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 너와 함께 살아갈 집을
* * *
조셉이 마리안느의 집에 온지 3개월이 지났다.
조셉이 열심히 일한 덕분에
처참하던 집은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조셉이 이 집에 처음왔을 때는
몇년이나 관리를 못 받은 상태라
집안 여기저기가 엉망이었다.
그래서 조셉은 이 집에 와서
죽도록 집안일만 했다.
조셉이 처음 이 집에 왔을 때
집안을 둘러보면 둘러볼 수록
손볼 곳이 넘쳐났다.
여기저기 곰팡이가 피어있었고
청소는 눈에 보이는 곳만 어느정도 되어있을 뿐
구석에는 먼지가 가득했다.
창틀은 대체 언제 닦은 건지 모를 정도로 새까맣게 변해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불이 들어오지 않는 전구들도 있었고
냉장고 안은 정리가 되어있지 않았다.
청소기 필터도 갈지 않아 청소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집 밖도 엉망진창이었다.
창고는 잡동사니로 가득찼고
보일러는 거미줄이 쳐져있었다.
외벽은 페인트가 벗겨진 곳이 눈에 띄었고
배수로는 낙엽들로 막혀있었다.
정원은 그야말로 정글이었고
차고도 정리할게 많았다.
돈도 많은 집안이 관리상태는 개판이었다.
그전까지 마리안느를 돌봐주던 여자들은 대체 뭘 한 건지
조셉은 알 수가 없었다.
커다란 종합병원에서 일하던 간호사들이
집안관리를 제대로 할 수 있을 거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조셉은 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보면 좋을지 막막했다.
고민한 끝에 우선 주방부터 손보기로 했다.
주방은 위생과 직결되는 곳이었다.
시작부터 막막했다.
싱크대 배수관은 청소가 안되있어서 악취가 올라왔고 곰팡이가 피어있었다.
마트에서 락스를 사서 싱크대에 콸콸 쏟아부었다.
배수구 거름망은 버려버리고 새로 사다 끼웠다.
수세미로 싱크대를 박박 닦아 묵은 때를 벗겨냈다.
인덕션도 엉망이었다.
기름때가 잔뜩 끼어있었다.
스팀청소기를 사다가 기름때를 말끔히 벗겨냈다.
같은 방법으로 주방 배기후드도 싹 청소했다.
주방 찬장에 그릇들을 죄다 꺼내고
그 안을 걸레로 싹 닦았다.
찬장 안에서 죽은 사슴벌레가 발견 되었다.
대체 어떻게 들어간 것일까.
그 다음은 냉장고였다.
냉장고 안은 그야말로 좀비소굴이었다.
대체 언제 산건지 모를 식품들이 가득했다.
뿌리채소들은 미라로 변해있었고
푸른잎채소들은 노란색이 아니라 까맣게 변해있었다.
원래 뭐였는지 알 수 없게 변한 것들도 있었다.
그래서 그냥 아예 싹다 버렸다.
이러는 편이 편하고 시간도 절약할 수 있었다.
냉동고는 까만 비닐봉다리만 가득했다.
뭔지 열어보지도 않고 죄다 버렸다.
싹 비워진 냉장고를 에탄올을 묻힌 행주로 닦았다.
칸칸이 나눠진 냉장고를 닦아내느라 고생했다.
에탄올을 1리터나 써서 냉장고 청소를 마쳤다.
그 다음은 도배를 했다.
마트 근처에 있는 철물점에 들러 벽지랑 풀을 샀다.
곰팡이가 핀 벽지를 죄다 뜯어내고 새 벽지를 붙이는 건 힘들었다.
새로 도배하는데 이틀이나 걸렸다.
벽지를 사기 위해 철물점에 간 걸 시작으로
철물점을 편의점 가듯 드나들었다.
이것저것 엄청 많이도 샀다.
