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 마리안느, 너를 만나서 나는 행복했다.
* * *
천사라니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었다.
분명 조셉은
열이 나서 헛것을 보고 있거나
꿈을 꾸고 있거나
아니면 죽은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천사가 나타날 리 있겠는가?
그러나 조셉은 열이 나서 제정신이 아니었고
천사가 자신을 죽이러 왔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마리안느와 꼭 닮은
천사를 바라보면서 말이다.
그런 천사를 바라보자
조셉은 한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내가 죽으면
마리안느는 어떻게 되는 거지?
그런 생각이 떠오르자
조셉은 본인조차도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헛소리를
천사에게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떠들다가
지쳐버린 조셉은
그대로 잠이 들고 말았다.
아침이 밝았다.
조셉은 살아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열도 내리고
더는 아프지도 않았다.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
조셉은 고개를 들어보니
이마에서 무언가 떨어졌다.
젖은 수건이었다.
조셉은 젖은 수건을 손에 쥐고
한참을 바라보다가
누가 자신의 이마에
젖은 수건을 올려놨는지
깨달았다.
조셉이 거실로 나와보니
마리안느가 거실에 있었다.
그런 마리안느를 무시하고
조셉은 말없이 주방으로 갔다.
그런 조셉에게
마리안느가 말했다.
[나는 괜찮아요.....]
그 말을 들은 조셉은
놀라서 굳어버렸다.
[나는 이미 예전에 당신을 용서했어요…그러니...더이상 자신을 괴롭히지 말아요…]
그 말을 들은 조셉은
떨리는 자신의 손을 붙잡으며
마리안느에게 물었다.
[무슨 말이야…?]
그러자 마리안느가
슬픈 눈으로 바라보며
조셉에게 말했다.
[어젯밤에 있었던 일 기억 안 나요...?]
어젯밤에는 열이 너무 심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셉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런 조셉에게
마리안느가 말해주었다.
[당신이 전부 말해주었어요....]
슬픈 얼굴을 하고 있는 마리안느가
조셉에게 말했다.
[전부다……]
어젯밤
조셉에게 무시당한 마리안느가
자기 방에 누워서
훌쩍이고 있는데
어디선가 끙끙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셉의 방에서 나는 소리였다.
마리안느는 우산을 입에 물고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당겨서 문을 열었다.
방에서 나와
조셉에게 다가가 보니
조셉이 방바닥에서 쓰러져 있었다.
땀이 맺히는 조셉의 이마에
뺨을 가져다 대보니
이마가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마리안느는 자기 방 욕실로 가서
조셉이 자신을 위해 설치해줬던
수도꼭지를 입으로 돌려서
수건에다 물을 적셨다.
축축해진 수건을 입으로 물고
다시 조셉에게 기어간 마리안느는
젖은 수건을 조셉의 이마에다 올려놓았다.
그러자 조셉이 눈을 뜨고
마리안느를 바라보았다.
마리안느를 바라보던 조셉은
열이 심한지
이상한 헛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저는....아직 죽을 수 없습니다.....]
갑자기 조셉이
자신을 천사라 부르며 헛소리를 하자
깜짝 놀란 마리안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그런 마리안느에게
조셉은 계속 떠들어댔다.
[저는 아무것도 못하고.....겁이나서 도망친 인간입니다...
나약한 자신을 속이려고....
복수라는 핑계를 대면서 도망친....겁쟁이입니다....]
조셉이 갑자기 이상한 말을 하자
마리안느는 당황했으나
잠자코 지켜보았다.
[저는 겁쟁이로 살아왔습니다....]
조셉은 눈을 감고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부모님의 죽음
마리안느의 아버지가 했던 말
소방관 선배의 죽음을 목격하고
괴로워하던 자신
그리고 마리안느를 찾아온 이유를
마리안느에게 전부 말했다.
[그렇게 저는
복수한다는 핑계로.....
죄없고 힘없는 여자아이를
너무나도 무자비하게 괴롭히면서…
그 아이에게 화풀이했습니다….]
말을 너무 했는지
콜록거리던 조셉은
힘겹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 제 자신을...
저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습니다....
겁이 나서 도망치고 .....
여자아이를 괴롭히며...
화풀이를 하던 제 자신을....
전부 용서할 수 없지만.....
무엇보다 용서할 수 없는 것은.....
그 여자아이에게.....
전부 사실대로 말하고….
잘못했다고...용서를 구할수가 없다는 겁니다...]
잠시 숨을 고르던 조셉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여자아이 앞에서
무릎 꿇고 사과할
그럴 용기가 나지 않는 제 자신을....
저는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다 쉬어가는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
[그러나.....
저는 살아야겠습니다......
저는 살아야합니다...
제가 죽으면...
그 여자아이를 보살필 사람이 없습니다....]
삶의 목적을 잃고 죽고 싶었으나
마리안느를 만나고
마리안느와 함께 지내면서
삶의 목적을 찾아냈다.
