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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구더기짱-9화 (9/47)

〈 9화 〉 너는 끝까지 살기를 원했지

* * *

그후로 마리안느는 포크를 물고 꾸준히 타자연습을 했다.

중학생 시절 일기장을 폭로 당한 덕분인지

타자를 칠 때 마리안느의 마음은 명경지수 같은 상태에 도달했다.

마음을 비우고 타자를 칠 수 있게 된 마리안느는

오랜 연습 덕분에 이제는 제법 빠르게 입으로 타자를 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제법 잘 치네?]

조셉이 빨라진 마리안느의 타자 실력을 보며 말했다.

[근데 뭐하러 타자 연습을 시키는거야.]

마리안느는 조셉이 무슨 이유로 타자 연습을 시키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타자 따위 잘 칠 수 있음 뭐해. 칠 이유도 없지만 잘 쳐봤자 손으로 치는 것보다 훨씬 느려터졌는데.]

타자 따위 쳐봤자 뭐한단 말인가?

게임 하면서 부모 안부라도 물어보란 말인가?

[그러면 평생 키보드를 쓰지 않고 살아갈거야? 지금 같은 시대를 살아가면서 컴퓨터를 쓰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데 입으로라도 쓸 수 있도록 연습해야지.]

금융, 통신 뿐만 아니라 각종 잡다한 서비스도 인터넷으로 처리하는 시대다.

손이 없다고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면

평생 남에게 의존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또한 할일 없이 멍하니 있는 마리안느가 게임이나 동영상 시청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조셉은 마리안느에게 타자연습을 시켰다.

[그럼 의수를 끼고 치는게 훨씬 낫잖아.]

입으로 치는 것 보다 의수를 끼고 치는게 훨씬 편하고 빠르다.

그런데 왜 굳이 포크를 입에 물고 친단 말인가.

[컴퓨터 쓸때 마다 의수를 착용해야 하다니 귀찮잔아. 게다가 입으로 타자를 칠 수 있으면 의수가 없는 상황에서도 컴퓨터를 쓸 수 있잖아.]

[그런 상황이 대체 어떤 상황인데.........]

의수는 없는데 컴퓨터는 있는 상황은 대체 뭔 상황이란 말인가

[게다가 이렇게 연습해봤자 컴퓨터로 할 것도 없다고……]

컴퓨터는 커녕 핸드폰도 아주 가끔 쓴다.

근데 이제와서 컴퓨터로 뭘 한단 말인가.

[그럼 편지라도 써볼까?]

[편지?]

[부모님한테 편지를 써보자고. 네가 노트북으로 편지를 쓰면 내가 메일로 보내줄게.]

[뭐하러 그런 짓을 하는데?]

정말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통화로 하는게 훨씬 빠르고 간단하다.

[부모가 싫으면 친구나 뭐 아무나 좋아. 어차피 할일도 없잖아. 그냥 써봐.]

그렇게 말하며 조셉은 마리안느를 노트북 앞에 앉히고 부엌으로 갔다.

노트북 앞에 앉은 마리안느는 생각에 잠겼다.

마리안느는 부모한테 편지를 보낼 이유가 없었다.

부모 따위한테 왜 편지를 보낸단 말인가?

간호사를 고용해 마리안느를 맡겨놓고 신경도 안쓰더니

이제는 이런 미친놈을 보내서 안그래도 괴로워 죽을 거 같던 나에게

여기서 더 괴로울 수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 그런 부모한테

내가 왜 굳이 편지를 보내야한다는 건가?

보낼거면 저새끼를 족칠 수 있도록

저새끼의 만행을 폭로하는 편지를 써야하는데

그런 편지를 써봤자 저새끼가 그런 편지를 보내줄리가 없다.

보나마나 보내기 전에 미리 읽고 검열할게 뻔하다.

그렇다면 뭘 쓴단 말인가?

마리안느는 뭐라 쓸지 고민하던 중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애들 장난 같은 방법이지만

잘만 하면 저새끼를 폭로할 고소장이 될 수도 있는 방법이었다.

몇번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노트북 자판을 포크로 두드리던 마리안느는

마침내 편지를 완성했다.

부모님께

저를 도와주실 분을 만났습니다.

알맞게 와주신 덕분에 아주 좋아요.

작은 것도 주의 깊게 살펴주세요.

편한 덕분에 세상근심 없이 지내요.

너무너무 좋아 요만큼도 불편한게 없어요.

저는 잘 지내니 걱정하지마세요.

사랑하는 딸

완성된 편지를 읽어본 마리안느는

이대로 보내도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조셉이 과연 이 편지를 보내줄 것인가

보내도 이 메시지를 부모가 알아차려줄지

마리안느는 알지 못했다.

그래도 해보는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한 마리안느는 조셉을 불렀다.

[...........다 썼어.]

[어디보자.]

조셉은 노트북을 자신 쪽으로 돌린 후 마리안느가 쓴 편지를 읽었다.

편지를 읽는 조셉을

마리안느는 조마조마하게 지켜봤다.

저 미친 싸이코 새끼는 묘하게 감이 좋아서

마리안느의 의도를 알아차릴 것 같았다.

그러나 조셉의 반응은 마리안느의 예상과 달랐다.

[구더기짱이 나를 이렇게 생각하고 있던거야?]

편지를 읽은 조셉이 감격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구더기짱! 너무 기뻐! 뽀뽀해줄게!]