대용량 락스
철수세미
벽지
공구세트
전동드릴
호스
수도꼭지
수도관
시멘트
실리콘 주사기
배수관 세척제
방수커튼
욕실 환풍기
페인트
전구
건전지
예초기
농약
비료
삽
모종
조셉이 대충 기억하는 것만 이정도다.
이렇게 집을 뜯어고치는 과정에서
필요한 물건들은 사모가 준 생활비 카드로 구매했다.
이것저것 사느라 신용카드 사용량이 갑자기 늘어나자
사모의 비서라는 사람한테서 전화가 왔었다.
카드내역을 보니 이것저것 구입하던데
뭐하느라 이런 걸 다 사냐고 조셉에게 물어보길래
집안을 둘러보니
뭐하나 제대로 된게 없다고
집안은 온통 곰팡이가 피었고
공구는 커녕 나사못도 없고
정원은 잡초투성이
심지어 생활용품도 제대로 구비가 안되어있는데
전에 있던 간호사란 놈들은 대체 뭐한건지 궁금할 지경이라고
그놈들한테 애를 맡겨놓고 신경도 안쓰고 있었냐고
조셉은 욕설을 섞어가며 미친듯이 화내면서 따져 물었다.
그 이후로는 조셉이 카드로 얼마를 긁던 터치하지 않았다.
그렇게 집안을 쓸고 닦고 고치면서
조셉은 마리안느를 돌보는 일도 해야했다.
밥해서 먹이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장 봐오고
그런 것들을 처리하면서
망가진 집을 하나씩 뜯어 고쳐나갔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아예 대공사가 되어버렸다.
마리안느가 쓰는 방은 아예 전부 뜯어고쳤다.
마리안느는 퀸사이즈 침대에서 잠을 잤는데
스스로 올라가지도 못하는 침대는 왜 쓰는지
조셉은 이해가 안갔다.
그래서 침대를 치우고 바닥에 이불을 깔았다.
이불을 깔아놓으면
마리안느 스스로 이불에 기어들어가서 잘 수 있었다.
쓰던 침대는 버릴까 했는데
마리안느가 쓰던 침대는 명품 브랜드 침대였다.
비싼 침대는 어떤가 궁금해서 누워봤더니
이게 침대...? 지금껏 내가 누웠던 침대들은 대체 뭐지…..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조셉은 이 침대를 버리기가 아까워졌다.
그래서 조셉이 쓰기로 하고
조셉이 쓰는 방에다 가져다 놓았더니
마리안느가 자기껄 뺏어갔다고 징징거렸다.
짜증난 조셉이 마리안느의 머리를 쥐어박자
마리안느는 구석에서 훌쩍였다.
그래서 나중에 마리안느가 쓸 수 있는 침대를 사줄테니
일단은 이불에서 자라고 타일렀다.
그 다음 조셉은 마리안느가 쓰는 욕실과 화장실을 뜯어고칠 생각이었다.
마리안느가 쓰는 욕실과 화장실은
마리안느 스스로 쓸 수 있게하는 것이
조셉의 계획이었다.
욕실과 화장실 문은 뜯어버렸다.
마리안느가 열 수도 없는 문은 달려 있을 필요가 없었다.
뜯어낸 문 대신에 방수가 되는 커튼을 설치했다.
이러면 습기도 막을 수 있었고
마리안느 스스로 커튼을 밀치고 들어갈 수 있었다.
욕실에 있는 세면대는 마리안느가 쓸 수 없었다.
조셉은 마리안느가 스스로 씻을 수 있도록 바꿀 생각이었다.
그러려면 수도꼭지를 바닥에 가깝게 설치해야 했다.
수도계량기를 잠그고
수도관을 사다가 기존 수도관에 연결해서
바닥과 가까운 곳에 수도꼭지를 설치했다.
수도꼭지는 레버가 달려있어서
마리안느가 입으로 레버를 올리고 내려서
스스로 물을 틀 수 있었다.
그리고 전동칫솔을 사다가 바닥에 고정했다.
이러면 조셉이 없을 때는
마리안느 스스로 얼굴을 돌려가며 이를 닦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가장 어려운 일을 할 차례였다.
