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의 구더기짱-17화 (17/47)

〈 17화 〉 즐거운 추억으로 덧칠하고 싶었다.

* * *

[내일 외출할거야.]

저녁을 먹고 TV를 보던 중이었다.

조셉이 뜬금없이 외출한다고 말했다.

[어디를..가는데...요?]

[바다나 보러가려고.]

[혼자서? 바다를?]

[내가 무슨 삶의 지친 대학생이냐? 혼자서 바닷가를 왜 가는데?]

[그럼?]

[구더기짱도 같이 가야지.]

조셉이 마리안느를 가리키며 말했다.

[....난 밖에 나가기 싫어.....이꼴로는 죽어도 못가....요.]

마리안느가 용기를 내서 말했다.

[누가 그런 구더기 같은 꼴로 외출하라고 했냐?]

[그러면...어쩌게...요?]

조셉이 2층으로 올라가서 의족을 가지고 왔다.

[이걸 차고 나갈거야.]

마리안느는 의족을 가지고 있었다.

의족 뿐만 아니라 의수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의족을 사용하지 않았다.

아니, 의족을 사용하지 못했다.

[그치만 난 의족을 끼고 걷지못하는데....]

마리안느는 의족을 차고 걷지 못했다.

다리가 없다고 누구나 의족을 차고 걸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쪽 다리만 없다면 의족을 차고 걷는게 큰 어려움은 아니지만

두 다리가 없는 사람이 의족을 차고 걷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다.

한쪽 다리가 없는 것과

양쪽 모두 없는 것은 완전 다른 세계다.

한쪽이라도 남았는지

아니면 두쪽 모두 없는지

없다면

발, 발목, 종아리, 무릎, 허벅지, 골반

이중에서 어디까지 남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남아있는 부위에 따라 의족의 종류도 다르고

의족을 착용하는 난이도도 다르고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마리안느는 허벅지만 조금 남아있는 상태이다.

그런 마리안느에게 의족을 끼고 걷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의족을 끼고 걸으려면 재활훈련을 해야 한다.

한쪽 다리만 없는 사람들은 조금만 재활을 거치면

의족을 차고 걸을 수 있지만

양쪽 다리가 없는 사람은 오랫동안 연습을 해야

겨우겨우 의족을 차고 걸을 수 있다.

그렇게 의족을 착용해도

의족을 차고 걷는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의족을 착용하고 걷는 행위는

착용자에게 상당히 부담을 준다.

자신의 체중을 버티면서

땅에 닿는 충격이 신체에 전해진다.

그런 충격을 버티면서 의족을 끼고 걷다보면

의족을 차고있는 부위에서 피가 날 정도로 매우 아프다.

한쪽 다리만 없으면 그래도 남아있는 다리로

어떻게든 버티면서

의족을 차고 걷기가 그렇게 힘들지 않다.

그러나 양쪽 다리가 없는 상태로 걷는 다는 것은

매우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양쪽 다리가 없으면 오로지 의족에만 의지해서

땅을 딛고 일어서야한다.

그러나 재활을 마쳐도 문제다.

의족은 결국 자신의 신체가 아닌 가짜 신체다.

오랫동안 착용하고 걸으면 어떻게든 무리가 온다.

의족을 끼고 걸으면 다리가 붓고 충혈되고 가려울 뿐만 아니라

겨울에는 차갑고 시려우며

여름에는 땀이 차서 습진이 발생한다.

그런 고통은 모른 채 사람들은

그냥 의족을 차고 걸으면 되는거 아니야?

그렇게 생각할 뿐이다.

그러나 저런 아픔을 겪어도

그렇게라도 의족을 찰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히다.

마리안느는 의족을 차고 걸을 수 없다.

마리안느는 짤막하게 허벅지가 남아있을 뿐

양쪽 무릎이 없다.

무릎이 없으면 의족을 차고 걷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문제가 더 남아있다.

마리안느는

의족을 차고다닐 힘이 없다.

원래 체중 45kg인 마리안느는

팔다리가 사라지면서

체중이 25kg 정도로 줄어들었다.

힘없고 가벼운 마리안느가

한쪽 당 3kg~5kg 정도 무게가 나가는

의족을 차고 걸어 다니는 것은

상당한 중노동이다.

마리안느가 의족을 차고 걸으려면

얼마없는 허벅지와 허리힘만 써서 걸어야하는데

그러면 근육과 허리에 무리가 가서

몇발자국 걷지도 못하고 쓰러진다.

심지어 게다가 안타깝게도

마리안느가 의족을 사용하지 못하는

무엇보다 안타까운 점은

마리안느에게는

다리 뿐만 아니라

팔도 없다.

팔이 없으면 목발을 짚으면서

의족을 쓰는 재활훈련을 할 수도 없다.

넘어졌을 때 딛고 일어설 팔이 없다.

양팔이 없는데 양다리 모두 의족을 차고 걷는 건

너무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마리안느에게 의족을 차고 걷는다는 행위는

그냥 딴 세상 이야기다.

그럴 노력도 그럴 힘도

마리안느에게는 없었다.

그런 마리안느에게

의족을 착용하라고 말하는 조셉이

마리안느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조셉도 그런 문제를 알고 있었다.

[누가 너보고 의족을 차고 걸으라고 했냐? 그냥 차고있기만 하라고.]

조셉은 마리안느가 의족을 차고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처음부터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리안느가 의족을 차고 바지를 입으면

사람들은 마리안느가 의족을 차고 있는 줄 모를 것이다.

[.......그러면 나를 휠체어에 태워서 돌아다닐건가요?]

[휠체어는 태워버렸는데 어떻게 탈건데? 너도 태워주리?]

[그럼 어떻게 할건데....요?]

[다 생각이 있지.]

