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 그렇게 너와 함께 살아가면서
* * *
[일어나요!]
마리안느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셉이 눈을 뜨자
소파 밑에서 조셉을 깨우는 마리안느가 보였다.
어제 술을 마시다가 그대로 소파에서 잠든 모양이었다.
[뭐야...지금 몇 시야.]
소파에 누워있는 조셉은 일어나서 시계를 보았다.
벌써 점심 때가 지나 있었다.
어제 하루종일 운전하고
마리안느를 업고 돌아다니고
거기다가 술까지 마셨더니
피곤해서 지금까지 잠에 취해있었다.
[나 배고파요. 밥 줘요.]
그러거나 말거나 마리안느가 배고프다며 칭얼거렸다.
[구더기짱...나 지금 피곤하거든...그러니 네가 좀 알아서 차려 먹어라...]
[그러지말고 얼른 일어나요!]
[구더기짱...잠깐 조용히 해 봐....]
조셉은 자꾸 찡찡거리는 마리안느의 볼을 잡아 당겼다.
[으므믓!]
볼이 잡아 당겨진 마리안느는 이상한 소리를 냈다.
잡아 당긴 마리안느의 볼은 보들보들 했다.
[밥 차려 주기 전에 우선 나 좀 씻자...]
조셉은 마리아느의 볼을 잡아 당기던 손을 놓고
일어나서 기지개를 폈다.
[그러고 나서 해줄 테니 잠깐 좀 기다려봐.]
조셉은 욕실로 가서
차가운 물로 샤워를 했다.
차가운 물이 머리에 흐르니
정신이 좀 들었다.
그렇게 씻고 나온 조셉은
마리안느의 점심을 차려 주었다.
바다에 가느라 마트를 못 가서
냉장고에는 딱히 먹을만 한게 없었다.
그래서 그냥 빵이랑 계란을 구워주었다.
마리안느가 점심을 먹는 동안
조셉은 점심을 먹지 않고
그 대신 진하게 탄 커피에다가
얼음을 잔뜩 넣어서 마셨다.
먹고 나니 속이 좀 풀리는 것 같았다.
마리안느가 점심을 다 먹자
조셉은 마리안느를 욕실로 데리고가서
양치질을 시켜주고 얼굴을 씻겨주었다.
다 씻긴 마리안느는
대충 아무 데나 던져놓고
조셉은 좀 쉬려고 소파에 누워있었는데
마리안느가 조셉이 누워있는 소파로 다가와서 물었다.
[이제 뭐 할거예요?]
마리안느가 다가오자 조셉은 놀랐다.
여태까지 마리안느가
조셉에게 다가와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오늘은 좀 쉴거야.]
아직 바다에 갔다 온 피로가 풀리지 않은 조셉은
소파에 누워있는 채로 대답했다.
[그러지말고 놀아줘요....나 심심해요.]
마리안느가 자꾸 옆에서 놀아달라고 졸랐다.
조셉은 마리안느를 붙잡고
마리안느의 방으로 들어갔다.
[뭐 하게요?]
방에 들어 온 마리안느가 조셉에게 물었다.
[심심하면 잠이나 자렴.]
마리안느를 방에 내려놓은조셉은
방문을 닫고 나갔다.
[열어줘요!]
마리안느가 방안에서 외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조셉은 소파에 누워서 잠을 잤다.
다시 자려고 누워있던 조셉은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눈을 떴다.
눈을 뜨니
소파 밑에서 조셉을 지켜보고 있는
마리안느가 보였다.
[뭐야! 너 어떻게 방에서 나왔어.]
방문을 분명 닫고 나왔는데
마리안느는 거실에 나와 있었다.
[하루종일 누워있을 거예요? 게으름뱅이....]
마리안느가 조셉에게 핀잔을 주었다.
[구더기짱....나도 사람이야...나는 휴일도 없냐?]
갑자기 마리안느가 왜 이렇게 귀찮게 구는지
조셉은 알 수 없었다.
조셉에게 먼저 다가오는 일이 없던 마리안느가
갑자기 강아지처럼 쫄래쫄래 곁에 다가오는 것이
조셉에게는 낯설게만 느껴졌다.
[....마트나 가서 장이나 좀 보고 와야겠다.]
어차피 마트도 가야 하고
마리안느에게서 잠깐 피신하기 위해
조셉은 자켓을 챙겨입고 차키를 챙겼다.
그렇게 나갔다 오려 했는데
마리안느는 현관까지 따라와서
조셉이 나가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마리안느의 모습이 어쩐지 섬뜩하게 느껴졌다.
[......너도 같이 가고 싶냐?]
조셉이 마리안느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응!]
그렇게 말하는 마리안느는
뭔가 산책가고 싶어 하는 강아지 같았다.
조셉은 의족을 끼워주기 귀찮아서
커다란 담요로 마리안느의 몸을 둘둘 말았다.
