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 너를 만나서 나는 행복했다.
* * *
마리안느가
외국어 강사를 한지
한 달이 지났다.
마리안느가 월급을 받았다.
[나 월급 받았어요!]
마리안느가 신나서 조셉에게 말했다.
[근데 어쩌라고.]
[와서 봐봐요!]
[우와 귀찮아...귀찮은 구데기...]
조셉이 다가오자
마리안느가 노트북 화면에 나온
급여 계좌를 보여주었다.
계좌에 들어온 액수는 얼마 되지 않았다.
하루 2시간씩 일주일에 2번
한 달에 대략 16시간 정도 일했으니
벌어봤자 그리 큰 금액이 아니었다.
그러나 마리안느가 스스로 일해서
돈을 벌어본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마리안느에게는 그것이 매우 소중한 돈이었다.
많은 자산을 가지고 있는 마리안느였지만
처음 일해서 처음으로 월급이란 걸 받아보니
작은 돈이지만 소중하게 느껴져서
마리안느는 계좌를 보면서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내가 처음 번 돈
그 사실을 떠올리며 계좌를 바라보니
마리안느는 웃음이 나왔다.
그런 마리안느에게 조셉이 물었다.
[그래서 그 돈은 어떻게 쓸 건데?]
[글쎄요...?]
일할 생각만 했지
정작 돈은 어떻게 쓸지
마리안느는 생각지도 않고 있었다.
돈이 많아서 딱히 사용할 곳도 없었다.
그래서 기껏 일해서 벌은
이 돈을 뭐에다 써야 할지
마리안느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고민하던 마리안느는 조셉에게 물어보았다.
[처음 월급 받았을 때 어떻게 썼어요?]
[뭐하긴 당시 살고 있던 원룸 월세 냈지.]
[그런 거 말고요....]
[그거 말고...어....먹고 싶던 거 사 먹었던가?]
[그런 거 말고 좀 의미 있게 쓴 적 없어요?]
[월급을 많이 줘야 의미 있게 쓰던가 말던가 하지.]
낭만도 뭣도 없는 조셉의 이야기를 들은
마리안느는 풀이 죽었다.
[뭐에 쓸지 참고가 전혀 안되잖아요...]
[고민하지 말고 너 쓰고 싶은데로 쓰면 되는거지 뭘 고민하냐?]
조셉은 그렇게 말한 뒤
설거지를 하러 갔다.
[쓰고 싶은 거라....]
마리안느는 일하고 있는
조셉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마리안느는 뭔가 떠오른 듯
노트북 터치패드를 뺨으로 문질러서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첫 월급을 어디다 쓸지
마리안느는 정했다.
며칠 후
마리안느에게 택배가 왔다.
택배를 받은 조셉은
마리안느에게 택배를 건네주었다.
[너한테 택배 왔다.]
그러나 마리안느는 고개를 저었다.
택배를 줬는데 고개를 젓고 있는
마리안느를 조셉은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뭐야 갑자기 고개는 왜 젓는 건데?
[그거 내꺼 아니에요.]
받는 사람 이름에 마리안느라고 적혀있는데
마리안느는 자기 껏이 아니라고 말했다.
[열어봐요.]
마리안느가 웃으면서 말했다.
조셉이 포장지를 뜯고 열어보니
악어가죽으로 만든 남성 지갑이 들어있었다.
[.....이게 뭔데...?]
조셉은 놀라서 마리안느를 쳐다보았다.
의기양양해진 마리안느가 조셉에게 말했다.
[내가 당신한테 주는 선물이에요.]
마리안느는 조셉과 외출하다가 알아차린 건데
조셉은 지갑을 꺼낸 적이 없었다.
조셉은 계산할 일이 있으면
핸드폰 케이스에 넣어둔
카드나 현금을 꺼내서 사용했다.
아마 지갑이 없는 듯했다.
그래서 마리안느는 조셉에게
지갑을 사주기로 했다.
[생각해보니까 당신 지갑이 없는 거 같아서 내가 선물해주기로 했어요.]