그런데 이제와서 죽을 수는 없었다.
[그러니 제발....아직 저를 죽이지 마세요....
그 아이한테 사과는 못하더라도…
그 아이를 위해 살아가겠습니다....
그렇게 살아가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던 조셉은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 아이를 돌보며 살아가다가...
만약... 만약에라도...
저한테 조금이라도 용기란 게 생긴다면....
그 아이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습니다...]
감겨있는 조셉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마리안느에게 전하지 못한
사과의 말들을 쏟아냈다.
[괴롭혀서 미안하다고....
때려서 미안하다고.....
구더기라 놀려서 미안하다고....
용서하지 못하겠지만...
정말로 미안하다고..
그 말을 꼭...전하고 싶습니다...]
눈물을 흘리던 조셉은
천사로 착각한 마리안느에게 빌기 시작했다.
[그러니...제발...아직 저를 죽이지 말아주세요...
그리고 살려주신다면...
제게 용기를 내려주세요...
제발...조금이라도...용기를 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말하던 조셉은
스르륵 눈을 감고 잠에 빠졌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조용히 울던 마리안느는
조셉의 곁에서
눈을 꼭 감고 기도했다.
이미 자신은 이 사람을 용서했으니
이 사람을 미워하지 말아달라고
상처 입은 이 사람을 보살펴달라고
그리고 만약 이 사람이 운다면
지금처럼 몰래 숨어서 혼자 울지 않고
마리안느 앞에서 울기를
그래서 부디
이 사람이 행복해지기를
마리안느는 손이 없어서
두 손 모아 기도하지는 못하지만
두 눈 꼭 감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렇게 마리안느는 기도를 마치고
방에서 나갔다.
그러자 조셉의 몸에서
열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셉은
다시 아침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마리안느가
조셉에게 어젯밤 있었던 일들을 말해주자
조셉은 당황하며
아무것도 못 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런 조셉에게
마리안느가 외쳤다.
[날 때려서 당신이 즐겁다면.....
당신이 행복하다면....
얼마든지 때려도 돼요...
얼마든지 괴롭힘당해도 상관없어요....
그치만.....
날 괴롭히는 당신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당신은 괴로워하고 있어요....
당신은....
나를 괴롭히면서...
괴로워하고 있잖아요....
나는 아무리 아파도 상관없어요...
하지만....
당신의 마음이 아파하는 걸 보고 있으면
너무나 괴로워져요....
그러니까....
자신을 괴롭히지 마요....
자신을 상처입히지 말아요...]
그런 마리안느의 외침을
조용히 듣고 있던 조셉은
갑자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닥쳐!!!]
갑자기 흥분한 조셉은
외치기 시작했다.
[네가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래!!!]
그러더니 마리안느에게 달려와
마리안느 위에 올라타서
마리안느를 마구 때렸다.
자신의 약함을 숨기기 위해
마리안느의 말을 부정하기 위해
마구잡이로 두들겨 팼다.
그렇게 마리안느는
조셉에게 마구잡이로 얻어맞는 와중에
조용히 말했다.
[울...지 말아요....]
마리안느의 그 말의
조셉은 때리는 걸 멈추고
마리안느를 바라보았다.
마리안느의 얼굴 위로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조셉은 울고 있었다.
조셉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려
마리안느의 얼굴로 떨어지고 있었다.
사지가 없는 여자를 때리면서
울고 있는
추악한 남자에게
사지가 없는 여자는
두들겨 맞으면서도
울지 말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조셉은 마리안느를 때리는 걸 멈추고
마리안느에게서 떨어져서
혼자 주저앉아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울었다.
그런 조셉에게
마리안느가 다가가서
조셉의 눈가를
혀로 햝아주었다.
손이 없는 마리안느는
눈물을 닦아줄 수 없기에
이런 것 밖에 해줄 수 없었다.
그런 마리안느를 보면서
추악하며
비열하면서도
솔직하지 못한
한심한 남자는
그만
엉엉 울고 말았다.
그렇게 오열하는 남자를
마리안느가 달래주었다.
[울지 말아요....당신이 울면....나도 슬퍼져요...]
마리안느는 조셉에게 얻어맞아
피가 흐르고 있는 입으로 그렇게 말했다.
조셉은 그런 마리안느를
품에다 꼭 끌어안고
한참을 엉엉 울었다.
그렇게 어린애처럼
엉엉 울고있는
추악하고
비열하면서도
솔직하지 못하지만
순해 빠진
그런 한심한 남자를
마리안느는 사랑했고
조용히 울던 남자는
마리안느를 꼭 끌어안으며
한참을 오열했다.
울지 말라고
자신을 위로하는 마리안느를
품에다 꼭 끌어안고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미안해....마리안느...때려서....괴롭혀서...정말로.....정말로 미안해...]
그렇게 말하면서
한참을 울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