투시 능력자가 아닌 이상
마리안느가 팔다리가 없다는 사실은 모르겠지.
그렇게 담요로 둘둘 말은 마리안느를 안아서
자동차 조수석에 태웠다.
마트에 도착하자
마트에 처음 와본 마리안느가 말했다.
[항상 장을 보는데가 여기였구나...]
[이 근처에는 여기 말고 다른 마트는 없어. 그래서 항상 여기만 오지.]
조셉은 마트로 가서 쇼핑카트를 조수석 까지 끌고왔다.
그리고 담요로 둘둘 말린 마리안느를
쇼핑카트에 담았다.
그렇게 마리안느를 쇼핑카트에 태워서
마트로 들어갔다.
마리안느는 처음 와본 마트가 신기한 듯
쇼핑카트 안에서 마트 내부를 둘러보았다.
조셉이 카트 안에 타고 있는 마리안느에게 물었다.
[간식 살건데 넌 뭐 살 거야.]
[난 아기당근 먹을래요.]
[아기당근?]
조셉은 쇼핑카트를 끌고 야채코너에 가보니까
아기당근이란 걸 봉지에 담아서 팔고 있었다.
[이게 맛있냐?]
[맛있어요. 먹기도 편히고.]
[당근을 간식으로 먹다니, 무슨 토끼냐?]
[아기당근 맛있는 데...]
조셉은 아기당근 한봉지를 카트에 담았다.
그리고 스낵코너로 가서
나쵸 한봉지랑 캐러멜 팝콘을 카트에 담았다.
음료코너에서 소다수도 한 병 담았다.
[어...그리고 티슈랑 세제랑...또 뭐 사야 하더라.]
조셉은 필요한 생활용품들을 카트에 담았다.
물건이 담길 수록 카트가 점점 좁아졌다.
[좁아요! 그만 담아요!]
마리안느가 점점 좁아지는 카트 안에서 외쳤다.
그러나 조셉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그냥 물건들을 카트에 담았다.
구매한 물건들을 그대로 카트에 담아서
자동차 트렁크에 담았다.
하는 김에 마리안느도 트렁크에 넣으려고했는데
마리안느가 반항하길래
조셉은 마리안느를 조수석에 태웠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자
조셉은 우선 마리안느를 집에 데려다 놓고
구매한 물건들을 집으로 날랐다.
마트에서 산 물건들을 정리한 다음
샀던 간식들을 그릇에 담았다.
나쵸와 팝콘은 커다란 그릇에 함께 담았고
아기 당근들은 조그마한 그릇에 담았다.
조셉은 아기당근이 대체 무슨 맛이길래
마리안느가 간식으로 먹는지 궁금해서
아기당근을 하나 집어서 먹어보았다.
먹어봤더니 그냥 당근 맛이었다.
이걸 대체 왜 먹는지
조셉은 알 수 없었다.
조셉은 간식을 담은 그릇을 들고 거실로 갔다.
그리고 마리안느에게 말했다.
[자, 지금부터 영화를 볼 거야.]
[영화를요?]
조셉은 영화를 틀어서
마리안느의 관심을 돌리려고했다.
영화를 틀어서 마리안느의 시선이 그쪽으로 가면
조셉은 그동안 휴식하려는 계획이었다.
[보고 싶은 영화 없으면 내가 고른다.]
조셉은 VOD에서 볼 영화를 골랐다.
천재 무기상이
사막에서 미사일을 시험발사하다가 납치당하는
그런 내용의 영화였다.
조셉은 커튼을 쳐서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차단하고
거실 조명을 다 껐다.
그리고 영화를 틀자
깜깜해진 거실에서는
영화가 나오는 TV만 밝게 빛났다.
영화가 시작되자
마리안느는 입을 헤 벌리면서
영화를 보았다.
그 모습을 본 조셉이
아기당근을 1개를 집어서
마리안느의 입에다 쏙 집어넣었더니
마리안느가 우물우물거리면서 받아먹었다.
그리고는 다시 입을 벌리길래
또 아기당근을 1개 넣어주었더니
다시 우물우물 받아먹었다.
주인공이 치즈버거를 먹는 장면이 나오자
마리안느가 조셉에게 말했다.
[아! 그래서 그 때 그런 말을 했던 거네요?]
[이걸 안봤다는 게 나는 신기하더라.]
마리안느는 집중해서 영화를 시청했다.
주인공을 돕던 조력자가 죽는 장면에서는 슬퍼했고
주인공이 새로운 슈트를 만드는 장면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았다.
조셉은 이미 몇 번 본 영화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나름 재미있었다.
조셉은 영화는 본체 만체 하고
좀 쉬려 했는데
결국 마리안느와 함께 끝까지 다 봤다.
그렇게 둘은 간식을 먹으면서
영화를 보았고
그러면서 하루가 저물어갔다.
별거 아닌 시간이지만
어쩐지 즐거운
그런 시간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