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만의 구더기짱-25화 (25/47)

〈 25화 〉 너를 만나서 나는 다시 살아났다.

* * *

조셉은 마리안느에게 의족을 끼워주고

바지를 입힌 다음

의족에다 운동화를 신겼다.

외출 한번 하려고 준비할 것들이 많았다.

그렇게 준비를 끝마치고

마리안느를 차에 태워서

밖으로 나갔다.

달리는 차 안에서

마리안느가 물었다.

[오늘은 어디 갈 건가요?]

[그냥 뭣 좀 사러 갈 거야.]

마리안느는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지만

그냥 외출하는 것 자체가 신났다.

내향적인 조셉과 달리

활발하고 외향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마리안느는

외출하는 걸 좋아했다.

바다에 갔다 온 이후로

어딘가 놀러 가는 게 처음이어서

마리안느는 신이 났다.

그렇게 1시간쯤 국도를 달려서

도착한 곳은 백화점이었다.

[백화점에서 뭘 사게요?]

[그냥 이것저것.]

조셉은 차에서 내린 뒤

마리안느를 업고

백화점으로 들어갔다.

평일 대낮에 백화점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 백화점 안에서

마리안느를 업고 돌아다니는 모습은

특이한 모습이긴 했다.

그 현장을 목격한 어떤 청년은

그렇게 어부바하고 있는 두 사람을 보고

여자 업고 백화점 돌아다니지 말고

모텔 가서 짝짓기나 할 것이지

왜 대낮부터 저런 꼴을 솔로인 내가 봐야 하는지

그런 원망이 섞인 시선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리안느를 업은

조셉은 우선 주방코너로 갔다.

주방코너로 가서 고급 식칼들을 구경했다.

[집에 있는 건 잘 안 잘리더라. 하나 사야겠다.]

조셉은 그렇게 말하면서

식칼을 구경만 하고 사지는 않자

마리안느가 물었다.

[식칼 산다면서요?]

[바보냐? 지금 이런 상태로 물건을 어떻게 사냐?]

마리안느를 업고 있는 상태로는

손을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해서

물건을 구매하기도

구매한 물건을 들고 다니기도

이래저래 귀찮은 상황이었다.

[그럼 어쩌게요?]

[일단 둘러만 보고 나중에 한 번에 사야지.]

그렇게 말하면서 주방코너를 나온 조셉은

다음으로는 남성복 코너로 가서

곧 다가올 여름에 입을 티셔츠를 살펴보기도 하고

마리안느가 자기 옷도 보고 싶다면서 찡찡거려서

여성복 코너로 가서 마리안느가 입을 옷을 살펴보았다.

그렇게 윈도 쇼핑을 하던 두 사람은

백화점에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점심시간도 지났고

평일이라 식당은 한산했다.

마리안느를 자리에 앉혀준 뒤

그 옆에 앉은 조셉은 주문을 했다.

마리안느는 함박스테이크를

조셉은 피자를 주문했다.

마리안느 옆에 앉은 조셉은

함박스테이크를 한입 크기로 썰어서

마리안느 입에다 넣어주었다.

식사를 마친 마리안느는

파르페를 주문했다.

파르페가 나오는 동안

식은 피자를 먹으면서

조셉이 말했다.

[백화점에서 밥 먹는 것도 오랜만이네]

[그래요?]

[20년 전쯤인가? 초등학생 때 온 이후 처음인 거 같은데.]

[부모님이랑 자주 오지 않았어요?]

[내 부모는 한심한 가난뱅이라 이런 데서 사 먹는 걸 싫어했어.]

[부모님께 말이 심한 거 아니에요…?]

[한심하니까 한심하다 말하지 뭐라 하냐.]

부모님을 한심하게 생각했다.

단순히 부모가 가난해서 한심하게 본 것이 아니다.

이런 데는 비싸다며 잘 사주지도 않았지만

기껏 이런 데 와서 식사해도

먹고 싶은 걸 주문하면 비싸다고 못 시키게 하니

파르페 같은 디저트를 먹는 건 생각도 못 했다.

그렇게 아낀 돈은 어차피 술이나 마시는 데 쓰면서

자식새끼 먹고 싶은 것도 못 사주고 쩔쩔매다니

그런 부모님의 모습이 지금도 한심하게만 느껴진다.

[부모가 푼돈 아까워서 쩔쩔매는 꼴을 보고 자식이 어떻게 생각하겠냐? 그런 꼴을 보고 나는 저렇게 되지 말고 뭐든 사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사 먹기로 결심했지.]

[근데 왜 그것만 먹어요?]

그렇게 말하고는

달랑 피자만 시킨 조셉을 보고

마리안느가 물었다.

[마음껏 먹고 싶었던 건 어린 시절에나 그러고 싶었던 거지 지금은 별로 먹고 싶지도 않아.]

조셉이 그렇게 말하는 동안

마리안느가 시킨 파르페가 나왔다.

어렸을 때는 그렇게나 먹고 싶었던 파르페도

지금은 그냥 아무 느낌도 들지 않는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원하는 것도

보이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모든 것이 다르다.