조셉은 얼빠진 표정이었다.
그런 조셉에게 마리안느가 상냥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강사 일을 찾아주어서 고맙다고 주는 선물이에요.]
첫 월급은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해주는 거라고
마리안느는 어디서 봤던 기억이 났다.
[어때요? 마음에 들어요?]
조셉은 지갑을 손에 쥐고
마리안느에게 다가가서
지갑 모서리로 대가리를 내리쳤다.
[아야야야....]
지갑으로 머리를 얻어맞은
마리안느가 아파서 얼굴을 찡그려트렸다.
[야 이 새끼야.]
조셉이 화난듯이 말했다
[이런 걸 왜 사주냐? 너 바보지?]
[쓰고 싶은데로 쓰라면서요....전에 보니까 지갑 없이 다니길래 하나 사주고 싶었어요....]
[요즘 누가 지갑 가지고 다니냐? 핸드폰 하나만 있으면 다 결제되는 세상인데.]
[그래도....있으면 좋잖아요....]
[이런 거 줘봤자 귀찮기만 하고 하나도 안 기쁘거든?]
[맘에 안 들어요...? 그럼 다른 걸로 사드릴까요..?]
[됐거든!]
조셉은 화난 것처럼 얼굴이 빨개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마구잡이로 소리치기 시작했다,
[바보!]
[멍청이!]
[맨날 쳐 우는 울보년!]
[돈만 많은 쓰레기!]
그렇게 외치면서
마리안느를 매도했다.
전에도 이런 조셉을 본 기억이 있는 마리안느가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혹시...부끄러워서 그래요?]
[아니거든! 내가 왜 부끄러워하겠냐?!]
마리안느에게 소리치던 조셉은
빨개진 얼굴을 하고
자기 방으로 도망갔다.
마리안느가 놀라서
닫힌 방문만 바라보고 있던 중
조셉은 방문을 열고
얼굴만 문밖으로 내밀더니
외쳤다.
[죽어!!!]
그러더니 다시 방문을 닫았다.
그렇게 닫힌 방문을
마리안느는 조용히 바라보았다.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바보...
방 안으로 들어간 조셉은
침대에 걸터앉아서
지갑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선물이라
마지막으로 선물이란 걸 받아본 게 언제였던가
중학생 때?
아마 그때 이후로 선물이란 걸 처음 받아보는 것 같다.
오랜만에 선물을 받아보니
괜스레 짜증이 나면서도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간질거려서
괜히 지갑만 만지작거렸다.
악어가죽으로 된 지갑은
꽤 비싼 듯이 보였다.
스마트폰으로 지갑의 상표를 검색해서
지갑 가격을 알아보니
마리안느가 받은 적은 월급을 모두 써야 살 수 있는 가격이었다.
마리안느는
처음 일해서 받은 급여를
이 지갑을 사느라 모두 사용해버렸다.
그런 사실을 깨닫자
지갑이 무겁게만 느껴졌다.
너무나 부담스러운
과분한 선물이었다.
조셉은 핸드폰 케이스 사이에 넣어둔
꾸깃꾸깃해진 지폐를
마리안느가 사준 지갑에다 넣으려고
지갑을 열어봤는데
웬 편지가 한 장 있었다.
마리안느가 편지를 썼을 리는 없으니
아마도 지갑을 주문하면서
업체 쪽에 부탁해서 넣어둔 듯했다.
편지에는 이렇게 써져있었다.
고마워요.
이런 내가 할 수 있는일을
당신이 찾아준 덕분에
일해서 돈을 벌 수 있게 되었어요.
나도 사회에서 쓸모 있는 존재란 것을
나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당신 덕분에 증명할 수 있었어요.
고마워요.
보답으로 이 지갑을 선물할게요.
더 좋은 걸로 사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그치만 첫 월급만 사용해서 선물하고 싶었어요.
정말 고마워요.
마리안느
바보 같은 년이었다.
뭐하러 지갑 같은 걸 사준단 말인가?