조셉이 기뻐하며 마리안느에게 다가왔다.

[절대 하지마! 입술을 깨물어 뜯어버릴거니까! 그냥 메일이나 얼른 보내!]

[근데 편지를 이상하게 썼네?]

그 말을 들은 마리안느의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다.

[..........어디가 이상한데....?]

마리안느가 애써 침착하려 노력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뭔가 문장이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난단 말이야?]

조셉은 편지를 곰곰히 살펴보았다.

그런 조셉을 지켜보던 마리안느는 긴장으로 죽을 것 같았다.

몸에서는 식은땀이 흐르고 심장박동이 쿵쾅쿵쾅 뛰는게 느껴졌다.

제발 자신의 의도가 들통나지 않기를 빌면서 덜덜 떨었다.

만약 들키면 어떡하지? 그러면 뭐라고 변명해야 하지?

마리안느는 편지에 담긴 자신의 구조신호를 들킨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건 확실했다.

보나마나 저 미친싸이코 새끼한테 당한 것 중

가장 혹독하고 끔찍한 짓을 당할 것이다.

그런 짓은 절대로 겪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제발 들키지 않기를 비는 수 밖에 없었다.

조셉이 편지를 읽는 1분이

마리안느에게는 1년처럼 지나갔다.

[흠……………]

천천히 편지를 읽던 조셉은 핸드폰을 꺼냈다.

[뭐 상관없나? 중요한건 그 안에 담긴 메시지니까.]

조셉은 편지를 핸드폰에 옮겨적었다.

[그럼 보낼께? 구더기짱?]

조셉은 핸드폰으로 마리안느의 편지를 보냈다.

[자! 보냈어 구더기짱!]

메일이 간 걸 확인한 마리안느는 안도했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남은 건 기다리는 것 뿐.

그날밤

마리안느는 침대에 누워서 생각했다.

부모님의 얼굴을 본 것도 오래전 일이다.

부모님은 손발이 없는 마리안느가 귀찮고 꼴보기 싫은지

자기들이 고용한 간호사들에게만 맡겨놓고

본인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찾아오지 않았다.

게다가 이제는 왠 미친 변태놈한테 맡겨놓고 확인도 안해서

마리안느를 지옥 밑바닥으로 추락시켰다.

그런 부모지만 제발 지금만큼은

이 편지에 담긴 구조신호를 발견해서

부디 이 지옥에서 나를 구해주길

손이 없어 기도하지 못하지만

부디 이 간절한 기도가 전해지길.

그렇게 간절히 빌면서 마리안느는 잠들었다.

그날밤

조셉은 침대에 누워서 마리안느가 쓴 편지를 읽었다.

마리안느.

너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구나.

조셉은 마리안느가 쓴 편지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면서 마리안느의 삶을 생각했다.

한순간에 사지를 잃었다.

어느날 갑자기 이상한 변태새끼가 쳐들어와서 괴롭힌다.

어떻게 보면 참 암담한 상황이다.

그러나 미친 변태새끼가 사라져서 마리안느를 그만 괴롭혀도

마리안느의 삶이 더 나아질 것 같지 않았다.

손과 발을 잃고 살아가는 것과

손과 발을 잃고 괴롭힘을 당하며 살아가는 것

둘다 비참하기는 마찬가지인 삶이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마리안느는 포기하지않고

어떻게든 몰래 빠져나갈 길을 찾고 있었다.

조셉은 그런 마리안느가 너무나도 아릅답게 느껴졌다.

사지를 잃고 살아가는 마리안느와 달리

조셉은 손가락 하나 잃어본 적이 없었다.

사지를 잃고 살아가는 세상은 대체 어떤 세상일까.

그런 인생은 과연 살아갈 가치가 있는 인생일까.

그런 삶은 대체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경험하고 싶지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않다.

그냥 그런 삶은 영원히 타인의 것이었으면 좋겠다.

마리안느.

나는 네가 부럽다.

나도 너처럼 악착같이 살아갈 수 있었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겠지.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든 기어서라도 빠져나가려는 네가 너무나도 눈부셔서

구더기나 다름없는 나같은 존재는 대체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암담하게만 느껴진다.

나는 너무나 약해빠져서 손가락 하나만 잃어도 살아갈 희망을 잃을 자신이 넘친다.

실제로 이미 예전에 많은 걸 잃었던 나는 인간답게 살기를 포기하고 살았었다.

그러나 너의 아름답고도 처절한 몸부림을 보면

복수를 위해 모든 걸 내려놓기로 한 나도 인간으로 살아갈 희망이란게 생긴다.

만약 네가 진짜 구더기라서

괴롭히고 짓밟고 때려도 모든 걸 포기하고

그렇게 죽은듯이 살아가면

내가 너를 괴롭히는게 그리 싫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너는 이렇게 마리안느로 살아가려 애쓰는구나.

그런 너를 괴롭히는 것이 나는 괴롭다.

과연 너의 쓰레기 같은 부모는

눈치가 조금이라도 있어서

너의 간절한 메시지를 읽을 수 있을까?

같이 기도하자 마리안느

편지에 담긴 너의 구조신호가 전해져서

나의 어리석은 복수를 끝내주길

손이 없어 두손을 모아 기도하지 못한다면

내가 대신 모아줄테니

예전에 이미 죽은거나 다름없던 나를

이제는 좀 끝내주길

간절히 빌어본다.

그렇게 기도하며 조셉은 잠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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