그 옛날 나의 비장한 각오도

지금의 나에게는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그런 생각을 하며

조셉은 파르페를 떠서

마리안느의 입에 넣어주었다.

마리안느는 말없이 잘 받아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한 뒤

조셉은 마리안느를 업고 가게를 나와서

다시 백화점을 둘러보았다.

그렇게 둘러보던 중

백화점 명품관을 지나가게 되었다.

조셉은 자세히 둘러보았으나

마리안느는 별 흥미가 없는 듯했다.

[너는 이런 거 안 좋아하냐?]

조셉의 물음에 마리안느가 대답했다.

[어차피 이제는 필요도 없는데요.]

아무리 좋은 구두도

아무리 비싼 가방도

마리안느에게는 필요 없는 물건이었다.

구두를 신을 발도

가방을 들고 다닐 손도

마리안느에게는 없었다.

그렇게 백화점을 구경한 뒤

주차장으로 간 조셉은

마리안느를 조수석에 앉혀두고

다시 백화점으로 가서 봐두었던 물건들을 사서 차로 돌아왔다.

다시 차를 타고 달려서

집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지고 있었다.

조셉은 차에서 마리안느를 먼저 집에다 데려다준 다음

백화점에서 구매한 물건들을 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소파에 앉아있는 마리안느는

의족을 벗겨달라고

조셉에게 말했다.

[잠깐만 있어 봐.]

그렇게 말하던조셉은

쇼핑백 중 하나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네 멋대로 나한테 선물을 사줬으니 나도 내 멋대로 샀다.]

조셉이 쇼핑백에서 꺼낸 것은

구두였다.

아까 백화점 명품관을 지나면서 봤던

그 구두였다.

구두를 선물 받은 마리안느는 놀랐다.

그러더니

마리안느의 놀란 표정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변하고

그다음에는 슬픈 표정으로 변하더니

곧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런 표정을 지으면서

마리안느는 말했다.

[구두 같은 건 왜 사준 거에요…?]

마리안느는 울먹이면서 말했다.

[지금 나 놀리는 거죠…?]

걷지도 못하는 자신에게

구두를 선물하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조롱? 기만? 능욕?

이런 추잡한 방식으로

자신을 놀리는 걸까?

[신지도 못할 구두를 왜 사주는 건데요... 그게 무슨 선물이에요....]

자신을 괴롭히고

구더기라 부르고

짓밟고 발로 차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런 방식으로

자신을 놀리다니

너무하다고

생각한 마리안느는

그만 울고 말았다.

그렇게 우는 마리안느를

어이없게 바라보며 조셉은 말했다.

[뭔 소리야?]

그렇게 말한 조셉은

소파에 앉아있는 마리안느에게 다가갔다.

[내가 너 놀리려고 구두를 샀겠냐?]

조셉은 한쪽 무릎을 꿇고

마리안느의 의족에 끼워져있는 운동화를 벗겨냈다.

그런 다음

백화점에서 사온 구두를 의족에다 신겼다.

조셉은 마리안느의 가짜 발에다가 구두를 신겨주었다.

[운동화가 너무 칙칙해서 예쁜 구두로 바꿔줬더니 욕만 얻어먹네.]

그런 모습을 보고

마리안느가 따져 물었다.

[그게 무슨 쓸모가 있어요? 그냥 장식이잖아요....]

[그렇게 치면 팔찌나 목걸이는 뭐하러 차고다니냐? 그냥 장식인데.]

조셉은 그렇게 말한 뒤

마리안느를 등에 업었다.

등에 업고 거울 앞으로 갔다.

[한번 봐봐. 이렇게 있으면 구두가 잘 보이잖아.]

조셉에게 등에 업혀있으면

허공에 떠 있는 구두가 눈에 잘 들어왔다.

의족에다 신긴 구두지만

마치 진짜 신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가짜 발이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예쁜 신발인게 보기 좋잖아.]

조셉은 그렇게 말한뒤

마리안느를 업고 거실을 가볍게 걸었다.

조셉이 자신을 업고 거실을 걷는 동안

마리안느는 자신의 가짜 발을 보았다.

조셉이 걸을 때마다

가짜 발에 신겨져 있는 구두가

공중에서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렇게 구두를 바라보고 있는 마리안느에게

조셉은 말했다.

[혹시 가고 싶은 곳 있으면 얘기라도 해봐.]

조셉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어서 이야기했다.

[데리고 갈 수 있으면 데려가 줄 테니까.]

그런 말을 들은

마리안느가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고마워요....]

마리안느는

고개를 아래로 내려서

신고 있는 구두를 바라보았다.

구두는 아름답게 빛났다.

마리안느는 등에 업힌 채로

구두를 바라보면서

고민에 빠졌다.

선물 받은 이 아름다운 구두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며 자랑하려면

어디로 데려가 달라고 해야 할까?

마리안느는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누군가 자신에게 사준 구두를

그리고

자신을 업고 있는

쌀쌀맞고

솔직하지 못하고

심술 맞지만

그렇지만

그런 남자가

자신의 곁에 있다는

그 사실을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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