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의 구더기짱-16화 (16/47)

〈 16화 〉 아파하던 너의 기억들을

* * *

마리안느는 조셉이 신기했다.

장을 보거나 관공서에 가는 걸 빼면

조셉은 집밖으로 나가는 일이 거의 없었다.

전에 있던 간호사들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밖으로 싸돌아다녔었다.

마리안느만 집에 냅두고 말이다.

그러나 조셉은 정말이지 집밖으로 나가질 않았다.

거의 히키코모리 수준이었다.

그래서 마리안느는 조셉에게 물어봤다.

[집안에만 있으면 심심하지 않나….요?]

[방금 전에도 밖에 나갔잖아.]

[그건 정원에 나간거 잖아...요]

[집밖은 집밖이지.]

[외출 같은거 안해...요?]

[나는 집에만 있는 게 더 좋은데? 밖에 나가봤자 귀찮아.]

마리안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집에만 있으면 우울하고 답답한데

저 남자는 뭐가 좋다고 집에만 있는 걸까…

두 다리도 멀쩡하게 붙어있으면서……

[나는....밖에 나가고 싶어요....]

마리안느가 칭얼거렸다.

[그럼 나가면 되잖아.]

[이런 몸으로 어떻게 나가는데....요.]

마리안느가 짧은 허벅지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전동휠체어 타고 다니면 되잖아. 창고에 있던데?]

조셉이 창고에서 전동휠체어를 꺼내서 정원으로 끌고왔다.

그다음 마리안느를 발코니로 데려가서 보여주었다.

[저거 타고 다니면 되잖아.]

조셉이 전동휠체어를 가리키며 말했다.

양다리를 못 쓰는 대부분의 장애인들은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저 전동휠체어는 컨트롤러가 달려있어서

마리안느의 짧은 팔로도 조종이 가능하다.

그런데 마리안느가 휠체어를 탄 모습을

조셉은 한번도 보지 못했다.

뭔가 이유가 있으니 타지 않을거라고 추측만 할 뿐이다.

마리안느는 전동휠체어를 보더니

슬픈 표정을 지었다.

[처음에는 저걸 타고 생활 했어..요.]

[그러다 나중에는 저걸 타고 밖으로 나간 적이 몇 번 있지....요.]

마리안느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밖으로 나갔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의 기억들은 좋지 못했다.

[나는 이제 저런 건 못타겠어...그 뿐이에...요.]

슬픈 기억들이 마리안느를 괴롭게 만들었다.

[그러냐? 그럼 다시 창고에 집어넣는다.]

[.......보통 이럴 때는 왜 안타냐고 물어보지 않나요...?]

[왜 안타는지 물어봐줬으면 좋겠어? 꼬치꼬치 캐물었음 좋겠어?]

[그건 아니지만...]

[그럼 뭐 어쩌라고.]

마리안느는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물어봐줬으면 좋겠어요....왜 안타는지 물어봐주세요...]

물어봐줬으면 좋겠다.

알아줬으면 좋겠다.

저 남자만은

나를 신경써줬으면 좋겠다.

[우와...귀찮아....귀찮은 구더기 같으니라고....]

조셉은 질색했다.

그러나 물어봐주었다.

[그래서 왜 안타고 싶은데. 다 말해봐.]

마리안느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조셉은 침착하게 기다렸다.

그러자 잠시 후 마리안느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을 꺼냈다.

[저걸 타는게.....나는 너무 쪽팔려서 탈 수 없어....요]

마리안느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게 창피했다.

너무나 부끄러웠다.

[장애는 부끄러운게 아니라고....그렇게 사람들은 말하지만....]

마리안느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히더니

가늘게 흘러내렸다.

[그런 거 다 거짓말이야....]

각종 언론이나 매체에서는

장애는 부끄러운게 아니다.

숨길 필요가 없다.

당당해져야 한다.

그렇게 주장한다.

그러나 마리안느는 그럴 수 없었다.

장애가 있는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휠체어를 타고다니는 내 모습이....그런 내 모습이

나는 너무나도 쪽팔리고 부끄럽게만 느껴져서....

휠체어를 타고 거리를 조금만 돌아다녀보면 알 수 있어요....

휠체어를 타고다니는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대놓고 뚫어져라 쳐다보던 슬며시 쳐다보던

어느 쪽이든 다 티가 난다고....

한 번은....어떤 사람이 나를 보더니 옆에 있는 사람한테

‘야....저기 봐봐...’

라고 말하면서 지들끼리 힐끔힐끔 쳐다보기나 하고....

결국 나는 이런 신세야....

팔다리가 없는 내 모습은

밖에 나가봤자 구경거리가 될 뿐이라고....]

마리안느는 잠시 말하는 걸 멈추었다.

하고 싶은 말을 마구 쏟아낸 탓인지 숨이 찬 모양이었다.

마리안느는 숨을 다시 깊게 들이마시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중에서도 제일 비참한 때가 언제인 줄 알아?

바로 어린애들이 내 모습을 봤을 때야!

