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 내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 * *
다음날이었다.
마리안느는 이불에 누워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마리안느는 외출하지 못했다.
감기에 걸렸기 때문이다.
마리안느의 안색이 좋지 않은 걸 눈치챈 조셉이
체온계를 가져와서 마리안느의 체온을 측정해보니
37도 정도 약하게 열이 나고 있었다.
[이런 상태면 외출은 못 한다.]
조셉이 그렇게 말하자
마리안느는 실망했다.
밖에 외출하는 걸 기대하고 있었는데
자신의 연약한 몸뚱이는
항상 마리안느가 행복해지는 걸 방해하곤 했다.
[일단은 누워서 좀 쉬고 있어.]
조셉은 마리안느를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마리안느에게 이불을 덮어준 조셉은
주방으로 가서
마리안느에게 먹일 죽을 만들었다.
죽을 만들면서
조셉은 이 집에 처음 왔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도 마리안느가 아파서 죽을 쑤었다.
그러나 그때 마리안느가 아픈 원인은
조셉 자신 때문이었다.
처음 마리안느를 만난 조셉은
마리안느를 무자비하게 폭행했다.
그랬던 자신이
지금은 마리안느가 감기에 걸리자
마리안느를 위해 죽을 만들고 있었다.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이제 와서 착한 척이라도 하겠다는 걸까....
그런 자기 혐오감을 느끼면서
죽을 다 만든 조셉은
마리안느에게 가져갔다.
방에 들어가자
마리안느는 힘없이 콜록거리며
기침을 하고 있었다.
[죽을 만들어 왔으니 좀 먹어봐.]
조셉은 누워있는 마리안느를 일으켰다.
[별로 먹기 싫어요....]
[좀 먹어야 약도 먹고 기운을 좀 차리지.]
조셉은 그렇게 말하면서
마리안느에게 죽을 떠주었다.
마리안느는 천천히 받아먹기 시작했다.
마리안느는
죽을 몇 숟가락밖에 먹지 못하고
먹는 걸 멈추었다.
조셉은 더는 억지로 먹이지않고
남은 죽을 치워버린 다음
마리안느에게 감기약을 먹였다.
[물을 놔둘 테니까 자주 마시고 푹 쉬고 있어.]
조셉은 컵에 빨대를 꽂아서
마리안느 곁에 놔두었다.
그런 다음 방을 나가려는데
마리안느가 조셉을 불러세웠다.
[가지 말아요...]
마리안느가 힘없는 목소리로 칭얼거렸다.
[중간중간 상태를 보러 올 테니까 잠이나 자고 있어.]
그렇게 말하는 조셉에게
마리안느가 재차 칭얼거렸다.
[내 옆에 있어 줘요....]
그렇게 마리안느가 애원하자
조셉은 나가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마리안느 곁에 앉았다.
마리안느는
손은 없지만
목소리로 사람을 붙잡는
놀라운 재주가 있었다.
그렇게 조셉은
마리안느 곁에 앉아서
마리안느를 지켜보았다.
그렇게 1시간쯤 지나자
창밖으로 비가 오기 시작했다.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마리안느는 천천히 잠이 들었고
마리안느는 잠결에 취한 건지
아니면 열이 남아있어서 그런 건지
천천히 잠이 들면서
조용히 잠꼬대 같은 말을 흘려보냈다.
[고마워요...]
여기서 끝이면 좋으련면
마리안느는 한마디를 더 내뱉고 말았다.
[좋아해요...]
그 말을 내뱉더니
마리안느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고요한 방에서는
창밖에서 나는 빗소리와
그와 함께
새근새근 잠이 든
마리안느의 숨소리만 들려왔다.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
조셉은 마리안느가 내뱉었던
좋아한다는 말을 곱씹고 있었다.
좋아해요
좋아한다라
그러냐
나는 내가 싫은데 말이지
조셉은 마리안느 옆에 쭈그려 앉아서
마리안느가 자는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어디서부터 일이 꼬인 건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죽은 듯이 자는
마리안느를 바라보면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불순한 의도로
이 아이에게 접근했는데
어쩌다 보니
이 아이와
너무 친해져 버렸다.
자신은 그럴 자격이 없었다.
작고 연약하고 천진난만하고
외로움을 잘 타는
그런 여자아이가 좋아해 줄 만한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조셉은 속으로 깊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와
조용히 내뱉는 마리안느의 숨소리는
조셉을 미친 듯이 고민에 빠트렸고
그렇게 미친 듯이 생각해본 조셉은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도달하자
한 가지 사실을 알아차렸다.
조셉은 마리안느의 부모를 죽이려고
마리안느를 찾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복수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았다.
마리안느의 아버지와 만난 것도
15년 전 일이다.
그 당시의 받았던 큰 충격도
15년이란 세월 앞에서
조용히 풍화되어갔었다.
그런데 왜
조셉은 15년 전 있었던 일에 대한 복수를 들먹이면서
마리안느를 찾아왔는가?
조셉은 사실 겁이 나서 도망쳤다.
소방관으로 계속 있는 것이
조셉은 너무나도 두려웠다.