화장실이었다.
조셉은 마리안느가 스스로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도록
화장실을 개조할 생각이었다.
조셉은 장을 보거나 관공서에 들러서 일을 보느라
항상 마리안느 옆에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럴 때는 마리안느에게 기저귀를 채울 수도 있지만
조셉은 그러기가 싫었다.
마리안느 스스로 화장실을 갈 수 있게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였다.
스스로 화장실에 가지 못하고 기저귀나 차고 다닌다면
마리안느의 존엄성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먹고 싸고 씻고
이런 걸 마리안느 스스로 하게된다면
잃어버린 마리안느의 자존감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셉은 생각했다.
그러나 마리안느가 스스로 쓸 수 있는 화장실을 만드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팔다리가 없는 마리안느가 혼자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은
아래의 조건들을 만족해야했다.
우선, 변기높이가 낮아야 했다.
마리안느가 스스로 변기에 올라가 앉을 수 있도록
변기에다가 낮은 경사로를 설치할 것인데
그러려면 변기 높이가 낮아야 했다.
두번째는 비데여야 했다.
스스로 뒷처리를 못하니 당연했다.
세번째는 자동으로 물이 내려가야 했다.
손이 없는 마리안느는 변기레버를 누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동으로 물이 내려가야 했다.
원하는 조건을 가진 제품을 찾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고
여러 업체들한테 문의해본 결과
원하는 제품이 있었다..
어린이집에서 주로 쓰는 어린이 변기였다.
이 변기는 높이가 20cm 정도였고
어린이용 비데가 달려있었다.
제품에 센서가 달려있어서 자리에서 일어나면
자동으로 물이 내려가는 기능이 있었다.
그러나 원하는 제품을 찾아도
고작 1개 팔려고 이런 외진 곳까지 배송을 못해준다길래
웃돈을 얹어주고 부탁해서 겨우 구매했다.
기존에 변기는 뜯어버리고
새로 온 변기를 설치하고
공구리질을 마치자 하루가 다 지나갔다.
비데버튼을 변기 옆에 설치하면 마리안느가 누르지 못하기 때문에
입으로도 누를 수 있도록 벽면에다 설치했다.
설치한 어린이용 변기는 높이가 20cm 밖에 안되었지만
20cm 조차 마리안느에게는 높았다.
그래서 작은 경사로를 변기앞에 놓았다.
고무재질로 만들어진 경사로를 변기 앞에 설치하면
마리안느가 경사로를 기어올라가서 변기에 앉을 수 있을 것이다.
화장실 문짝을 뜯어내고 경사로를 최대한 변기와 가깝게 놓은 뒤
바닥에 고정하기 위해 화장실 타일을 뜯어냈다.
그리고 콘크리트용 나사를 박아 경사로를 고정시켰다.
그렇게 겨우겨우 마리안느 전용 화장실을 만드는 일이 끝났다.
마리안느가 혼자 사용할 수 있는지 조셉은 시험해보기로했다.
오렌지주스를 마리안느에게 잔뜩 마시게하고
마리안느 스스로 사용해보라고 시켰다.
처음에는 혼자서 못 올라갔으나
계속 쓰다보니 나중에는 혼자서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마리안느 스스로 화장실을 갈 수 있게 되었다.
마리안느가 스스로 쓸 수 있는 욕실과 화장실을 만드는데만
3주가 넘게 걸렸다.
그러나 아직도 할일이 잔뜩 남아있었다.
엉망인건 집안만이 아니었다.
집 바깥쪽도 아주 개판이었다.
정원은 잡초들이 멋대로 자라고
풀벌레들에게 장악당한 상태였다.
예초기를 사다가 싹다 밀어버리고
약을 뿌려서 벌레들을 정원에서 내쫓았다.
그리고 정원 한구석에 꽃을 심었다.
철물점은 시골에 있어서 그런지
여러가지 모종들을 팔고 있었다.