여태까지 지갑이 필요하다 느낀 적이 없었다.
옛날에는 돈이 없어서 필요가 없었고
지금은 어차피 카드와 스마트폰만 있으면 결제가 되는 세상인데
굳이 귀찮게 주머니에 지갑을 넣고 다닐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살아온 자신에게
누군가 첫 월급을 털어서
지갑을 사주었다,
그것도
내가 괴롭히고 있는
작은 여자애가 말이다.
그런 사실이 믿기지 않아서
마치 꿈을 꾸는 기분이라
지갑의 존재가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지갑을 만지작거리면서
지갑의 존재를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렇게 누군가 자신에게
선물을 주었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어서
지갑을 손에 꼭 쥐고
손에서 놓질 않았다.
손에서 놓으면
사라질 것만 같았다.
나에게는 너무 과분한
소중한 선물이었으니까.
한참을 그렇게
지갑을 바라보던
조셉은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세리자와에게 전화했다.
{무슨 일로 전화했냐?}
{뭐 좀 물어보자.}
조셉은 달력을 보았다.
달력을 보며 마리안느가 수업이 없는 날을 골랐다.
{다음 주 수요일에 올 수 있냐?}
{또 여자애 데리고 놀러 가게?}
{아가리 하고 올 수 있냐 없냐만 이야기해라.}
{가능하지.}
{그럼 좀 와라.}
{알겠다. 그때 보자.}
그렇게 통화를 끊으려다
잠시 뭔가 생각한 조셉은
세리자와에게 한 가지 더 물어보았다.
{세리자와. 너 쉐릴한테 선물 받은 적 있었지.}
{당연히 있지.}
{그때 답례로 뭐 해줬냐?}
{찐하게 섹스.}
{아니 그딴 거 말고.}
{어...가랑이 빨아주기...?}
{...너한테 물어본 내가 병신이지.}
조셉은 전화를 끊고
침대에 누웠다.
누워서 지갑만 만지작거렸다.
지갑을 바라볼수록
공허했던 마음속이
뭔가 알 수 없는 감정으로 차올랐다.
그것이 어떤 감정인지는 알지 못했다.
생전 처음 겪어본 이상야릇한 감정이었다.
하지만 따뜻했다.
따뜻해서 애달프게만 느껴지는
그런 이상한 감정이었다.
조셉은 저녁 때가 되자
슬그머니 방에서 나와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밥먹던 도중 조셉이 말했다.
[너 다음 주 수요일 수업 없지.]
[그런데요?]
[그럼 그때 나랑 어디 좀 가자.]
[어디를요?]
[그냥 밖에.]
[좋아요!]
집에만 있느라 답답한 건지
또다시 외출한다는 소리에
마리안느는 기뻐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다음 주 수요일 아침과 함께
세리자와가 집으로 찾아왔다.
[안녕~ 마리 쨩~]
[안녕하세요 쉐릴 양... 아니 쉐릴 씨라 불러야 하나요…?]
[그냥 게이 새끼라 부르면 되지 뭘 고민하냐.]
그러자 세리자와가 조셉의 대가리를 때렸다.
얻어맞은 조셉은 세리자와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그렇게 둘은 한바탕 싸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바탕 싸운 다음
세리자와는
마리안느의 외출 세팅을 해주었다.
그렇게 외출 준비가 끝나고
세리자와가 떠나면서
마리안느 몰래
조셉에게 무언가를 건네주었다.
[자. 이거 받아.]
손에 무언가를 쥐어주길래
펴봤더니
콘돔이었다.
콘돔을 받고 놀라서 멍하니 있는 조셉을
세리자와가 히죽히죽 웃으면서 지켜보았다.
조셉은 콘돔을 집어던진 다음
세리자와를 집어던졌다.
내동댕이쳐진 세리자와가
다시 일어나서 반격을 했다.
그렇게 둘은 또다시 싸우기 시작했다.
미친놈들끼리 한바탕 싸우는 꼬락서니를 보아하니
외출하기 좋은 날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