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 내가 조금이라도 덜어주며
* * *
요즘 들어 마리안느의 마음은 심란했다.
가만히 이불 속에 누워있으면
환상통이 찾아왔던
그날 밤의 기억이 자꾸 떠올라서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환상통으로 아팠던게
한두번이 아닌데
이미 예전에도 겪었는데
그랬는데
그날 밤의 기억만 유난히 떠올라서
마리안느의 마음을 괴롭게 만들었다.
팔다리가 마리안느를 떠나가자
그 대신 찾아온 환상통은
마리안느를 여러번 찾아왔었다.
그때마다 마리안느는 아파했고
그런 마리안느를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환상통은 없어진 곳이 아파오는 고통이다.
그런 이상하고도 잔인한 아픔.
소중한 것들이 사라져서 아파하는 걸
다른 사람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고통스러워하는 마리안느를
꾀병을 부린다고 생각하며 외면했다.
그래서 환상통이 찾아오면
마리안느는 외롭고 서럽고 아팠다.
환상통이 찾아올 때 마다
마리안느는 모든게 원망스러웠다.
팔과 다리는 마리안느에게 고통만 남기고
자기들끼리 떠났다.
마리안느만 남기고 자기들만 떠나다니
이런건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팔다리가 없는 몸으로 고통에 빠져
혼자서 허우적거리는 건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소중한 것들은 내곁에서 떠났다.
아픔만 남겨놓고 떠났다.
이런 건 너무 잔인하다.
그렇다면 차라리
손발이 없는 채로
고통에 빠져있느니
아예 푹 잠겨서
다시는 떠오르지 못하고
그대로 가라앉아버린다면
차라리 그쪽이 더 좋을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날 밤에도 환상통은 찾아왔다.
이번에는 없어진 손이 고통스러웠다.
손은 없는데 손이 아프다.
아픈 손을 주무르고 싶어도
주무를 손도
주물러질 손도
모두 없다.
그런 사실이
서럽고 슬프고 너무 아파서
마리안느는 울면서 기도했다.
누군가 제발 나좀 도와달라고
이 잔인한 고통 속에서 나를 구해달라고
나 대신 누가 손 좀 잡아달라고
그렇게 절실하게 애원해도
아무도 도와주러 오지 않았다.
마리안느 곁에는 아무도 없다.
고통과 절망만이 남아서
마리안느를 괴롭히고 있었다.
이 지옥 속에서
마리안느를 끄집어낼 사람은 오지 않는다.
구원의 손길은 없다.
그렇게 모든 걸 포기하고
아파하고 괴로워하며
눈을 감고있던 그때
누군가 마리안느를 붙잡았다.
마리안느가 힘겹게 눈을 떠보니
마리안느를 찾아온 그 남자가
마리안느를 괴롭히는 그 남자가
마리안느를 구더기라 부르는 그 남자가
마리안느를 껴안고 있었다.
거센 고통이 마리안느를 덮치면
더욱 세게 붙들면서
마리안느를 꼬옥 안아주었다.
그렇게 안아주던 남자는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마리안느에게
두손을 내밀었다.
마리안느는 그 손을 붙잡고
고통의 바다에서 빠져나왔다.
어느날 찾아온 그 남자는
마리안느에게 손을 내밀어주었고
없어진 손은 더이상 아프지 않았다.
마리안느를 찾아와준
마리안느를 괴롭히던
마리안느를 구더기라 부르는
그가
마리안느를 구해주었다.
그랬던 그날 밤의 기억을 떠올리면
어쩐지 마리안느도 모르게
가슴은 콩닥콩닥 뛰고 얼굴이 빨개지며
몸 한구석을 마구 간지럽히는 것이
마리안느에게 또다른 괴로움을 안겨주었다.
그런 괴로움을
이불 속에서 몸을 배배 꼬으면서
어떻게든 달래보려 노력해도
오히려 점점 커져만 가며
마리안느를 더욱 괴롭게 만들었다.
너무나 아픈데
너무나 괴로운데
어째서 가슴이 뛰는지
어째서 얼굴은 빨개지는지
그리고 대체 왜
자꾸 웃음이 나오는지
마리안느는 알 수 없었다.
괴로움을 참지 못한 마리안느가
조셉에게 말을 건냈다.
[그....있잖아....요오....]
소파에 앉아있던 마리안느가 조셉을 불렀다.
[왜 구더기짱.]
조셉은 하던 일을 멈추고 마리안느를 바라봤다.
[그...전에...했었던....]
마리안느는 부끄러워서 입에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뭔데. 말해봐.]
[그.....해줬던....해주셨던....그거 있잖아....요....]
마리안느는 우물쭈물거리기며 말을 흐렸다.
[구더기짱. 싸대기 한대 맞으면 술술 말할 것 같은데 한대 맞아볼래?]
[그...치료행위 해준거...있잖아.....요.]
마리안느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뭐? 환상통 치료?]
[아니....그거말고....쌓이면....치료.... 해준다고....]
