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 이제 네 곁에 있을 필요가 없겠지
* * *
평범한 학생이었던 나는
갑작스럽게 시공간균열에 휘말려서
먼 과거로 보내졌다.
문제는 멀어도 너무 먼 옛날이었다는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살펴보니
저 멀리서 공룡들이 보였다.
그렇다.
나는 공룡시대로 떨어졌다.
내가 이 시대에서
유일한 인간이었다.
이상한 나무 열매로 배를 채우면서
1m가 넘는 잠자리들을 피해
한참을 떠돌아다니다가
딜로포사우루스와 마주쳤다.
“착하지...날...잡아먹지말아주렴...”
겁이 나서 나도 모르게
공룡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눈앞에 서 있는 공룡은
내게 말을 걸었다.
“넌...무엇이냐...?”
“말을 할 줄 알아?”
듣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눈앞에 공룡이 말을 했다.
그러나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너 무슨 맛인지 궁금하다.”
“맙소사...”
나는 달아났으나
재빠른 공룡에게 도망갈 수 없었고
결국에는 붙잡혔다.
그렇게 꼼짝없이 잡아먹히려는 순간
나를 잡아먹으려던 딜로포사우루스는
거대한 육식공룡에게 잡아먹혔다.
그 공룡은 티렉스였다.
딜로포사우루스를 꿀떡 삼킨 티렉스는
겁에 질려있는 나를 보더니
신기한 생명체라며
나를 키워주고 가르쳐주었다
“왜 저를 잡아먹지 않는 거죠?”
내가 조심스럽게 물으니
티렉스는 웃으면서 말했다.
“너처럼 작은 녀석을 먹어봤자 뭐하겠느냐.”
시간이 지나고 나는 티렉스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 시대에서 가장 강력한 생명체였다.
그는 이 시대에 왕이었다.
다른 공룡들은 그를 폭군이라 불렸다.
티렉스가 공룡을 잡아 와서
나에게 고기를 나눠주자
나는 불을 피워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티렉스는 구워서 고기를 먹는 내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그래서 나는 큼지막한 고기를 구워서 티렉스에게 주었고
티렉스는 구운 고기를 마음에 들어 했다.
그 이후로 나는 티렉스에게 고기를 구워주었다.
커다란 공룡고기를 굽는 일은 매우 힘들었다.
그렇게 고기를 먹고 밤이 되면
나는 티렉스 위에 누워서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대기오염이 전혀 없는
이 시대의 하늘은
별이 너무나 잘 보였다.
너무 선명하게 잘 보여서
내 앞으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때때로 티렉스도
나와 함께 밤하늘을 쳐다보며
저 하늘을 뛰어넘어 날고 싶다고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익룡들처럼요?.”
그 말은 들은 티렉스는 웃었다.
“익룡들이 날고 있는 거 같으냐?
날아서 저 우주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으냐?”
그렇게 말한 티렉스가 이어 말했다.
“진정으로 난다는 것은 누구보다 높이 날아서 별이든 달이든 갈 수 있을 정도로 그 누구보다 높이 나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추구하는 하늘을 뛰어넘는 것. 말하자면 승천이란 것이다.”
티렉스가 말하는 걸 들으면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다가 잠이 들었다.
그렇게 지내면서
시간이 흘렀고
공룡들의 시대는 끝이 나고 말았다
하늘이 무너지면서
하늘 아래에서 살아가던 공룡들은
멸망하고 말았다.
떨어지는 운석을 피하던 중
마지막까지 나를 감싸다 죽은 티렉스를 보면서
나는 그가 왜 그렇게 하늘을 뛰어넘고 싶어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죽은 티렉스 곁에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별의 조각을 맞으며
나는 눈을 감았다.
그렇게 죽은 나는 다시 태어났다.
다시 태어난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런데 이 시대 사람들은 무공이란 걸 쓰고 있었고
내가 태어난 집안은 사이비종교의 우두머리 집안이었다.
어느 정도 자라서 움직일 수 있게 된 나는
공룡들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던 공룡들은 모두 죽고
뼈만 남아있었다.
사람들은 그 뼈를
고대용들의 뼈라고
그렇게 불렀다.
어느 정도 자란 나는
내 아버지란 사람에게서 무공이란 걸 배웠지만
나는 그런 무공이란 것이 하찮게 느껴졌다.
인간들이 아무리 무공을 배워 무력을 키워도
그 시대 공룡들의 무력에 비하면
그야말로 닭이 퍼덕이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나는 무공을 새로 만들었다.
그들과 함께 살아가며
그들에게 배웠던
그들의 움직임을
무공에다 담았다
트리케라톱스의 강력한 뿔
삼각권
벨로시랩터의 날카로운 발톱
렵조첨
스테고사우루스가 휘두르는 꼬리
극각권
그리고 나를 키워주었던
티렉스의 이빨
폭군아권
고대의 용들의 움직임을
초식에 담아 무공을 만들었다.
그런 무공을 쓰자
어느 새부터인가 세간에서는
나를 이렇게 불렀다
정파가 아닌 사파의 무공을 쓰는
정통무공의 틀을 깨버린
외도의 길을 걷는
무시무시한
고룡들의 권법을 쓰는 자.
공룡천마(????)
세상은 나를 그렇게 불렀다.
[이게 뭐야...........]
마리안느가 불러 준 내용을 받아적으면서
조셉은 그렇게 말했다.
[왜요? 이상해요?]
조셉의 무릎 위에 앉아있는
마리안느가 조셉에게 물었다.
[엄청 이상해.]
[어디가요?]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조셉은 잠시 고민을 하더니 말했다.
