성력으론, 저 규격 외의 싸움에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다.

“이제 술래잡기는 그만할게요.”

하지만, 누군가를 부르는 것 정도라면.

잿빛 수도원의 모든 비밀 공간을 알고 있고, 항상 자신의 위치를 알 정도로 뛰어난 탐지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형이 이겼어요.”

그런 사람이 딱 한 사람 있다.

겉으로 보기에도 엄청 강한 로제리오조차 고개를 조아리는 한 사람.

수도원장이라는 사람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아마도 그녀가 맞을 것이다.

수녀 란. 아마도 지금쯤 열심히 자신을 찾고 있을 그 사람.

“교황 같은 거, 정말로 되기 싫지만.”

성법진이 완성되었다.

이 술식은 간단하다. 자신이 지운 ‘기척’을 다시 만드는,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술식.

그것만으로, 이 상황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살아봐야지. 안 그래요?”

“…이제야 좀 눈빛이 좋아졌네요.”

마르첼로의 몸이 빛난다.

그리고 아주 잠깐, ‘기척’이 다시 생긴 찰나의 순간.

“여기 있었네요, 마르첼로.”

수녀 란이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처럼 느긋한 말투와 몸짓으로.

“이런 데까지 오다니, 앞으로는 단속을 더 철저히 해야겠는걸요? 아, 이번 일이 끝나면 업무량을 두 배로 늘릴 테니 기대하세요.”

란이 뒤를 돌아보았다. 설마 자신의 눈을 피해 들어온 쥐새끼, 아니 뱀새끼가 있었다니.

“뭐, 아무튼… 잘 생각했어요. 절 부른 건.”

란이 수녀복을 벗었다.

그 안에 드러난 건, 차마 그 나이대의 여자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빈약한 몸과….

“이제 숨길 필요는 없겠죠. 자, 보여드릴게요.”

극한으로 단련된 몸. 그리고 얇은 천으로 된 수도복이었다.

“잿빛 수도원장에 오르려면 어떤 힘을 갖춰야 하는지를.”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