조셉은 마리안느의 옷장에서 바지를 꺼냈다.

바지는 옷장 구석 깊은 곳에 쳐박혀있었다.

오랫동안 바지를 입을 일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조셉은 마리안느에게 의족을 채운 다음

긴 바지를 입혔다.

그렇게 바지를 입고 앉아있는 마리안느는

마치 다리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마리안느는 팔도 없었다.

[팔은 어쩔 건데....의수라도 채우게...요?]

[무겁게 그런 걸 왜 차는데? 다 생각이 있으니까 기다려봐.]

조셉은 또다시 옷장으로 가더니

커다란 케이프 코트를 가져와서 마리안느에게 입혔다.

커다란 케이프 코트는 마리안느의 상반신을 완전히 감춰주었다.

그와 함께 마리안느가 팔이 없다는 사실도 숨겨주었다.

[자 봐봐. 전혀 티가 안나잖아.]

조셉이 차려입은 마리안느를 바라보며 말했다.

소파에 가만히 앉아있는 마리안느는

그야말로 인형이 앉아있는 것만 같았다.

이런 마리안느에게 팔다리가 없다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입혀놓으면 감쪽 같잖아. 누가 너를 보고 팔다리가 없다고 생각하겠냐?]

[그래도 나 혼자서 돌아다닐 수 없잖아...요.]

[누가 너보고 혼자 다니라고 했냐?]

조셉은 마리안느를 등에 업었다.

마리안느를 업고 전신거울 앞으로 갔다.

[이렇게 어부바하고 돌아다닐거야.]

조셉에게 업힌 마리안느는

사지가 없는 티가 전혀 나지 않았다.

의족을 차고있지만 긴바지로 가려진데다가

커다란 케이프 코트로 상반신을 숨긴 덕분에

다른 사람들이 마리안느를 보아도

어부바 하고 있는 커플로만 보일 뿐

마리안느의 팔다리가 없다는 사실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이러면 밖에 나갈 수 있지 않겠어?]

조셉의 물음에 마리안느는 고개만 끄덕였다.

거울 속에 자신을 빤히 바라보면서 말이다.

마리안느가 입고 있는 옷과

의족을 벗기면서

조셉이 말했다.

[근데 기왕 나갈거면 예쁘게 하고 나가는 게좋지 않겠어?]

[........화장이라도 해주게요?]

[내가 화장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이 보이니?]

마리안느는 고개를 저었다.

[알면서 왜 묻는건데.]

[그럼 어쩌게....요.]

[할 줄 아는 놈을 불러야지.]

[누굴 부를건데…요?]

[내일 내 친구가 와서 너를 화장도 해주고 머리도 잘라줄거야.]

[그 사람 실력이 좋아...요?]

[머리 자르는 건 모르겠는데 화장은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는 최고지.]

조셉은 잠시 허공을 쳐다보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그 녀석은 화장이 아니라 위장술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지.]

대체 어느 정도길래 그런 말을 하는지

마리안느는 알 수 없었다.

[.......그 사람이 이런 내 모습을 보면 놀라지 않을까...요?]

[어차피 그 새끼도 존나 이상한 새끼라 상관없어. 오히려 네가 그 새끼를 신기하게 쳐다볼껄?]

[대체 어떻길래.....]

[완전 미친 새끼지.]

마리안느는 조셉을 빤히 쳐다봤다.

너보다 미친놈이 있을까 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왜. 뭐?]

[아니에...요.]

[근데 내일 놀러갈거잖아.그럼 비가 오면 안되겠지?]

조셉이 마리안느에게 말했다.

[???.....그렇겠지...요?]

[내일 오기로 한 친구가 날씨를 맑게 해주는 주문을 알려주더라고.]

조셉은 하얀 침대시트를 가져왔다.

[그녀석이 말하길 하얀 천으로 만든 인형을 공중에 매달아놓으면 날씨가 맑아진다고 하더라.]

조셉이 침대시트를 들고 마리안느에게 다가갔다.

마리안느의 안색이 점점 파래지기 시작했다.

조셉은 마리안느를 침대시트로 감싼 다음

밧줄로 몸통을 묶어서 공중에 매달았다.

마리안느는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린채로 외쳤다.

[이딴 방법으로 날씨가 맑아질리가 없잖아!!!!!!!!]

[알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근데 왜 하는 건데!!!!!]

[그냥. 재밌잖아.]

[하나도 재미없으니까 내려줘!!!]

[난 재밌으니까 상관없어.]

조셉이 매달려있는 마리안느를 밀었다.

마리안느가 빙글빙글 공중에서 돌았다.

[어지러워! 내려줘!]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마리안느는

마치 천사 같았다.

다음날 아침.

마리안느가 공중에 매달려있은 덕분인지

날씨가 맑았다.

아침부터 누군가 초인종을 눌렀다.

조셉이 인터폰으로 다가갔다.

[왔냐. 들어와라.]

조셉이 문을 열어주자 누군가 들어왔다.

[네가 마리안느구나?]

조셉의 친구라는 사람이 마리안느에게 인사했다.

긴 생머리의 흑발을 흩날리며 들어온 사람은

아름다운 외모를 하고 있었다.

길게 자란 흑발과

170이 조금 넘을 것 같은 키

예쁘게 생긴 사람이었다.

[나는 세리자와야. 만나서 반가워~]

세리자와는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마리안느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마리안느가 보기에 세리자와는

조셉에게 들은 것과 달리 정상적인 사람이었다.

대체 어디가 이상한 사람이란 건지

마리안느는 알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마리안느에게

세라자와가 물어보았다.

[저기 마리안느? 혹시 마리쨩이라고 불러도 될까?]

그말 취소.

이 사람도 뭔가 좀 이상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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