[시공간 균열에 어떻게 휘말렸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이건 넘어가고.]
[우선 말이지. 공룡하고 인간이 어떻게 대화하는데?]
[글쎄요? 텔레파시라던가?]
[그래 뭐 그렇다고 하자.]
[그럼 운석을 맞고 죽었는데 어째서 고대 중국에서 환생하는 건데?]
[글쎄요? 무공을 써야 하니까?]
[그래 뭐 다른 것들은 소설이니까 그렇다 칠게. 그런데 제일 이상한 점이 무엇이냐 하면.]
조셉은 스크롤을 올려서
주인공이 딜로포 사우르스와 만나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딜로포사우루스는 쥐라기 시대 공룡이고 티라노는 백악기 시대 공룡이라고.]
[그런데요?]
마리안느가 그게 무슨 문제냐고 물었다.
[이 둘은 절대 만날 수가 없다고.]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간
두 공룡이 만나다니
고증이 엉망이다.
[공룡에 대해 잘 아시네요?]
[어렸을 때 공룡을 좋아했거든.]
대부분 남자애는 공룡이라면 환장했다.
조셉도 어렸을 때는 공룡 이름을 외우고 다녔다.
지금은 거의 잊어먹었지만 말이다.
마리안느가 딜로포사우루스를 넣은 것은
쥬라기공원이란 영화 때문이다.
얼마 전에 조셉과 같이 봤던 영화에서
딜로포사우루스란 공룡이 등장했다.
[그런데 상관없지 않아요?]
조셉에게 지적을 받은
마리안느가 말했다.
[이상하면 어때요? 어차피 소설인데.]
실제 사실과 다르면 어떤가
어차피 소설인데
[하긴, 그렇네.]
조셉은 이상한 점을 무시하고
마리안느가 불러주는 것을 받아적었다.
그렇게 전부 받아적은 조셉은
마리안느가 창작한 소설을
인터넷에 올렸다.
그러나 생각보다
마리안느의 소설에
사람들이 반응했다.
마리안느의 공룡천마는 점점 인기를 받더니
어느샌가 웹소설 사이트에서 순위 상위권을 차지했다.
그만큼 뭐라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런 건 무협이 아니라고 규탄하는 댓글과
주인공은 티라노가 살던 시대로 떨어졌는데
그 시대에서는 볼 수 없는 스테고사우루스를
어떻게 주인공이 볼 수 있는지 설명해달라는
그런 댓글들이 달렸다.
막장 전개를 달리는 이상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그래도 인기가 많았다.
높은 인기만큼 조회수가 폭발했고
응원하는 댓글들이 많이 달렸고
내용은 점점 막장으로 가더니
급기야 이런 내용까지 나오게 되었다.
“폭군?”
“...그렇게 불리는 것도 오랜만이구나…”
그렇게 말한 여인은
이제는 반짝이는 비늘도
날카로운 이빨도 없지만
그 눈빛만은 여전했다.
그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내게 말을 걸었다.
“오랜만이구나.”
누구보다 강렬했고
누구보다 애처롭게
하늘을 바라보았던
그 눈빛으로 말이다.
“잘 지냈느냐? 태초의 인간이여.”
나를 돌봐주었던
그 폭군 공룡은
인간 여자의 모습으로
내 앞에 서 있었다.
[이게 말이 되냐?]
공룡천마는 점점 막장으로 가더니
이제는 급기야
인간 여성으로 환생한
티라노가 등장하자
조셉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마리안느에게 말했다.
회차가 진행될수록
내용은 점점 막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치만 이래야 독자들이 좋아한다고요.]
마리안느의 말대로
인간 여성으로 변한 티라노인
폭군 여왕이 나오면서
공룡천마의 인기가 정점을 찍었다.
유료로 전환해서 연재하자는 에이전트들의 계약문의가
회차를 거듭할 때마다 늘어났다.
그렇게 조셉이
마리안느를 무릎에 앉히고
마리안느가 불러주는 소설을 다 받아적자
어느새 밤이 되었다.
조셉은 마리안느를 씻기고
이불에 눕혔다.
자기 방에 누운 조셉은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인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에는 어떻게 진행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오랜만에 날씨가 좋았다.
점심을 먹은 마리안느는
노트북으로 화상 수업을 진행했다.
수업을 마치자
마리안느가 노트북을 껐다.
마리안느가 노트북을 끄자
옆에서 지켜보던 조셉이
마리안느에게 물었다.
[소설 안 쓰게?]
[네. 이제 그만 쓰려고요.]
[어째서?]
[소설 내용을 불러주느라 목도 아프고. 수업 준비도 해야 하고 무엇보다 말이죠.]
마리안느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날씨가 좋잖아요.]
마리안느가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밖으로 놀러 나갈 시간이에요.]
그렇게 말하면서 마리안느가 웃었다.
[그럼 공룡천마는 어떻게 하게?]
[연재 중단해야죠.]
[엑.]
조셉은 잠시 경악하더니
마리안느에게 말했다.
[그럼 이것만 알려줘…]
[뭐를요?]
[그다음부터 어떻게 되는 건데? 폭군여왕은 어떻게 되는 거야? 그리고 진정한 용권을 쓰겠다던 주인공은 어떻게 끝나지?]
조셉은 공룡천마 내용이
너무 막장이라고 말했지만
마리안느 대신 대필을 하다 보니
조셉은 어느샌가 자신도 모르게
열렬한 팬이 되어있었다.
그런 조셉을 바라본 마리안느가
웃으면서 말했다.
[비밀이에요.]
* * *