마리안느는 부끄러워서 눈물이 찔끔 나왔다.
[응?....아아!.....아.... 아아....그 치료....]
조셉은 마리안느가 뭘 말하는지 겨우 눈치챘다.
[그거....또...해줄 수....있나....요.]
마리안느는 빨갛게 달아올라있었다.
[구더기짱이 오나홀 구더기로 변해버렸네.....]
마리안느가 뭘 해달라는지 눈치챈 조셉은
마리안느를 놀렸다.
[.....오너..? 오너홀이 뭐예....요?]
그러나 마리안느는 오나홀이 뭔지 몰랐다.
[......오나홀 몰라?]
오나홀을 모른다는 마리안느의 말에
조셉은 좀 놀랐다.
근데 생각해보니 모르는 쪽이 더 정상 같았다.
[그게 뭔데....요?]
[그게 뭐냐고....?]
오나홀을 뭐라고 설명해야할지
조셉은 고민에 빠졌다.
[그런게 있어....몰라도 돼.]
[그....오너홀이란게 대체 뭔데..요.]
[........굳이 말하면 너 같은 물건이야.]
[나처럼 말인가....요.....]
마리안느는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물었다.
[그러면...오너홀이란 건....예쁘게 생겼어요?]
[그렇.....지는 않지.....]
[그런가요....]
그런 대화를 나누며 조셉은 생각했다.
생각해보니 마리안느는 완전 오나홀이나 다름 없었다.
그야말로 오나홀 같은 신세였다.
그런데 말이야.
마리안느가 왜 오나홀 같을까?
왜 오나홀이나 다름 없을까?
팔다리가 없고 몸통만 남아서?
동글동글한 모양새가 같아서?
정말 말하기도 싫지만
천박하고 변태적이고
그래서 말하기 불편하지만
그래도 굳이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자지가 박힐 구멍이 있는 여자라서
그래서 오나홀 같냐고?
아니.
그런 단순한 이유로 오나홀 같다고 하는게 아니다
사지가 없는 마리안느의 삶은
그야말로 오나홀 같은 삶이었다.
지금의 마리안느는
구석진 곳에 숨겨져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삶은 오나홀이나 다름없는 삶이었다.
남들에게 보여주기가 망측하고 부끄럽고 창피해서
들키지 않도록 구석탱이에 꼭꼭 숨겨 놓는다
그렇게 외진 곳에 쳐박혀서
더럽고 추악한 남자한테
희롱받고 조롱받고 마음대로 다뤄지고
그런 취급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
그야말로 오나홀 같아서
그런 사실이 너무 어이 없었다.
그저 웃을 수 밖에 없다.
그랬다.
그래서 웃었다.
단지 그뿐이다.
그런 조셉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리안느가 말했다.
[그러면.....치료 해줄 수...있나요....]
조셉이 그런 생각을 하거나 말거나
마리안느는 마음 속 괴로움을 해소하고 싶었다.
그렇게 보채는 마리안느를 보자 좀 어이가 없었다.
[이따가 해줄께...]
조셉은 그렇게 말하곤 다시 하던 일을 하러갔다.
마리안느는 콩닥콩닥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방으로 데굴데굴 굴러서 들어갔다.
그날 밤
조셉은 비누로 손을 꼼꼼히 씻었다.
더러운 마음도 같이 씻어버리고 싶었다.
손을 씻고 마리안느의 방으로 들어가자
마리안느는 이불 속에서 얼굴만 빼꼼 내밀고 있었다.
조셉은 마리안느를 이불 속에서 꺼내서 무릎에 앉혔다.
[.....뭔가 딱딱한게 찌르는데요....]
조셉의 무릎 위에 앉은 마리안느가 말했다.
[......신경끄고 빨리 끝내자.....]
[.....그치만.....]
[아가리.]
마리안느의 옷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새하얀 마리안느의 살결은
어둠 속에서도 환하게 빛났다.
마리안느의 몸은 이불 속에 들어가있어서 그런지
후끈후끈 달아올라있었다.
그런 따뜻한 몸을
차가운 손길이 쓰다듬었다.
훝으며 지나가는 손길을 느끼며
마리안느는 살며시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있으면
마치 바닷가로 온 것 같았다.
새하얀 백사장을
파도가 찾아와 쓰다듬는다.
파도의 손길에
백사장이 젹셔지며
욕망이 쓸려내려간다.
바닷가에 버려진 욕망을
파도가 천천히 거두어가며
하얀 모래를 쓰다듬고 있었다.
그날 밤 마리안느는 신음했다.
환상통으로 괴로워하던
그때 내뱉었던 신음과는 완전히 달랐다.
아팠던 밤에 내뱉었던 신음은
서럽도록 추워서
겨울밤에 내리는 비처럼
한스럽게 차가웠고
오늘 밤 내리는 신음은
봄에 내리는 비처럼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그런 달달한 신음은
집안으로 천천히 번지면서
고요한 밤을 촉촉하게 적셨다.
그리고
나의 마음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