같이 일하던 선배가
자기 대신 죽자
소방관을 하는 게
너무나 두려워져서
계속할 수가 없어서
그러나 선배 대신 살아남은 주제에
겁이 난다는 이유로 도망칠 수 없어서
복수라는 핑곗거리를 대면서
마리안느를 만나러 왔다.
그런 결론에 도출하자
조셉은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앞으로 나는 어쩌면 좋은 걸까?
이렇게 너와 지내면서
조용히 살아가면
그걸로 좋은 걸까?
너를 구더기라 부르면서
그렇게 살아가면 좋은 걸까?
조셉은 과거
소방관을 하면서 겪었던 일을 떠올렸다.
수많은 현장에 가봤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견디기 힘든 게
아동학대 현장이었다.
어둡고 차가운 밤이었다.
아이가 다쳤다는 신고를 받고
어느 가정집에 가보니
온몸에 멍이 든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갈비뼈가 부러져있었고
너무 울어서 제대로 울지도 못하고
탈진해 있었다.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부모에게 묻지 않았다.
아이 부모의 반응과
아이의 상태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아이의 부모는
전혀 울지 않고
전혀 슬퍼하지 않고
단순히
이 모든 상황이 귀찮다는 듯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볼 뿐이었다.
이게 단순 사고가 아닌
아동학대라는 걸
조셉과 다른 대원은 눈치를 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변명을 좀 하자면
우린 경찰이 아니었다.
소방관이었다.
아무 힘도 없었다.
그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응급실로 아이를 이송하고
의료진에게 아동학대인 것 같다고 말하며
경찰에 신고하라고 말하는 것밖에
그것밖에 할 수 없었다.
학대당하는 아동을 눈앞에서 보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을
안타까워하던 조셉은
이제는 작고 연약한
아기 같은 마리안느를
때리고, 발로 차고
온몸에 멍이 들게 만들고
학대하고 있었다.
대체
나는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거지?
어쩌다 그런 부모처럼
나 역시 쓰레기로 변한 것이지?
그리고 왜 나는
내가 학대한 여자아이에게
갑자기 잘해주면서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는 거지?
갑자기 나도 모르게
학대한 죄책감이 들어서
회개한답시고
이제 와서 잘해주는건가?
그렇게
밤새 고민하던 조셉은
결론을 내렸다.
마리안느
나는 너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을 것이다.
용서를 구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나는 너무나도 큰 죄악을 저지르고 말았다.
나는 살아남았으면 안 되었다.
죽은 선배 대신
내가 죽었어야 했다.
만약 선배 대신
내가 불에 타 죽었더라면
그랬다면 나는
너에게 찾아올 수도 없었을 것이고
불쌍하고 연약한 너를
때리고 발로 차고
구더기라 놀리면서
너를 학대하는 일도 없었겠지.
마리안느
나를 좋아해 주지 말렴
나에게 친근하게 대해주지 말아 주렴
나는 너에게 호감을 받을
그런 자격이 없단다.
.
차라리 나를 미워하렴
너를 구더기라 부르는 나를
미워하고 원망하며
싫어해 주렴
나 같은 인간은
살아있으면 안 되는
죽어 마땅한
쓰레기 같은 인간이니까.
불에 타 죽을 운명이었지만
살아남은 나는
너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고
조용히 너를 돌보다가
그러다가 죽으면
지옥불에 떨어져서
불에 타지 못한 몸뚱아리 대신
영혼이 불타겠지
나는 그래도 마땅한 인간이다.
너와 달리
나는 행복이란 걸 바라면 안되는
그런 쓰레기 같은 인간이다.
그런 생각을 끝마친 조셉은
마리안느가 잠든 방에서
조용히 빠져나왔다.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마리안느는 일어나보니
온몸이 가뿐해졌다.
감기가 씻은 듯이 싹 나아있었다.
[이제 다 나은 것 같아요. 몸이 완전 쌩쌩해요.]
그렇게 말하면서 마리안느는
거실로 나왔다.
조셉은 주방에서 아침을 만들고 있었다.
[오늘 아침은 뭐에요?]
마리안느가 조셉에게 물어보았다.
그러나 조셉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왜 그래요…?]
어디가 안 좋은 건가?
아니면 잘못 들은 건가?
그런 의문을 가지고
마리안느는 조셉에게 다가갔고
마리안느가 곁에 다가오자
조셉은 갑자기
마리안느를 발로 밀쳐냈다.
갑자기 조셉에게서 밀려나자
마리안느는 놀라서 굳어있었다.
놀란 표정으로 마리안느가
조셉에게 물었다.
[....갑자기 왜 그러는 거예요...?]
그런 마리안느에게
조셉은 차가운 시선으로
차가운 말투로
단지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나한테 앵기지마. 구더기 새끼야.]
갑작스럽게 달라진 조셉의 반응에
마리안느는 그만 꿈을 꾸고 있다고
그렇게 생각해버렸다.
발로 밀쳐져서
아픈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제발 이것이 꿈이기를
지독한 악몽이기를
그렇게 생각하며
가혹한 현실을 부정할 뿐이었다.
그러지 않고는
너무나 달라진
저 남자의 태도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