어린 애들은 전동휠체어를 타고 돌아다니는 내 모습을 보면

날 신기하게 쳐다보며 ‘엄마 저게 뭐야?’ 라고 외친다고!

그럼 그 애들 부모는 죄송하다고 사과하면서 애를 데리고 사라지지.

그런 꼴을 당하고 나면 무슨 기분인지 알아?]

[아주 비참해! 아주 더러워!... 아주!.....죽고.....싶다고.....]

마리안느는 고개를 떨구었다.

고개를 숙인 얼굴에서는 눈물이 계속 떨어졌다.

마리안느는 말을 이어나갔다.

[무엇보다 싫은 사실은....그 애들 말이 맞다는거야......

....나는 너무나도 흉측한 모습이야.....

어린애들은.....순진하면서도.....너무나 잔인해.......

느낀 그대로...바라 본 그대로......숨김없이 사실만 말한다고......

......그런 어린아이들이 보기에는.....

....내 모습은 그저 신기하고...괴상한 존재로 보이는거야.....

그게 내 꼴이야...나는....결국...이런 꼴이야....]

그렇게 말하며 마리안느는 울었다.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흐느껴 울었다.

조셉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마리안느가 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지켜보던 조셉은 전동휠체어로 다가갔다.

조셉은 전동휠체어의 배터리를 뽑아서 던져버렸다.

그러곤 어디론가 가더니

골프채, 양동이, 등유를 가져왔다.

조셉은 가져온 물건들을 정원 한구석에 놓은 뒤

골프채를 손에 쥐고 전동휠체어로 다가갔다.

그리고 마리안느를 불렀다.

[구더기짱. 여기 봐봐.]

흐느껴 울던 마리안느가 고개를 들고 조셉을 바라보았다.

조셉은 있는 힘껏 골프채를 휘둘렀다.

골프채를 내리쳐서 전동휠체어를 때려부쉈다.

힘껏 휘두른 골프채에 맞은 전동휠체어는

콰직! 콰직! 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부서졌다.

조셉은 계속해서 골프채를 휘둘렀고

수십번 즈음 휘둘렀더니 전동휠체어는 완전히 망가졌다.

조셉은 잔뜩 구부러진 골프채를 내팽겨치고는

등유를 가져와서 전동휠체어에 뿌렸다.

그다음 라이터로 불을 붙였고

전동휠체어가 순식간에 불로 휩싸였다.

잔뜩 맞아서 찌그러진 전동휠체어는 활활 타올랐다.

조셉은 불타는 전동휠체어를 차분하게 지켜보았다.

전동휠체어는 불타면서 까만 연기를 뱉어냈다.

까만 연기를 내뿜으며 타던 전동휠체어는

터지는 소리가 몇 번 울렸다.

터지는 소리에 마리안느가 쫄아서 몸을 움츠렸다.

[타이어 터지는 소리니까 쫄지마.]

터지는 소리에 놀란 마리안느에게 조셉이 말했다.

그렇게 활활 타오르던 불길은

시간이 지나자 점점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그라드는 불꽃을

마리안느는 발코니에 앉아서

아무말도 하지않고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불길이 거의 사그라들자

조셉은 양동이에 물을 받아서 남은 불씨를 껐다.

꼼꼼히 잔화정리를 마친 조셉은 마리안느에가 다가갔다.

[구더기짱. 잘 들어.]

조셉은 마리안느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구더기짱을 괴롭히는 건 내 역할이야.]

조셉은 무릎을 꿇고 마리안느의 눈을 바라보았다.

마리안느는 잔뜩 울어서 눈이 새빨개져있었다.

[그러니까 나만 괴롭힐거야.]

[나말고 그 누구도 구더기짱을 괴롭힐 수 없어. 오직 나만 가능해.]

조셉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서

마리안느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얼굴을 닦아주면서 조셉이 말했다.

[만약 너를 괴롭게 만드는 녀석이 있으면.]

조셉은 새까맣게 타버린 휠체어를 가리켰다.

[저렇게 만들어버릴거야.]

날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정원에는 찬바람이 불었다.

[춥다. 들어가자.]

조셉은 마리안느를 안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마리안느는 잔뜩 울어서 체온이 떨어져 있었다.

조셉은 마리안느를 욕실로 데려가

따뜻한 물로 씻겨주었다.

따스한 온기가 마리안느를 따뜻하게 만들었다.

두 사람이 사라진 정원마당에는

휠체어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불에 타서 흉측해진 휠체어는

차갑게 식어있었다.

다음날 새벽

조셉은 정원으로 나왔다.

불에 탄 전동휠체어를 내다버리고

불에 탄 잔디를 갈퀴로 긁어냈다.

휠체어가 있던 자리는

까맣게 타들어갔던 흔적만 남았다.

저 흔적도 몇 개월이 지나면 사라질 것이다.

정리를 마친 조셉은 폰을 꺼내서 전화를 걸었다.

발신음이 몇 번 울리고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조셉이 전화상대에게 말했다.

[세리자와. 잘 지냈냐?]

조셉은 이어서 말했다.

[부탁할게 있다. 여기 좀 와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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