나팔꽃, 해바라기, 수국
기르기 쉽고 잘자라는 것들로 골라 심었다.
조셉은 정원에서 일하면서 집안을 들여다보았다.
마리안느는 드라마를 보고있었다.
조셉은 일하는데 마리안느는 빈둥거리걸 보니
조셉은 화가 났다.
그래서 마리안느를 장대에 묶어서
정원 한가운데 세워놓았다.
[내려줘!!!!]
마리안느가 장대에 묶인채 버둥거렷다
일사병에 걸리지 않도록 밀짚모자를 씌워주었더니
그야말로 허수아비였다.
[넌 이제부터 허수아비 구더기다.]
마리안느의 비명을 들으며
조셉은 정원을 손질했다.
철물점에서 페인트를 사다가
페인트가 벗겨진 곳을 칠했다.
배수로를 막은 낙엽들을 긁어모아서 싸그리 태워버렸다.
이런 작업들이 조셉은 좋았다.
무언가에 몰두하는 동안은 부정적인 생각이 들지 않았다.
몸은 힘들어도
정신이 힘들지는 않았다.
게다가 이렇게 일한뒤 씻고 침대에 누우면
지쳐서 곧바로 잠들 수 있었다.
싫었던 기억들을 떠올리지 않고 잠들 수 있는게
조셉은 좋았다..
그렇게 집을 꾸미는 사이
주문한 로봇청소기가 도착했다.
조셉은 설명서를 읽었다.
[이 로봇청소기는 다른 제품들과 달리 학습형 인공지능이 달려있어 수집한 알고리즘을 바탕으로......뭔 설명이 이리 길어.....?]
조셉은 로봇청소기에 이름을 붙였다.
[이녀석은 납작하고 새까맣고 기어다니니까……]
[쥐며느리라고 부르자!]
그런 조셉을 본 마리안느는 속으로 생각했다.
(.........미친새끼.........)
로봇청소기는 집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청소를 했다.
[쥐며느리는 쓸모가 있군 그에 비해서 구더기짱은 말이지……]
조셉이 마리안느를 보며 말했다.
[하루종일 먹고 자고 멍하니 있기만 하고! 정말 쓸모가 없어!]
조셉은 마리안느를 마구 매도했다.
[밥이나 축내는 쓸모없는 녀석! 생산적인 일 좀 해봐!]
[그치만 그 밥 살 돈은 내가 주는건데…..]
[닥쳐라! 바닥을 기어다니는 하찮은 구더기 주제 어딜 감히 입을 놀리느냐!]
조셉은 마리안느를 찰싹찰싹 때렸다.
그밖에도 많은 일을 했다.
보일러실 거미줄을 걷어내고
차고를 빗자루로 쓸고
창고에 쌓인 잡동사니 중에서
버릴 것과 냅둘 것들을 구분해야 했다.
조셉이 창고를 정리하던 중 마리안느의 일기장이 또다시 발견되었다.
잠시 망설이던 조셉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열어보았다.
그리고 후회했다.
조셉은 일기장을 곧바로 태워버렸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다보니 어느새 끝이 났다.
깔끔해진 집을 보니 조셉은 기분이 좋았다.
마리안느의 집은 원래 간직하고 있던
고급스러운 전원주택의 모습을 되찾았다.
조셉은 지난 3개월동안 고생한 걸 생각해봤다.
생각해봤더니 화가 났다.
지금의 자신은 완전히 마리안느의 노예였다.
화가 난 조셉은 요플레를 먹고있던 마리안느를 발로 뻥 차버렸다.
갑자기 영문도 모르고 맞은 마리안느는 울었다.
그런 마리안느에게 로봇청소기가 다가왔다.
로봇청소기는 삑삑거리며 비키라고 경고음을 울렸다.
마리안느는 로봇청소기에 기대서 엉엉 울었다.
로봇청소기 역시 삑삑 거리면서 울었다.
그렇게 조셉은 마리안느와 같이 살아가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